텅 빈 거실에는 전화기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전화기는 1분 정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는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잠시 후, 한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새어나왔다. 남성의 목소리는 약간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였다.
「아아, 쑨. 전화를 받아서 이렇게 메세지라도 남겨.」
짧은 시간, 세상이 멈춘 것인지 착각을 할 정도의 정적이 울려퍼졌다.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 네가 필요해.」
[ Need You Now]
w. Kei
BGM :: Lady Antebellum - Need You Now
쑨양의 세계는 색을 잃은 무채색의 세계가 되어있었다. 거짓말 같던 이별 통보에 쑨양은 자신의 목이 매어옴을 느꼈다. 자신의 세계를 밝고 따뜻하게 해주었던 소중한 그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시금 실감이나기 시작했다. 가슴의 한 쪽이 미칠 듯이 아려왔다. 참기 힘들고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도 못한 고통이었다. 사진 속의 웃고있는 자신과 미소지으며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태환이 보였다. 수많은 사진 속에 파묻힌 채로 쑨양은 눈물을 흘렸다. 시계에서는 똑딱똑딱하는 경쾌한 소리만이 들려왔다.
직장에서 태환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에게 질려서 그를 버린 것은 분명히 자신일터인데, 이제와서 같잖은 연민과 동정,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이 뇌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살아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이것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 그자체였다. 태환은 한숨을 쉬고 사무실의 문을 열고는 자판기의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며 자판기에 동전을 투입했다. 자판기로 들어가는 동전 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쑨양의 휴대폰에서는 회사로부터의 전화가 계속해서 오고있었다. 쑨양이 불굴의 의지로 전화를 거는 자신의 사장에게 감동을 한 것인지 힘겹게 휴대폰을 잡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니, 자네 지금 어디인가! 시간이 몇 시인데 이러고있어!"
"...죄송합니다. 오늘 몸이..."
쑨양의 힘 없는 어눌한 어투의 한국어에 사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알겠네. 몸이 안좋다니 별 수 없지. 다음부터는 전화 한 통이라도 해두게."
"네 죄송합니다."
"자네가 우리 회사의 유망 인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럼, 푹 쉬게나."
그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쑨양의 고통을 끝나지 않을 듯 했다.
태환은 포장마차에서 직장 동료인 현우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빈 소주병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죽어라 퍼마시는 태환을 보며 현우는 조십스럽게 그를 말렸다.
"...저기 팀장님. 그러다가 큰일 나시겠어요. 그만 마시시는게..."
"놔 이 새끼야. 더 마실 수 있어..."
취할대로 취했는지 어눌한 발음과 함께 평소 자신이 담당하는 사원들에게는 절대 쓰지않는 욕까지 중얼거리며 태환은 현우의 손을 뿌리쳤다. 현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환을 바라보는데, 탁자 위에 올려진 자신의 휴대폰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현우가 계쏙 마시려는 태환을 말리며 곁눈질로 휴대폰을 슬쩍 바라보았다. 액정에는 큰 글씨로 [쑨양]이 떠있었다.
현우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역대급의 주사를 부리는 자신의 팀장을 겨우 택시에 태워서 보내놨더니, 이번에는 쑨양이 술을 홀짝홀짝 마시고있었다. 쑨양도 취기가 오르는 것인지 얼굴이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 보다 못한 현우가 어이 없다는 듯이 쑨양을 보고는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었지? 오늘 회사에도 안나오고."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쑨양이 깜짝 놀라더니, 손을 흔들며 강력한 부정의 의사 표현을 했다. 현우는 검지 손가락으로 쑨양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안그래도 방금 취객 한 분 상대하다 와서 기분이 존나 꿀꿀하니까 좋을 말로 할 때 자수하고 광명찾자? 응?"
쑨양은 현우의 말에 약간 인상을 쓰고는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쑨양은 간신히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고는 말했다.
"헤어..졌다. 우리 둘."
현우가 그 말을 듣고는 굳으며 멍하니 쑨양을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자신의 팀장이 왜 그 난리를 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태환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전화기를 들고 쑨양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답장은 뚜루루루, 하는 연결 신호음 뿐이었다. 태환은 여성의 안내를 받으며 전화기에 무어라 말하고는 잠이 들었다. 시계는 1시 15분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쑨양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새벽 두 시가 다되어 있었다. 이별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인지 쑨양은 실소를 터뜨렸다. 쑨양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차마 하지 못하고 자신의 침대 위에 쓰러져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전화기에서는 음성 메세지가 있다고 알리는 붉은 빛이 계속해서 깜빡였지만, 쑨양은 그것을 보지 못한 듯 했다. 쑨양이 그 신호를 본 것은 다음 날 아침, 화장실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날 밤, 태환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서 앞뒤로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어젯밤 술김에 저지른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머리 속을 맴도는 것인지 태환은 모래로 가득한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로등 때문에 주위는 어두운 밤과 대비될 정도로 밝았다. 끼익, 끼익 거리는 그네의 소리와 함께 태환의 그림자도 앞뒤로 움직였다. 그렇게 멍하니 땅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의 그림자가 아닌 다른 그림자가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을 태환은 뒤늦게 눈치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는 쑨양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쑨양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태환을 보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곳. 내가 태환에게 고백했던 장소입니다."
"... 아, 맞아."
"어젯 밤에 메세지 남겼던 것. 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 그래."
태환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땅을 바라보았다. 쑨양의 자신을 향한 시선을 태환은 느낄 수 있었다. 쑨양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태환을 그네에서 일으켜 세우고는 태환을 꼭 껴안았다. 태환은 갑작스러운 쑨양의 행동에 놀랐다.
"쑨."
"내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부족했다면 고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쑨양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쑨양이 자신을 조금 더 강하게 껴안는 것을 느꼈다. 태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태환. 당신이 필요해요."
태환도 자신을 껴안아 주는 쑨양의 어깨에 얼굴을 파 묻고는 보답이라도 하듯이 쑨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도."
원래는 조직물을 쓰려고 했었는데... 몸도 아팠고... 시간도 없고... 팔까지 아파여... 죄송합니다 ㅠㅠㅠㅠ;; 수요일에 올리겠습니다...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S2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