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흰색이 예뻐요, 검정색이 예뻐요?"
둘 다 싫어.
"너한테는 흰색이 더 잘 어울린다."
웃지마.
"그럼 흰색으로 살게요!"
전정국한테 김아미의 존재를 들켜버린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형! 형! 윤기형! 어제 같이 가던 이쁜 선배 이름이 뭐예요?"
"니가 직접 물어봐."
"형 애인이에요?"
"아니. 그냥 친구."
애인이라고 말할 걸.
그 뒤로 전정국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아미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나처럼 귀차니즘이었던 아미는 처음에는 전정국을 무시했지만 어느순간 하나하나 대답해주고 있었다.
"응. 흰색으로 해."
짜증나.
그런 눈으로 전정국 쳐다보지마.
정국이 저 자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베실베실 웃어 웃기는.
아미가 그렇게 좋냐?
"야. ##김아미."
김아미가 뒤쪽에 앉아있던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젠장.
그런 똘망한 눈동자로 보지 말라고.
'왜?'라고 물어보는 김아미의 눈을 피해 대답했다.
"졸리다. 집에 좀 가자."
"하긴 니가 집에 가고 싶어할 때가 됐지."
눈치 없는 전정국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누나 데려다 줄게요."
"그럴까?"
또 전정국이랑 김아미는 눈을 마주치면서 웃는다.
더이상 저 웃음을 뺏기기 전에 내가 용기를 내야 하는걸까.
"전정국."
"왜요, 형?"
"넌 늦었으니까 집에 가라."
"에이~ 저도 배고파요."
"됐으니까 넌 집에 가고. 김아미."
"응?"
"데려다 줄테니까 일어나."
전정국은 '아이 형~ 그럼 내일 봐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전공과목 책을 챙기고 과제하던 건축 설계도 도면을 둘둘 감으면서 일어섰다.
"과제 미뤄도 돼?"
지금 과제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내일 하면 돼."
내일 하기는 무슨.
내일 오전 제출이어서 집에 가서 밤을 새야 된다.
나는 과실에서 자도 되지만 김아미 너 막차 태워서 집 보내려고 그러지.
요즘 밤길이 얼마나 위험한데.
평소에 시끄러운 걸 싫어하지만내 옆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하는 김아미의 목소리는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계속 듣고 싶다.
계속 '응, 응' 해주면서 대답해주다 갑자기 전정국이 생각났다.
"너 전정국 좋아하냐"
"응?"
" 갑자기 무슨..."
"정국이 좋아하냐고."
"....."
" 이성으로."
"야. 정국이는 그냥 친한 동생이지 친한 동생?"
정말일까?
사실 나는 아미를 언제인지 생각도 안나는 시절부터 좋아하고 있다.
초둥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같이 다니는 김아미는 내 첫사랑이다.
맹세하건데 다른 여자는 쳐다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 한참 여자에 대해서 궁금할 때 김아미가 내 방 침대에서 가는 걸 슬쩍 엿보다가볼에 키스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키스도 아니다.
뽀뽀다!
딱 볼에만 했다.
입술도 아니고 볼에0.1초, 아니 0.00001초 만에 떼버렸다.
나는 이 사실을 절대로 말할 생각이 없다.
말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을 거다.
"넌?"
"뭐가넌 내가 전정국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
"나 정국이랑 연애할까?"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추고 김아미가 나를 올려다 봤다.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우리 둘만을 비추고 있었다.
왜?
왜 눈에 눈물이 고이는건데?
우는거야?
내가 울린건가?
여자 형제가 없어서 이런 상황 익숙치 않단 말이야.
"하지마"
"....."
"전정국 좋아하지마."
날 좋아해줘.
뒷 말은 결국 목구멍으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민윤기, 윤기야."
"부끄러우니까 이름 부르지마."
"난 너 좋아해 윤기야."
화끈-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분명히 지금 홍당무가 되었겠지.
"윤기야 나 봐주라."
"....야....김아미....."
"너 그 때 나한테 볼에 뽀뽀했잖아."
"....너....."
"원래 사귄다음에 뽀뽀 아니야?"
아.
주저 앉을 것 같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지금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건 엄청난 정신력 덕분이다.
용기를 내야 하나.
내가 말할 수 있을까.
기회는 지금 뿐이겠지.
살며시 아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좋아서 그랬어."
"........"
"그러니까 너는 전정국 좋아하지 말고"
.
.
.
.
"나랑 연애해."
그렇게 첫사랑에 사랑을 고백한 그날 밤, 우리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