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난 덕에 호출을 뒤늦게 확인했다. 급히 옷을 아무거나 챙겨 입고 의료층으로 달려가 병실 문을 벌컥 열자 안에 있던 이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김유권은."
"여기."
성큼성큼 침대로 걸어가자 보이는 건 여전히 하얀 피부로 누워 있는 김유권.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눈이 희미하게 떠져 있다. 천장만 바라보다가 천천히 움직여 나와 마주친 검은 눈동자. 가만히 그 눈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다가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쓸었고 이민혁도 옆에서 의자를 끌고 와 같이 앉는다.
"언제 일어났어."
"얼마 안 됐어. 아까 아침에 들어오니까."
이민혁이 김유권을 바라보며 김유권의 앳된 얼굴을 쓸어 올렸다. 저 하얀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들었을 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느낌에 의자 한 쪽을 꽉 붙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둘 다 김유권만 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박경이 들어왔다. 손에 들린 차트를 무심한 표정으로 보다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이민혁을 바라본다.
"아무 문제 없어. 코마 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서 지금 당장은 몸을 못 움직이지만 좀 회복되면 일어날 수 있을 거고, 사고 났을 때 다친 곳은 재활 운동 들어가면 돼. 그럼 다시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다행이다, 유권아. 응? 권아."
"어? 야, 야."
갑자기 벌겋던 눈가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이민혁에 당황한 건 나만이 아닌가보다. 박경도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이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민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누워 있는 김유권의 몸을 끌어 안았다. 저거저거 맨날 김유권 옆 지켜볼 때 알아봤다, 하고 박경이 중얼거리며 나가고 나만 뻘쭘하게 병실에서 남아 있었다.
"권아, 난 또 너 정말 죽는 거 아닌가 걱정했잖아. 왜 사람 걱정을 시키고 그래. 아프면 진작에 아프다고 말하지, 왜 그걸 굳이 참고 버텨가지고. 어? 내가 미안해, 권아. 아프지 마. 내가 다 미안하고 고마워."
혼자 횡설수설 떠들어대는 이민혁. 자기도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는 듯 보인다. 곱게 감은 눈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눈물. 문득 보이는 김유권의 길게 찢어진 눈 끝으로 눈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박사님이 웬 일."
"닥쳐."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이태일. 그리고 놀랍게도 그 휠체어를 끌고 있는 건 우지호였다. 내가 우지호를 보고 눈을 크게 뜨자 이태일이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그리고 휠체어 바퀴를 직접 돌려 김유권의 앞으로 갔다. 우지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나를 보고 내 쪽으로 쪼르르 다가와 앉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던 얼굴이 내 앞에 있다.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보니, 우지호가 살짝 고개를 들어서 직접 손으로 내 턱을 꾹 눌러 입을 다물게 해준다. 알았어, 알았다고.
"어떻게, 잘 지냈어?"
"응."
"안 아팠어? 사람들이 너한테 하는 짓들."
"아팠어."
그런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없는 우지호라 괜히 심란해졌다. 아무튼 그건 둘째치고, 오랜만이다. 그치? 응. 조금 피곤한 눈으로 김유권을 응시하는 우지호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김유권 저 놈 살 수 있던 것도 다 우지호 때문인데. 쟤는 아나?
벌써 기운을 차려 침대를 세워 앉아 있는 김유권. 이태일을 보자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평소에도 깐깐하고 신경질적이던 이태일을 무서워하던 김유권이었다.
"어, 바, 박사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 김유권이 이불을 잡아끌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이태일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김유권을 대충 슥 훑어보다가 이내 몸을 뒤로 빼 편하게 앉으며 말했다.
"몇 살이랬지."
"예?"
"몇 살이냐고."
"아...저, 저. 이, 이제 19살이요..."
그래? 아직 어리네. 근데 말을 왜 이렇게 더듬어. 그렇게 말하며 가운 안에 손을 넣다가(필시 담배를 꺼내려는 것이다)멈칫하고 그냥 빈 손을 꺼냈다. 환자 앞이라고 자제하나, 이태일이 죽을 날이 왔나보다.
"학교는 안 다니지."
"네. 자퇴했어요."
"왜 자퇴했어."
그러자 김유권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작은 목소리로 "적응을 못 해서요..."한다. 그러자 이태일은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김유권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김유권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싫다는 말도 못하고 맞고만 있다
."새끼야, 머리 좋은 놈들 적응 못 하는 거 한 두 번 본 게 아니야, 내가. 됐어. 괜찮아. 지금 난 네 놈이 너무 부럽다. 난 네 나이 때 환자들 사이에서 보호되고 있었는데."
사태 이야기를 하나보다. 이태일이 이 연구소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격리된 채 혼자 지내다가 결국 갈 곳 없이 보호소에서 일년이던가 이년이던가, 그 때도 휠체어를 타고 지냈다고 한다. 그 때 이야기만 하면 짜증을 내는 이태일이 저런 말을 다 하네. 서울이 X구역으로 바뀌며 그 위험성에 대한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던 때인지라 이태일은 돌연변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천만 명 중에 살아남은 사람. 하긴, 진짜 괴물같다.
김유권은 웬일로 다정하게(그래도 평소보단 다정한 편이다)대해주는 이태일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내 조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에, 김유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이태일을 굉장히 존경하던 눈으로 보던 게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이태일 성격 알고서 완전 깬다고 욕하다가 뒤에서 나온 이태일 때문에 그 날 죽다 살았었지.
"근데 너 그럼 그 사고 이후로 기억나는 건 없어?"
"사고 이후요? 어어, 그니까. 날아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 뒤로는 전혀..."
그럼 너 발작 일으킨 것도 모르겠네, 하고 튀어 나오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김유권이 주삿바늘이 꽂힌 손으로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리고 이태일이 '그래?'하고 계속 김유권만 바라본다.
"근데, 쟤는 누구에요?"
김유권이 가리킨 건 우지호다. 아, 우지호도 처음 보는구나. 김유권은 자신의 또래, 아니면 더 어려 보이는 우지호를 보고 뭔가 반가움을 느낀건지 얼굴 색이 밝았다. 하긴, 연구소에서 지 또래 학생을 만날 일은 전혀 없으니까. 김유권이 또래 친구가 없다며 울적하게 지내던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고마운 줄 알아. 너 쟤 덕에 살았어."
"예?"
"기억 안 나겠지만, 너 발작 한 번 일으켰어."
발작? 김유권의 표정이 멍청하게 변한다.
"너 불순물 때문에 죽어갈 때, 갑자기 발작 한 번 일으켰는데 그 때 진짜 너 죽는 줄 알았어."
이태일이 약간 입꼬리를 올리고 발작 당시 이야기를 하고, 김유권의 표정은 당혹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녀석은 우지호라고, 표지훈이 데려온 애야."
"내가 데려온 거 아니라니까요."
"닥치시고. 아무튼 X구역에서 발견한 앤데 뭐 피폭괴물이나 그런 놈이겠지. 아무튼 쟤 아니었음 너 그 때 죽었을 거다."
"괴물요?"
김유권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내가 이태일을 살짝 노려보았다. 이태일은 '내가 뭐?'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나는 옆에서 다리를 그네타듯 움직이고 있는 우지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우지호가 뭐냐는 듯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발장난을 친다.
"어, 저기. 우지호라고 했, 나?"
그 말에 우지호가 고개를 들어 김유권과 눈을 마주친다. 까만 눈이 꿈벅꿈벅. 김유권이 아까 이태일이 들어왔을 때처럼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
우지호는 김유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혼자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이에 무안해진 김유권이 뻘쭘하게 몸을 웅크렸다.
"쟤 원래 말 안 하니까 냅둬."
"아, 그래요?"
갑자기 화색이네. 어지간히 창피했나보다. 난 옆에서 발만 휙휙 움직이는 우지호의 귀에 대고 '살아서 다행이지?'하고 물었고 우지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이민혁. 손에 들린 쟁반 위에 죽이 한 그릇 놓여 있다.
"김유권, 밥 먹자."
"죽이잖아요."
"넌 이거 먹어야 돼."
이태일이 물러나고, 이민혁이 의자에 앉았다. 김유권의 앞에 상을 내리고 직접 숟가락으로 죽을 퍼 먹이기 시작하는 이민혁. 김유권도 툴툴대다가 입을 열어 죽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내 옷을 당기는 힘에 고개를 들었다. 어, 우지호.
"할 말 있대."
"어?"
우지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이태일. 나른한 얼굴로 이민혁과 김유권을 바라보던 이태일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다가 우지호의 손가락에 인상을 쓴다. 내가 우지호의 손을 잡아다가 내리게 하고, "할 말요?"하고 물었다.
"일단 나가자. 야, 우린 간다."
"예? 아, 네. 들어가세요."
이민혁이 어정쩡한 자세로 허리를 숙이고 김유권이 얼굴을 꾸벅. 이태일의 휠체어를 밀며 '어디로 가요'하자 휴게실로 가랜다.
큰 휴게실. 다들 일하느라 바쁜지 사람이 없다. 하긴 이제 막 다들 일에 몰입할 시간이니까. 휴게실로 가 휠체어를 놓고 나도 의자에 앉았다. 우지호도 옆에 풀썩 앉고 이태일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할 말이 뭔데요."
틱,틱.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이태일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재촉하면 또 한소리하며 담배 던질 게 너무 뻔해서, 그냥 얌전히 입다물고 있었다.
"동굴 탐사, 언제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조만간 할 거야."
"예."
"너도 참가한다."
뭐라고요? 내가 잘못들었나 싶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할래? 같이 갈래? 같이 가자. 이것도 아니고 너도 한다? 예? 나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는건데?
"뭐에요, 제가 왜."
"나도 너같은 돼지 데려가기 싫거든."
"내가 왜 돼지에요!"
"원래 너한테 연구 마저 시키고 다른 놈들 데려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아니 내가 왜 돼지냐니까."
"우지호 데려가려니까 너 없으면 안 되겠더라. 그니까 너도 와라."
"우지호도 데려가요?"
내 말은 모두 씹고 자기 할 말만 한 이태일. 툴툴대며 내가 묻자 그제야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X구역에서 주변 사람들도 무사하게 만들 수 있고, 데려가면 여러모로 쓸만할 것 같아서. 근데 저 새끼 얘기 너...하고만 하잖아. 그니까 너 데려가는 거다."
"그럼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지,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니까 놀라잖아요."
"미리 말하면 뭐 달라지냐?"
눈을 흘기며 담배만 뻑뻑. 그런 이태일을 보다가, 옆에서 어느새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조는 우지호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탐사 참여하고 싶긴 했다만, 이건 뭐 강제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지이잉.
갑자기 주머니에서 울린 진동. 하도 오랜만에 울리는 핸드폰이라 나도 놀랬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액정에 뜬 세 글자. 송민호.
"여보세요."
[야, 표지훈. 찾긴 찾았는데.]
"어? 했냐?"
이태일이 뭐냐는 듯 바라보지만 손을 들어 잠깐만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고 돌아섰다. 아, 그래서. 했어?
[관리가 삼년 전부터 뚝 끊겨서 수월하긴 했는데, 야. 여기 좀 건드리면 안 되는 곳을 건든 것 같다.]
"뭐?"
[니가, 니가 와서 봐. 이거 여기 너무]
거기까지만 듣고 전화를 뚝 끊었다. 뒤에서 싸늘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이태일 때문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태일이 굳은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들었어? 들었나? 아니 근데 무슨 말을 했다고. 그걸 들어서 알 수 있는 게 있나? 이태일 눈치가 아무리 빨라도 그걸 어떻게 알아. 초조하게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태일이 갑자기 표정을 풀고 담배를 아무데나 지져 끈 뒤 휠체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지호."
그러자 유리에 착 달라붙어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우지호가 이태일을 돌아보고, 나를 한 번 보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떨어져서 이태일의 뒤를 따라 사라진다. 그 때까지도 나는 굳은 몸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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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점점 산으로 가여 어떡해여 엉엉 난 망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