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빙의글] 메르헨, 첫번째 이야기
: 인페르노(inferno)
(부제 :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W. 달밤의 꽃구름
(모바일로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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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입니다. 비도 오고 있나보네요. 축축하고 습한 게, 자기에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게다가 어둡고 꽉 막힌 듯한 공기란. 무슨 곰팡이 증식소도 아니고. 당신은 오한과 불쾌함에 떨며 서서히 눈을 뜹니다.
그런데 오, 이런.
여기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곳이군요. 어둡고 습한 게, 딱 지하실 같습니다. 반지하도 아닌 것 같아요. 이 곳은 창문 하나 없이 사면이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완벽한 밀실입니다. 믿을 수 없는 눈 앞의 모습에 당신은 자리에서 바로 몸을 일으킵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지하실과는 달리 당신과 당신이 누워있는 침대는 놀라울 정도로 새하얗습니다.
당신은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당신의 몸을 감싼 이불을 걷어냅니다. 습기에 축축해진 이불은 물에 젖은 것 마냥 축 늘어지고 맙니다. 당신은 엉덩이를 밀어 침대 끝에 걸터앉습니다. 바닥에 맨발이 닫자 두터운 먼지가 풀썩 일었다가 가라앉습니다. 불쾌한 방이네요. 당신은 천천히 눈을 굴립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언제 이 곳에 왔을까요?
수많은 의문이 떠오릅니다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갈수록 가라앉습니다. 잠시 멍하니 있던 당신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납니다. 가만히 있어도 답은 나오지 않으니 주변 수색에 나서기로 합니다. 다만 당신은 숨을 죽입니다. 이상한 상호 수록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법이니까요. 혹시 몰라 당신은 수색에 앞서 몸을 한 번 살펴봅니다. 다행히 몸은 멀쩡하네요.
아, 발목에 달린 커다란 족쇄만 빼면요.
당신이 움직일 때마다 황동색의 족쇄는 차르륵, 하는 부드러운 쇳소리를 냅니다. 얼핏 보면 장식품으로 착각할 만큼 번쩍이는 족쇄는 매우 두껍고 무겁습니다. 마치 사자를 묶을 때 쓰는 것처럼 단단하고 묵직합니다. 족쇄를 쥐고 흔들어보지만 묵직한 족쇄는 흔들리며 당신의 발목만 자극해 붉게 부어오르게 합니다. 곧 쓰라린 통증이 밀려옵니다. 이 상태로 많이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당신은 이제 주변을 살핍니다. 제일 먼저 당신은 누워있던 자리를 뒤집니다. 커다랗고 새하얀 이불을 펄럭여 보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시트를 쓸어봐도 잡히는 것 하나 없습니다. 당신은 그만 심통이 나 새하얀 베개를 던지듯 들춥니다. 그리고, 베개 밑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 발견하죠. 붉은색 밀랍으로 봉해진, 당신처럼 새하얀 봉투를.
당신은 봉투를 열어 들은 것을 꺼내 펼쳐봅니다. 백색의 편지지에는 수려한 필기체로 단 한 문장만이 쓰여있습니다.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제2 외국어로 고작 일본어나 중국어, 크게는 불어 따위 밖에 해보지 못한 당신은 당황하며 봉투를 탈탈 텁니다. 그러자 황금색의 열쇠가 툭 떨어집니다. 뜻 밖의 수확이네요. 열쇠를 집어든 당신은 이리저리 살피다가, 문득 생각난 것에 고개를 홱 돌립니다.
나갈 문!
……은 진짜 없네요.
정말이지 완벽한 밀실입니다. 문의 흔적조차 없어요. 온 사방이 벽입니다. 거무튀튀한, 그냥 벽.
한 풀 꺾인 당신은 열쇠를 족쇄에 대어보지만 열쇠는 작아도 한참 작습니다. 아예 공간이 남아 텅텅 빌 정도로 작은 열쇠는 당신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입니다. 당신은 쓸모 없는 열쇠를 침대에 버려두고 일어나 본격적으로 수색을 시작합니다.
방 안을 꼼꼼히 둘러보던 당신의 시선은 다시 침대로 돌아옵니다. 특히, 방 안도 어두컴컴하지만 블랙홀처럼 유독 더 새까만 침대 밑, 그 곳은 찝찝하면서도 왠지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당신은 망설이다가 그 곳을 수색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왜, 그런 말을 생각하면서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관용구.
당신은 어둑한 침대 밑으로 얼굴을 슬며시 들이밀어봅니다. 하지만 침대 밑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모르니 당신은 손을 밀어넣어보기로 합니다.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 더듬거리던 당신의 손 끝에 무언가 닿습니다. 보아하니 무언가의 스위치 같네요. 잠시 고민하며 스위치를 매만지던 당신은 이내 이를 악 물며 스위치를 누르고,
그 순간 침대 밑에서 뿌연 연기가 물씬 뿜어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놀란 당신은 손을 빼고 주저앉습니다만, 연기는 빠른 속도로 차오릅니다. 매캐하지는 않지만 숨을 턱턱 막는 연기는 금세 방 안을 채웁니다. 이 알 수 없는 연기가 지금 당장은 위험하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이 방에서 빨리 나가야만 합니다!
방 한가운데 선 당신은 침착하게 방 내부를 둘러봅니다. 나갈 단서가 들어있을 만한 곳……. 당신의 눈에 침대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서랍장이 들어옵니다. 당신은 곧바로 서랍장 앞으로 달려갑니다. 침대 말고 유일하게 놓여있는 가구니까요, 수상하게도.
당신은 매캐한 연기를 헤치고 맨 아래칸부터 벌컥벌컥 열어나갑니다. 죽은 벌레 시체, 먼지 덩어리, 그리고……, 맨 윗칸은 열리지 않습니다. 잠금이 걸려있어요. 손잡이 옆으로 작은 열쇠구멍이 보이네요. 당신은 연기를 뚫고 올라가 집어온 황금색 열쇠를 서랍의 구멍에 넣습니다. 다행히 열쇠는 딱 맞아떨어집니다. 열쇠를 돌리자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립니다.
서랍 안을 보니, 족쇄에 맞을 법한 큼지막한 황동열쇠와 녹슨 커터칼이 나옵니다. 당신은 먼저 열쇠를 집어들어 족쇄에 끼워넣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키를 몇 번 돌리자 다행히 족쇄가 순순히 풀립니다. 지긋지긋했던 족쇄를 저멀리 벗어던진 당신은 이제 벽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만져봐도 다 단단한 것이, 출입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절망감에 벽에 머리를 쿵 소리나게 박아버립니다. 이대로 죽는 걸까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렇게 쓸쓸하게? 그렇다면, 그냥…. 당신의 시선이 늘 그랬듯 손목으로 향하고, 멍하니 커터칼을 들어올린 그 순간, 흐릿해지던 정신이 퍼뜩 돌아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밀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출입구가 있을 터, 그럼 이 벽들 중에 분명…….
정신을 추스린 당신은 허겁지겁 벽들을 되는 대로 두드려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텅텅거리며 소리가 울리는 곳을 찾아내고 칼로 그어봅니다. 결과는 당신의 생각대로였습니다.있는 힘껏 칼을 놀리자 출입구를 감춘 질긴 벽지들이 서서히 구멍을 만들며 갈라집니다. 살 길이 나타나자 당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벽지를 긋습니다. 그러나 녹슨 커터칼은 더이상 힘을 버티지 못하고 뚝 부러지고 맙니다. 당신은 당혹감에 손으로라도 벽지를 벌려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두세 발짝 정도 물러난 다음, 달려들어 벽을 있는 힘껏 찹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십 번을 차고, 연기에 머리가 어질하고 세상이 핑 돌 때쯤 벽지가 크게 뜯겨져 나갑니다. 관성에 의해 당신 역시 힘없이 앞으로 튕겨나가 쓰러지고 맙니다.
그렇게 당신은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신선한 공기를 헐떡이며 들이마십니다. 커억, 켁. 결코 우아하다고는 못할 기침을 토해내면서요. 아직도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벽지 사이에서 최대한 떨어지기 위해 당신은 마른 바닥에서 버둥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정신은 까무룩 멀어져 갑니다. 당신에게 달려오는 남자를 바라보면서요.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달꽃입니다 :)
드디어 글을 올리네요! 이 글은 독방에서 친구가 푼 잔혹동화 썰을 바탕으로 빙의글처럼 재구성한 글입니다. 친구가 유학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제게 기회가 돌아오게 되었네요.
글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이 글은 '메르헨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현재 글인 인페르노를 제외한 다른 동화들은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쓰여졌답니다!
시리즈 네임은 메르헨인데 어쩌다 동화랑 가장 먼 작품이 먼저 올라오게 됐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여...☆
여튼 지금 고민하는 것이 몇 개 있는데,
1 분량을 더 늘려야 하나? 2 원작 스토리만 쓰면 글이 짧아지는데 더 살을 붙여야 하나? 3 글 속에 사진을 삽입했는데 양을 줄여야 하나?
정도입니다!
어째 글보다 사담이 길어지는 느낌이니 오늘은 이만 얼른 끝내겠습니다.
연재 텀은 현생 때문에 들쭉날쭉 할 거예요! 다만 글과 글 사이의 텀은 길어질 수 있어도 편과 편 사이의 텀은 짧을 테니 걱정마세요!
암호닉은 신청해두시면 나중에 텍파 나눔 때 좋은 일이 있으실 거예요 ^~^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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