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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설명 |
앞으로 약 한달 동안, 여러분이 순영, 민규와 함께 살아갈 세계를 소개합니다.
이 세계엔 네임버스, 컬러버스, 아나버스가 공존합니다. 세가지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사람, 두가지만 있는 사람, 한가지만 있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있죠.
이 세계에서 가장 흔한 것은 아나버스이고, 여기선 이것을 "꽃잎 분수" 라고 지칭합니다. 물론, 아나버스가 흔하다고 해서, 모두가 아나버스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혈액형의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거예요)
여기선 꽃잎이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때/ 누군가에게 반했을때 터지는 것으로 설정해두었습니다. 물론, 꽃잎의 색은 사람 개개인이 가진 지문처럼 모두 다르고, 색에 따라 장단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의 묘미는 순영이와 민규가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느냐, 입니다. 함께 추리해보아요~
*세봉이는 아나버스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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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권순영/김민규] 시드는 꽃 (1/7)
w. 뿌존뿌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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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사귀자"
권순영의 말에 가슴께가 시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안돼. 꽃잎이 터지는걸 막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았다. 뭐야, 꽃잎 분수야? 너도 날 좋아하는거야? 권순영이 내 행동을 보곤 해사하게 웃으며 내 앞으로 한발짝 걸어왔다. 가슴이 계속해서 시큰하게 저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 꽃잎이 흩날렸고, 순영의 발치에 꽃잎이 한가득 쌓여 마치 순영의 심장에서 터져나온 것 처럼 보였다. 네 꽃잎, 이거 내가 잡았어. 제 큰 주먹 안에 가득한 분홍 꽃잎을 보여주며 아이처럼 웃는 그가 좋았다. 우린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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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봉아, 넌 꼭 네 운명의 상대와 결혼해야 해"
"엄마는 아빠랑 결혼한 걸 후회해?"
"아니, 그렇지만 가끔 생각이 나거든, 괜히 운명이겠어?"
난 순영이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꽃잎 분수인것 같긴한데, 다른건 모른다. 하지만 운명이란 걸 깨닫기엔 꽃잎분수는 너무 포괄적인걸, 가끔 이 속성을 한탄할 때도 많다. 차라리 우리 아빠처럼 등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써있으면 좋으련만, 혹시 순영의 등엔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어떡하지?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하지만 꼭 운명의 상대와 결혼하라는 법은 없는걸, 우리 엄마는 엄마의 몸에 새겨진 사람이 아니라 아빠와 결혼했다. 그 사람은 나처럼 꽃잎분수만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었고, 엄마 말고 몸에 이름이 새겨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우리 아빠가 그 남자 못지 않게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비치는 엄마의 쇄골에 적힌 다른 이름을 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포근한 월요일 아침, 순영이의 잘 잤냐는 문자로 시작하는 아침은 꽤나 상쾌하다. 이제 곧 순영이 날 데리러 올거고, 아침을 대충 먹고 교복만 입으면 내 외출 준비는 끝난다. 순영의 문자에 답변을 보내며 침대 안에서 밍기적 거리자 바깥에서 엄마의 질책이 들려왔다. 나가요 나가-! 찬 공기가 몸을 감싸는게 싫지만 몸을 어찌저찌 잘 일으켰다. 겨울 아침은 내게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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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봉아, 엄마 친구 소영이 알지?"
아침 밥을 먹으며 부은 눈을 간신히 뜨고 있을 때, 뜬금없이 엄마가 소영이 이모 얘기를 꺼냈다. 소영이 이모라면 잘 알지, 근데 왜? 계란을 볶던 엄마가 내 말에 잠시 멈칫 하곤 말 없이 계란을 내 밥 그릇 위에 올려두었다. 왜, 무슨 일인데. 심상치 않은 엄마의 표정에 수저를 내려놓고 엄마의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엄마가 입술을 달싹였다.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소영이 아들, 민규. 걔 과외 좀 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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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걔 레디중에서 완전 유명한 양아치였다고-!"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빠르게 걸었다. 뒤에서 순영이 웃으며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고, 햇빛은 적당히 내리쬐고 있었다. 전혀 기분 나쁠 날씨도, 상황도 아닌데 김민규, 그 자식 하나 때문에 오늘 기분 완전히 망쳐버렸다. 그래서, 거절할거야? 순영이 어느새 내 옆까지 따라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반대쪽 손으론 내 볼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걸까, 엄마의 우정을 지키는 것? 아니면 내 안전을 지키는 것? 도저히 마땅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아서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자, 순영이 내 머리를 헝클이며 가만히 웃었다. 지금 딱 기분 좋은데, 왜 김민규는. 그 생각까지 미쳐 입술을 비죽이자 순영이 갑자기 제자리에 섰다. 내 여자친구는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음, 그러니까 걔랑 과외 해. 너 공부에도 도움 되고 좋잖아. 순영이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그래, 내겐 순영이가 있는 걸. 다시금 기분이 상쾌해졌다. 맑게 개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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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야 인사해, 세봉이 누나야"
순영의 애정 섞인 응원을 가슴에 새기고 소영이 이모의 집에 발을 들였다. 기억나지 민규야, 네가 좋다고 따라다녔던 세봉이 누나. 거실 소파에 앉아 영혼 없는 표정으로 티비를 응시하는 김민규에게 억지로 날 소개시키는 소영이 이모가 안타까워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히 5년 전에, 그러니까 민규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내가 6학년일 때 민규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고, 소영이 이모의 말이라면 껌뻑 죽던 아이였는데. 몰라보게 달라진 (그리고 커진) 민규를 보니 썩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오랜만이야, 민규야. 더듬더듬 인사를 건네자 티비에 고정되있던 김민규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5년 전의 맑은 눈빛이 아닌, 탁해져버린 소년의 눈동자였다. 안녕 누나, 김민규가 쎄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