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문과 + 이과 세계관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이 글의 주인공 승관 = 순영이 친구 승관이 ( 초코빵 사주던 선도부 걔)
문과이과 세계관은 종종 여러분을 찾아갈거예요..! 다음엔 어떤 아이가 주인공이 될까요?
(순영이 번외편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세븐틴/부승관]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w. 뿌존뿌존
"하이- 큐"
"안녕하세요, 플디고등학교의 아침을 책임지는 귀요미! 아나운서 부승관입니다"
네 목소리로 시작하는 아침 방송은 언제나 상큼하다. 네 목소리와 함께라면 비오는 날의 등굣길도, 우중충한 장마철의 등굣길도 모두 발랄한 만화 속 여주인공 처럼 신나게 뛰어서 등교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정작 난 PBS 메인 PD라서 우중충한 장마철에 네 목소리를 들으며 등교하긴 이미 한참 전에 글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방송실 한 구석에 짱박혀서 대본 읽으며 끼부리는 널 보는것도 나쁘진 않아.
사실 내가 승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매일 보고 싶고, 장난에 짜증 났다가도 또 금방 풀리는데, 이게 얘를 좋아하는 건가 싶다. 권순영 보면 제 여자친구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설레서 죽어버릴것 같다던데. 난 부승관을 보면 그런 감정이 드는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썸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친구는 아닌 모호한 관계를 1년째 유지하고 있다. 뭐, 물론 나 혼자 일방적인 썸인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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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신청자 분이 꼭 익명으로 달달하게 고백멘트 쳐달라고 했는데 니 마음대로 실명을 밝히면 어떡해 이 빠가새끼야!"
후, 부승관의 장난을 참고 참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나보다. 왜 뭐- 내 친구라서 그런건데! 입을 비죽이며 말하는 부승관의 입을 콱 꼬집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청자 분들이 방송부에 컴플레인 넣으면 우리 담당 쌤한테 다 털린단 말야.. 승관의 팔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하자,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승관이 제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군.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자, 부승관이 제 큰 눈을 두어번 깜빡인다. 그래도 괜찮아, 권순영이니까. 알지? 권순영. 내 친구 있잖아. 그 왜- , 물론 진지한 부승관은 채 1분도 지속되지 못했다.
부승관은 커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댔다. KBS 아홉시 뉴스 앵커가 되고 싶댔나? 난 PD가 되고 싶기에, 나중에 꼭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태다. 사실 부승관이 정말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 부승관은 꽤나 감정적인 아이여서, 기쁜 소식을 전할때, 슬픈 소식을 전할때 표정과 목소리에서 다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이지. 전에, 우리 학교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돌돌이가 죽은채로 발견됬다는 소식을 점심 방송으로 알리면서 펑펑 울던 부승관을 기억한다. 우리 방송이 목소리로만 나가는거여서 다행이지 만약에 TV로 나가는 거였으면 절대 부승관을 안쓰고 1학년 애들을 썼을거다. 펑펑 우는 부승관을 달래느라 꽤 애먹었던걸로 기억한다. 짝꿍이자 자칭 부승관의 소울메이트인 최한솔의 말로는 안내방송인지 눈/콧물 ASMR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애가 좀 감정적이고 장난이 심한 것 빼곤 꽤 아나운서라는 직업과 잘 어울린다. 단정하니 잘생겼지, 목소리도 또랑또랑하니 예쁜데다가, 위기대처능력도 좋은 걸. 우리 승관이, 아나운서 되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그 앞에 뉴스 PD가 된 내가 서있다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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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님, 제발 이 노래 한번만 틀게 해주라. 응?"
정확히 17분 째, 방송부 후배의 남자친구를 놀려야한다며 부승관이 이상한 CD를 들고와 징징거리고 있다. 노래 제목은 "후배의 여친을 뺏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17가지" 무려 부승관과 부승관의 친구인 선도부 권순영, 그리고 정말 창피하지만 내 짝꿍인 최한솔까지 셋이 부른 노래다. 이걸 어떻게 틀어. 부승관의 손에 들린 CD를 낚아채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버렸다. 미친게 틀림없어. 이거 틀었다간 나 PD고 뭐고 성수쌤 (=학주) 한테 완전 탈탈 털린다니까? 절-대 안돼. 쓰레기통의 입구를 발로 막고 부승관을 짐짓 단호한 눈으로 바라보자 잔뜩 풀이 죽어선 제 지정석 - 일명 부승관 왕좌 되시겠다 - 에 널브러져선 징징거린다. 우리 후배도 참 안쓰럽지, 이상한 선배 만나서 연애도 자유롭게 못하고. 이 CD는 내가 가질게. 선물 고맙다- 징징거리고 있는 승관의 어깨를 대충 두어번 정도 토닥여 준 뒤 방송실을 나섰다. 집에 가서 들어봐야지, 손에 CD를 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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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야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부승관, 최한솔, 권순영한테 단체로 문자가 왔다. 부승관은 제 선물이니 고이 모시지 않으면 내일 아침 방송에서 깽판을 칠거라 날 협박했고, 최한솔은 승관과 제가 썼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가사지 사진을 하나 보냈다. 순영은 제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는데, 그건 일주일 전 승관이 망쳤다고 내가 생각했던 순영의 비밀 이벤트를 듣고 엉엉 우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잘 해결될 거였으면 괜히 부승관에게 심하게 말했나, 싶어 사과를 하기 위해 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승관 이 새끼, 분명히 목이 빳빳해져선 나한테 궁시렁거리겠지. 그래도 사과를 하지 않으면 부승관 녀석이 내일 아침방송에서 정말 사고를 칠 것만 같아 차마 떼지지 않는 손가락을 놀렸다.
"야, 부승관. 그땐 내가 미안.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후배들도 듣는데...!"
여보세요? 부승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마자 또 속사포로 쏘아대버렸다. 이러면 안되는건데, 하면서도 입은 멈출 줄을 모른다. 내 말을 묵묵히 다 들은 부승관이 낮게 웃는다. 뭐야, 정말 화난건가. 야, 화 났어? 진짜 미안, 처음으로 부승관한테 숙이고 들어간다.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정적이 흐른다. 정말 화난건가, 싶어 무서워지려던 찰나, 부승관이 웃으며 입을 뗐다. 뭐야- 난 또 집 가는 길이 무서워용~~ 하면서 전화 건 줄 알았더니! 부승관이 툴툴거린다. 사스가 부부젤라, 진심어린 사과를 몇번이고 전하니 승관이 흘리듯 웃는다. 휴, 난 또 진짜 화난 줄 알았네.
"김세봉, 너 그 노래 집에 가서 들어볼거지?"
그럼, 너희 첫 데뷔곡인데! 승관이 흘리듯 웃다 갑자기 진지하게 말을 건다. 대충 맞받아쳐주자 아이처럼 까륵거리며 웃는다. 휴; 또 듣고 나서 감상문 한바닥 써야겠네. 꼭 듣고 나한테 문자해야해! 알겠지? 부승관이 잔뜩 높아진 목소리로 징징거린다. 아, 알겠다고! 대충 대답해주자 뭐가 그리도 좋은지 부승관의 박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까 분명히 버스 타고 집가는 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대충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부순솔의 믹스테잎을 듣기 위해서였다. 옆에선 계속 부승관에게서 오고 있는 문자 메세지 때문에 진동이 울린다. 징징 거리는 침대때문에 짜증이 날 즈음, 컴퓨터가 시디를 인식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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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부승관이 휴대폰만 붙잡고 낑낑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버스 창문을 통통치기 시작한지 2분여가 흘렀다. 대신해서 주변 승객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정말 성가신 일이다. 아니 망할 권순영 새끼는 날 두고 여자친구랑 연애를 하러가? 날 두고???? 지금쯤 행복하게 웃고 있을 권순영의 얼굴을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승관의 몰카에 가담하는게 아니었어. 아니, 그냥 부승관과 친구가 된게 가장 문제인 것 같다. 최한솔, 정신 차리자 진짜.
정확히 이주일 전, 부승관이 오버워치를 하다말고 대뜸 내게 말을 걸어왔다. 김세봉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둥, 자기가 아침 방송 진행할때 잡다한 일 1학년 애들 맡겨도 되는데 굳이 자기가 하려고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망상의 바다 속을 헤엄치는 부승관의 머리를 갈기려다 주먹을 꼭 쥐고 참았다. 맞아. 세봉이가 너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는데,
"이름 하야, 고백 대 작전!"
그러니까, 이게 실패하더라도 안 창피한 작전이라 이거야. 부승관이 대뜸 이상한 종이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부승관을 노려보자 부승관이 그거하나 이해 못하냐는 표정으로 날 흘긴다. 그러니까, 노래 신청하는 척 하면서 말도 안되는 노래를 주는거야. 그럼 김세봉이 그걸 버리려고 할거야. 하지만 걔는 마음이 약해서 그러지 못할테고, 집에 가서 그걸 들어보겠지! 급식실 맞은 편에 앉아 부승관의 개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부승관의 말을 잠자코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부승관이 잔뜩 자신만만해져선 수저로 식판을 두어번 두드린다. 좋아, 작전을 시작하지. 라는 말도 안되는 개 소리를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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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평소와 다른 승관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계속 울리는 것 같다. 이제 휴대전화의 울림이 멈추었다. 메세지 17개. 확인했어? 자는 거야? 듣고 꼭 문자해. 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내가 어떻게 문자를 보내, 이걸 듣고. 벌벌 떨리는 손이 자꾸 오타를 낸다. 들었어. 문자메세지를 보내자 마자 노란색 1이 바로 없어진다. 이 새끼,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잔뜩 습기가 찼을 승관의 휴대전화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들었어? 내 말을 고대로 복사한것 같은 답장이 돌아온다. 들었지 그럼, 승관에게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까. 나도 널 좋아한다고? 아님,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
아, 아, 김세봉 듣고 있냐? 어.... 그러니까 이건 서프라이즈야. 깜짝 이벤트 같은거지! 역시 난 똑똑해, 널 너무 잘 안다고 해두자. 네가 이걸 버리지 않고 집에 가져갈거라고 예상했지. 그렇지만 네가 이걸 진짜 버렸다면, 난 그걸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네 가방에 몰래 넣어놓을거야. 난 정말 치밀해. 그래, 음...음.... 뭐라고 말을 꺼내야하지. 요 몇달간 네가 많이 안절부절해 하는 것처럼 보였어. 난 그게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뭐 그런 심각한 일일줄 알았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넌 내 앞에서만 그러더라. 그래서 난 네가 날 많이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어. 근데 아닌걸 알았어. 너도 나랑 같은거더라. 네가 급식실에서 네 친구랑 아침 방송 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어. 나도, 나도 아침 방송이 제일 좋아. 너랑 해서 좋은거야.. 그냥 알아 둬. 씨, 이거 되게 이상하다. 벽이랑 말하는 것 같아. 아 만약에 네가 이걸 듣고 나서 나한테 말도 안걸고 피하면 어쩌지? 너무 걱정되서 미쳐버릴 것 같아. 그냥 주지 말까... 아니야 주자. 그래, 주자. 너도 아침방송이 좋다면, 나와 함께 선곡 리스트를 정리하는게 좋다면, 문자 줘. 기다릴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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