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자그마한 새가 소리쳤다. 그가 돌아왔노라고. 숲 전체에 울려퍼지고 나서야 새들은 바삐 움직였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지 않아도, 죽을껄.
나뭇잎 한 장 마저도 불태워버린 악마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숲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수많은 희생을 낳고서야 낳아진 아이.
드디어, 내게로 와주었구나.
나의 아이야.
32. 아이가 아플 때 악마는.
아이가 아팠다. 아마 스크롤까지 쓰면서 무리하게 마법을 쓴 탓 이리라. 괜히 축제에 데려가선 몹쓸 경험을 하게 했다.
자신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꽤 나 충격을 먹었는지 아이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열까지 나는데도 아무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태형은 제 옆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정국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아, 왜 때려요! 정국의 말에 정국을 노려본 태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화 난다고 나를 때릴 순 없잖냐."
"아, 그렇다고 왜 저를!"
"그래서, 죽고 싶다고?
"마음껏 때리시라고요."
태형은 정국의 말에도 침묵을 지켰다. 여주는 이틀 째 나오기를 거부했다. 태형이 직접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여주의 상태라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낄 수 있으니 여주가 아직 살아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정신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건 느껴졌다. 어디가 아프길래 얼굴도 안 보여주고,
밥도 안 먹는 건지. 답답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형이 여주의 방문을 두들겼다. 아가, 잠깐만 들여 보내주면 안될까.
"태형이에요?"
"응, 나야."
"안돼요."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 내가 뭐라고 해주지."
"‥ 태형, 나 봐도 안 놀라겠다고 약속해요."
"내가 널 보고 왜 놀라겠어."
태형의 말에 문이 살짝 열렸다. 그걸 본 정국도 들어가려 했지만 태형이 눈빛으로 오지 말라고 하는 탓에 다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태형은 여주의 방에 들어간 순간, 18살의 여주는 어디 가고 고작 해봐야 8살 정도의 아이로 돌아간 여주에 경악했다. 너, 너!
"처음에 열이 났을 때는 그냥 머리만 아팠는데,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되어있었어요. 나 영원히 못 돌아가는 건 아니겠죠?"
"너 그 때 무슨 스크롤 썼다고 했지?"
"신체 강화."
"아, 그거 부작용이 10년 어려지는 건데, 악마들은 오래 사니까 그런 스크롤의 부작용은 별로 쓸모가 없어서 ‥ 아,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데요?"
여주의 식겁한 표정을 보던 태형은 씨익 웃으며 여주의 귀에 속삭였다. 영원히.
33. 8살의 여주.
8살로 돌아간 여주를 보고 좋아하는 건 물론 태형이었지만, 태형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
"우리 여주, 오빠 품에 안길까?"
"지랄 하지마."
"쓰읍- 쪼끄만 게 어디서 오빠한테! 빨리 이리와."
정국이었다. 18살의 여주를 보고도 여동생 같다던 정국인데, 이렇게 8살 아가가 되었다니. 정국은 지금 완전 아빠 미소를 입에 걸곤 여주를 부둥부둥 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태형은 조용히 여주를 불렀다.
"여주야."
"응?"
"이리와."
팔을 벌린 태형에게 뛰어간 여주가 태형의 품에 쏘옥 안겼다. 태형의 품에서 방싯방싯 웃는 여주가 귀여웠는지 정국도 다가가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태형도 정국의 오구오구에 부끄러워하는 여주를 귀엽게 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평화가 깨진 건,
갑자기 들이닥친 지민 때문이었다.
"너희, 결혼했니? 거기 안겨있는 건 딸이야?"
지민의 말에 정국이를 저 멀리 날려버린 태형이 지민의 머리에 꿀밤을 놓으며 말했다. 여주야, 이 아가.
"여주라고? 왜 이렇게 아가가 됐어."
"으, 만지지 마여!"
"윽, 귀여워. 볼따구 봐."
태형의 품에 얌전히 안긴 여주를 마구 만지던 지민은 태형의 발차기를 여유롭게 피하며 소파에 들이 누웠다. 아, 타이밍 좋게 들어왔네.
아가 버전 여주도 오랜만이고 말이야.
"언제부터 이랬어?"
"어제부터."
"뭐야, 그럼 곧 풀리겠네."
"에?"
지민의 말에 벙진 얼굴로 태형을 바라보던 여주는 곧 태형이 제게 거짓말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태형! 난 진짜 영원히 8살인줄 알았다고요!
노발대발하는 여주의 입에 계속 뽀뽀하던 태형은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다며 상황을 넘어가려 했다. 그러다가도 소파에 들이 누워 있는 지민을
째려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저 새끼는 와서 초를 치고 지랄이야.
"야, 여주 곧 풀릴거 같으니까, 전정국이랑 정원 가서 좀 놀라고 해."
"왜, 내가 데리고 있을 거야."
"‥ 말 할게 있어서 그래."
"‥."
사뭇 진지해 보이는 지민의 말에 여주를 살며시 내려놓은 태형이 정국에게 둘이 놀다 오라며 제 코트를 여주에게 덮어주었다.
정국은 아가인 여주와 논다는 게 마냥 좋은지 흘러내리는 코트에 여주를 꽁꽁 싸매 정원으로 나가버렸다.
"네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 보면, 가벼운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뭐야?"
"마왕이 냄새를 맡았어."
"나도 알아. 그 새끼는 제 분수도 모르고 나대는 게 정말 한결같아."
"그리고 노리는 건, 알다시피 여주의 피야."
"민윤기 그 새끼 소환하려고?"
예전부터 마계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인간은 마계에 올 수 없으나 단 하나, 마계에서 인간을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건 바로 그 인간과 접촉한 존재의 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마왕은 윤기를 소환하기 위해 윤기와 같이 지냈던 여주의 피를 필요로 했고,
그를 위해 여주에게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찾는 것이었다.
"응. 근데 마왕 그 병신은 지 첫사랑 애새끼 데려와서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그 새끼 첫사랑이 워낙 유별났어야지. 자식이라도 데려오면 대천사인 걔가 내려올 거라고 생각 하는 거야."
"대천사가 뭐가 부족해서 마왕 그 새끼를 만나러 와?"
대천사와 대악마는 동등한 지위지만 가끔씩은 마왕 ; 악마의 왕 이나 천왕 ; 천사의 왕 보다 높은 권력을 지니게 된다.
그의 아주 바람직한 예가 바로 태형과 같은 대악마이다. 저번에도 봤듯이 태형은 마왕을 제 아래두듯이 하는데, 마왕도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자신보다 더 큰 권력과 힘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천사의 세계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악마의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체계이다.
자신보다 강하면 기는 거고, 자신보다 약하면 밟는 것. 그것이 마계의 법칙이었다.
"내 말이."
"그래서, 넌 어떻게 할건데? 마왕이 설치는 거 그냥 보고 있을 거야? 여주가 관련되어 있는데도?"
"미쳤냐? 안 그래도 지금 머리 터질 거 같아. "
"뭐? 그냥 네 성격대로 해. 누가 뭐라고 한다고."
"신중해야 해. 내가 멋대로 일을 벌였다가 피해 받는 건 내가 아니라 아가야."
"변했네. 그것도 아주 많이."
소름 돋는다는 듯 제 팔을 쓸어 내린 지민이 정원에서 강아지 마냥 뛰어노는 정국과 여주를 바라보았다. "너 말이야, 여주 만들 때. 정말 숲만 태웠어?"
지민의 말에 제 손가락을 쳐다보던 태형이 조용히 지민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물어."
"말이 돼야지 말이야. 숲만 태웠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겨? 생명을 창조하려면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서 숲에 있는 생명 모조리 죽였잖아."
"그걸로도 부족했잖아. 안 그래?"
"닥쳐, 그런 말 아가한테 하기만 해봐."
"할 생각도 없었어.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不死불사의 몸까지 포기하다니. 그 만큼 반려가 가지고 싶었어?"
태형은 마법이 풀려 어느새 18살의 여주로 돌아온 여주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함께 늙어갈 사람이 가지고 싶었어. 그것 뿐이야.
34. 지민이 찾아온 악마의 집에는.
"지민! 봐요, 저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응, 예뻐."
"헐, 나 방금 소름 돋았어. 보여 정국아?"
"어, 나도 소름 돋음."
지민의 예쁘다는 말에 소름 돋았다며 팔을 걷어 정국에게 보여주는 여주에 태형이 황급히 여주의 팔을 가렸다.
내가 남한테 막 보여주지 말라고 했지. 태형의 진지한 말에 볼을 붉힌 여주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을 향한 태형의 애정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아프면 태형도 같이 아픈 듯한 느낌까지 받을 정도니, 정말 우리가 서로의 일부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재네 닭살이야, 그치 정국아."
"네. 같이 사는게 힘들 정도에요."
"그럼 박지민하고 같이 살래, 전정국?"
"아닙니다. 제가 감히 몹쓸 입을 놀렸네요."
정국과 지민은 꽤나 친했다. 아마 태형을 놀리는데 쿵짝이 잘 맞아서 그런 것 같다. 여주는 정국이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정국이는 내꺼에요. 지민한테
안 넘겨줘." 지민은 호탕하게 웃었지만 태형은 아니었다. 뭐? 누가 누구 꺼야?
"야, 여주야."
불안해진 정국이 여주의 입을 급히 막았지만 이미 태형은 정국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 씨발 좆됬네. 정국은 오늘 잠자기는 글렀다며 홀로 절망했다.
아마 오늘은 하루종일 태형에게 시달리리라.
"태형아."
"어?"
"나는 너랑 여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힘든 일 있으면 불러. 여주야, 나 간다?"
지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주는 지민을 배웅하러 정국과 나가버렸고, 태형은 홀로 소파에 앉아 지민과 했던 대화를 곱씹었다.
필시, 곧 피바람이 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