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카디] 이별 후, 나에게 남겨진 것들 : 경수 (조각글)
종인이와 나는 특별한 연인이었다. 오랜 시간을 가족처럼 지냈던 우리에게는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에게는 없는 익숙함이 있었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만큼 보통의 어린 연인들과는 다르게 시간이 묻어난 편안함이 있었다. 눈치 없는 우리가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버텨온 긴 짝사랑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내라는 것을 배웠고,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연애는 우리에게 서로가 특별하다는 인식과 서로가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내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종인이와 내가 특별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연인이며, '운명'이라는 것을 타고난 소중한 인연이라고. 보통의 연인들과는 조금 많이 다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주위의 연인들처럼 행복하게 사랑하는 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던만큼 우리는 단단했다. 나는 그런 우리가 헤어질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여느 연인들처럼 이별은 있었다. 나는 이별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생애 첫 이별을 경험했다. 헤어진 날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우리가, 각자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서 헤어졌던 그 날을. 이 험난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별은, 썼다. 견뎌낸 것이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으며, 아팠다. 그렇게 상상조차도 못해 본 헤어짐을 경험한 나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처럼 피폐했으며, 세상 그 누구보다도 초라했다.
일반적인 연인들의 헤어짐과는 조금 달랐다. 내 생애 온종일 함께 했던 종인이가 내 곁을 떠나자 가족 한 명을 잃은 것처럼 허전했고 공허했으며, 늘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챙겨주었던 사람이 사라지자 일상 생활에 굉장한 지장이 있었다. 나는 아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종인이에게 많은 것들을 의지하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마음이 아프니 몸까지도 너무 많이 아팠다. 매일 밤 울다 지쳐야만 잠에 들 수 있었기에 수면 시간도 많이 부족했고, 밥을 먹을 때면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은 기분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몸에 필요한만큼 충분한 양의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 비해 약했던 나는 종인이가 떠나간 뒤, 감기는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가끔 정신을 놓고 쓰러지는 것 또한 익숙해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는 종인이도 이렇겠지, 하며 아팠던 게 종인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변했다. 어떻게 보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독해졌다. 밥도 잘 챙겨먹기 시작했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잠에 들고자 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받은 월급에 학자금대출을 통해 생긴 약간의 돈을 더해 휴학했던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도 수험생이었을 때보다 죽기살기로 더 열심히 했으며, 취업준비도 열심히 했다.
몇 년을 바쁘게 살다보니 괜찮아진 것도 같았다.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고, 그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종종 멈칫하기는 했다. 종인이의 흔적에. 종인이와 함께 보던 드라마와 영화를 우연히 보게되거나, 함께 듣던 노래를 들을 때면 종인이의 생각이 나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린 종인이를 처음 만났던 곳,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애를 시작했던 음식점, 이별을 통보받았던 곳을 지나칠 때에도 종인이의 생각이 났다. 그러다보면 난 어느새, 울고 있었다. 괜찮아진 게 아니었구나. 내 자만이었구나. 내 착각이었구나. 넌 이렇게도 나에게 있어 큰 사람이었구나. 그러니까 내 머리는 괜찮아졌을 지 몰라도 내 마음은,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늘 기억의 조각은 폭풍우처럼 휘몰아쳐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러면 나는 또, 그 폭풍우 때문에 어지럽혀진 내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행복했던 과거의 종인이와 나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난 과거의 종인이와 나는 늘 웃고 있었지만, 현재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종인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애를 써도 잊혀지지 않았다.
짧은 찰나에 내 머리와 마음을 잠식해버린 김종인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내 머리와 마음에 살아 숨 쉬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