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도] 너와의 기억 한 장이 나에겐 (조각글)
"이제 이것만 정리하면 되나…." 경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티가 나는 낡은 상자를 쳐다보았다. 버리기엔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고, 하나하나 꺼내어 정리하기엔 너무나도 아팠던 시간들의 모든 흔적이 남아있을 상자. 저 상자를 열면, 과거의 우리와 마주하게 되겠지. 그럼 나는 또 혼자 울 테고, 그렇게 지쳐 잠들면 또 네 꿈을 꾸겠지. 그래도, 그래도 이대로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사를 안 할 것도 아니고. 결국 경수는 상자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경수는 용기를 내어 상자를 끄집어냈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상자는, 백현과 경수 사이의 엇갈린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후…." 용기를 내어 열어본 상자 안에서, 제일 먼저 경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낡은 사진 한 장이었다. 오래된 사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과거의 백현과 저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은 노랗게 빛이 바래 있었다. 어렸던 둘은 아무 근심 하나 없는 듯, 세상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있었다. 우리도 이토록 순수한, 눈부셨던 시절이 있었구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했던 우리는, 이토록 행복했구나. 사람은 오롯이 진심 하나만을 가지고 사랑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우리도 그랬나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상처 투성이가 된 백현과 저는, 각자를 감싸고 보호하기에 급급해 서로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망가져갔고, 소원해졌으며, 결국 둘은 이별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백현아. 우리도 이랬던 시절이 있어. 이렇게 서로 진심만을 가지고 사랑했던, 서로에게는 오롯이 둘 뿐이라는 듯 사랑했던 시절이. 저릿해져오는 마음을 뒤로한 채 경수는 사진을 옆으로 치워두고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들었다. '20810 도경수' 저의 글씨 중 가장 예쁜 글씨로 써주겠다며 유성 매직을 들고 끙끙거리던 백현이 생각나 경수는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처음 만든 노트에 저의 학번과 이름을 적은 건 백현이었다. 저는 그 노트를 수학 노트로 썼고, 저의 노트는 수학 공부가 하기 싫다며 징징거리는 백현에게로 넘어갔었다. 억지로 노트를 쥐어주며 공부를 하라던 저에게 백현은 무척이나 툴툴댔었다. 그렇게 시험을 끝내고 돌려받은 저의 노트는, 어느새 저의 노트가 아닌 백현의 노트가 되어있었다. 필기를 하고 조금씩 남은 빈 여백에는 이래저래 낙서가 되어 있었고, 노트 맨 끝의 빈 종이 몇 장은 백현이 저와 하고싶은 것들을 잔뜩 적어놓았던 리스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남은 맨 마지막 한 장에는, "흐으…." 미술을 전공했던 백현이, 야자 시간 공부를 하는 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까만 연필로 한가득 그려진 저는, 백현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들으며 환히 웃고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참으려 이를 악물고 버텼던 울음을 경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잊었다 생각했던 모든 기억들을 저는 여전히 담아두고 있었다는 것을 경수는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에, 경수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들어내자, 많은 것들이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찍은 뒤 이제야 마음에 든다며 저에게 한 장을 주던 백현의 학생증 사진, 보통의 제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보다 손재주가 좋았던 백현이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떠 준 목도리, 여행을 갔다오면서 어울릴 것 같아 샀다던 니트, 여동생과 함께 앨범을 사러갔다가 혹시나 해서 사와봤다던 앨범, 보통 연인들처럼 커플링을 낄 수는 없으니 커플 지갑으로 하자고 했던 지갑, 경수가 원하는 대학에 붙고 기뻐할 때 입학식 날 신고 가라며 선물로 준 신발, 백현과 저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있는 고등학교 시절 교복과 둘의 명찰까지, 없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백현과 저의 모든 흔적은 다 남아있는 듯한 상자는 또다시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백현아, 나 있잖아. 지금 와서 후회하는 거 웃기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어. 많이 늦은 거 알지만, 그래도 잡고 싶어. 이미 넌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다시 말하고 싶어.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지난 몇 년동안 널 잊어본 적이 없다고. 이렇게 늦게 와서 미안하지만, 다시 너와 사랑하고 싶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철없는 내 이기심이 널 아프게 했다고. 전하지 못한 모든 말을 전하고, 네가 내게 다가와 준 그 날처럼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 말하고 싶다. 아직 좋아해, 하는 두번째 고백을. 때마침 창밖으로는 눈이 내렸다. 옛날이었으면 우리, 지금쯤 저 눈을 같이 맞고 있는 중이었겠지. 사랑하는 백현아, 메리 크리스마스.
"이제 이것만 정리하면 되나…."
경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티가 나는 낡은 상자를 쳐다보았다. 버리기엔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고, 하나하나 꺼내어 정리하기엔 너무나도 아팠던 시간들의 모든 흔적이 남아있을 상자. 저 상자를 열면, 과거의 우리와 마주하게 되겠지. 그럼 나는 또 혼자 울 테고, 그렇게 지쳐 잠들면 또 네 꿈을 꾸겠지. 그래도, 그래도 이대로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사를 안 할 것도 아니고. 결국 경수는 상자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경수는 용기를 내어 상자를 끄집어냈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상자는, 백현과 경수 사이의 엇갈린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후…."
용기를 내어 열어본 상자 안에서, 제일 먼저 경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낡은 사진 한 장이었다. 오래된 사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과거의 백현과 저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은 노랗게 빛이 바래 있었다. 어렸던 둘은 아무 근심 하나 없는 듯, 세상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있었다. 우리도 이토록 순수한, 눈부셨던 시절이 있었구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했던 우리는, 이토록 행복했구나. 사람은 오롯이 진심 하나만을 가지고 사랑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우리도 그랬나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상처 투성이가 된 백현과 저는, 각자를 감싸고 보호하기에 급급해 서로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망가져갔고, 소원해졌으며, 결국 둘은 이별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백현아. 우리도 이랬던 시절이 있어. 이렇게 서로 진심만을 가지고 사랑했던, 서로에게는 오롯이 둘 뿐이라는 듯 사랑했던 시절이. 저릿해져오는 마음을 뒤로한 채 경수는 사진을 옆으로 치워두고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들었다.
'20810 도경수'
저의 글씨 중 가장 예쁜 글씨로 써주겠다며 유성 매직을 들고 끙끙거리던 백현이 생각나 경수는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처음 만든 노트에 저의 학번과 이름을 적은 건 백현이었다. 저는 그 노트를 수학 노트로 썼고, 저의 노트는 수학 공부가 하기 싫다며 징징거리는 백현에게로 넘어갔었다. 억지로 노트를 쥐어주며 공부를 하라던 저에게 백현은 무척이나 툴툴댔었다. 그렇게 시험을 끝내고 돌려받은 저의 노트는, 어느새 저의 노트가 아닌 백현의 노트가 되어있었다. 필기를 하고 조금씩 남은 빈 여백에는 이래저래 낙서가 되어 있었고, 노트 맨 끝의 빈 종이 몇 장은 백현이 저와 하고싶은 것들을 잔뜩 적어놓았던 리스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남은 맨 마지막 한 장에는,
"흐으…."
미술을 전공했던 백현이, 야자 시간 공부를 하는 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까만 연필로 한가득 그려진 저는, 백현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들으며 환히 웃고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참으려 이를 악물고 버텼던 울음을 경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잊었다 생각했던 모든 기억들을 저는 여전히 담아두고 있었다는 것을 경수는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에, 경수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들어내자, 많은 것들이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찍은 뒤 이제야 마음에 든다며 저에게 한 장을 주던 백현의 학생증 사진, 보통의 제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보다 손재주가 좋았던 백현이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떠 준 목도리, 여행을 갔다오면서 어울릴 것 같아 샀다던 니트, 여동생과 함께 앨범을 사러갔다가 혹시나 해서 사와봤다던 앨범, 보통 연인들처럼 커플링을 낄 수는 없으니 커플 지갑으로 하자고 했던 지갑, 경수가 원하는 대학에 붙고 기뻐할 때 입학식 날 신고 가라며 선물로 준 신발, 백현과 저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있는 고등학교 시절 교복과 둘의 명찰까지, 없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백현과 저의 모든 흔적은 다 남아있는 듯한 상자는 또다시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백현아, 나 있잖아. 지금 와서 후회하는 거 웃기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어. 많이 늦은 거 알지만, 그래도 잡고 싶어. 이미 넌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다시 말하고 싶어.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지난 몇 년동안 널 잊어본 적이 없다고. 이렇게 늦게 와서 미안하지만, 다시 너와 사랑하고 싶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철없는 내 이기심이 널 아프게 했다고. 전하지 못한 모든 말을 전하고, 네가 내게 다가와 준 그 날처럼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 말하고 싶다. 아직 좋아해, 하는 두번째 고백을. 때마침 창밖으로는 눈이 내렸다. 옛날이었으면 우리, 지금쯤 저 눈을 같이 맞고 있는 중이었겠지. 사랑하는 백현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