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영화 '건축 학개론' 中
'양
아
치
의
순
정'
18
Dream come ture
"야."
굳이 치사하게 횟수를 따지자면 6번째. 제 머리를 맞히고 얄밉게 튕겨 나가는 탱탱볼에 여주는 조용히 혀를 굴렸다. 성준아, 저 누나 더 맞혀. 제 경고도 가볍게 무시하고 오히려 철없이 꼬맹이들에게 탱탱볼을 쥐어주는 그 목소리에 여주의 속이 용광로 마냥 부글부글 끓는듯 싶었다.
"아 진짜 뒤질래?"
마지막에 던진 공은 너무 쎗다 싶어서 살벌한 말과 함께 도끼 눈을 뜬체 뒤를 도니, 정작 권순영이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성준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
...야 누나가 미안해 울지마.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없다니까, 그런거."
깜깜해진 하늘 밑으로 늦은 시각까지 빛을 밝히고 있는 태권도장 안에는, 어느덧 여주와 순영만이 남아 마지막으로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자존심은 접었지만 퉁명스럽게 나간 제 제안를 가볍게 까버리는 순영에 여주는 발 밑에 굴러다니는 공을 가볍게(?) 깟다. 진짜 때릴까.
"어디가, 데려다 줄게."
"됐어. 지금 얼굴 더 봐서 좋을게 뭐 있어."
"말 예쁘게 안하지."
"니가 좋게 나오게 만들어 주시던가요."
쾅쾅. 가로수 길을 밟으며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에 입술만 깨물던 순영이 이내 발걸음을 옮기더니 속도를 내어 어깨를 잡아 몸을 돌렸다. 입술 나온거 봐라, 김여주.
"수요일날."
"뭐?"
"이번주 수요일날."
"......"
"남자 만났었지."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게슴츠레 뜬 눈을 껌뻑이며 기억을 더듬던 여주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떠지며 놀란 눈으로 순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남자 만날때 얘기하라고 하지 않았어?"
"...야 그건 선배랑 과제 때문ㅇ,"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순영의 품에 안겨있는 제 몸에 또 다시 놀라던 여주가 이내 자연스럽게 순영의 목에 손을 둘렀다.
"가뜩이나, 다른 학교여서."
"......"
"감시도 제대로 못하고."
"......"
"너 학식 먹는 것도 못 보는데."
"......"
"내가 너가 다른 남자 만난걸 다른 사람한테 들어야 돼?"
상체를 살짝 든 체 눈을 맞춰오는 순영에 눈만 굴리던 여주가 어색하게 다시 순영의 목을 둘러 그 몸을 끌어 안았다.
"그래 과제라 쳐도."
"......"
"내가 과제 때문에 다른 여자 만난걸 숨기면 좋아?"
"아니! 절대 안되지!"
"...말은 잘해요."
심통 난 것 같은 목소리에 입을 악물고 웃음을 참았다. 고개를 살짝 빼고 손을 올려 두부같은 볼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얼굴 한 번 보는게 이렇게 힘든데."
"......"
"...짜증나, 김여주."
근데 니 눈은 거짓말을 못하는 것 같다, 순영아.
눈을 벅벅 비볐다.
"야, 눈 비비지 마. 빨개져."
먹던 돈까스가 목에 걸리는 기분이였다.
"아 진짜, 천천히 먹으라고 좀."
건네오는 물을 단숨에 들이킨 후 물었다.
"...너,너 왜 여기있어?"
"학식 먹는거 보여주려 왔는데요."
쨥쨥, 야무지게 돈까스를 삼키는 입술 옆에 묻은 튀김가루를 떼어주며 물었다. 학교는?
"오늘 공강."
이젠 소스까지 묻히고 먹길래 휴지를 뽑아 닦아주는데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미치겠다 김여주. 뭐가 좋다고 눈을 마주치며 헤헿 하고 웃어오는데 그게 참, 사랑스러웠다.
"안되겠다."
"뭐가?"
"우린 다른 학교인게 다행인 것 같아."
"와,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내가 이렇게 찾아 왔는데?"
"너무 잔인하잖아."
"뭔 개소리야 또."
"너 먹는 거 보면 너무 이뻐서 체할 것 같아."
조용히 돈까스를 썰던 칼로 나를 썰려 하길래 태권도로 달련 된 순발력을 발휘해 간신히 막았다. 너무해!
"뭐냐? 여자친구?"
제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여주가 고개를 돌려 순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건 아마도, 경계를 하고 있는것 같다. 권순영이.
"...아, 안녕하세요."
"와,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건네오는 손을 맞잡자 권순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전 송형준이라고 합니다."
"어! 아 형준씨구나."
순영이의 입에서 많이 나왔던 이름이였다. 듣기론 김민규 만큼이나 친하게 지내는 인물인 것 같은데 어쩐지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다 못해 뒷머리를 탈탈 털고 있었다. 저거 짜증날때 나오는 습관이다.
"새끼야, 그만하고 훈련이나 가."
"와 권순영 살벌하다 살벌해."
"쫌."
"아 알겠네요 이 사람아.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안녕히 가세요."
권순영 졸라 찌질하니까 잘 챙겨 주세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사라진 형준의 모습에 순영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닥쳐!
"저 사람이 형준이야?"
"응, 안 추워? 어디 들어갈까? 손 줘봐."
"너 화 난거 아니였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순간 당황한 여주가 안절부절 못하며 순영의 두 팔을 잡자, 사람이 있던 말던 순영은 그 몸을 덥석 끌어 안았다.
"왜 또."
"...이상해."
"응?"
"내가 아는 나는 되게 쿨하고 자신있는 사람인데."
"......"
"너 앞에서는 진짜 찌질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뭐라는 거야."
"손 잡지마."
"......"
"웃지도 마."
"......"
"말 섞지도 마."
"......"
"어? 대답해줘."
대답 대신 대담하게 입을 맞췄다 떨어졌다. 씩 올라가는 볼 살이 귀여워 아프지 않게 깨물으니 복수라 치고 코를 가볍게 깨물어 왔다. 덩치는 산 만한게, 지딴에는 안겨오겠다고 안겨온 몸이 웃음을 머금은체 작게 속삭였다. 진짜 좋아해.
아우, 진짜 이 귀여운 놈을 어쩌면 좋냐 순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