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16
完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입김이 뿌옇게 흩어졌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건물 입구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건물이 사람을 토해내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인파에 떠밀리듯 빠져나온 곳은 건물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큰 나무 아래였다. 내 손을 잡은 지민도, 나도 품에는 꽃다발을 안은 채였다. 꽃다발은 하나가 아니었다. 교수님과 학생들이 우리에게 내민 꽃다발들 때문이었다. 내 옆에 선 그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꽃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검게 물든 하늘에는 별이 하나 콕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본 그가 미소 지었다. 저기 별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이 빛났다. 마치 하늘에 있던 별을 빼다 박은 것만 같았다. 그의 눈동자만 보고 있다면 하늘의 별쯤은 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아까 전부터 자꾸만 실실 새어나오는 그의 웃음을 보곤 나는 그를 따라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앞의 많은 사람들, 건물의 끄트머리, 그리고 하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시선을 따라 올렸다. 별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작이니 그대로 잔상이 남았다.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호텔 건물의 끄트머리 너머에 있는 하늘을 보려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날의 저녁을 떠올렸다. 끝도 없이 높게 뻗어있는 건물에 포기하고 고개를 내렸던 그날, 다시는 하늘을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날. 나는 이로써 세 번째의 별을 본 것이었다. 목도리의 틈새로 한기가 새어 들어왔다. 한기는 내 몸을 감싸듯 했고, 언제나 차갑던 내 손은 그의 온기로 따뜻했다. 그가 걸음을 떼고, 나는 그를 따라 걸었다. 그는 마치 내 길잡이라도 된 것 마냥 행동했다. 공연장 건물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에도 사람들은 미어터질 듯 했다. 아마 오늘이 연말, 정확히는 크리스마스이브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한 번도 크리스마스이브라고 즐거워했던 적은 없었으나, 오늘만큼은 즐거웠다. 고대하던 무대도 잘 끝마쳤고, 내 옆에 선 그 때문이기도 했다.
“춥지.”
“아니, 괜찮아.”
그가 물어왔다.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차는 아직 저 멀리 있었다. 나는 왜인지 그 차가 조금 더 멀리 정차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정차해 있는 저 차가 내 눈에만 아른거리는 환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했던 까닭을, 이제 나는 알았다. 내 바람이 무색하게 그가 차 문을 열었고, 차 안의 데워진 공기가 날 반겼다. 나는 못내 아쉬웠지만, 차에 올라탔다. 히터가 틀어져 틀어진 차 안의 온기가 내 몸을 감쌌다. 이어 지민이 올라타고 차 문이 굳게 닫혔다.
“이게 뭐예요?”
“회장님께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그가 몸을 돌려 우리에게 꿀 차 두 병을 건네었다. 그가 금방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두었던 것인지 아직도 따뜻했다. 사두었다가 주라고 지시해두신 모양이었다. 유리병을 손으로 감쌌다.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병의 뚜껑을 땄다. 뚜껑은 꽤나 시원한 소리를 내며 따졌다. 그가 자신의 차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곤, 그에게 내 손에 들려있던 차를 주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곤 넓은 병 입구에 입을 대곤 차를 홀짝였다. 순식간에 입안으로 따뜻한 차가 들어차면서, 달콤한 향이 남았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차가 내 속까지도 따뜻하게 데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도 뚜껑을 따곤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따뜻함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아, 거기로 가주세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곳 말씀이시죠.”
“네.”
정적을 깨고 먼저 튀어나온 것은 지민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가 차 안에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득 찬 그의 목소리가 내 귀를 타고 스며들어오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차를 들이키면서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담긴 공기까지도 함께 들이켜 내 안에 가득 찬 것 같기도 했다. 거기? 내 물음이 담긴 말에 그가 작은 웃음소리를 내곤 입을 다물었다. 거기가 어디야? 다시 한 번 반복된 내 물음에도 그는 입을 앙 다물곤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가보면 알아. 그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내 물음에 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옆에 놓인 꽃다발이 내 팔에 눌려 작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차 안에는 진한 꽃향기가 퍼졌다. 괜스레 가슴이 간질거렸다. 내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른 것 같기도 했다.
갑작스레 들려온 노래에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노래를 튼 모양이었다. 내 옆에 앉은 지민은 편안하게 등을 기대곤 눈을 깜작였다. 나, 이 노래 좋아해. 그가 말했다. 눈을 찡긋거리고는 웃었다. 그의 말이 끝마침과 동시에 노래가 내 귀로 정확히 타고 들어왔다. 기타소리가 차를 가득 메웠다. 그를 따라 편히 등을 기대었다. 평소 느낄 겨를 없던 푹신한 의자였다. 귓가에 아직도 멍멍하게 울리던 박수소리가 기타소리에 파묻혀 사라졌다.
창밖으로는 길게 세워진 가로등 불빛이 스쳐지나갔다. 문득, 나는 건물 안 로비에서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익숙한 여자와, 낯선 남자의 얼굴. 나를 꽉 붙잡던 그의 온기 가득한 손,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지나쳐가야 했던 그들. 나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내 걱정인형이라도 되는 듯 내 걱정, 그리고 두려움마저도 앗아가 버렸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예감했다. 그들은 다시 나를 해 입히지 못할 거라고. 내 옆에 그가 있어서였다. 모르는 척 그를 이끌었던 나를,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주황빛 불빛이 빠르게 지나갈 때마다 나는 그 모습에 집중했다. 조금 더 고개를 내민 순간, 내 옆에 앉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재밌어? 그가 입모양으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쭉 빼었던 내 몸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그와 가까웠던 몸을 뒤로 내빼자 그가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내 손을 잡았다. 왜, 그냥 봐. 나도 재미있어, 저거.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웃는 도중에도 그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허공에 붕 뜬 내 손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그가 내 손을 창가로 잡아끌었다. 그로 인해 나는 그와 몸이 잔뜩 밀착한 채였다. 내 허리부근에 있는 안전벨트만 아니었다면, 나는 완전히 그를 향해 드러누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손끝에 닿은 창가가 시원했다. 웃느라 잔뜩 붉어진 볼을 하고는 나를 보는 그를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가 손을 뻗어 내 입술을 톡 건드렸다. 나는 그의 행동에 입술을 앙 다물곤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그가 내 손을 다시 끌어당긴 덕분에 나는 그의 옆에 기댄 채였다.
“그냥 있어.”
결국 나는 그에게 기댄 자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타는 듯 홧홧했다. 더운 공기에 여러 향기가 뒤섞여 내 코로 들어올 때면 나는 그때마다 어지러움을 겪었다. 이미 내 몸을 넘어서 흐르는 감정 때문이었다. 한참이나 달린 차가 도착한 곳은 연말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다. 먼저 내린 그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웃어보였다.
“행사를 지금 할 줄은 몰랐네. 사람 너무 많다, 그렇지?”
“응, 엄청 많네.”
“그냥 나중에 올까?”
“아니. 난 지금도 좋은데.”
운전기사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겠다고 말하곤 차를 운전시켜 떠났다. 남은 것은 둘뿐이었다. 앞에 펼쳐진 행사에는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별 다른 것은 아니었다. 시끄러운 음향소리가 가득한 것도 아니었고, 잔잔한 노래가 스피커로 크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거리를 걸었고, 하늘에서는 색색의 불꽃이 터졌다. 쏘아 올려진 폭죽이 큰소리를 내며 터졌다.
“예쁘다.”
“예뻐? 좋네, 잘 왔다.”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터지는 폭죽을 두 눈으로 볼 기회가 마땅히 없었다. 까만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동자에 쏟아져 내리던 별들이 갇혀 있었다. 터지는 소리가 내 심장 박동 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무대에서 듣던 박수소리와 같은 울림과는 다른 것이었다.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 같기도 했다. 발에 닿는 땅이 그간 내가 걷던 길과는 다른 것만 같았다. 어둠 속의 광명이었다.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은 길옆에는 여러 조형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같이 칭칭 감겨진 작은 꼬마전구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높게 세워진 조형물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눈앞이 너무나도 밝은 나머지 나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눈을 깜작이면 잔상이 따라 남았다. 나와 조형물들을 번갈아보며 웃고 있던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금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어라 함부로 형용할 수 없었다. 두렵기만 했던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도, 내 옆에서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도 나는 좋았다. 내가 눈을 감고 치던 피아노곡과도 많이 다른 것이었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그 어떤 것. 나를 안식에 들게 하는 행복감, 그런 것이었다. 숨을 내뱉으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연 입김이 나를 안식의 길로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길 끄트머리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다녀가는지, 문은 굳게 닫힐 틈이 없었다. 카페에 들어선 그는 내게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물었고, 나는 당연스럽게 초코라떼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대답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더니 초코라떼를 두 잔 주문했다. 어느새 우리는 각각 한 손에 김이 뿜어져 나오는 라떼를 손에 들고 거리를 거니는 채였다.
“잠깐 저기 앉을까?”
그가 가리킨 곳은 조형물 뒤에 놓여있는 벤치였다. 고개를 끄덕거리곤 벤치에 앉았다. 나무의 찬기가 그대로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등을 기댄 채로 손에 들려있는 라뗴를 마셨다. 눈앞에서 전구가 반짝거렸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보고 반딧불이를 연상시켰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무엇도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모두 간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내 옆에 앉은 그도, 내 위에서 터지는 불꽃도 모두 내가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이었다.
“어때, 괜찮아?”
“응, 좋아.”
“앞으로 이런 데 알아봐야겠네.”
데리고 오려면. 그가 말했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나를 보며 다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었다. 내 손에 들린 라떼에서 올라오는 김 탓에, 그는 정말 내가 바라는 환상 속에서나 튀어나온 것 같아보였다.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낙화落火, 나는 그 단어가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른다. 낙화와도 같이 터지는 감정을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낙화의 모습인 불꽃놀이를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눈을 감아도 허공에서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것은 대관람차였다.
“어? 저거….”
“벌써 찾았어? 나는 그냥 무작정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가 내가 가리킨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기더니 손을 입가에 올리며 웃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주 느리게 돌아가는 관람차를 주시했다. 눈을 깜빡여도 관람차는 여전히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대관람차라는 그의 말에 맞게끔 거대했다. 들어올 때 왜 보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온통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 천지였는데, 그것들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같이 오자고 했잖아.”
“…응, 그랬지.”
“먼저 봤으니까 어쩔 수 없네. 타러 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일어서는 그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뭐해? 얼른 타러 가자. 그가 말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관람차를 보았다가, 나를 향한 시선을 옮기지 않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라떼를 들고 있지 않던 그의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낸 그가 내게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잡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짜여진 각본이기라도 했던 듯 나는 조금도 주저 않고 내게로 내밀어진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고 잠깐 다시 손을 놓은 그가 털어야지, 라고 말했다. 그에 정신을 차리곤 엉덩이를 털었고,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아왔다. 나는 어쩌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꿈속을 거닐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허공에 붕 띄워진 것만 같은 내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줄이 조금 길다.”
“그래도 좋아.”
그의 말대로 줄이 길었다. 불꽃놀이 다시 시작한대. 앞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지나 잠깐 멈추었던 불꽃놀이가 다시 시작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불꽃이 잘 보일 수 있는 명당자리를 찾아가겠다는 이유로 빠져나갔다. 길었던 줄이 짧아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들었어? 불꽃놀이 한대.”
“응. 관람차 안에서 보일까?”
“정상쯤에 올라가면, 보이지 않을까?”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탑승권 확인할게요. 직원의 말에 지민이 방금 전 사두었던 탑승권을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관람차의 문이 열렸다. 나는 문이 닫히지도 못한 채로 위로 올라가게 되지는 않을까 겁을 먹고는 재빠르게 올라탔다. 내 걱정과는 달리 지민이 올라타고 나서, 문은 안전하게 닫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밀어보았지만, 열리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무서운 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처음이라 낯설어서….”
내 대답에 그가 뭐가 그리 좋은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처음이야? 그가 물었다. 괜스레 나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응. 그가 내 쪽으로 오려는 듯 일어서자 관람차가 약간 기울었다. 잠깐만, 오지 마. 기울어지잖아. 내 말에 엉덩이를 들썩였던 그가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괜찮은데. 그가 말꼬리를 늘였다. 꽤나 겁먹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아. 결국 포기하고 내 맞은편에 앉은 그가 허리를 숙인 채로 자신의 다리에 팔꿈치를 대고 그 상태로 턱을 괴고는 나를 응시했다. 아까 웃은 거 기분 나빠 하지 마. 나는 그냥…, 네가 처음으로 같이 탄 사람이 나라서 좋았던 거니까. 그가 말끝을 흐렸다. 가만히 그를 보다가 그의 어깨너머에 있는 창문을 보았다. 기분 안 나빴어. 웃어도 돼. 다시 정상적으로 앉은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네 거야.”
“이게 뭐야?”
목걸이. 그가 말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검은색 케이스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는 아주 예전에 보았던 그 액세서리 케이스를 떠올렸다. 그가 그의 누나에게 주려 했던 그것과 비슷했다. 허공에 머물러 있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그것을 받아들었다. 다른 건…, 네 사이즈를 모르니까. 지금 해봐. 손에 들린 케이스를 내려다보다가 무겁게 열리는 케이스 뚜껑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것은 빛에 반짝이는 은 목걸이였다. 걸려있는 큐빅이 반짝거렸다. 고개를 들어서 보이는 것은 나를 향해서 웃고 있는 지민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으로 보이는 창문의 바깥풍경이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관람차 안으로 작게 뚫려있는 구멍으로 들어오던 노랫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나 네 옆으로 가도 돼?”
“지금?”
“응, 네가 그 목걸이 한 거 보고 싶은데.”
“…잠깐만, 우선 혼자 해 볼게.”
그가 나에게 오기 위해 잠시 엉덩이를 들썩이는 순간, 나는 다시 미약하게 흔들리는 관람차에 몸을 멈칫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그는 작게 웃더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손에 잡힌 목걸이가 낯설었다. 손톱으로 간신히 눌러 열린 작은 후크를 목 뒤에서 연결하려 했지만, 헛손질이 계속될 뿐이었다. 정말 혼자 할 수 있겠어?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꾸만 어긋나는 손이 야속했다.
“그럼, 아미야.”
“응.”
“내가 해 줄게.”
그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벌써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고, 그만큼 높았다는 사실은 설명하기에도 입이 아픈 정도였다. 다시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그를 올려다보며 도리질 쳤다. 기울어져, 기울어져. 그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삐죽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도 가운데로 오면 되잖아. 그의 말에 나는 묘하게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자리에서 일어서 한 걸음 내딛었다. 내 움직임에 맞추어 그 역시도 걸음을 내딛었다. 나름 처음과 비슷하게 맞춰진 균형이었다.
“이러면 괜찮은 거지?”
“…아마.”
그럼 목걸이 줘봐. 나를 향해 펼쳐진 손바닥 위에 한참을 들고 끙끙거리던 목걸이를 올려두었다. 그가 자신의 손에 올려진 목걸이를 잡아들었다. 잠깐만. 그와 동시에 그가 내 목 뒤로 팔을 뻗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을 내게로 밀착했다. 순식간에 그에게 안긴 폼이 되었다. 익숙한 그의 향이 코를 타고 흘러들어왔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잠깐 멈추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된 탓이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창에서는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것만 같던 음악소리가 다시 작은 구멍으로 타고 들어오면서, 불꽃이 펑, 펑하고 터지는 소리까지도 함께 들려왔다. 됐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고개를 숙이자 옷 위로 반짝이는 목걸이가 보였다.
“…예쁘네.”
“그러게. 예쁘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긴 것만 같은 눈을 하곤 웃었다. 입새로 드러난 그의 치아가 보였다. 불꽃놀이 시작했나봐. 그의 시선이 내 등 뒤에 위치한 창가에 닿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쏘아 올려진 불꽃이 그의 등 뒤에서 터졌다. 불게 달아오른 불꽃이 검은 밤하늘 위에 떠 있다가 우수수, 소리를 내며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그의 눈에는 그 같은 무수히 많은 별들이 담겨 있었다. 낙화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한참이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들려오는 것은 작은 노랫소리와 터지는 폭죽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숨을 내뱉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좋아해.”
“…나도. 나도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관람차의 정상에 다다른 우리는 입을 맞췄고, 사방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눈이 감기기 전, 그 순간 나는 또다시 터지는 불꽃을 보고는 눈을 감았다. 닿은 입술은 뜨거웠고, 내 가슴 언저리 역시도 비슷한 온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새어 들어오는 노랫소리가 익숙했다. 그와 함께 타고 왔던 차에서 흘러나왔던 노래였다. 나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이제는 알았다. 모두 그 덕이라는 사실을 나는 부정할 수 없을 거였다. 심장 박동 소리가 또다시 크게 울렸다. 누구의 것인지 몰랐다. 다시 한 번 밤하늘에 크게 쏘아 올려진 폭죽이 펑, 펑 소리를 내며 터졌고,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불꽃은 마치, 내 가슴으로 쏟아져 내리는 별 같았다.
우리를 괴롭히던 불不자들, 그리고 내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것들. 발음할 때면 반발심이 솟구치다가도 끝내는 수긍하고 말게 되었던. 내가 발음하기를 꺼려했던 그 단어. 불가항력不可抗力. 나는 끝끝내 지민과 불不자를 이겨내었고,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인이 아니었고, 서로의 성역에 발을 들인 채였다. 눈동자에 자리 잡은 균열들도 서로의 감정들로 메워진 지 오래였다. 나는 나의 어린아이를 지민에게서 찾았고, 그는 내 어린아이를 치유했다. 나는 울타리와도 같은 그의 안에서 숨을 쉬었고, 그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를 괴롭히는 그 무언가 역시도 그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가항력적인 힘을 이겨낸 그야말로 내게는 정말 불가항력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발음했고, 끝끝내는 수긍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고.
Fin.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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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는 거부합니다.
계속 신청 받아요, 주저 말고 해주세요!!!
<사담>
길고 긴 후기 |
드디어 불가항력이 완결되었습니다.(자축) 1화를 올린 날짜는 2016년 12월 15일이나, 처음 집필을 시작한 날은 2016년 11월 25일. 불가항력이 완결된 날은 2017년 2월 8일.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처음 불가항력을 구상했던 날은 2016년 11월 4일이니, 대략 4개월쯤은 불가항력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처음 피아노과를 생각했던 것은 16년도 초이나 제외) 처음 1화를 올렸을 당시, 저는 이미 7화까지 집필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아무래도 장편이다보니 연재 텀이 길어져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이라는 (영화로 치자면 러닝타임) 시간이 걸린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당연하게도 1순위는 제 나태함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건 뭐, 후기에서 자기성찰 수준.
이제 서론을 막론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처음 구상 당시, 불가항력은 이런 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정 반대였음.) 아주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죠. 아무래도 제가 그간 써오던 글들의 흐름을 저도 모르게 따라가다 보니…. 물론 저는 바뀐 스토리가 마음에 듭니다만, 제가 그 전 스토리들로 연재했으면 독자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 궁금하네요. 재차 강조 드리지만, 바뀐 스토리가 조금 더 차분하고 진정된 이야기를 담지 않았나 싶습니다.(답정너.) 2화까지만 해도 구상했던 대로 글을 완결 낼 생각이었고, (이제 중요합니다.) 스토리가 바뀔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글을 쓰면서 불가항력의 아이들의 삶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앞서 서술했던 내용에 조금 더 살을 보태자면, 저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불가항력만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불가항력의 아이들이 제 인생인 것 마냥 녹아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가항력의 초반 부분에서는 앞에 불不자가 붙은 그것들.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부정적인 단어들을 뜻하고 싶었는데 (제목이 불가항력인 탓이기도 했음.) 물론 그 외에도 부정적인 단어들은 많습니다만.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글에서 서술되었던 불안정, 불완전함 등등…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불공평이라든지, 혹은 불자가 붙지 않은 표현들. 열등감, 죄책감 등등. 우리를 가끔씩 고난에 빠져들게 하는 표현들.) 불가항력의 아이들은 모두 그것들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그것들을 이겨낸다.’가 주 스토리인 만큼,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결국은 헤어 나옵니다.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꼭 그것이 이성이 아니더라도, 남이 아니더라도 나일 수도 있죠.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한, 글에서 빈번히 등장했던 표현 중 하나가 ‘균열’입니다. (자꾸만 후기가 길어지네요.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라고는 말씀드리지만….) ‘눈동자에 자리 잡은 균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불가항력의 아이들에게도 있었고, 심지어는 어머니에게도 존재했던 것이죠. 균열이라는 게 사실 우리의 고통으로 벌어진 틈을, 채워야 하는 틈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잖아요. (완벽하다고 하시면 드릴 말 없음.ㅠ)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틈을 서로로 인해서 채워져 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이게 글에서 잘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댓글 중에서 불가항력의 아이들의 심리를 느낀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독자 분이 계셨어요. 사실, 글로써 표현된 것이라 제가 더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이야기가 먼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아주 사소하게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님들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불가항력 완결 편을 집필 중이던 날, 제 컴퓨터가 장렬히 전사하시는 바람에 올리는 날짜가 늦어졌네요. 지금이야 무사히 올려서 다행이지만, 얼마나 패닉이었는지…. 액땜이라고 생각하려고요.ㅠ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같이 달려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제 글에 등장했던 불가항력의 아이들 역시도 고마워요.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저도, 독자님들도, 불가항력의 아이들도 모두 행복할 거라 믿어요. (불가항력을 더 이상 쓰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제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행복할 거라 굳게 믿고 있음.) 긴 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나면 가끔씩 들러주세요.
차기작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릴게요. 현재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습니다. 이 역시도 불가항력처럼 어느 정도 전개가 된 후에 올리기 시작할게요. 다음 글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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