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류는 일이 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안는다. 웬만한 일이면 그냥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수호와의 다툼이 그 웬만한 일에 들어가지 않느다는 게 문제지만. 반류는 거의 산산조각난 문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무식한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개차반일 줄이야... 보면 볼수록 놀랄 일이야."
"무식한게 아니라, 당연한거다! 친구가 욕을 먹는데 안나서는 놈이 어디있냐? 너 같이 인정머리 없는 놈은 모르겠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수호와 다르게, 반류는 냉하게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슥했다.
"누구처럼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지 않아서."
"저게 아주 끝까지 재수 없지!"
청춘남녀의 열기로 달아올랐던 옥타각이 살벌해 지는 것은 참으로 순식간 이라.
"틀린말 한것도 없지 않나? 반쪽 진골이라는 거."
그 말을 끝으로 수호가 근처에 있던 방석을 던져 버렸다. 그것을 가뿐하게 피한 반류. 그 방석은 그렇게 반류를 지나 저 멀리 방문을 열고 나오고 있는 아로에게 가버렸다고
"...!"
아로가 날아오는 방석을 알아차리고 놀라는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 방석을 걷어차버렸다. 아로의 앞에서 방석을 날려 버린 그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나는 동생 데리러 왔는데, 이게 무슨 난리지?"
"여. 선우!"
수호는 밝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수호의 부름에도 그는 시큰둥한 표정만 짓고는 인사조차 하지 않은체 아로의 어깨를 잡고 같이 밖으로 버렸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 지고 싸울 시기를 놓쳐 싸움은 흐지부지하게 와해되었다. 수호와 반류 둘다 서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섰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듯 다른 방향의 출입문으로 나가버렸다고.
"수호. 쟤 이화 아니야? 왜 선우라 불러?"
그때, 수호의 옆에 있던 공자가 물었다. 수호는 어깨를 으슥하며 대답했다.
"저녀석. 이름이 여러개야. 개같기도, 새같기도 하다하여 우리끼리 부르는 별명은 개새. 아버지가 지은 이름은 선우. 어머니가 지은 이름은 이화. 본인은 이화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하는 듯 하지만."
그렇게 옥타각에서 벗어나, 한참을 말없이 걷던 아로와 선우. 아로는 오라비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뒤에서 걷고 있었다.
"많이 화났어요?"
"...많이는 아니야"
"화는 났네."
선우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에 아로는 더욱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거..걱정마시오! 오라버니가 말한 호신술은 제대로 익히고 있으니까 그렇게 걱정않해도.."
"그걸 말이라고!"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선우는 순간 아로의 변명에 울컥했다가 더 소리를 지르는 아로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젊은 진골 청년을 급습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하잖아. 아예 안하라는 게 아니라 조금 이라도 잠잠해 지면 나가면 안돼니?"
"아니 공격당한 사람들은 다 남자들이고...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아로는 곧장 받아칠려고 했지만, 그랬다가 정말 심하게 화를 낼거 같은 오라버니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고. 그에 선우는 입을 앙 다문 자신의 누이가 귀여워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뭐든 조심 하는게 좋아. 이렇게 예쁜애 누가 데리고 갈까 겁난다."
아로는 거의 선우가 키웠다. 아로가 5살. 선우가 8살때, 그의 아버지 위화랑은 유배를 가게 되었다. 정권에 있던 누이는 죽어버렸고, 주의 친적들은 모두 아로를 거부했고, 선우만 데리고 갈려고 하였다. 선우는 골품으로 가족까지 가르려고 하는 그들에게 신물이나 그들의 손길을 모두 거부 하고 아로의 손을 잡고 평민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단둘이 살기 시작해 올해로 선우는 20살이 되었고 아로는 17살이 되었다. 그둘에게는 오누이라는 말보다, 아비와 딸이라는 말이 좀더 잘 어울렸다.
"이보시오 오라비. 그런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오. 누가 들으면 욕해."
"욕하라면 하라 그래! 나는 사실 대로 말한..."
"아쫌!"
똑같은 오누이 관계인 수호와 수연이 들었으면, 뒷목을 잡고 넘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닭이 되어 버릴 것 같은 대화를 너무 스스럼 없이 하는 그들. 그렇게 걷다보니 그들은 자신의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때, 선우가 먼저 자신의 집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목격했고, 아로도 곧바로 알아차리고 선우의 뒤어 숨었다. 그래서 선우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지 못했다.
"당신이 왜와..."
문앞에서 선우와 아로를 기다리는 것이 누구였는지, 아로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선우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처음 보는 관경이었다.
"무슨 자격으로! 어떻게 여기 얼굴을 내밀어!"
그는 선우와 아로의 아버지 위화공이었다. 그 남자는 12년 만에, 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한 청년을 데리고 모습을 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