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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같은 선배와의 전쟁
by. 탄덕
13
" 박지민, 여기."
익숙치 않은 그의 영어 이름을 머릿속에 지워버리고서 저 멀리 보이는 그에게 외쳤다. 그러자 힘겹게 숨통을 이어가던 박지민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올곧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에 따른 눈빛을 덤덤히 받아냈다. 언젠가 들었던, 힘들어 하지 말라던 그의 미성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민의 등 뒤로 유유히 걸어오던 호석 선배의 발걸음이 당혹스러움에 바닥을 끌며 멈춰섰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선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발걸음을 성큼 나에게로 움직였다.
" 기억이 돌아온거야? 왜 말 안 했어? 적어도 나한테는 먼저 말했어야지."
" 말하면- 혹여나 선배한테 말을 했더라도 뭐가 달라져."
높아진 언성과 어깨를 강하게 잡아오던 그가 내 말에 화를 삭히는 듯 눈을 바닥으로 내렸고 난 덤덤히 덧붙였다. 봐, 못하잖아. 그를 내려다본 시선을 조심스레 위로 치켜올리고선 지민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 여기 앉아, 박지민."
" 거기 서, 한 발자국이라도 떼면- "
" 내 손님이야, 선배의 오랜 친구였던 김남준 씨처럼. 선배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 없어."
" 넌 저 새끼를 믿어? "
짐짓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고 경멸어린 눈빛을 두 눈에 고이 담으며 지민을 돌아봤다. 저 새끼를 믿냐고, 너는. 경멸에 찬 두 눈으로 고함을 지르는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로 인해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레스토랑에 적막한 음성만이 가득 울려펴졌다.
" 믿어보려고. 믿어줄 사람 나밖에 없잖아. 저 머저리같은 놈 구해줄 사람 나밖에 없어, 저 아이가 그 때의 날 구했던 것처럼."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누가 너를 구했는데."
" 박지민이, 선배가 의심했던 박지민이 날 구하려다가 다친 거였어. 내 이름만 몇 번이나 외치던 저 아이를 내가 유리잔으로 내리쳤다고."
"..... 그럴 리 없어, 집엔 너와 저 자식 둘만 있었잖아."
" 그럼 나도 하나만 묻자, 그럼 선밴 김남준 저 사람을 믿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
선배의 목울대가 잠시 울렁거렸고 어깨를 감싸쥐던 손자락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린 그가 실없이 웃기 시작했고 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맺히다 이내 빗물처럼 아래의 운동화를 조심히 적셨다.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선배의 모습에 김남준, 그 사람이 그의 눈길을 받아들였다. 아니지, 남준아. 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선배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 일단 저 새끼부터 보내, 내 앞에서."
" 싫어."
네가 싫으면 내가 데리고 나가, 기어코 선배가 뒤를 돌아 지민의 팔을 세게 잡아 끌었고 지민또한 그에 어떠한 일말의 저항도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이 나간 레스토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가소로웠다. 허망함으로 뒤덮여진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의자에 몸을 기대던 내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테이블을 툭툭 건드리던 소리가 점차 무음으로 멎어들어갔다.
"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을 꿨어요. 뿌옇던 시야에 얼굴이 가려진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죠. 그게 시작이었던 거에요, 이 거지같은 수레바퀴가 원점으로 돌아가던 건."
" 그래서."
" 사고가 나던 날, 선배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왔어요. 지민이와 날 오해한 게 미안했던 건지 자기 집으로 부르더라고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서 병신같이 좋다고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죠. 그러자 선배가 아닌 당신들 친구 하나가 문을 열어주더라고. 그래서 언젠간 오겠지- 그렇게 기다렸어요."
' 호석 오빠는 언제 와요? 지금 시간이면 오고도 남은 시간인데.'
' 정호석은 약속 있어서 더 늦게 온대, 우리 먼저 가 있으라고 했거든.'
' 아니에요, 분명히 만나자고 했는데.'
' 너 정호석 배신 때리고 걔 동생 박지민이랑 눈 맞았다며.'
' 누가 그래요? 누군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문을 퍼트리는- '
' 김남준이 그러던데. 너희 둘이 친구인 척 호석이 엿 맥이는 거라고. 그런데 박지민이나 정호석은 널 뭐보고 좋아하는 거냐. 네가 뭔데 두 남자애가 너 하나만 보면 미치냐고. 난 그게 아주 궁금해.'
" 그리고 그 개새끼가 앞에 마주보고 있던 나에게로 다가왔어요. 김남준 씨, 그거 알아요? 아무도 없던 큰 집에 그 개새끼가 날 향해 걸어왔다고."
" 난 단지 너한테 주의를 주라고 시켰을 뿐이야."
" 알아, 당신은 그런 개새끼를 이용하려 했던 거겠지. 당신이 퍼트린 헛소문도 그런 이유 아닌가요? "
" 아니, 처음엔 너만 바라보는 정호석이 미웠어. 항상 내가 먼저였던 그 아이한테 네가 있고 나서부턴 언제나 내가 아니라 네가 먼저라는 사실이 돌아버릴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일부러 널 힘들게 했어, 그래야 호석이 다시 날 찾아올테니까. 설사 그 이유가 위로라도 난 괜찮았으니까."
여유롭게 중용을 지키던 그가 와인을 쉽게 비워내며 말을 이었다.
" 그러는 넌 알아?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미쳐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얼마나 숨이 막혀오는지. 사고가 나고 호석인 거의 인생을 놓은 놈처럼 살았어.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었는데- 그 모든 걸 자기 탓으로 여기면서. 널 지키지 못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하루하루를 불면증 약으로 버텨가던 애라고. 더 얘기해봐요, 네가 기억해낸 그 날의 기억이 나도 궁금하니까."
' 가까이 오지 마.'
' 왜 내빼고 지랄이야. 이깟 폰으로 정호석한테 전화하면 달려올 것 같아? 아마 여자친구를 잃은 슬픔에 술이나 처마신다고 받지도 않을 걸.'
" 그러자 내 폰을 집어던지고 그 새끼가 날 방으로 끌고 갔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난건지 극도의 무서움에 거의 정신을 잃어가던 내 어깨를 누군가 흔들었어요. 당연히 그 새끼인줄 알았던 난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집어들어 머리 위를 내리쳤고 그 충격으로 누군가는 바닥으로 쓰러졌죠. 얼마 안 가 밖에서 현관문이 열리던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소리에 미친듯이 방문을 뛰쳐나갔어요. 쓰러진 사람이 누군지 확인조차 할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그 집을 나가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방문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선배와 마주쳤어요."
' 너 이거 뭐야, 만나자고 하더니 나오지도 않고 찢어진 치마는 또 뭐고.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네가 왜 지민이 방에서- '
' 비켜.'
"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난 무작정 선배를 밀쳐 집을 뛰쳐나가면서 무작정 달렸어요. 그리고 날 뒤쫒아오던 선배가 내 팔을 단번에 잡아세웠죠."
' 무슨 일이야, 똑바로 말해. 괜찮은 거야? 박지민이 그런거지. 아니, 일단 병원부터 가자.'
' 지긋지긋해.'
' 뭐? '
' 치가 떨려, 정호석이라는 세글자.'
' 다시 말해봐.'
" 그런 선배를 뒤로 하고서 난 도로를 건넜고 그는 빨간불이 되어버린 횡단보도에 있던 그대로 서 있었어요."
' 넌 날 만난 걸 후회해? '
' 후회해, 아주 많이. 오빠랑 행복했던 내가 역겨워질만큼.'
" 그 순간, 검은 교복을 입고 있던 선배가 보이지 않았는지 달려오던 차는 속도를 늦추지 못 했고 난 그를 옆으로 밀어냈어요. 이게 끝이에요, 당신이 궁금해하던 비극적인 결말은."
길게 써내려가던 악보 위로 비극의 서막을 알린 진실이 마침표를 찍었다.
" 방금 뭐라고 그랬어, 박지민. 한번만 더 말해봐."
" 김남준이 그런 거라고, 형을 가지기 위해."
지민의 멱살을 세게 움켜쥐고 있던 호석의 손이 툭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호석아, 나는 네가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렴풋이 떠오른 지난 날에 이질감이 든 호석이 손으로 눈을 어둠으로 감싼 채 미친듯이 웃어젖혔다.
여러부뉴ㅠㅠㅠㅠㅠ 잘 지내셨어요ㅠㅠㅠㅠㅠ 너무 늦게 찾아온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빨리 찾아뵙고 싶었는데 이 망할 과제가 ....... Hr......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ㅠㅠㅠㅠㅠ 우리 독자님과 저의 탄님들ㅠㅠㅠㅠㅠ
저번 화에 신청해주셨던 고마운 [윤맞봄]님과 [꽃소녀]님까지 정말 감사한 저의 암호닉 분들 다시 정리해서 예쁘게 올려놓을게요♥♥
항상 저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구 캡짱 많이 많이 제가 사랑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 꼭 해드릴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