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향기가 곳곳에 잔뜩 늘어져 있었다.
이러한 봄 속에서 여주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평소에 좋아하던 민규가, 타학교에서 제일 예쁜 한 살 어린 여학생과 벚꽃 축제를 간다는 소식이 교내 전체에 퍼져 있었다.
평소에 여주에게 제일 좋아하는 것를 말하라고 하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벚꽃이라고 외쳤을 텐데, 여주는 벚꽃의 개화 시기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얼굴은 울상이 되고 있었다. 그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여주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야, 김여주!"
"어, 음. 그래 김민규.."
민규 때문에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데 하필 버스 안에서 자신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민규가 원망스러운 여주였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민규를 대하자 민규가 그런 여주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걱정하는 말투로 연신 질문을 했다.
"무슨 일 있냐? 기분 되게 안 좋아 보이는데."
"신경 안 써도 돼."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미운 여주는 화를 내볼까 했지만 참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늘, 해오던 것처럼. 오늘따라 더 신나 보이는 민규의 얼굴을 애써 외면한 채 학교에 도착하였다.
졸졸 따라오는 민규 덕분에 예민해진 여주였지만, 민규가 저와 같은 반임을 깨닫고는 저만의 수치심을 느끼곤 했다. 소문 하나 때문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수업을 도통 들을 수가 없어 까막눈처럼 종이만을 멀뚱멀뚱 쳐다보자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여주가 동성의 친구들과 밥을 먹으려고 교실 밖을 나가려는 찰나에 민규가 낚아채어 단둘이 먹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민규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급식판에 들어있는 음식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민규가 한숨을 쉬며 말을 건넸다.
"밥알 몇 갠지 지금 세고 있는 거냐?"
"아, 아니… 신경 쓰지 마."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민규가 급식을 먹는 것을 감상한 후 급식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학교의 명물이라고 한다면 벚나무 몇 그루 있는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벚꽃이 만개한 것을 보고 교실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여주였다. 한 그루에서 조금 핀 벚꽃을 보며 회상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주 토요일쯤에 민규는 데이트를 하겠구나.
벚꽃을 보고서 민규가 여주야, 너 벚꽃 좋아하잖아.라고 싱글벙글 웃으며 여주에게 말을 건넸다. 역시 소꿉친구여서 그런지 여주의 사소한 것들까지 잘 알고 있는 민규였다. 적당히, 웃어 보이며 여주가 반응을 하자 민규가 표정을 굳히며 불만을 토해냈다.
"야, 너 오늘 왜 그래?"
"미안, 오늘 정신이 없어서…."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지?"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여주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는 채로 우물쭈물하자 민규의 표정이 더욱더 시무룩해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랫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벚꽃도, 민규도 모두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공허한 느낌이 싫었다. 모든 상황이 괜히 속상해져 제 의지와 상관없이 울음을 터뜨린 여주였다. 여주의 얼굴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어찌할 줄 모르는 민규였다.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이었다.
"김민규, 진짜 너 싫어... 내가, 내가…"
"야, 야! 왜 울어! 뭘 잘못했는데. 아, 미안해. 전부 다."
"내가 너 좋아하는 것두, 모르고. 막, 다른 여자애랑 벚꽃 놀이 가려 하는 주제에. 진짜 짜증 나…"
울음도 터뜨려 버렸겠다, 그저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여주였다. 민규는 그런 여주를 바라보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아내며 대답을 했다. 벚꽃 속에서 그 둘은 마치 연인처럼 느껴졌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부러워할 만큼.
"아, 부승관 짜증 나... 아무튼 너도, 오늘 내 생일인 거 몰랐잖아."
"오늘 생일이었어?"
잔뜩 당황해서 순식간에 울음을 그쳤다. 항상 민규의 생일을 성심성의껏 챙겨준 여주였는데, 이번 생일은 제정신이 아닌 지라 생각하지도 못 한 일이었다. 여주가 민규를 바라보며 혼을 빼놓고 있자 민규가 그제야 막 웃음을 터뜨렸다.
생일 선물도 안 챙겨주고, 사랑이 식었네.라며 농담을 하는 민규의 말 덕분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제야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하나하나 생각나는 여주였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상황도 아니고. 체념한 채로 벚꽃만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벚꽃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내 생일 선물 원하는 거 있는데, 말해도 돼?"
"음, 말해 봐."
"나랑 벚꽃 보러 가자."
♡♥벚꽃을 사수하시오!♥♡
오늘도 여주와 같이 하교를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 덕분에 모든 것이 무산이 되었다. 오늘따라 더 북적이는 피시방은 한적해질 틈이 없었다. 속도를 높여라!라며 게임 속 캐릭터를 제법 잘 흉내를 내는 승관이 덕분에 친구들이 한참을 낄낄 웃어댔다. 하지만 여주가 신경 쓰여 민규 눈에는 게임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민규를 우상으로 삼던 친구들이 오늘따라 민규가 게임에 집중을 하지 않자 버럭버럭 성질을 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릴 줄 모르는 민규였다. 민규 옆에 앉은 승관이가 민규의 등을 퍽, 소리 날 정도로 세게 치며 가볍게 질문을 내던졌다. 그게 월척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야, 좋아하는 애라도 있냐? 너 때문에 계속 지고 있는 거 안 보여? 계속 그러면 팀에서 빼버린…"
"좋아하나 봐… 어떡해. 여주..."
"뭐? 김여주? 진심이야?"
승관이의 입에서 여주의 이름이 내뱉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민규였다. 승관이가 입이 지나치게 가벼운 편은 아니었는데 한 번 정신을 놓으면 모든 것을 다 늘어놓곤 했다. 게다가 승관이가 입담이 좋아 발이 넓은 덕분에 한 번 퍼진 소문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아니, 걔 말고. 효정이! 하하, 내가 걔 좋아하잖아."
"신효정? 헐, 걔 옆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잖아."
망했다. 그저 생각나는 사촌 누나의 이름을 내뱉었을 뿐인데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효정이란 애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나 나나 불쌍할 따름이었다. 소문이 나면, 부승관 이 새끼를 죽여야지.라고 생각하며 게임에 몰두했다.
어쩌고 저쩌고 |
밍구 생일이 지났지만ㅠㅠㅠㅠ 글 올림미당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