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루잠입니다.
또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새로운 느낌이네요.
오늘의 편지는 글이 저번 편지보다 길어질 거에요.
아무래도 말을 아끼는 건 영 천성에 안 맞더라구요.
3월 편지를 끝마치는 내내 아쉬워했어요.
줄곧 못 다한 글을 간지러운 타자 소리로 적어보았다, 지우면서요.
이제 와서, 침묵하던 장정 7개월의 심정을 돌려 말해보려구요.
미묘한 현재에서 작년 2015년 여름 시작으로 거슬러 돌아가 말해볼게요.
우울 속에서 살던 작가는 부정적인 나날 와중에 다행히 내가 무얼 좋아하고 잘 하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때는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가치관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미워했어요.
왜 나만 부정적인 사건이 겹치고 또 겹치는지.
왜 나만 숨죽여 우울해하고 다른 애들은 평범하게 사는지.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야 도착하니 알겠어요.
이제야 조금은 이해돼요.
지금 나는, 깨달았던 그 날의 시야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의 변화가 생겼어요.
18살에 굳힌 정체성에 또 한 번 심각한 성장기를 거쳐서.
이상한 기분으로 끝낸 수능날.
그 다음날 바로 슬럼프를 맞았네요.
컴퓨터 화면에 정신분열증마냥 문장마다 따로 노는 글을 적어놓고 멍하니 있었을 땐
절망? 충격?
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담담하게 전원을 껐어요.
누구에게도 아무 말 않고 눈을 감고 말았죠.
격렬한 사춘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뭘까.
이건 뭐지.
정말,
뭐지.
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설명도 못하고 멍하게 되어버렸어요.
마치 내 글처럼 생각이 조각나버려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었어요.
문장 하나 만들지를 못 했어요.
그 상태로 주위 사람에게 내가 얼마만큼 망가졌는지 알려 줄 수가 없었어요.
바닥까지 망가져버린 걸 들키기 싫어서.
그래서 사람들을 멀리하고, 또 멀리했어요.
나는 정신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이 정체 불명의 암흑은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더 혼란스러웠어요.
암흑이란 변수를 해답을 찾아봤지만 기록에도 없는 '정확한 풀이법'.
난 그 어둠을 맞고 나서, 2016년 10월 이후 내내 몸을 이끌어 바닥에 누웠어요.
비정상이었죠.
잠이 쫓으면서까지 앉아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충분히 눈이 뜨이는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 작가는 비정상이었어요.
몸까지 아팠을 때는 독자님들께서 힘내라고 해도 힘 낼 수가 없었어요.
우울의 끝을 달리는 패닉 상태에선 누구의 말도 잘 들리지 않더라구요.
살고싶은 본능으로 일어나고픈 마음도 생기지 않고.
철저히 나 혼자에.
태풍은 무질서하니, 언제든 또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어요.
정도에서 한계가 없음을 깨닫는 단계였나봐요.
우울도, 좌절도, 충격도.
행복의 정점은 아직 찍어본 적 없는데.
나의 부정적인 시기는 남들과 같은 유형의 슬럼프가 아니었거니와 슬럼프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도 힘도 없었죠.
휴식을 가지면서 변화하는 과정?
잘 기억 안 나요.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잘 이어 못 붙이는 상태에 기억이야 잘 날 리가 없어요.
잘 기억나지 않게 충격도 잔잔한 태풍처럼 휘몰아쳐서 지나갔어요.
남은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나만 휩쓸고.
단언 할 수 있는 건, 지금은 꽤 괜찮다는 거.
지금은 회복했다는 거.
현재는 아침이라는 거.
슬럼프 이후, 이렇게 생활했어요.
만족보다는 결핍을 절실히 느끼며 살았죠.
그에 마땅히 자신감이 줄었어요.
별의별 일에 치이다 보니 열정이 쇠했나봐요.
하루이틀 느낀 게 아닌데 지금 와서 짚고 가네요.
4월만 해도 긍정보다 부정을 더 많이 겪고 있었어요.
꿈으로 가득차 있을 땐 사람이 모였지만, 현실적으로 말할수록 사람이 떠나는 느낌이 싫어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을 몇 번을 붙여도 지금 내 마음을 전하긴 역부족이에요.
이야기 덩어리가 아닌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 살다가 한 명이라도 발견할까요.
진심으로 굴었던 내가 부끄러운 바보가 된 마냥 기분이 그래요.
하지만 왜 자꾸 힌트를 숨겨놓는지.
그냥은 쓰지 않은 한 마디 한 마디 의미,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나를 보러와주는 것에 기쁜 행복을 맞아요.
생각을 온전히 이해 못해주더라도 내 소설을 기억하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일 기쁘죠.
작지만 반짝이는 빛, 그런 게 행복이죠.
이렇게 다시 긍정으로 돌아오고, 부정을 맛봤다가, 다시 긍정.
이런 극단적인 순환을 반복해왔네요.
극부정적인 것도 아리랑을 쓰던 4월까지만 하고, 공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내 마음은 조용해요.
슬럼프 이후로 1월부터 3개월 속.
갈등에서 갈등으로 하루를 끝냈어요.
나는 뭘 좀 알 것 같은데, 아직 베일에 쌓여서 정확하게 짚지는 못하겠어요. 확신을 못 하겠단 말이 그때 상황이었어요.
알을 깼는지도, 아직도 알 안인지도 잘 모르겠는, 딱 잘라 말하기도 좀 이상한, 형용하기 어려운 상태였어요.
다만 슬럼프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뜨인 건 확실했죠.
1월 지나고, 제일 추운 2월도 지나고, 3월도 보내며 다다른 4월.
점차 현실을 바라보면서, 오랜 고민 끝에 글이 안 써진 이유도, 내 자신이 답답한 이유도 모두 찾았어요.
슬럼프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무에게 말하지 않은 불신이 제 안에서 꾸물꾸물 크기를 키워나갔음을 4월의 눈으로 확실히 짚었어요.
내가 과연 좋은 글을 쓰나?
나한테 떳떳한 글을 쓰는지.
좋은 글을 쓸 자격이 있나.
나는 과연 능력있는 사람인가.
나를 못 믿고 사회의 기대에 맞춰야 된다는 스트레스가 슬럼프가 되다.
그래서 압박감에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병처럼 분열되어버렸나봐요.
슬럼프 여운을 어느 정도 보내다 보니, 원인들을 차근차근 분석하고 나를 고치려 노력해요.
최근은 아리랑을 계속 쓰고 있었구요.
솔직하게 말해서 공부에 집중 안 했어요.
공부를 떠나서,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슬럼프 이외에도 많이 이리저리 치이고 다녔는데, 그 당시에 참아왔던 게 말문이 트인 4월에 터져서 더 힘든가봐요.
한편 슬럼프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되 기억은 잊지 않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기도 해서 무의식 속에서 잊혀진 것들이 많아요.
'신신당부信神當付'같은 것들이요.
이 이름을 꺼내니 몸이 기억하는지 팔 부근의 뼈가 시려요. 저 또한 겁이 많아서 그 시간,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못 끝냈고, 다시 마무리 지을 예정이에요.
신신당부를 비롯한 우어터파구, 투하츠,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나란 사람을 검사해야 했어요.
컴퓨터처럼 사람도 어디가 병들었는지 정기 점검하는 날이 임박해서 슬럼프가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추구하는 바가 진정 무엇이 되어야 하며 내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처지인지 현실적으로 파악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4월.
다시 글 쓰는 방법을 잊기는 싫어 조금조금씩 확인하는 차원으로 점검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아리랑으로요.
글 주제, 글 쓰는 방법. 매순간 매시간 글로 가득차서 글에 대한 고민은 떨쳐낸 적이 없어요.
또 다른 슬럼프의 원인은 뇌를 아작내는 즉, 고뇌로 번져요.
좋은 글.
좋은 글을 쓰기 전 나는 항상 스스로와 문답을 해요.
모르는 새에 캐릭터 상에 도덕적인 문제가 있나.
자살을 미화하는 글일까.
서술을 자세히 한다고 직설적인 문체를 택했는데 너무 단순해 보이지는 않나.
내 고유의 문체가 이해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나.
혹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힌트를 넣어뒀지만 놓쳐서 이해 못하지는 않을까.
채택한 단어는 문법과 어울리지 않은가.
최대한 접속부사를 쓰지 말자.
글을 영상적으로 써서 문학쪽에선 인정하지 않을까.
굳이 내가 추구하는 1인칭이 아닌 3인칭 위주로 써서 몰입도를 떨어뜨려하나. 하지만 언젠가는 3인칭인 글을 써야한다. 그런 객관적인 글로 내 뜻을 자아낼 자신이 없다.
방금 쓴 문장에는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으려나.
내가 다룬 글이 종교 쪽에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 글을 쓰면 나도 독자님도 재미가 없을 텐데. 사회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면 순종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비방하는 글이나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인물을 삭제하는 글을 쓰면 안 된다. 그렇다면 스토리와 글의 순수 목적을 위해서도 안 되나.
동성애자에 대해 불결한 시선을 가지게 하는 글을 쓰진 않았는가.
클리셰적 성차별을 했나. 무의식 속에 인식이 박혀있다면, 더이상은 정신의 흐름에만은 글을 맡길 수 없다.
정신적 수양이 필요하다.
이외
저작권, 도덕, 양심 등등 살면서 지켜야 될 것, 현시대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들을 끌어안고 고민해요.
이러한 많은 생각에 휩싸여 글과 삶에 대한 부담감이 큰 건 사실이에요.
시대가 바뀌고 예민해져야 하니 성차별 등등에 대해 예민한 시선으로 글을 검토해요.
실제 본인 스스로에게도 도덕적인 잣대를 엄격히 대면서.
부담이 크지만 괜찮아요.
제가 바라는 바, 저야말로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스스로 채찍질하게 되네요.
완성형이 되기는 힘들지만 견딜 수 있다고 나는 나를 믿어요.
적당히 조절해서 나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감정도, 압박감도, 이제 강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깨달았으니.
앞으로 지향하는 바는 저만의 세상으로 만들어졌어요.
적어도 99살의 인생에 겉핥기로 느끼는 재미만이 파라다이스인 줄 아는 어린이는 졸업하려고 해요.
이대로 부족한 것들을 그게 나라고 인정하지 않을 거에요.
소중한 것들은 지키고 부족함은 채워가야지.
속을 꽉 채우는 예술가는 되고 싶지만 꽉 막힌 어른은 되지 않아요.
주어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긴 싫어요.
추천을 하되 강요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래요.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텅 비어서 도움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글을 태워먹는 과정을 수십번 수백번 더 해서 좋은 수작을 만들고 싶어요.
작가는 육감각을 만족시키는 근사한 열매가 되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의 소중한 독자들이 내 글을 읽다고 제목을 말하는 것을 어디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끔.
나의 소중한 글을 부끄러워하지 않게끔 사는 것이 제 목표예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몰라요.
누군가에겐 부담스럽기고 하고, 누군가에겐 머저리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일생에서 목표가 투하츠 그 글이 된 걸요.
투하츠를 끝내지 못하면 죽을 수 없을 거에요.
맘 편히 여생을 보내지도, 죽을 때가 돼도요.
투하츠를 끝내서야 보통 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맘 놓고 사랑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생의 목표를 위해 제가 가는 길에 다시 토네이도가 오지 않는다 장담 못해요.
그러나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언제나 가능성을 바라보고,
뻔하고 부정적인 말을 삼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솔직하고 떳떳해지 위해 노력하기.
용기있는 사람이 되기.
초심 잃지 않기.
이 옛날 1년 전에 썼던 꿈, 낙천적인 '바다아이' 말이죠.
그 꿈 포기하지 않아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5월 시작까지.
저는 불안하지만 이토록 값지고 다시 살 수 없는 재정비 시간을 갖고 있었어요.
작가는 그 시절을 지나며 부정적인 눈도 높아지고 긍정적인 마음도 넓어졌어요.
독하거나 착하거나 비열하거나 슬퍼하거나, 다양한 사람이 되어보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다.
그 세상 속에서 나만의 세상도 가지다.
마침내 두곳에 몸을 담아 달라진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이 발견을 성장이라고 말해요.
이렇듯 끊임 없이 상상과 현실을 조율하며 노력한다는 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할 준비가 돼있단 증표겠죠?
힘겨운 시간 넘기고, 작가는 200일 남겨두고 불꽃이 튀는 시작을 하네요.
수험을 앞둔 이상 앞으로 편지는 간략한 내용을 끌어안고 날아갈 예정이에요.
간편하고 부담 없는 글로 찾아올게요.
오늘만큼은 나의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각자만의 상황으로 힘들 독자님들에게 위로하는 이야기로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더 가까이 곁에 다가갈게요.
오늘의 편지보다 몇 배로 밝은 글로 말이에요.
그때까지 고개 떨어트리지 않고 힘내주세요!
작가의 여러분들은 할 수 있어요.
작가는, 어떻게든 도와드릴 거에요.
믿을 사람 하나 없다 말하는 세상에서, 기댈 만한 큰 사람이 되어드릴게요.
쓰러져도 일으켜세워드릴게요.
먼저! 작가가 수능을 끝내고, 말이에요.
대학을 가면 더 바쁘겠지만 잊지 않고 초심 잃지 않고 돌아와 마주할게요.
더욱 좋은 글과 더 좋은 모습으로요.
발전한 모습을 장차 혼이 깃든 소설로 느끼게 해드릴게요.
그리고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작가가 들어오지 못해도 잘 지내야해요.
여름 피하시라고 더위, 미리 제가 살게요.
호신용품 꼭 하나씩 들고 다니구요.
친구가 말하길 빈 소주병 하나는 품고 다녀라, 누가 따라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으로 깨서 위협해라.
우스개처럼 말했지만 빈말이 아니오.
세상이 더 흉흉해지고 있으니 혹시나….
최소 하루 두 끼 챙겨드시고, 아프지 말아야 해요.
과민대장증후군이신 독자님들 꽤 계실 텐데 참으면 더 심해지잖아요.
학교에서 야자했던 때에 작가가 썼던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서서하면 그나마 좀 낫고 두 번째 최적의 수는 양반다리로 앉아서 하는 겁니다.
어떻게 했냐면
신발장 위에 올라 앉아서 서서 하는 책상을 허리에 끼고 책 올려요.
배 수시로 아프신 분들껜 괜찮은 방법인데 선생님들이 보기 싫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시죠.
앉어서는 정 안 되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저 불치병, 집에서는 안 저러니 집에서 하는 게 최선이에요.
3년 저걸로 혹사한 자의 꿀팁이었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ㅜㅜ
저번에 봤던 편지에서 생각나는데 토마토마님 조금 있으면 해외로 가신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군대가고 연구실에서 사신다고 기억하는데 곧 해외로 가시면
작가 마음 한 켠이 많이 쓸쓸할 거에요. 진짜 보고싶을 거에요.
오랫동안 본 옆집 언니 느낌으로 토마토마님을 생각했던 작가는 토마토마님이 많이 그리울 거에요.
제가 한때 힘들 때 옛날 무용(혹은 발레) 하시며 고단하셨던 일로 위로해주셨잖아요.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독자님께 그리운 마음이 태산이겠지만, 그곳에서 탈 없이 지내시고 탄탄대로를 밟아서 일이 잘 풀리길 바랄게요.
많이 그리울 거에요.
그리고 직장인인 독자님!
오늘은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어제인데 며칠 째 이 편지를 쓰고 있어서 시간 개념이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라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있겠죠?
오늘까지 회사에 불려나가 노동한다면 그래, 그럭저럭 그만큼 돈을 받으리라 생각하면서 힘내셨으면….
변수를 떠나, 오늘 하루 야무지게 휴식으로 보내셨다고 생각해볼게요.
그리고, 일을 하며 사내에서 치이기도 많이 하고, 여자로 사는 힘든 나날에도 잊지 않고 작가를 떠올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연이 언젠가 미미해질지라도 닿아있는 옛부터 감사한 마음, 비로소 지금 진심을 보내요.
장난으로 집에 데리고 와서 글만 쓰게 하고 싶다고 한 말에 작가는 특히 투하츠를 연재하는 동안 힘을 많이 받았답니다.
은혜, 잊지 않을게요.
학생 신분인 독자님들에게.
지금 이 상태 이 모습이 좋아요.
여전히 어설프고 부당한 교육 과정 버티느라, 원하지 않은 행사를 참가하느라 힘드시죠.
그래도 꿋꿋이 해낼려고 하는 모습이 앳되고 예뻐요.
그 노력이 세월이 지나면 모두 돌아올 거에요.
어쩌다 이 순간을 한 번 기억해보자 하고 사소한 것까지 주변을 집중해보세요. 그러면 사진 찍어둔 것처럼 그 기억은 인생에서 제일 값진 보물이 될 거에요.
혹시 학교 생활에서 힘든 점이나 아직도 모르겠는 학생 독자님들, 작가에게 뭐든 궁금한 점 물어봐주셔도 괜찮아요.
학생부만 안 했지 여러 활동, 여러 동아리, 여러 대학 정보 쑤시고(?) 다녔거든요.
진주X고에 재학 중인 독자님이라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작가랑 함께 재수하는 독자님들.
역시 두말 필요하지 않지요.
자신을 끝까지 몰아쳐봐도 좋고, 지금 능력대로 나아가셔도 좋아요.
다만 아프지 않고 남은 기간 버텨서, 꼭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시길 바랄게요.
이 시절 또한 중요하잖아요.
살면서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어요.
함께 매 순간 진심을 다해서 성심성의껏 시간을 보내보아요.
빠지지 않고 말해왔듯이, 하다가 못 참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마음에서 힘든 말 하고 가셔요.
속에 힘든 일 뱉어서 후련해지게.
한 6일을 걸쳐 드디어 마지막으로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바의 핵심을 전하네요.
아마 이번 편지가 수험 기간 중 제일 말이 많은 글이 되겠죠.
그리움에 너무 사무쳐서 참을 수 없을 때, 그 때 또 찾아올게요.
가끔 제가 생각나시면 찾아와요.
댓글 모두 읽고 생각 많이 한답니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위로가 될까.
생각의 결과물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어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수험기간 동안 편지가 올 시간이 있을까 걱정되네요.
긴 글이 되지 못하겠지만 독자님을 위해서 작은 정성의 글을 드려보도록 노력할게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그리고,
꼭! 힘들 때 생각나면 꼭 찾아와요.
꼭이요.
마지막 문단을 끝으로, 5월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5월 4일 목요일.
2017년 5월 시작, 그루잠의 편지(完)
2015년 고래들을 기다립니다.
작가에게로 다시 와주신 고래들, 절대 놓치지 않을 고에요.
돌아오신 고래들 환영합니다.
고래가 되고픈 꿈이 있는 바다들은 '특별한 날'을 기다려주세요!
2017년 5월 시작, 그루잠의 편지(完)
이렇듯 끊임 없이 상상과 현실을 조율하며 노력한다는 건,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할 준비가 돼있단 증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