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펀트 - 물병자리 (Inst.)
[블락비/우지호] 인연 上
Written By. 미나리
#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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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그 인생에 있어 자신의 '인연'을 만날 확률은 과연 몇 프로나 될까. 그에 더불어 그 인연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날 확률은, 그럼 그 인연이 내 인연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확률은..
대체 난 몇 프로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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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야 김여주..'
"..흐윽, 나쁜 새끼"
"아 좀 김여주!! 술병 내려놔라.. 어?!"
"이거 놔아!! 경아 말이 돼? 어떻게 우지호가 나한테 이래..? 끄윽,.. 경아 말 좀 해봐 허으ㅠㅠ"
"시발.. 지금 말 하고 있잖아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등신아.."
엉엉.. 우지호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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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호를 처음 만난 건 설렘을 한가득 안고 입학한 대학교의 새내기 시절, 과대표였던 친구의 주도로 이루어진 옆 학교 남대생들과의 단체 미팅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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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점)
처음 나간 미팅 자리에서 하필이면 맞은 편에 앉은 남정네가 저렇게 무뚝뚝한 놈이라니, 하하호호 저들마다 건너 편에 앉은 남자들과 떠들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 보며 난 끼어들 타이밍만 잡으며 입맛만 다셨다. 그리고 여전히 사납게 째진 눈을 하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핸드폰만 들여다 보던 녀석을 슬쩍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웬 재수없는 놈이 왔다고. 그리고 그 놈이 내 앞에 앉은 건 운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김여주의 참담한 운명이라고. 그토록 상상하고 바래왔던 첫 미팅의 설렘을 와장창 박살내며 들떠있던 내 자신이 민망해질 정도로 안 좋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놈을 보며 난 옆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지원아 쟤는 저렇게 무섭게 앉아 있을 거면 왜 왔대?"라고 속삭였더랬다. 그 순간 마주친 눈동자에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린 건 비밀이지만.
"야야, 우리 술 게임 하자"
식사 자리였던 그 곳은 어느새 술자리로 변해있었다. 하나 둘 흥에 오른 몇몇이 술 게임을 주도했고 하필이면 그 술게임은 맞은 편에 앉은 사람과 짝지가 되어 둘 중 하나가 게임에서 걸리면 짝지인 다른 사람이 술을 대신해 마셔야한다는 이상한 조건이 붙은 '빌어먹을' 게임이었다. 지원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신나서 게임 룰을 설명했고, 그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애 쪽을 쳐다봤는데 (아참, 녀석은 게임 직전에 저의 이름을 우지호라고 소개했다.) 순간 시선이 맞닿아 내 쪽을 뚫어져라 보는 우지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 딴엔 그래도 게임을 잘해보자는 마음에 지은 웃음이었지만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우지호의 행동에 나는 또 조용히 속으로 그 자식에 대한 욕설을 읊조렸다. 하여간 재수 없는 놈..
"...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야 우지호 또 걸렸어"
"우지호 여주 싫어하냐 ㅋㅋㅋ"
"우지호 걸렸어!! 너 내가 틀린 거 봤어~"
"아.."
이 게임이 더 빌어먹을 게임인 이유는, 내 짝지인 우지호란 놈이 게임을 드럽게 못한다는 사실때문이었다. 게임을 못하면 술이라도 잘 마시던가. 제가 게임을 못한 탓에 내게로 넘어오는 술들은 전부 온전한 내 몫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놈의 친구 말에 의하면 우지호는 술을 정말 못 마신다고 했다. 그름 집에 그든그.. (그럼 집에 가던가) 이로서 게임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지호로 인해 연속 3번째 벌주를 들이킨 나는 조금 정신이 빠져 있는 그런 상태였다. 간혹 내 앞에 놓여 있는 숟가락이 두 개로 보인다던가, 또는 방금 물을 따랐던 물컵에 다시 물을 따른다던가 하는 이상 행동이 나타날 정도의.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어느새 내 오른쪽에 자리 잡은 우지호는 한 손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건넸다.
"야 너 괜찮아?"
.. 너같으면 괜찮겠냐! (비속어)
술기운이 오른 탓에 나도 모르게 우지호에게 빽 소리를 지를 뻔 한 것을, 새삼스럽게도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을 보며 꾸욱 눌렀다.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헤에, 기분이 들뜬 탓인지 자꾸만 헤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녀석의 말에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자 빤히 내 얼굴을 들여다 보던 우지호는 제 의자에 걸쳐 놓은 외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집에 데려다줄게. 나가자.
"나가? 어딜? 왜에~ 술 마셔야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우지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팔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술에 취한 탓인지 늘어지는 발음에 우지호는 고갤 돌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해버린 건, 아마 내가 술에 잔뜩 취한 탓이리라.
얼마 안 가 우지호는 단번에 내 몸을 일으켰다. 그와중에 "걸을 순 있겠어?"하는 세심한 배려 또한 놓치지않으며. 우지호가 우리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말을 전하자 주변에서 의아한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오, 뭐냐 우지호"라던지 "여주야 지금 가려구?"하는 반응들. 그 중에 내 상태를 눈치 챈 지원이가 다가와 '혼자 갈 수 있겠어? 같이 가줘?'하고 입모양으로 말을 건넸지만, "괜찮아"라는 말로 그런 지원일 안심시켰다. 어쩌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우지호가 조금은 궁금해서. 둘이 걷다 보면, 그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가자"
우지호를 따라 술집을 나서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그 때문인지 왠지 술기운이 달아나는 그런 기분에, 옆자리에 선 우지호를 바라보자 괜히 민망함이 밀려왔다. 근데 밖이 어두워서 그런가, 아깐 못 느꼈는데 좀 잘생겼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흘깃 흘깃 녀석을 흘겨보다 시선을 느낀 건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우지호의 모션에 놀라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옮겼다. 쳐다본 걸 봤나.. 너무 대놓고 봤나.. 하긴 좀 부담스러웠을거야. 어느새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에 멘탈이 붕괴 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우지호의 입에선 전혀 예상 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원래 게임을 잘 못해"
"...?"
잠시 내게 닿았던 시선은 녀석이 내뱉은 말과 함께 머쓱하다는 듯 허공으로 향했다. 시선 처리로도 부족했는지 제 코를 만지작거리는 건 아무래도 우지호가 민망할 때 나오는 버릇인 듯 했다.
"술도 잘 못마셔서 이런 자리 안 나오려 한 건데"
"아.."
"박경이 나가자고 하도 성을 내서,"
"..."
"그냥 애초에 오기 싫었던 자리였을 뿐이야"
"어.. 아.. 그렇구나"
"하씨,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냐. 아무튼 네가 싫어서라던가 그래서 그러고 있었던 것 아니었다고."
"내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그래"
귀, 빨개졌다. 너.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나웠던 첫 인상과는 달리 주저리 변명들을 늘어 놓는, 낯을 가린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귀가 빨개진 모양새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든 것 또한 아직 취기가 가시지않은 탓이라고, 난 생각했다.
우지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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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나리 작가입니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권태기 하편이 아닌 다른 작품을 들고 와서 놀라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하..
지난주 금요일부터 휴가를 오는 바람에 연재가 불가하게 되서
다음 주에나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 우선 임시로 연재해뒀던 새 작품을 다듬어서 가져왔어요~@
아마 제 연재 주기는 2주에 한 번이 될 거 같아요
다시 연재를 시작했더니 막상 현생과 병행하기 힘든 걸 깨달았네요ㅠㅠ 일주일 주기는 제 욕심이었나봅니다.. 그래도 일찍 들고 올 수 있을 땐 꼭 들고 올게요! 느리게 굴러가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즐건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