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환 - 너였다면(inst.)
[블락비/표지훈] 권태기 中
Written By. 미나리
#권태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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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무어라 말을 던져야 하는 걸까.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에 짐짓 분위기를 눈치 챈 선배만이 어찌할 줄 모르고 어색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여주야, 들어가고 다음에 보자. 괜히 오해산 것 같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 민혁 선배는 내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 내게서 멀어졌다. 아니, 선배 오해를 산 거 같으면 해명을 해주고 가야죠.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울상) 멀어져가는 선배를 붙잡으려 뻗은 내 어색한 손길을 감추며 애써 앞머리를 넘겼다. 어쩐지 공기가 더 무거워진 것 같아 입술이 바짝 마른다.
"..언제부터 있었어?"
"..."
"날도 쌀쌀한데 연락을 하지"
"..."
무거운 정적을 조금이라도 깨보고자 던진 말이었지만 여전히 지훈인 말이 없었다. 오히려 방금 전보다 표정이 어두워진 듯 보였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에 한편으론 답답함이 밀려왔다.
"표지훈"
"..."
"차라리 화를 내.."
그렇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뭐라도 말을 해. 저 남자는 누구냐고, 왜 같이 오냐고 그렇게 말이라도 하라구. 그래야 내가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답답해진 내가 건넨 말에 표지훈은 또 그 상처받은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어진 녀석의 한숨 소리가 어쩐지 더 깊어진 느낌이다.
"..어떻게 화를 내"
"..."
"내가 어떻게 너한테 화를 내 여주야"
"지훈아"
"머릿 속이 복잡한데, 걸어오는 너 보면서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
"지금은 내가 을이잖아"
근데 어떻게 너한테 화를 내. 그랬다가 너 떠나면 나 어쩌라고..
화를 억누르며 쥐어짜내는 표지훈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했다. 을, 을이라니. 자신을 을이라고 칭하는 지훈이의 모습에 최근 내가 지훈이에게 했던 행동을 비롯한 모든 말들이 지훈일 향한 "갑질"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연인 관계에 있어 갑을 관계는 되지 말자고 했던 내 말들은 다 모순이었음을. 표지훈의 감정을 이용해 그렇게 갑질을 행사하고 있었으면서, 네가 내게 모질게 대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사실에 순간 덜컥 숨이 막혔다.
"시간을 갖자던 게"
"..."
"이런 이유는 아니었을 거라고"
"..."
"나는 그렇게 믿을게 여주야"
그냥 생각나서 왔어. 봤으니까 그만 갈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멀어져가는 표지훈을 나는 끝내 붙잡지 못했다. 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배와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우연히 같은 술자리에서 만나 데려다주겠다는 걸 거절했음에도 보이는 호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거라고. 표지훈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입 안에 멤돌던 그 변명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말해줬으면 될 것을, 오만하게도 나는 궁지에 몰린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갑이라는 위치에 자만하고 있었다. 구제불능이다. 정말..
...
표지훈을 집 앞에서 그렇게 마주쳤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얼마 뒤, 표지훈과 관련해 할 말이 있다며 누군가 찾아왔다. 뜻밖의 인물에 놀란 것도 잠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야 김여주 너 진짜"라는 말과 함께 깊은 한숨을 쉬는 박경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박경 네가 무슨일이야? 그리고 그런 덤덤한 내 반응과 다르게 박경은 굉장히 답답한 사람처럼 보였다.
말을 하려 입을 벙긋 거렸다가도 짜증난다는 듯 이내 욕을 읊조리기도 하고 또 자기가 남 연애사에 이렇게까지 끼어들 일이냐며 내게 대뜸 성을 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 침착하던 박경이 내게 와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이어진 박경의 말은 그런 나를 납득하게 만들었다.
"표지훈 지금 아파서 다 죽어가"
"..뭐?"
"근데 딱 보니 그 이유가 여기 있는 거 같애서"
"..."
"나 진짜 이런 성격 아닌 거 알지? 눈 딱 감고 모른 척 하려했는데, 어쩌냐. 그것도 친구라고 보는데 안쓰럽더라"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몰라, 열도 심하고 집에 박혀서는 밥도 잘 안 먹는게 병원 가래도 죽어도 싫댄다~ 뭐 그게 병원 다녀온다고 달라지겠냐만은"
"..."
"아무튼, 걔 그렇게 죽이든 아님 다시 살리든 네 손으로 하라고"
"..그게 무슨"
"애매하게 굴지 말고, 자를 거면 자르고 맺을 거면 맺으라는 거지. 넌 쟤 속앓이 하는 거 보고만 있으려고?"
"..."
"적당히 해. 나도 딱 오늘만 너네 일에 간섭하는 거니까"
딱 잘라 말하는 박경의 말에 할 말을 잃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러고보니 그 날 이후로 표지훈의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어쩌면 겁이 나서, 그 동안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오는 바람에 애써 녀석을 피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너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또 너를 그렇게 혼자 아프게 만들었어. 멍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그런 날 바라보고 있는 경이에게 먼저 가본다고 전한 뒤 자리를 떠났다. 얘기 전해줘서 고맙다고, 난 또 바보같은 짓을 할 뻔했다고. 그 말은 뒤로 삼킨 채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감사의 인사는 못난 나때문에 죽어가는 표지훈부터 살리고 전할 것이라.
울컥울컥 차오르는 감정들을 애써 눌러가며 금세 힘이 빠져버린 다리로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니 어느덧 난 표지훈네 집 앞에 다다라 있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표지훈의 자취방, 그 문 앞에 서서 나는 또 한참을 망설였다.
야, 표지훈 너 만나고 들어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싱글벙글, 광대가 내려올 생각을 안하더니 최근엔 어땠는 줄 아냐. 온갖 근심이랑 걱정은 지가 다 짊어지기라도 한 듯 울상이더라. 그럴 거면 너 왜 만나냐고 내가 몇 번이나 따져물었는데, 걔는 너랑 헤어지는 생각은 상상도 하기 싫대. 지가 무슨 희대의 사랑꾼도 아니고.. 아무튼 김여주, 걔는 거짓말 안하고 온통 다 너야. 너 기분에 걔 하루가 결정될 정도라고. 아, 오글거리니까 여기까지 하고. 제발 나 남 연애사에 관심 끄게 해주라. 오케이?
그리고 떠오른, 아까 경이의 말에 멍하니 서있는 사이 내게 전하던 경이의 말을 다시 되새겼다. 나는 그동안 내 감정 챙기기에 바빴는데.. 너는 온통 나였구나. 또다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켜내며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울지말자. 무슨 염치가 있어서 여기서 눈물을 쏟아 김여주.
달칵,
"..지훈아"
"..."
"나왔어.."
오늘에서야 나는, 너를 찾아왔어.
울지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지훈이의 모습에 난 결국 눈물을 쏟았다. 방금까지도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는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듯 겨우 침대에서 일어난 지훈이는 제 방에 들어선 나를 두 눈으로 담아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말하는 지훈이의 목소리가 너무 갈라져있어서, 못 본 고작 그 며칠 사이에 얼굴은 또 그렇게 야위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내 머리 위에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에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친 지훈인 바로 그 품에 나를 안았다. 근데 또 왜이렇게 말랐어, 지훈아. 언제 이렇게 말랐어..
"흐윽,.. 미안해 지훈아"
"..."
"끅, 너무 미안해"
"여주야"
"...응"
"나는 돌아올 줄 알았어"
"..끅..흐으.."
"너 믿는다고 했잖아."
"..."
"고생했어, 여주야"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해, 어떡해. 지훈아.
"김여주~"
"엉엉....끄윽.."
"이렇게 왔으면서 왜 자꾸 울어, 속상하게"
"난 진짜.."
지훈이 네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감도 안와..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몰라 지훈이 품에 안긴 채 어깨에 고개를 묻고 계속 눈물을 흘려냈다. 그세 또 날 달래려 "으~ 어깨 축축해" 다 갈라진 목소리로 장난을 치는 지훈이의 모습에 오히려 더 서럽게 울어버리자 지훈인 당황한 듯 내 어깨를 양 손으로 쥐고 제 품에서 떼어내곤 눈을 맞춰왔다.
"왜 자꾸 울어, 속상해서 그래?"
"..끄윽, 너 너무 야위었잖아.. 속상해.."
"뭐가 속상해~ 이제 다 나았어. 봐봐 다 나았다 으쟈쟈!!"
"푸흐, 그게 뭐야.."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여주~"
"..예쁘긴"
예쁘긴 뭐가 예뻐, 이렇게 못났는데. 괜한 감정에 너 고생이나 시키고.. 괜히 또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리자 지훈인 그런 내 볼을 손에 감싸쥐며 얼굴을 들어올렸다.
"내가 이 볼이,"
"..."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그렇게 흐흫, 웃으며 지훈인 기분 좋다는 듯 내 양 볼을 꼬집었다. 이게 뭐라고 그 땐 그렇게 싫어했는지.. 잠깐 스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지훈인 또 으이그, 하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응?"
"오래 보자 여주야"
"..당연하지"
"당연하다는 애가"
"..미안해"
"어, 농담인데 또 울려 그래. 김여주 울보 다 됐네"
"아니거든~.."
"아니긴, 울보 김여주~"
"..우씨"
"앞으로는 안 울게 해줄게"
"..."
"진짜야"
그러니까 더 오래, 앞으로 더 좋아해. 여주야
그 말을 끝으로 지훈인 내 목을 감싸며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길고도 길었던, 그만큼 힘들었던 내 기나긴 방황은 그걸로 끝이 났다.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오만함을 지적하듯 어느새 내 삐뚤어졌던 감정들은 온전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많이 빙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아마 혼자 하는 연애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권태기에 관한 어떠한 책을 읽어도, 지인들이 말하는 극복 방법에도 불구하고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을 돌려낸 건 순전히 지훈이 덕분일 거라고(경이의 존재는 완전히 잊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너를 더 사랑하리라. 난 그렇게 생각했다.
고맙고, 미안해 지훈아.
앞으로 더 좋아해.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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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너무 많이 늦었죠 ㅠㅠ
게으른 작가라 매번 인사가 이렇네요..ㅜㅜ
글이 너무 안써져서 애를 좀 먹었답니다..
게다가 지훈이 짤을 찾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버려서ㅠㅠ
지훈이가 워낙 웃는 얼굴이라 상황에 맞는 사진을 찾느라 힘들었네요 하하..
아참 그리고 원래는 이번 편을 중,하로 나눠서 연재하려고 했었는데 이번 편에 끝내버렸어요!
고로 남은 하 편은 지훈이 시점으로 한 편 연재하도록 할게요
또다른 감정선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이만 좋은 밤 되세요 독자님들♡
잊지않고 댓글 달아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