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표지훈] 소소한 단편 中
Written By. 미나리
#남녀 사이에 친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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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표지훈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내 쪽에서 표지훈을 피하는 꼴이었다. 오래 지속되어 온 우리의 친구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잠시 눈에서 멀어지면 금방 떨쳐낼 수 있을 감정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은 내가 내린 내 마음에 대한 지나치게 잘못된 해석이었다. 표지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러다간 차곡히 쌓아왔던 우리의 우정이라는 관계마저도 놓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뒤덮었다. 아아.. 절로 몸에 힘이 쭈욱 빠진다.
"(툭) 야 김여주, 어깨 좀 펴고 걸어"
"남이사- 어깨를 펴던 말던 신경 끄세요~"
"아 걱정을 해줘도 저거"
"니 갈 길 가세요~"
"야 너 표지훈이랑 무슨 일 있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쫑알대며 평소와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는 박경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터덜터덜 내 갈 길 마저 걸어가는데, 그런 내 반응에 고개를 내저으며 뒤를 좇던 박경이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갑작스런 박경의 말에 당황한 난 그 자리에 멈춰섰고 내 표정에 비친 미묘한 감정이라도 읽은 모양인지 박경은 "표정보니까 맞네"라고 말했다. 하여튼, 박경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한다니까..
"무슨 일인데- 또 싸웠냐?"
"(발끈) 야 내가 표지훈이랑 언제 또 싸웠다고"
"너 맨날 떽떽거리잖아 김여주- 내가 표지훈이었으면 한 대 크게 쥐어 박았어. 걔가 너 엄청 봐주는 거 알긴 하냐?"
"걔가 날 왜 봐줘, 아 쓸데없는 말 할거면 좀 가라 경아"
"그럼 뭔데"
"..."
"싸운 거 아니면 뭐냐고"
"아, 가라니까?"
애매한 내 반응에 궁금증이 더 커진 모양인지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려는 박경의 모습에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날을 세웠다. 요즘들어 부쩍 상태가 예민하다. 그렇다고 경이에게 표지훈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울상). 미쳤냐는 반응이 안봐도 뻔했으니까. 내가 별 것도 아닌 저의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눈치 빠른 경이는 무어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괜히 속이 답답해진 기분이다.
"미안, 경아 내가 요즘 좀 예민해서"
"예민한 거 한 두번이냐-"
"..그렇긴 한데"
"됐고 수업이나 열심히 들어 어깨 쫙 펴고 김여주! 화이팅!"
어줍잖은 내 사과에 박경은 언제 주눅들었냐는 듯 또 사람 좋게 웃으며 평소처럼 날 대했다. 내 어깨가 그렇게 쳐져보이나..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화이팅을 외치는 경이를 향해 작게 웃어보이며 손을 흔들고 교실로 향하는데, 뒤에서 "김여주"하는 경이의 목소리가 내 걸음을 붙잡아 고개를 돌렸다.
"피하기만 해서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해 난"
"..."
"그냥 그렇다고- 수업 잘 들어라 간다"
피하기만 해서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해 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박경은 내 어깨를 툭 치고 멍하니 서있는 날 지나쳐 자기네 반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 경이는 이미 대충 우리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자세한 속내까지는 알지 못해도 친구 사이의 우리 관계에 무거운 무언가가 들어섰고, 상황을 피하고 있는 것은 표지훈이 아닌 내 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래서 박경이 무섭다니까, 그치만 경이만큼 우리 사이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기도 했다. 방금도 나를 배려하고 던진 말임이 느껴졌으니.
드르륵,
"어? 여주야, 좀 전에 지훈이 왔었는데 못 마주쳤어?"
"..어? 표지훈?"
"응- 너 없다고 하니까 바로 나갔는데"
표지훈이 왔었다고? .. 지은이의 말에 "아 알려줘서 고마워"하고 대충 대답한 뒤 자리로 돌아와 풀썩 의자에 앉았다. 지훈이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자주 서로의 반에 들르곤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 번도 표지훈네 반에 찾아간 적이 없었다. 표지훈을 만나러 찾아가는 게 이상하게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저를 좋아한다는 걸 표지훈이 알아챌 것만 같았다. 괜히 방금 전 경이가 한 말이 떠오르며 머릿 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나도 안 피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걸 어떡해. 아, 우울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되는지 울적하기만하다.
...
"내일 지각하지말고- 수고했다. 이상"
"내일 봬요 쌤!"
"안녕히계세요-"
짧은 종례를 끝으로 선생님이 나가고, 주섬주섬 자리에 있는 책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그러다 "여주야, 우산 가져왔어?" 책상 걸이에 걸려있던 제 우산을 챙기며 내게 묻는 짝꿍의 말에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언제부터 왔는 지 모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아.. 우산 없는데 어떡하지.
"비 꽤 많이 오는데.. 내가 오늘 약속만 없으면 같이 쓰구 갈텐데"
"아니야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아참, 지훈이랑 옆집 산다고하지 않았어? 지훈인 가져오지않았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지훈이라는 이름에 흠칫, 다시 짐을 챙기던 움직임을 멈췄다. 애써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아.. 응! 지훈이랑 같이 가면 돼"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여주야. 내 말에 안심한 듯 그제야 가방을 둘러메고 인사를 건네는 짝꿍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가방 지퍼를 잠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창가 쪽을 바라보지만 내리던 비는 더욱 거세졌을 뿐 멈출 기미가 보이질않는다.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표지훈한테 가볼까, 잠시 생각이 거기에 미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만만한 대상은 박경밖에 떠오르지 않아 우선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경이의 반으로 향하고자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 반 앞에 서 있는 게 표지훈인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긴 장우산을 쥔 채 삐딱한 모습으로 날 응시하고 있는 게 왜 표지훈인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 다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띄었다.
"하하.. 표지훈- 나 우산 없는 거 어떻게 알았냐!"
"..."
"안그래도 집 어떻게 가야하나 했는데 잘 됐다, 헤헤"
답지않게 입을 히죽이며 혼자 주절주절 말하는 나를 바라보는 표지훈의 표정엔 못마땅함이 서려있었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굴은 건데.. 하기사 표지훈 입장에선 어이가 없겠지. 저를 그렇게 피해다닐 땐 언제고 막상 찾아오니 아무렇지 않은 척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녀석의 표정에 괜히 주눅이 드는 기분에 입술을 잘게 씹으며 입을 다물고 슬금 눈치를 살폈다. 하아.. 찌질해. 김여주.
"요즘 얼굴 보기 힘들다 김여주?"
이어진 표지훈의 말에도 난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까. 왜 피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그러는 와중에 미간을 좁힌 채 날 바라보고 있는 표지훈이 새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나는 정말 미친년이다.. (울컥) 답도 없다 진짜
"뭘 얼굴 보기 힘드냐! 누나가 그렇게 보고싶었어?"
나는 생각보다 더 뻔뻔했다. 제 옆으로 다가와 황당한 말을 뻔뻔스럽게도 내뱉는 나를 보며 표지훈도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그저 어떻게든 어색한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게 내 단순한 생각이었다.
"뭘 그렇게 서있어~ 빨리 집가자 나 배고파"
애써 말을 돌리며 표지훈의 팔을 끌자 더 할 말이 있어보이는 표정이던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내 손길에 이끌려 발을 옮겼다. 학교 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표지훈 안 왔으면 하마터면 이 비 다 맞고 갈 뻔했네.. 내심 이렇게 내 생각에 찾아와준 표지훈이 기특하고 고맙다. 그러고보면 우린 원래 서로에게 이런 존재였는데.. 필요할 때마다 매번 손 내밀고 그걸 잡아주는. 그래서 표지훈에게 더 의지했던 것도 없지않아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예전이 오히려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이런 생각을 하기엔 지금의 내 마음이 너무 커져버렸지만.
"가자"
"어.. 어, 응!"
"비 맞으니까 옆에 딱 붙어"
그렇게 말하며 표지훈은 내 팔을 끌어 제 왼편에 내 몸을 딱 붙였다. 그 작은 행동에도 심장이 미친듯이 반응했다. 아.. 떨려. 우산 안이라는 작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게 떨려서 미칠 것 같았다. 예전에도 둘 중 우산이 없으면 항상 함께 우산을 쓰고 집에 가곤 했었는데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당연하게 내 쪽으로 기울어진 우산을 보자 그게 또 좋아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 했다. 아주 미친거지, 김여주.. 떨리는 내 속마음 때문일까, 묘하게 어색한 기운이 우산을 멤돈다.
"여주야"
그러다 문득 표지훈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자꾸 피하기만 하니까 솔직히 답답해 난"
"..."
"너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야, 다 말해! 말해주면되지~ 내가 언제 피했ㄴ.."
"지금도 그래"
"..뭐?"
"내 눈 똑바로 못 쳐다보잖아 너"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진 표지훈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하긴, 내가 변했다는 건 남들 눈에도 보일 정도인데 그럼에도 표지훈만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뭐라 변명의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개를 떨궈버리는 내가 원망스럽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안되는거야?"
"..."
"내가 알면 안돼? 그래?"
"...미안"
제가 알면 안되냐는 표지훈의 물음에 어렵게 입을 떼었다. 미안. 미안해 지훈아. 말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내 대답에 표지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제 머리를 쓸어넘긴다. 이런 날 이해할 수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이 분위기가 싫다.
"왜 안되냐고 물어도 안되고?"
"지훈아"
"뭐가 그렇게 어려운데 여주야"
"..."
"나는 힘든 일 있으면 다 털어놨잖아. 네가 뭐때문에 이러는 건지, 내가 너한테 잘못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네가 나한테 뭔가 잘못한게 있는 건지 알고 싶은거야. 난 그뿐이야"
톡, 톡, 어느새 잦아든 빗방울이 표지훈이 들고 있는 우산에 떨어져 울리는 마찰음 외에는 어떠한 소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이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상황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아까처럼 애써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표지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한데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주지 못하는 녀석을 속으로 원망하는 내가 미웠다. 못났다, 참.
"그래도 말하기 어려운 거면 더이상 안 물을게"
"..."
"네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적 처음이라 나도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여주야"
그 말을 끝으로 깊게 한숨을 뱉은 표지훈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내게서 약간 떨어진 표지훈을 바라보자 어느새 젖어버린 녀석의 오른쪽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답답한 이 상황 속에서도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던 녀석의 배려가 느껴졌다. 멋있는 놈.. 순간 또 울컥할 뻔 했다. 실은 난 알고 있다. 이미 우리의 친구 관계는 나로 인해 무너져버렸다는 걸. 마음을 들키기도 전에, 이미 그 마음을 품어버린 순간부터 이 관계는 유지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어느새 나보다 한 뼘은 더 자란 녀석을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널 좋아하게 됐어"
"...."
"이제 나한텐 니가 친구가 아니라 남자로 보인다구, 표지훈"
어느덧 내리던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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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나리 작가에요!
너무 늦었죠? 단편은 장편 쓰는 틈틈히 쓰려했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ㅠㅠ 회사 선배 연재해야되는데..
자주 찾아오고 싶은데 회사생활에 기숙사에 살아서 컴퓨터 쓰는 시간도 한정적이라 그러기가 어렵네요 8ㅅ8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여러모로 죄송해요
좋은 작품으로 빨리 찾아오고싶은데 ㅠㅠㅠ
마음만 급하고 필력도 떨어지는 거 같고 뭐 그렇네요..
주절주절 말이 많네요 하하..
분명 이 단편은 좀 밝고 풋풋하게 쓰려했는데
어느새 어두침침ㅁ...☆ 제 손이 문젠가보ㅏ여 ㅎㅎ..
# 예쁜 독자분들 #
커피우유 / 왱왱 / 구름위에호빵맨 / 백수꿀벌 / 알티스트 / 벗 / 두부 / 요랑이 / 블넹
백설공주 / 회사원 / 구강포진 / 후니 / 토끼 / 우유 / 웽수니 / 검은여우
빠진 암호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작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암호닉 신청은 항상 받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