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속마음
#표지훈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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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내 방 천장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지럽다. 어제 집에 어떻게 들어온거지.. 기억을 떠올리려는 순간 파라노마처럼 어제의 장면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김여주.. 뻐근한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서랍장쪽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화면을 켜보니 시각은 8시. 확인하지 않은 문자메세지 한 통.
[지호 형이야. 어제 너 데려다주느라 고생 좀 했다. 나중에 밥 한 번 사고- 여주씨한텐 내가 잘 말했어 나중에 보자]
-13기 지호형-
다시 한 번 머리가 지끈거린다.
'선배, 거기 지금 어디에요?'
'집에 가요 우리!'
'선배-'
'선배?'
'착해. 착하다. 여주(이)'
'예쁘다'
미친놈. 표지훈 미친놈아..
불현듯 머릿 속에 스물스물 피어나는 기억에 발 밑에 깔려있던 이불을 발로 뻥 찼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이 날 울고싶게 만든다. 머리를 손으로 잔뜩 쥐어뜯고 흔들리는 멘탈을 다시 바로 잡았다. 그래.. 어쩌겠어. 아니 왜그랬지 진짜 표지훈 너 미쳤지.. 허으, 아니야. 지훈아. 술이 문제야 어으으..
...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주가 이상했다. 그 날 이후로 묘하게 날 피하는 듯 했다. 말을 걸려고 다가가도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내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고, 어렵게 말을 붙인다고 해도 금세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 날 일이 계기임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피하고 싶은 사람은 나인데.. 여주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 피하기만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제대로 된 대화 없이 지내기를 며칠 째. 여주가 날 피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졌고, 그런 모습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해야 내가 알잖아.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엄마야-"
무슨 대화라도 해야할 것 같아 다가간 거였는데 기지개를 켜던 여주가 뒤에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간다. 넘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에 나도 덩달아 놀라 덥썩 여주의 어깨를 잡았다. '아..놀라게 하려던 건 아닌데'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니 자세를 고친 여주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물론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 허공으로 시선이 옮겨졌고 어색한 기운이 우리 곁을 멤돌았다. 아아.. 이게 아닌데.
"지금 바빠?"
"아.. 어.."
"안 바쁜 것 같은데 커피 마시러 가자"
어렵게 입을 뗀 거 였는데, 여주의 눈치를 살피니 갑작스런 내 말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나보다. 이 자리를 피할 그렇다할 변명 거리를 찾지 못한 건지 데굴 눈알만 굴리던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좇았다. 진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치를 살피는 그 모습이 이와중에도 귀엽다.
"선배,"
"여주야"
커피를 손에 쥐고 마주앉은 채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여주를 가만히 바라보다 어렵게 입을 뗐다. 마침 여주도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나보다. 그치만 내가 먼저.
"아.. 네, 선배"
"요즘 나 왜 피해?"
"..."
"지호 형한테 대충 들었어"
"아.."
나도 다 기억나.
너랑 했던 통화, 술집에 찾아왔던 네 모습. 그리고 내가 했던 행동들. 어쩔 줄 몰라하던 네 표정까지.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데. 나는 그 날의 행동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 여주야. 기억난다는 내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무는 네 모습을 보니 괜히 머릿 속이 복잡해져온다. 괜히 또 얘기를 꺼낸걸까.. 여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마음이 급해진다.
"선배 그 날 일은.."
"미안 여주야"
"네?"
"그 날 많이 당황했잖아"
"..."
"나는 너 불편하게 하려던 거 아니었는데.."
"아.."
"다음 날에 바로 사과하려했는데, 너는 마주치려 하지도 않고. 밥 먹을 때도 나랑 멀리 떨어져 않고 자꾸 피하고.."
결국 봇물터지듯 내 속에 담아뒀던 말들이 쏟아져버린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서운했어 나. 이렇게 징징거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아으 모르겠다.. 서운해.여주야. 복잡한 마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냈는데 막상 그러고나니 눈을 못 쳐다보겠다. 마치 아까의 여주의 모습을 보듯 내 시선도 갈피를 못 잡고 헤메는데 눈치를 살피던 찰나에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눈과 마주쳐버린다.
"선배"
"응-"
"그냥 저 혼자 쪽팔려서 그랬어요.."
"어?"
"쪽팔려서요.. 그 날 제가 괜히 거기 가서 분위기만 이상하게 만든 것 같구 선배는 제정신도 아니였고.. 막상 다음 날 되니까 선배 얼굴 보는게 창피해서, 그래서.."
"...."
"그래서 잠깐 피했어요.."
여주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순식간에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말하는 도중에 주눅이 들은 건지 점점 아래로 시선이 향하는 여주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온다. '다 저 혼자 그냥 선배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그랬던 거에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여버리는데, 아.. 미치겠다. 미치겠어 여주야. 어느새 붉어진 귀와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새어나온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여주 정수리만 보고있으니 내가 말이 없어 불안했는지 여주가 고개를 든다.
"다행이다"
"..?"
"나는 괜히 걱정했네. 표정 좀 풀어 김여주~"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웃고있는 나를 바라보는 여주의 표정이 재밌다. 다행이다. 후회하지 않아도 되서. 근데 진짜 이상한 게, 아까는 그렇게 기분이 축축 쳐지더니 여주 얘기 조금 들었다고 이렇게 기분이 좋다. 팔불출인가 나.. 뭐 아무렴 어때 암 해피~ 흐흫
내친김에 저녁 약속까지 잡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 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너랑 밥이 먹고 싶어서. 단순히 그 이유에서였다. 근데 고작 저녁 약속 잡은 건데, 왜이렇게 떨려 표지훈?
...
저녁 식사 장소는 여주를 데리고 꼭 가고싶은 그런 곳이었다. 평소 동기 녀석들과 몇 번 오긴 했지만 시커먼 남자놈들이랑 이런 데 와서 뭐하냐구.. 매번 갈 때마다 재효 형 음식 솜씨에 감탄만 했지. 기회가 된다면 꼭 여주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기에 망설임 없이 재효 형에게 연락해 미리 예약을 잡았다. 누구와 오냐는 재효 형의 말에 '비~밀'하고 능청을 떨자 재효 형은 '비밀은 무슨 다 티나'하며 웃었다.
"뭐 먹을지는 생각해놨어?"
"네? 아!"
"뭐야, 김여주~"
"진짜 생각 못했어요.. 어떡하지.."
어떡하긴, 내가 정해놓은 데 가야지. 또 내 말에 당황해서는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어떡해, 막 굴리고 싶어. 으으..
볼살을 잡아당기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누르고 여주의 손목을 끌었다. 슬쩍 쳐다본 여주는 또 놀란 표정이다. 작은 스킨쉽에도 떨리는 건 난데.
...
어느새 재효 형네 파스타 앞에 도착했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자 짤랑- 소리와 함께 재효 형이 우리를 반겼다. 이곳 저곳 둘러보기 바쁜 여주를 잠깐 뒤로 한 채 내 팔을 이끄는 재효 형을 따랐다.
"뭐야 표지훈?"
"아 왜요 형~"
"도둑놈.."
"도둑놈이라뇨~"
"고백은 언제 할건데?"
"와 형 무슨 그런 질문을 여기서해?"
"빨리 해 짜샤"
"..."
"망설이다 늦는다니까 진짜?"
망설이다가 놓친다는 재효 형의 말이 머릿 속에 멤돌았다. '알겠으니까 파스타나 맛있게해줘요~'하고 능청을 떨며 넘겼지만, 묘하게 그 말이 내 마음을 들쑤셨다. 머릿 속이 멍해져 가만히 서있는데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하는 형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여주쪽을 바라보는데, 어.. 뭐야 김여주. 그 넋이 나간 표정은?
"그렇게 형 쳐다보면 반해"
물론, 형이 너한테. 괜히 질투 어린 마음에 여주 팔을 이끌며 말했는데 여주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럴 때 보면 눈치 진짜 없지 김여주-
"뭐 먹을래?"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얼른 말을 돌렸다. 메뉴판을 건네자 메뉴판을 펼쳐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고민하는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메뉴가 있는건지 눈을 따라 내려가던 손가락이 한 곳에서 멈춘다. '어..저는 이거요-' 여주가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오늘의 메뉴. 역시 무난하기로는 오늘의 메뉴가 낫지. 파스타와 함께 피자도 주문하고 다시 시선을 옮기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바라보는 여주가 눈에 들어온다.
"뭘 그렇게봐 김여주~ 여기 오면 피자는 꼭 먹어줘야 해"
이어진 내 말에 여주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자주 왔었냐는 여주의 질문에 대답한 뒤 이런 저런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 재효 형이 파스타가 담긴 그릇을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와, 맛있겠다.
"파스타 나왔어요-"
"우와"
"맛있게 드세요, 지훈이 너도 맛있게 먹어"
"진짜 잘먹을게요! 너무 맛있게 생겼어요.."
"거봐- 이 형 요리 잘한다니까"
"(웃음) 입에 맞으면 좋겠어요. 얘 여자 데려온 건 처음이라 더 신경 쓴 건 비밀이고"
아 형..! 그런 걸 왜 말해.. 갑작스러운 재효 형의 말에 인상을 쓰고 재효 형을 쿡쿡 찌르자 재효 형은 작게 웃더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그럼 식사 맛있게 해요"하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저 형 언제 저렇게 능청스러워진거야..
재효 형의 발언에 묘하게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상해, 크게 신경 쓰일 말도 아닌데 괜히 내 마음을 다 들킨 그런 기분이다. 민망해지는 기분에 말을 무어라 이어야 할까 고민하며 여주의 눈치를 살피는데 .. ? 여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왜 웃어??"
"어.. 아, 맛있게 먹어요 선배! 맛있겠다-"
왜 웃냐는 내 물음에 당황한 얼굴로 빠르게 말을 돌리는 여주의 모습이 의심스러웠지만, 돌돌 말은 파스타를 입에 가득 넣어 음미하더니 눈을 크게 떠보이는 그 모습에 또 웃음이 나온다. 네가 맛있게 먹으니까 기분 좋다.
"맛있지?"
"네 진짜 엄청!"
"많이 먹어 오늘은 내가 쏘는거니까! 늦었지만 축하해 입사 1주년, 앞으로도 아자!"
내 말에 작게 웃음 짓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파스타를 한 입 입에 넣었다. 벌써 네가 입사한 지 1년이 넘었구나.. 가만히 파스타를 먹고 있는 여주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음을 느낀다.
'망설이다 늦는다니까 진짜?'
더불어 아까 했던 재효 형의 말이 내 머릿속을 멤돈다.
"시간 참 빠르다- 그치?"
"네 진짜루요.."
시간 참 빠르다는 내 말에 여주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지금도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는구나. 자꾸만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는 재효 형의 말에 머릿 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져오는 느낌인데, 묵묵히 파스타를 먹던 여주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선배, 진심으로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더 고마워. 이어진 내 말에 여주는 또 갸우뚱.
"네?"
"그냥 다 고마워 여주야"
어쩌면 지금. 내게 타이밍이 주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주야"
"..."
"그날 있잖아. 솔직히 미안한 것보다 고마운 마음이 더 컸어. 고맙다고 생각해"
"선배-"
"이기적이게 들릴 수도 있는데, 여주(이) 네가 와줘서 기뻤어"
뭐가 되었든 타이밍을 놓쳐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내 진심을 네게 전해보려해 여주야. 어색해질까봐 두려운데, 지금 이런 분위기 속에 있는 것도 내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도 오글거려서 잘 못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늦을까봐.
"네가 너무 어색해 하는 것 같아서"
"..."
"솔직히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겁나는데"
"좋아했어. 꽤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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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_^
브이앱 본다구 조금 늦었네요 다들 보셨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웃겨서 아직도 눈물이 8ㅅ8
다음 화부터는 다시 여주 시점으로 돌아갈거에요
앞으로의 전개는 여주 시점 위주이나 회차 중간중간 지훈이 시점이 툭 튀어나올 수 있을 거 같네요 갑툭튀해도 당황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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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빨개진 지훈이를 보니 덕심이 뻐렁치는 기분ㅠㅠㅠ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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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색 입히려했는데 조금 문제가 있어서
나중에 컴터로 예쁘게 입혀놓을게욤 읽으실 땐 지장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