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딩에그 - 그래, 너 (inst.)
Written By. 미나리
06. 첫만남
#6화부터 표지훈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김여주입니다"
파트에 신입사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사원이고,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친구니까 네가 잘해주라고. 이 대리님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군대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나도 회사 적응하기 힘든데.. 징징거리듯 말하자 대리님은 그저 내 어깨를 토닥이고 "잘해줘- 알겠어?"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져버리셨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신입사원이 내 앞에서 꾸벅 인사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김여주.. 이름이 김여주구나.
"안녕- 난 표지훈이야"
"어.. 아! 안녕하세요"
어려서 그런가, 그 신입사원은 꽤나 어리버리했다. 내가 건넨 인사에 당황한듯 동공이 흔들리더니 돌연 또 한 번 꾸벅 몸을 숙여 인사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왠지 재밌을 거 같아 김여주~
...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친해지기까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저 놀릴 때마다 늘 새로운 그 반응이 재밌었고 이름이라도 부를 때면 흠칫 놀라는 모습이 약간 귀여웠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들어와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이 딱 3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알게모르게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김여주가 내 생활에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새 과제를 시작한 뒤로 요즘은 매일이 야근이었고, 모두들 지쳐있는 그런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여주가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안그래도 요즘 위태로워 보이더니 조만간 실수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다.
"하아.."
"김여주~"
"으아.. 선배니임"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보이지 않는 김여주 모습에 걱정이 되어 휴게실로 가니 어깨가 축 쳐진 채로 책상에 엎어져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나 김여주에요~'하고 광고를 하고 있다 아주. 으이그.. 아까 사왔던 캔커피를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천천히 고개를 든 김여주가 잔뜩 울상을 짓고 날 쳐다본다. 금세 초췌해진거봐-
"여기서 뭐~해~"
"허으.. 저 진짜 어떡해요? 나 왜그랬지"
"김여주 멍~청이"
"아 선배ㅠㅠ"
"장해 아주"
"하아"
"입사 10개월만에 한 건했네 흐흫"
"아진짜 선배.."
"괜찮아, 나는 3개월만이었으니까"
"..."
"다들 그러는거지 뭐"
그러니까 처져있지말라고- 기죽어 있는 모습 보니까 내 마음이 불편해. 어줍잖은 내 위로가 먹힌건지 김여주는 감동받은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와 선배.."하는 목소리에 괜히 멋쩍어져 머리를 긁적이는데 돌연 날 바라보던 눈에서 눈물이 뚝 한방울 떨어져버린다. 헐.
"김여주?"
"아 왜이래.."
"..."
"저 진짜 꾹 참고 있었는데.. 끅,"
"여주야"
"끅..못 본 척 해주세요 제발ㅠㅠ"
눈물 한 방울이 울음의 스타트를 끊은 듯 봇물처럼 터져버리는 눈물에 저도 당황한 건지 양 손으로 급하게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 제발 못 본 척 해달래. 어떡하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나도 어쩔 줄 몰라 또 머리만 긁적이는데, 한참을 눈물을 닦아내던 여주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끅... 후읍"
"이제 괜찮아?"
"네.."
"눈 빨개졌어 너"
"모른 척 해주세요.."
"으이그.. 김여주 이 울보"
"..."
"못 본 척 해줄테니까 화장실가서 눈물 닦고 진정되면 와"
나 간다?. 눈도 볼도 빨개진 채로 가만히 날 바라보는 김여주에게 작게 웃어준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이상해. 방금 닿은 내 손이 화끈거리는 느낌이다. 늘 해오던 습관적인 행동이었는데 괜히 부끄러워지는 기분에 얼른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머릿 속에서 아까의 여주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모습에 순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얼마 되지않아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지만..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았던 행동들이 어색해지고 김여주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여주의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었던 게.
그렇게 김여주를 좋아하게 된 게.
...
어느덧 김여주를 좋아한지 약 2개월. 오늘은 여주가 회사에 입사한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다. 뭐라도 해줘야 하는데.. 회사 생활에 찌들어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게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만큼은 회사생활 중 기억에 남는 그런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고싶다.
평소와 다르게 일찍 준비를 마치고 회사로 향했다. 오랜만에 이른 시간에 보는 내 모습에 이 대리님과 진영이 형이 약속이라도 있냐며 놀렸지만 그저 멋쩍게 웃어 넘겼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정리하고 휴게실로 가 물을 떠오는데, 그 사이에 출근한 건지 이 대리님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여주가 눈에 들어온다.
"어? 김여주!"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네는데 움찔하는 여주의 반응은 참 한결같다. 괜히 또 터져 나오는 웃음에 실실 웃으며 여주를 바라보는데, 여주는 내게 인사를 건네더니 "일찍 오셨네요?"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뭐야, 김여주 너까지
덩달아 신나서 맞장구치는 모습에 이 대리님을 향해 너스레를 떠는데, 아니 내가 뭐 그렇게 평소에 늦게 다녔나? 김여주마저 내게 그러니 괜히 괘씸해져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며 이름을 부르자 예상치 못 했던 듯 눈을 크게 떠 보인다.
"일찍 오셨네요가 뭐야- 그러는 넌 오늘 입사 1주년이라고 일찍 왔어? 오늘 일찍 퇴근해서 어디 가시게?!"
"으아, 아니에요. 선배. 이거 손 좀.."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평소처럼 머리를 짓누르자 또 금세 울상을 지으며 당황해한다. 은근슬쩍 약속이 있는지 확인했더니 그냥 일찍 눈이 뜨였다는 여주의 대답에 순간 안심되어 손을 떼며 웃었다. 약속 없으면 나랑 보내면 되겠다. 벌써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배에서 꼬륵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아 맞다, 아침을 아직 안 먹었네.
"김여주."
"네?"
"아침은 먹었어?"
"아.. 아직"
"그래? 잘 됐다. 나랑 아침 먹으러 가자. 나 진짜 너무 배고파."
먹으러 갈거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멀뚱 날 쳐다보던 여주가 살짝 웃음 짓더니 "그래요-"하고 말했다. 아싸~ 여주랑 아침 먹는다 흐흫. 순간 들떠서 얼른 대리님께 통보를 하고 자리를 나서는데, 아 정말 이상하다. 벌써 간질간질한 기분이야. 너무 티내지말자 표지훈 아자-
그렇게 여주와 아침을 먹으러 온 곳은 회사 근처 샌드위치집이었다. 근처에 먹을거라곤 이거밖에 없지.. 뭔가 특별한 걸 사주고싶었는데 여주가 먹고싶다면야 뭐, 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사주면 되니까. 평소 자주 오던 가게라 여주가 뭘 즐겨 먹는지 쯤은 파악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여주가 급하게 그런 날 제지한다. 그리곤 자기가 계산한댄다. 스읍, 이런 건 선배가 쏘는거지 김여주~
"자, 먹어!"
"잘먹을게요- 선배."
"아 배고프다. 잘 먹겠습니다."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물어 맛있게 먹는데 왠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드니 갑자기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 넣는 여주의 모습이 보인다. 입 안 가득 샌드위치를 넣고 야무지게 먹는 모습에 또 웃음이 피실 새어나온다. 눈짓으로 맛있냐고 물으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귀엽다 김여주.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를 헝클어 뜨리자 살짝 커진 눈으로 날 쳐다본 여주가 다시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다. 어쩐지 귀가 달아오른 것 같기도 하다.
"퇴근시간 되면 말해. 이따가 술이나 마시자-"
"네!!"
멋쩍은 기분에 화제를 돌려 오늘 뭐하는지 슬쩍 떠보니 그렇다할 약속은 없는 듯 했다. 김여주 너 왕따야..? 나 입사 1주년 때는 동기들끼리 기념이다 뭐다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 같은데.. 그치만 어찌됐든 다행이다. 계획이 순조롭다.
"표지훈?"
순조롭다는 말 취소.. 저녁 약속을 잡고 얼마 가지 않아 만난 이연지는 내게 놀라운 얘기를 전했다. 동기모임.. 아.. 얼마 전 다시 살아난 카톡 방에서 잠시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딱히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확인을 안 했더니 이미 날짜가 정해졌었나보다. 표지훈 넌 바보 멍청이야 이 원숭아.
"이따가 카톡할게"
저 말만 남기고 뒤돌아 자리로 돌아가는 이연지를 바라보다 여주의 눈치를 살피는데 표정이 별로 좋지않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연지와 대화를 나눴지만 등에선 땀이 주륵 흐르는 기분이었다. 근데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여주의 얼굴을 보니 미안해서 죽을 것 같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떼어내 여주야? 하고 이름을 부르고 쭈뼛거리자 뒤에 나올 말을 예상한듯 여주는 내게 다녀오라며 빠르게 대답했다. 아..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해, 방금 사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내가 내일 정말 맛있는 거 사줄게!"
"괜찮아요! 샌드위치도 사주셨구"
"아냐. 진짜로. 내일 꼭 사줄게."
미안한 마음+아쉬움에 여주에게 다음을 약속하자 괜찮다며 어색하게 웃는다. 너 표정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샌드위치를 먹는 내내 여주 눈치만 살폈던 것 같다. 어느새 손에서 사라져버린 샌드위치에 슬쩍 여주를 쳐다보고 다먹었으면 가자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빠져나가는데, "표지훈! 이따 톡해 꼭!"하는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온다. 알았어 연지야..너 되게 눈치없다..
가게에서 빠져나온 뒤 회사로 걸어오는 내내 여주 눈치만 봤던 것 같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회사가 애꿏게도 원망스럽다.
=================================================
안녕하세요 ㅎ0ㅎ
지훈이 시점에서 처음부터 써내려가는 건데 내용이 너무 길어질까봐 조금씩 중략해가며 조절해서 쓰고 있습니다!
앞에 내용들이 새록새록 기억나며 재밌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그리구 여주 이름을 "김꿀벌"에서 "김여주"로 변경했어요.
이름 자동 변환되는게 바뀐건지 문맥이 자꾸 매끄럽지않게 변환되서요 이름 맨 뒷글자에 받침이 들어가시는 독자 분들은 중간에 어색하게 읽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감안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예쁜 독자분들 #
커피우유 / 왱왱 / 구름위에호빵맨 / 백수꿀벌 / 알티스트 / 벗 / 두부 / 요랑이 / 블넹
백설공주 / 회사원 / 구강포진
다음 주말에 봬요 ♡
더 일찍 올 수 있으면 오구요!! 꿀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