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_기억조작.txt
1. 스무 살, 모태솔로 인생.
그땐 왜 그것이 설렘인지 몰랐을까 하는 때가 있다.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때는 내가 열여섯,
중학생 못지않은 큰 덩치에 싹싹하고 예의가 발라 선생님들에게도 예쁨을 받던 남학생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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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나에겐 그저 소문이 좋은 남자아이 일 뿐이었다.
중3, 같은 반이 되기 전까지는.
"아, 하지 말라니까!!"
지긋지긋하게 3년 내내 같은 반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으면 옆에서 쫑알대며 하루 종일 그 연예인을 씹어대고
내 우유를 이리저리 던지고 놀다가 터뜨려 우유 목욕을 시켜주고
아, 아무튼 인생에 도움 안 되고 짜증 나는 새끼.
오늘은 내가 머리를 묶고 오니 그게 말꼬리 같다며 잡아당기고, 쳐대고 한참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믄 흐르그..."
짜증 내는 것도 지칠 지경.
"재밌냐?"
"?"
강의건이었다.
2학년 때 내 짝꿍이 강의건과 친했던 사이라, 초면은 아니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말을 섞어본 적은 꽤 있었다.
우리 같은 반 됐구나.
강의건의 덩치 때문이었는지, 소문은 좋았지만
남자아이들이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노는 아이들이랑 어울리기는 했지만 공부도 꽤 했고, 나쁜 짓이라고 할만한 일은 한 적이 없었다.
"초딩도 아니고 그만 좀 해라."
걔가 인상을 찌푸리고 말하자 날 괴롭히던 애는 그래..말끝을 흐리며 멀어져 갔다.
그리고 강의건은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2. 점심시간, 속이 좋지 않아 급식을 먹지 않은 채
혼자 교실에 앉아있는데 뒷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우당탕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반 남자애와 다른 반 남자애가 싸움이 붙은 듯 했다.
둘의 몸싸움에 책상이 몇 개 쓰러졌고 나는 놀라 앞으로 가 교탁에 기대어 섰다.
"그만해!!!!"
교실에는 싸우는 둘, 그리고 나 셋 뿐이었다.
당장에 말려야 할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겁이 났다.
남자애들이 싸우는 건 처음 봐서 놀라 눈물이 나왔다.
"그만하라니까!!!"
제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강의건이 나를 지나쳐 애들에게로 갔다.
"그만 하라잖냐, 좀!"
싸우는 애들도 제법 덩치가 컸는데 강의건은 그 둘을 단숨에
떼어놓았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다른 아이들이 소리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둘은 떼어진 후에도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서로를 치려했다.
가운데에서 둘을 만류하던 강의건이 주먹을 휘두르던 아이의 멱살을 잡아 벽에 몰아붙였다.
"정신 좀 차려."
결국 선생님이 오셔서 싸움을 말린 강의건을 칭찬했고
아이들은 교무실로 끌려갔다.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돼 자리에 앉아
휴지로 벅벅 눈물을 닦고 있는데
"괜찮나? 많이 놀랐나?"
하고 물으며 강의건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괜찮다, 괜찮다."
라며 점심 시간 내내 나를 달랬다.
그때부터 강의건은 나를 동생 취급하는 듯하였다.
지켜줘야 할 것처럼 군다던가, 귀여워한다던가.
3. 중학교 3학년 2학기,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힐 때면 괴롭히지 말라고 말해주고,
무언의 눈빛을 쏴주고 교무실에 심부름을 갈 때면 나를 데려가고 그런 무언가 남매 같은 관계로 이어졌다.
그쯤, 강의건이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걔는 늘 학교를 일찍 오는 편이었고 나는 늘 지각이 간당간당했던 애라
같이 등교를 한다던가 그런 건 없었다.
그러고 보면 막 친했던 사이구나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같은 아파트에 살긴 하는데 등하교를 할 때나
슈퍼에서나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처음으로 강의건에게 전화가 왔다.
내 번호를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베란다로 좀 와봐."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왠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지만 속는 셈 치고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의건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있었다.
사실 집이 13층이라 뚜렷하지 않았다.
내가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자
걔가 핸드폰을 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며 제 집으로 들어갔다.
4. 강의건은 언제나 리더십이 강했다.
반장은 아니었으나 늘 선생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반 친구들을 챙겼고, 체육대회 때 응원이라던가 축제 때 이벤트라던가
늘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고 본인이 총괄을 했다.
마지막 겨울 방학을 앞두던 때
나를 교무실에 데려가 담임 선생님 옆에 서서는 무언가를 한참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 내 손목 께를 잡아 다시 교실로 끌고 가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2천 원씩 돈을 걷자고 했다.
마지막이니 학교에서 우리들끼리 추억 쌓아보자며 짜장면을 시켜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강의건의 말에 싫다고 나서는 아이는 없었다. 본인은 남자애들에게 돈을 걷을 테니 나는 여자애들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했다.
돈을 모두 걷어 선생님께 드렸고 부족한 돈은 선생님이 채워주시겠다고 하여
강의건이 내 뒷머리를 잡아 눌러 강제로 인사를 하게 하고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모아온 돈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돈을 안 냈네. 나 오늘 돈 안 가져왔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나도 여자애였지, 맞다 맞아.
그런 내 모습을 본 강의건은 "니는 내가 내주면 되지." 라며
내 볼을 꼬집었다.
5. 스무 살,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사이였나 싶다.
강의건은 그렇게 내 모태솔로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남자로 여러 번 회자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역시 어울리는 건 노는 애들이랑 한다는 건가.
호프집 알바를 시작하고 강의건이랑 어울리던 못된 애들이 가끔 오길래
그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걔네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알바를 하고 두 달쯤 되었나,
중학교 때 좀 놀았다 하는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불렀다.
중에 한 명이 군대를 가서 전부 모였다고 했다.
그렇게 열댓 명의 주문을 받고 있는데 딸랑-하더니 한 명이 더 들어와 내 앞 빈자리에 앉았다.
강의건이었다. 그는 내게 어떤 인사도,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를 못 알아봤나 싶었고 내심 서운했다.
한 시간쯤 다들 부어라 마셔댔고 계속해서 술을 시키는 통에 한꺼번에 술을 나르느라 힘이 빠지던 찰나,
누군가 내 쟁반을 받쳐 들었다.
"힘들지 않아?"
하고 물었다.
놀라서 당황한 채로 나도 모르게 괜찮아하고 말했다.
마치 중학교 3학년 때, 그 말투, 그 눈빛이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하나도 어색한 것 없이 물었다.
취해서 왁자지껄하는 사이로 강의건은 멀쩡히 제정신이었다.
"사실 안 오려고 했는데, 너 여기서 알바한다길래 궁금해서 와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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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ө•)♡ 저 본인이 보고 싶어서 써본 글인데, 똥손이라..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다음번에는 다른 멤버로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홋*)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