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_기억조작.txt
1.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이가 있다.
시작은 3개월 전쯤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 야자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던 길,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는데, 그 행동은 너무나 낯설었다.
"누나, 조심히 들어가요, 지훈이도 집에 가서 연락할게요!~"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저 바라만 보았다.
여자가 들어간 후에 그 아이가 가만히 서 있던 나를 보았다.
나는 흠칫 놀라 인사를 해야 하나, 아는 척을 해야 하나 하다가 그냥 그를 지나쳐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너 우리 반 맞지?"
와, 나를 알고 있구나. 천하의 박지훈이가.
내 옆에 따라붙어 묻는 네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저...혹시 다른 애들한테는.."
"걱정 마,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
박지훈은 빼어난 외모로 학교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그 수려한 외모와는 달리 차가운 성격이라 많은 여자애들이 바라만 볼 뿐,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때부터 제한테 고백하는 여자에게는 온갖 철벽을 치며 차갑게 굴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박지훈이 연상의 여자친구에게는
'지훈이도 집에 가서 연락할게요'라며 애교를 부렸다.
연상이 취향이었구나.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당황+머쓱한 얼굴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말 안 하니까 걱정 마."
딱 거기까지였다면 박지훈은 여자친구에게 애교가 많구나 하며 그냥 지나갈 일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같은 자리에서 넌 울고 있었다.
"누나, 제발 밖에 좀 나와봐요...내가 잘못했어요.."
차라리 애교 한 번을 더 보게 하지.
박지훈이 그 예쁜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분명 나를 알아보았을 터.
전화를 끊고 눈물을 닦아냈지만, 쉽사리 멈추지 않는 듯 보였다.
벽에 손을 짚은 채로 엉엉 서럽게도 우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나 전생에 얘랑 무슨 원수지간이었던 거지.
물론 그 외모에 나도 말 한번 해봤으면 한 적이 있기는 하다만, 이런 경우는 아니었다고.
아이처럼 진정을 못하는 모습에 나는 가까운 공원으로 끌고 가 벤치에 앉아 너를 한참 달래주었다.
한 시간쯤 지냈을 때인가, 너는 그제야 진정이 됐는지 다시 또 머쓱한 얼굴을 했다.
"그게..."
무언가 변명을 하려는 그 모습이 귀여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그랬더니 그제야 내가 알고 있던 박지훈처럼 표정을 잔뜩 굳히고는 물었다.
"미안, 너가 웃겨서 웃은 건 아냐...."
"그래, 아무튼 고마웠어.."
라며 벤치에서 일어난 네 얼굴에는 '비밀 지켜줄 거지?' 이 말을 하지 않아도 쓰여있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네가 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
"근데....여자들은 어때? 헤어지자고 했는데 남자가 다시 붙잡으면?"
뜬금없이 내게 연애상담을 신청했다.
2. 그 이후에, 그건 그냥 둘만의 비밀이었으니 우리 사이에 발전이 있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헤어지자고 했으면 이미 마음 떠난 거 아닐까?'
내 말에 넌 잘 정리한 듯 보였다.
넌 여전히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고, 다만 나 혼자서 널 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에는 역시 잘생긴 애들은 얼굴값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이 와장창 무너졌다고 해야 할까.
그날 내 앞에서 연애 상담을 털어놓았던 너는 영락없는 10대 소년이었고 순수했다.
이전에 네 잘생긴 외모에 말 한 번 해봤으면 한 적은 있었지만
널 좋아했다거나 관심이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일 이후로 차라리 너와 접점이 없었다는 게 다행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난 뒤 차가운 이미지의 박지훈을 마주하는 게 영 껄끄러웠으니까.
그런데 정말 우리가 무슨 원수지간이라도 됐었는지 내가 너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예를 들면 내가 교실에서 떨어뜨린 샤프가 네 발밑에 떨어져 네가 주워준다던지,
야자가 끝나고 교실에 내가 있는 줄 모르고 반 아이들이 밖에서 문을 잠군 바람에 갇혀있었는데 창밖으로 네가 지나가서 도움을 요청했다든지,
매점에서 빵을 샀는데 하필 200원이 부족했고, 그 넓은 매점에 아는 사람이 너 하나 밖에 없었다든지.
뭐 아무튼 여러 가지로. 이전에는 같은 반이었어도 말 한 번 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일들이 연속되었다.
그러더니
"안녕"
너와 짝꿍까지 되었다.
네가 불편한 나와는 달리, 넌 내가 꽤나 편하게 느껴졌나 보다.
자기 짐을 한가득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내 옆자리에 앉더니
가까이 다가와
"나 이제 그 누나한테 연락 안 해."
귓속말로 말했다.
3. 그렇게 2학기 반장 선거, 나는 1학기 때 후보였으나 박지훈의 친구에게 밀려 반장이 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다시 후보에 올랐고 이번에는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저기.."
?
"나 반장하고 싶은데, 너는 나 뽑아주면 안 돼?"
내가 종이를 나눠주며 말하자 네가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 박지훈의 효과인지 나는 정말 반장이 되었다.
이어 부반장 후보를 뽑는데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이던 네가 손을 들었다.
게다가 남을 추천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하고 싶다고 했다.
박지훈이, 부반장을, 왜?
결과는 뻔했다, 애들이 얘를 안 뽑을리가 없는데..
네가 이러면 그동안의 우연이 우연 같지가 않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 돈 있는데?"
언제 따라온 건지 매점에서 빵을 사고 돈을 꺼내고 있는데 네가 덥석 돈을 내줬다.
"그래서?"
"안 내줘도 돼!"
다시 돈을 주려니까 내게 빵을 쥐여주며
"내 맘이지!"
그리고 토끼처럼 총총 사라졌다.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았지.
사실 난 학교에서 그닥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만약 반장이 되지 않았다면 졸업하고 다른 아이들의 기억에는 내가 없겠지?
하지만 반장, 그리고 부반장이 된 박지훈의 여파로 존재감이 조금 생겼다.
물론 박지훈에게는 어림도 없었지만.
꽤나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하였지만, 넌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고
주위에는 많은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네.
몰려있는 아이들 때문에 내 자리에 가지도 못하고 그 주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어, 반장 왔어?"
나를 알아 본 아이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네가, 주위에 많은 애들에도 아랑곳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던 네가.
내가 온 것을 알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4.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 이상한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내가 박지훈과 몰래 사귀고 있는 사이라던가, 몰래 연애를 하고 있다던가, 그런 소문.
물론 박지훈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다른 애들과는 눈에 띄게 다르게 대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박지훈이 날 좋아할 리는 없잖아?
사실 우리 사이에는 그럴 여지가 있었으니까 나를 편하게 대하는 건 당연하지.
생각이 이렇게 멈춰줬으면 딱 좋았을 텐데...
"어디 가?"
점심을 급하게 먹은 탓인지 좀처럼 속이 나아지지를 않아 보건실에 가려는데
내가 일어서자 네가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곧 수업 시작하는데.."
"나 속이 안 좋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보건실 좀 다녀올게."
약을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는데, 너는 내 펼쳐둔 책 위로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책을 펴놓고 가지 않았었는데, 아마 네가 수업 진도에 맞춰 펴놓은 모양이다.
앉아서 네가 쓴 글을 보니
'체했어?' 라고 적혀있었다.
네 손에 쥐어져있던 펜을 잡아
'그런 것 같아.'라고 적으니
너는 내 손을 가져가 검지와 중지를 꾹꾹 눌러 주물러주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체했을 땐 이게 좋아.' 라고 말했다.
5.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너는 수학책을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나 이것 좀 알려줘."
"나 수학은 잘 못하는데.."
"그래?"
그리고는 수학책을 덮어 영어책을 펼쳤다.
"그럼, 이거."
사실 영어도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설명해주니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문학책을 펼쳤다.
"이것도 알려줘."
내가 필기를 보여주려고 책상 서랍에서 문학 교과서를 꺼내려는데
너는 과목별로 책을 펼쳐 책상에 쌓아 올렸다.
"나 이거 다 알려줘."
너의 계속된 이런 행동들로, 나는 네게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떠한 행동에 설레었는데, 이제는 네가 뭘 해도,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떨리고 있었다.
체육시간, 사실 딱히 별 의미가 없는 수업이라 다들 제각각 활동을 하고 있었다.
너는 농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체육관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남자아이가 뭔가를 물어봐서 같이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농구공이 우리 사이로 날아왔다.
놀라서 쳐다본 곳엔 네가 씩씩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네가 왜 그랬을까?
그건 그냥 실수였을까, 아니면 고의였을까.
나는 네 맘을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집 가는 길에 가로등이 고장 나서.."
"그래서?"
"너무 무서워서 그런데, 나 야자 끝나고 집에 좀 데려다주면 안돼?"
"내가 왜?"
내가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라 놀랐지만 실망한 마음을 티 낼 수는 없었다.
야자가 끝난 후 교실을 정리하고 문단속 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니
교문 앞에 네가 서 있었다.
"뭐 해?"
"친구 기다리는데?"
"그래..그럼 나 먼저 갈게.."
한껏 쳐진 어깨로 뒤돌아가는데 네 발소리가 들렸다.
"근데 친구가 먼저 갔다네..어쩔 수 없네 뭐."
올라가는 입꼬리가 숨겨지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걸어가다가 네가 "반장"하고 나를 불렀다.
"응?"
"혹시 우리 반에 싫어하는 애 있어?"
?
"아니 없는데?"
의아한 질문이었다.
"왜 너는 싫은 애 있어?"
"아니- 나도 없어."
근데 왜 물어봤을까, 궁금했지만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집을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말이 없이 우물쭈물하던 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애는 있어?"
순간 머리를 둔기로 맞은 기분이었다.
나 너무 티 냈나...
"난.. 우리 반 애들 다 좋은데?..."
하하하며 어색하게 웃자
"이번엔 나한테 왜 안 물어봐?"
"아..너는 너는 우리 반에서 누가 좋은데?"
"나는 너."
너는 또 예쁘게 웃었다.
왜 모르냐고, 나는 너한테만 잘해주는데 왜 모르냐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본인입니다:)
매일 새벽에 반쯤 감긴 눈으로 쓰고 있다보니 제대로 인사도 한 번 안한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ㅠㅠ 그렇기 떄문에 오타 등의 문제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댓글 부탁드립니다!~
우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조회수와 댓글 수의 차이가 굉장히 많은 듯 하지만... 제 부족함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정말 잘 쓰고 싶은데 한결같이 오그라들고 형편없네요ㅠ^ㅠ
댓글에 브금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제가 컴퓨터를 할 시간이 없어 찾아보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답글 못 달아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본문에 적어드려요. 사실 그 음악들이 제목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로 컴퓨터에 저장 된 곡들이라 다시 찾아봤어요.
강다니엘편에서 나온 노래는 다른 분이 답글 달아주셨지만 - Goodbye Summer Piano cover
황민현편 - Forest (이게 제목인데, 이건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작 Forest라고 치니까 첫번째에 나오더라구요!)
옹성우편 - 봄비/사랑은 가문 맘을 적신다
박지훈편 - 청월령/널 기다리던 어느 여름날
사실 모든 곡이 정식 음원은 아니고 타고 타고 돌아다니면서 찾은 자작곡들인 것 같아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