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려고요 w.워너워너
아 나 오늘 과제있어 미안 다음에 만나자 오후 6:43 그래 오후 6:45 무미건조한 얼굴로 핸드폰을 신경질적이게 집어던졌다. 짜증나. 자존심 상해 머리를 쥐어짜다가 이내 고개를 책상에 푹 숙였다. 성우를 보지 못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같은 학교다 뭐다해서 만날 법도 한데 정말 진득하게도 단 한번도 없었다. 단 한번도 요 몇 달 동안 우리의 대화는 죄다 저런 식이였다. 오늘 만날까? 미안 나 과제,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어디를 봐서 이게 연인들의 대화란 말인가 나는 과제고 나발이고 때문에 못 만난다고 하는 옹성우보다 미련없이 다음 기회로 넘기는 나에게 화났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만남을 물어보면서 형식적으로 물어오는 저 만날까?라는 약간은 이질적인 말이 화가 났다. 연인간의 만남이 저렇게 허락을 받으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더군다나 우린 하루 이틀 만난 앳된 연인도 아닌 무려 7년된 사인데? 만나자고 하는 건 나였고 바쁘다고 하는 건 너였다. 너의 그 마지막 말에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쿨내음을 풍기며 응 그래. 라고 보내는 건 또 나였고. 사실 내 마음은 불편하고 짜증나고 화나고 자존심 상하고 그런건데.. 덮어두었던 핸드폰을 급하게 켰다. 성우야 과제 어디서 해 나 좀 만나. 오후 6:57 사실은 내 오랜 친구이자 성우의 오랜 친구인 다니엘한테 들은 적이 있다. "아 나 이런 말 하면 안될거 같은데.." "뭔데" "옹성우 그 새끼 오늘 소개팅 간 거 알아?" "..뭐?" "아니지 당연히 몰랐겠지.. 아 씨, 아니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하는 건데...." "..허," "아 씨, 야 내가 말했다고 하지마라.. 그럼 나 좆되는겨.. 너도 친구고 걔도 친구니까., 아 하튼 난 중립임. 아니다 지금은 약간 니 편에 기운거 같다.." 옹성우가 개새끼지, 너가 개새끼는 아니잖아? 너무 지랄하지말고 적당히 지랄해.. 다니엘은 그렇게 핵폭탄같은 발언만 나에게 터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그 날 성우를 만났고 더 웃긴건 성우에게 지랄을 하지 않았다. "성우야 오늘 뭐했어?" "그냥 애들이랑 놀았지, 왜." 너의 대수롭지 않은 듯한 거짓말에 살짝 울컥할 뻔 했지만 이내 다시 괜찮아졌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마음이 복잡했다. 화는 나는데 화를 내기가 귀찮았다. 짜증나고 자존심도 상하는데 한편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 나는 또 그래라고 답했다. 성우랑 소개팅한 애는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여대에서 무용을 하는 애였다. 우리랑 동갑에. 페북으로 언틋봤는데 이뻤다. 그것도 조오온나. 원래 여자들은 그렇지 않나 이쁘면 더 기분 잡쳐지는거. 아 시발, 사실 둘이 같이 있는 것도 봤다. 그 여대 무용과가 우리 학교 앞에서 수줍게 기다리고 있더라. 나는 그때 기말 끝난 당일이라서 후드티에 모자에 츄리닝에 온갖 추접한 모습이였는데 페북에서 많이 본 존나 이쁜 여자애를 마주친거다. 여자의 감은 이래서 무섭다. 누가봐도 성우를 기다린다. 아니 근데 이 개새끼 여친있다고 말 안한거야? 무용과년은 나풀거리는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긴 생머리를 흩날리면서 학교 입구를 기웃거렸다. 존나 이뻐서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다 걔를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내 옆에서 같이 영혼나간 상태로 걷던 친구도 우리랑 다른 세상 사람같다고 말했다. 내 무릎나온 츄리닝이 부끄러웠다. "성우야!" 그 무용과는 내 등 뒤에서 내 남자친구 이름을 지 남자친구 이름 부르듯이 불렀다. 생각보다 기분이 엿 같은데? "옹성우? 그거 니 남친 아니냐" 친구의 말에 나는 동그란 안경을 괜히 올리며 맞아, 라고 답했다. 친구는 금방이라도 무용과 뺨을 때릴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성우야! 존나 좋아보인다?!" 저 미친년은, 아니 그러니까 내 친구는 생각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애라는 걸 잠깐 까먹었었다. 친구는 뒤를 돌더니 학교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기말이 끝나 삼삼오오 모여 나오던 애들은 다 우리와 성우를 한 번씩 쳐다보며 걸어갔다. 쪽팔린다. "성우야 누구? 친구야?" 저 무용과 눈새는 자꾸만 성우에게 쫑알거리는데 저 주둥이를 확 어떻게 해버리고 싶지만 나는 고개를 땅에 쳐박은 상태로 내 때에 찌든 하얀 스니커즈만 바라보았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성우여친님" 나는 저 미친년, 아니 내 친구의 빡친듯한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등을 돌렸다. 쪽팔렸다. 바람난 남친과 버려진 여친이라고 광고하는 이 상황이. 내 떡진 머리가. 내 화장기 없는 민낯이 왜 자취방 오후 6:57 성우의 톡에 나는 슬리퍼를 구겨신고 집을 나섰다. 아, 성우는 그때 나한테 일말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물어볼 뿐이였다.
"왜 그냥 가"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 하숙집 골목길에 고장난 가로등만 깜빡깜빡 하고 있었다. 이틀만에 샤워를 하고 낮잠도 2시간이나 잤다. 나름 기분도 좋고 상쾌했다. 근데 옹성우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나온 지금 , 아니 옹성우의 저 말을 들은 지금 기분이 뭐 같다. 아무렇게나 뻣친 머리와 동그란 안경이 다시금 부끄러웠다. 성우는 말끔한 맨투맨을 입었고 그 특유의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쪽팔려서" "..뭐?" 왜 그냥 가라니. 내가 7년 동안 봐온 성우가 아닌 거 같았다. 내가 얼마나 더 쪽팔려지기를 바란 걸까, 아니면 내가 거기서 깽판을 치기를 원한 걸까. 다시금 울컥해지는 마음에 묵묵히 땅만 쳐다보았다. 기분 나쁘다, 이 무용과사건은 일어난 지 세 달도 다 안된 따끈따끈한 일화이다. 저렇게 미적지근하게 이 사건은 마무리졌다. 아니 마무리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성우는 변명을 안했고 난 도망갔으니까 성우는 나와 같이 서울로 상경해서 자취방을 구했다. 난 밤 늦게 들어가면 눈치보이는 하숙집이라며 성우한테 많이 징징거리고 그의 자취방을 마치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의 집 비밀번호도 물론 알고있다. 나의 생일과 너의 생일을 더한 4자리 숫자. 왜 굳이 더하는 거야? 그냥 8개 나열하면 되잖아! 나의 말에 그는 원래 비밀번호는 4자리여야 제맛이지, 라며 말도 안되는 말만 늘어놓았다. 옹성우는 나에게 늘 그런 존재였다. 듬직하면서 친구같고 나의 청춘을 가져간 그런 사람. 한결같을 줄 알았던 그의 모습이 점점 변해가는 걸 느낄 때는, 아니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을 때는 정말 죽을 거 같았다. 사랑은 익숙해진다고 그랬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끝내 믿지 않았다. 나한테 사랑은 익숙함이 아니야, 내게 있어서 사랑은 .. "옹성우" 비밀번호를 뻔히 알면서도 괜히 초인종을 눌렀다. 조금있다가 성우가 현관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문 넘어로 들렸다. 덜컹, 웃긴다. 성우를 보자 말문이 턱 막히고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지 않는다. 내 두 눈이 흔들리고 금방이지 눈물이 떨어질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안 들어오고,"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그는 살짝 의아해하는 거 같았다. 주마등처럼 너와의 첫 만남부터 스무살이 되고 처음으로 술을 같이 마시고 첫키스를 하고 아침이 오도록 전화를 하던 우리가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너무 많이 컸고 너무 많이 변했다. 언제 어른이 되나 했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었고 알아차릴 틈도 없이 서로에게 있어서 서로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성우야" ".." "우리, " 여기서 울면 안 될거 같은데 단단히 마음먹고 온 건데 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건지. 이건 오랜 친구와의 이별때문일까, 오랜 남자친구와의 이별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단지 부재의 슬픔때문일까 성우는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너도 알고 있었잖아, 너도 느끼고 있었잖아. 언제부터인지 서로를 찾지 않았고 키스 하는 횟수가 줄어 든게. 서로를 만나면 휴대폰부터 보고 있고 길거리에서도 손 한번 잡은 적 없잖아 최근에. 너와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수칠때 떠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비난 받기전에는, 더 구질구질해지기 전에 더 비참해지기 전에 우린 거리를 두려는 거잖아. 이게 맞는거잖아, 그치? 그치 성우야 "..우리, 헤어지자..." 그럼 내가 먼저 끝낼게 "..우리 그래야 할 거 같아.." 결국 눈물이 터져나왔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닌데 나 너 바람난거 알고, 우리 사랑도 식은거 다 알아. 우리 이제 서로를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보자. 7년을 잊는 건 너무 긴 시간이지만 새롭게 덮어나가자. 친구로 지내자, 뭐 이런 거창한 말들이였다. 그런데 내 입에 튀어나간 말은 "..제발 우리 헤어지자" "..." "힘들어, 힘들다고.. 변한 우리를 보는 게, 난 너무 힘들어 성우야..." "..." "..나 좀 살려줘, 성우야...같이 있는데 나는 왜 외로워.."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고등학교때 기말고사를 말아 먹고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옹성우의 품에서 울때보다 더 많이, 더 서럽게. 내가 왜 울었는 지 잘 모르겠다. 나도 성우에 대한 마음이 식었고 성우도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이건 누가봐도 알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빤히 알고 있는 나는, 이미 몇 백번이고 연습해오고 이런 상황을 상상해본 나는 왜 우는 것일까. 성우가 신고 나온 슬리퍼는 나와 똑같은 걸로 맞춘거다. 웃기게도 그의 모든 게 다 나였다. 나의 모든게 다 그였듯이.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무너지듯 주저 앉는 나를 따라 성우는 같이 무릎을 꿇고 나를 그의 품에 안았다.
"... " 여전히 나의 눈물에는 어설픈 너였다. 7년 전에도 7년 후에도. 그의 어정쩡한 손길에 나는 더욱 서러워져서 목 놓아 울었다. 오늘 그렇게 나의 첫사랑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