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채야, 좋아해. 너도 알아챈 거 같은데. 하핳. 쑥스럽다.”
드디어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몇 번이나 누르고 누르던 맘을 전해버렸다.
“근데 좋다.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고, 너도 좋고.”
이미 늦어버린 거 같은데, 그냥 좋아한다고 말할래. 그래도 난, 너에게 고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에 감사해. 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서 행복해.
이렇게 내 맘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영채야,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좋아했어.
이 말은 전할 수 없겠지만,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는 너를 보고 있었어.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08_1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야기)
넌 아마 유난히 더웠던 그 날의 체육시간이 우리의 처음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마 넌 너의 처음과 나의 처음이 다르리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네가 날 처음으로 바라봐주기 시작했던 날이 그랬듯, 내가 너를 처음 보았던 날도 이상하리만큼 더웠다.
4월의 중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 날은 유독 더웠다. 정말 이상할 만큼.
마치 정해진 길인 것 마냥 나는 1학년 말부터 전교회장을 준비하라는 말을 여러 선생님께 들었었다. 종현아 이번 성적도 잘 나쁘지 않네, 이대로만 하면 되겠어. 아 그리고 내년에 전교회장 선거는 나갈 거지?라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네...? 제가요?였던 나의 대답은 어느 새 여러 번의 반복을 거치니 알겠습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도, 선생님들의 기대도 전혀 무겁지 않았다. 모두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신임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만 같았다.
늘 그랬다. 특별히 내가 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느새 나는 우리 조의 조장이 되어 있었고, 우리 반의 앞에 서 있었다. 그저 이제는 우리 학교를 대표해야겠다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들 뿐이었다.
“오빠는 늘 그렇게 웃으면서 살면 안 피곤해요?”
“어?”
2주 뒤에 있을 학생회장 선거를 도와주던 1학년 후배가 갑자기 점심을 같이 먹다가 말고는 내게 대뜸 물었다.
5월 초에 있는 선거에서 내가 당선이 된다면 내년 1학기까지 나는 전교 회장직을 맡게 된다. 기호 1번 김종현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웃으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홍보를 하느라 입에 경련이 올 정도로 웃어야만 했다.
“수정아, 나를 뽑아달라고 하는 건데 어떻게 안 웃으면서 홍보를 해 그럼. 하핳.”
“그거 말고요, 그냥 평소에도 그렇잖아요. 전 오빠 짜증내는 것도, 화내는 것도 본 적 없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내가 누구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던가. 누가 나를 짜증나게 했던 적이 있는가.
“별루 짜증날 일이 없는데 어떠케 그럼. 화두 안 나는데에..?”
“하 참.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길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네.”
“진짜야, 진짜.”
“아니 내 주위에는 왜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많냐. 오빠, 그렇게 착하게 안 살아도 돼요.”
“응? 내가 착해?”
“허, 이 오빠 봐라. 누가 때려도 오빤 오빠가 미안해 할 사람이에요. 진짜 이영채나 오빠나 답답해 죽겠다니까.”
“이영채? 그게 누군뎅?”
“있어요, 제 친군데. 아주 하는 짓이 오빠랑 똑같아요. 누가 봐도 화나는 상황인데 말 못하고 막, 아니야 괜찮아. 이러고. 하, 진짜 옆에 있는 저 같은 사람은 답답해서 죽어요.”
“아 그러쿠나.. 내가 답답했서? 미안..”
“이봐 이봐, 오빠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하... 아무한테나 막 그렇게 사과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어, 이영채. 오빠, 쟤예요 쟤. 오빠랑 또-옥같은 인간. 아오 쟤 또 급식줄 양보하는 거 봐.”
작년 4월의 어느 날. 유난히도 더웠던 날, 나는 너를 급식실에서 처음 보았다. 반 친구에게 웃으면서 줄을 양보하고 있던 너를 처음 보았다.
나랑 비슷하다는 너를 보면서 나는 별안간 볼이 붉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처음부터 눈이 가는 사람은 맞았지만,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냥 네가 수정이의 친구라는 걸 알게 된 뒤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너를 많이 마주쳤다는 거다. 넌 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정수정이 부탁한 걸 가져다주느라 내 앞에 나타난 적도 있었고, 우리 반에 심부름 차 들어온 적도 있었다. 급식줄에 서 있는 너를 보기도 했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오는 너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정말 어쩌다보니, 자꾸만 마주치는 네가, 너를 마주치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하다던 네가, 그리고 눈이 자주 동그래지는 네가 자꾸만 궁금해졌다.
나는 전교 회장 선거에서 과반수의 득표를 받아 당선됐다.
그 많은 표 중에서 혹 너의 표가 있을지 궁금했다. 나만 아는 네가, 혹시 나를 알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사실 여부는 우연히도 알게 되었다.
“수정아 고마워, 고생했어. 내일 회식 꼭 오고, 오늘 집 가서 푹 쉬어.”
내가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학생부장 선생님께 듣자마자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3주의 시간 동안 나를 도와준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빠 진짜 제가 한 30표 이상은 끌어왔을 걸요? 제가 진짜 우리 반 다 오빠 투표하라고 감시했어요.”
“하핳.. 진쨔 거마워. 너 정말 수고했서.”
“하, 다른 쪽에 제가 있었으면 그 사람이 당선 되었을 겁니다. 솔직히, 어? 아니 제가 얼마나 홍보를 했으면, 그 때 왜 기억나요? 이영채? 걔가 원래 모르는 사람한테 진짜 관심이 하나도, 1도, 한 개도 없거든요? 근데 걔가 오빠 이름을 외웠다니까요. 제가 하도 옆에서 김종현 뽑아, 김종현 뽑을 거지? 이러면서 세뇌를 시켰더니. 오늘 아침 투표할 때 제가 이름 부르니까 막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수정아, 알았어. 그 종현선배 뽑을게. 그만 말해도 돼, 이랬다니까요...”
난, 네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왜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네가 나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이 왜 그리도 기쁜지에 대해서 좀 더 빨리 생각해보았어야 한다. 난,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아챘어야 한다. 좀 더 빨리 다가가 내 맘을 전했어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호감이었다고, 너를 향한 마음이 호감 이상이었다는 걸 빨리 알았어야 한다.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내가 한심할 정도로 나는 작년의 내가 후회스럽다. 이제라도 해서 다행이지만.
8. 시선 둘, 시선 하나.
어느새 내 시선은 늘 너를 쫓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 더 알고 싶은 사람.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내 시선에 걸린 네가 너무 예뻐서, 네 웃음소리가 자꾸만 귀에 남아서, 그렇게 네가 좋아졌다.
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도 귀여웠고, 덥다고 찡그린 이마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정수정과 함께 마주칠 때면, 모르는 사람인 내가 어색해서 자꾸만 돌리는 너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시선이 너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정수정과 함께 있지 않을 때는 늘 키가 큰 어떤 남자애와 함께였다. 이름이 황민현이라고 했다. 너랑은 아주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라서 둘도 없는, 쉽게 말하면 죽마고우, 사실은 그 이상의 사이라고 수정이가 내게 말해줬다.
황민현이라는 그 남자애는 네 어깨에 팔을 걸치는 것도, 네 손목을 잡고 길을 걷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분명 그냥 엄청 친한 친구라고 들었는데, 네가 정수정과 있을 때랑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불안하고, 그 아이에게 질투가 났다.
처음에는 그냥 너랑 친한 것이 부럽고, 내가 모르는 순간의 너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질투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너랑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여서 부럽고, 너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질투가 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너희 둘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함의 이유를 알게 된 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를 알게 된 뒤로 내 시선이 너를 늘 찾았던 것과는 달리, 너는 나라는 사람을 모른 채,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를 바 없이 고등학교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너를 알게 되고, 궁금해 하고, 결국은 좋아하게 된지도 어느새 8개월이 흘러 있었다.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했지만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그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떻게 다가갈지 늘 고민했지만, 오히려 네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한 번도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민한 수백가지의 방법들 중 단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
방학식을 맞아 하는 행사 진행을 위해 올라간 단상 위에서도 나는 너를 찾느라 바빴다. 방학 동안은 못 보니까 많이 봐두려고 급히 너를 찾았던 것 같다. 넌 정수정이랑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올해 마지막으로 보는 네가 황민현이 아닌, 정수정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괜스레 안도했다. 기분 좋은 연말이었다.
방학은 더디게 흘러 나는 드디어 3학년이 되었다. 방학 동안은 한 번도 너를 실제로 보지 못했다. 정수정의 카톡 프사 옆에 있는 네 얼굴이 내가 방학 때 볼 수 있었던 전부였다.
개학 후에 드디어 마주한 너는 더 예뻐져 있었다. 조금은 어색해서 귀여웠던 교복은 이제 딱 맞아서 더 예뻤다. 그냥 예쁘다라는 말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 그리고 몰래.
가끔은 언제까지 나 혼자 너를 바라만 보아야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다가가면 어떨까, 너도 나를 마주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여러 번 고민했지만 너무 커져버린 감정을 담아 너에게 다가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기 보다는, 내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해서,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처음으로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서, 어느새 1년을 넘기고야 말았다.
이제 이번 학기만 끝나면 조금 버거웠던 학생회장이라는 틀을 벗을 수 있었다. 점점 대입도 다가오고 있어서 교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도 학교에서 종종 너를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던 5월의 마지막 주에 비가 오던 날, 나는 내가 왜 황민현에게 불안함을 느껴왔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너에게 향하고 있는 내 시선과, 그 아이가 너에게 보내는 시선이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두려웠던 거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황민현의 시선이 너무도 나의 그것과 비슷했다.
학생회가 끝나고 느지막이 학교를 벗어나고 있었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와서, 교문 앞 정류장까지 가는 데에도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를 빠져나오는 너와 황민현이 보였다. 크지 않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서는 조심조심 걸어오고 있었다. 우산은 다 네게 기울어진 채로, 황민현의 오른쪽 어깨는 점점 더 젖어가고 있었다. 네 어깨는 잡고 있던 그 아이의 팔이 부러웠다.
우산이 다 네게로 향해 있음에도 혹여나 네가 조금이라도 젖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녀석의 눈빛은 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아니, 같았다. 그 아이가 너를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내가 왜 불안해했는지도 분명해졌다.
어쩌면 나는, 언젠가는 너와 내가 마주볼 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나 보다. 결국은 너도 나처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를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조급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같은 맘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허나 비가 무섭게도 쏟아지던 그 날 이후 나는 조급해졌다.
너에게 빨리, 직접, 다가가야만 할 것 같았다.
오보이입니다!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여러분!! 좀 빨리 오지 않았나요..? 원래 오늘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너무 하기가 싫고,, 덥고,, 오전에 몸이 안 좋아서 현생을 때려치고^^ 글을 써왔어요!! 또 초록글에 오르고,, 예쁜 댓글도 많이 써주시고,, 넘나 행복해서 저는 빨리 가져왔습니다! 이번 편은 종현이의 시점이에요! 사실은 시점 변화 없이 쭉쭉 아주 빨리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제 첫 글이다 보니 자꾸만 미련이 남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종현이 시점1을 가지고 왔어요! 나중에 민현이의 시점도 아마..?(제가 자꾸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라 장담드릴 수는 없지만..)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결말은 원래 처음부터 정해져 있답니다..ㅎㅎ 둘 다 제가 너무 좋아하지만 결론은 원래 정해져 있었어요 사실..ㅎㅎ 노래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슬픈 노래 중에 거의 제일 슬픈 노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산뜻하게 글을 시작한 것 같은데 왜 자꾸 어두워지는 거 같죠..? 허허.. 암호닉은 이번 화까지만 받을 예정입니다! 혹시 비루한 글이지만 텍파 같은 걸 받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말구요,,) 뭔가를 해드리고 싶은데 뭘 해드려야 할지,, 제가 넘 미숙해서,, 그럼 다음 글도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올게요! 오늘 말이 긴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감사해요! |
암호닉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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