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예린 - 그의 바다
주의 :::: 오늘은 BGM이 2개에요 !!! 한꺼번에 듣기 말고 각각 재생해주세요..!
* 다시 김여주 시점, 과거 *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나도 연애라는것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연애 또한 짝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임영민은 내 고교 시절에 찾아온 늦은 첫사랑이자, 첫 눈에 반해 내 나름 오랜 시간을 속앓이하며 짝사랑 했던 사람이었다. 임영민은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 야, 김재환. "
" 어, 왜. "
" 저 선배 누구야? "
때는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점심시간이었다. 새학교, 새학기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던 난 점심시간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나마 아는 인물이었던 김재환이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려 운동장으로 나왔다. 놈은 꽤 사교성이 좋은 성격인데다 운동을 곧잘해서 금방 친구들, 선배들과 어울렸다.
오늘은 3학년인 선배들과의 친선 경기라고 했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가며 녀석이 날라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내 시선을 강탈한 건, 상대 편 쪽이었던 파란 조끼를 입고 있는 한 선배였다. 김재환을 좇던 내 눈은 어느새 그렇게 다른 사람을 좇고 있었고, 잠시 쉬는 타임에 내 쪽으로 다가온 김재환을 향해 난 그 사람에 대해 물었다.
" 누구? "
" 저기, 빨간 머리. 잘생긴 사람. "
" 아아, 임영민 형. 잘생겼지. "
" (끄덕) "
나 지금 좀 첫눈에 반한 거 같애. 김재환. 이름이 임영민이구나. 임영민.. 그 세 글자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름도 멋있네. 이제는 대놓고 그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나를 바라보며 김재환은 그랬다. 아서라. 저 형 인기 많아.
그냥 물어본 거거든? 놈의 말에 별 일 아닌 것처럼 뚱하게 대꾸했지만, 짝사랑이란 게 원래 그랬다. 이미 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마음 속에서는 스멀스멀 저도 모르게 집을 짓고 있는 그런 거.
" 오늘도 재환이 보러? "
" 어.. 아, 네.. "
" 더운데 이거 마시면서 봐. 친구 주려고 뽑았는데 안보이네. "
" 어..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선배! "
어느 순간부터 내 눈은 계속해서 그 사람을 찾아다녔다. 학교에 등교하는 때나 급식실에 갈 때와 같이 짧은 순간에도.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닐 사소한 친절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작은 공을 만들어 쏘아올리고, 어느새 하나 둘 쏘아올렸던 그 공들은 불씨가 되어 열일곱 소녀의 마음에 더 큰 불을 지폈다.
3학년인 임영민과 1학년인 나. 여느 학교와 다를 것 없이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사이라 마주칠 기회는 적었지만 다행인지 축구를 좋아하던 선배는 이따금씩 김재환과 축구 경기를 가지곤 했고, 나는 그것을 틈 타 매번 김재환을 보러 가는 척 선배가 축구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가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김재환은 요즘 자주 보인다? 하며 혀를 끌끌 찼지만 나는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좋은 걸 어쩌란 말이야.
" 야, 내 생각엔 영민이 형은 좀 아닌 거 같은데. "
언젠가 영민 선배와 잘 되간다는 내 말에 김재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랬다. 그러나 그 말은 이미 선배에게 단단히 콩깍지가 씌여버린 내게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 신경 끄라는 말로 그런 김재환의 의견을 무시했지.
" 저 선배 좋아해요. "
내 고백으로 시작된 선배와의 연애는 퍽 달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연애라는 건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날 들뜨게 만들었다. 선배와 단둘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길을 걷고, 연락을 나누는. 그런 사소한 모든것들이 내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선배는 본래 다정한 성격이었기에 그런 모습으로 나를 대할 때면 그 날은 잠도 못 이룰만큼 들뜬 채로 하루를 곱씹곤 했다. 딱 그만큼 좋아했다. 나는 선배를.
" 아, 여주야. 미안해. 약속 있는걸 깜박했어. "
" ....... "
" 다음에. 다음에 가자. 미안, 카톡 할게. "
그러나 그 달달한 연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내 우선 순위에선 늘 선배가 윗자리를 차지했지만, 선배에게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했다.
내 오랜 짝사랑은 선배와의 관계에서 나를 을로 만들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 내가 먼저 좋아했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하니까. 나는 그런 말로 나를 위로하며 미련한 연애를 이어갔다.
" 선배는 나 왜 만나? "
" ........ "
아무리 혼자 멋대로 시작한 사랑일지 언정,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달래기엔 한계가 있었다. 참다 못해 터진 내 물음에 선배는 말이 없었다.
" 우리 그냥, "
" .. 니가 날 좋아하니까. "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비참해지는 기분에 입술을 꽉 물었다.
" 뭐..? "
" 니가 날, 많이 좋아해주니까. "
첫 연애, 그리고 최악의 이별이었다.
짝사랑이란 게 원래 다 이런 결말인건가 싶었다. 차라리 선배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때가 더 좋았지 않았을까. 진작에 김재환의 말을 좀 귀담아 들을 걸. 괜한 후회와 미련들이 내 발목을 붙잡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어찌했건, 결말은 정해진 싸움이었다는 것을. 을의 연애라는 게 다 그런 거라는 거.
다 알고 있었으면서.. 막상 제 결말이 그렇게 되고 나니 상처 받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구나 싶었다. 고작 고등학교 1학년에 동시에 맞이한 아련한 첫사랑이자 첫 이별이 내게 끼친 영향은 꽤나 컸다. 학창 시절 누구나 겪는 잠깐의 풋사랑이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더 임영민을 좋아했고, 그렇기에 생각보다 더 상처 받았다. 3학년이었던 임영민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업을 했지만 나는 한동안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건,
" 여주야. 다음 수업이 뭐였지? "
어쩌면 넌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전교회장 정세운 w.리틀걸
Episode 7. 좋아한다는 것
# 디에이드 (The Ade) - 달콤한 여름밤(Inst.)
** 지금부터는 이 BGM만 재생해주세요 **
잠시동안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다. 아니,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랬다. 꿀꺽, 침을 한 번 삼켜냈다.그게 무슨 소리..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진 내 말을 가로 챈건 뜻밖에도 정세운이었다.
" 지영아. "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그 목소리에 움찔한 내가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 오빠, 봐요. 언니 오빠 좋아하는 거 맞.. "
"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
" 네? "
세운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며 그 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런 저와 달리 덤덤하게 말을 이은 세운이는 천천히 지영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웃음은 어디가고 착 가라앉아버린 표정이 낯설다.
" 지금 그거 되게 무례한거야. 지영아. "
" ....... "
" 네가 생각하는 그런 ㄱ.. 여주야. "
그냥 거기서 그렇다고, 지영이 네가 뭔가 오해를 한 거 같다고 말하고 넘기면 되는 거였는데.. 그 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도망치듯 합주실을 빠져나와버린 건 지영이가 아닌 나였다. 그냥 왠지 그 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내 마음을 밝히기는 커녕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내 마음을 부정 당하기만 할 것 같아서. 나.. 먼저 교실 가봐야할 거 같애..! 합주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나를 붙잡으려는 세운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저 따라오지 말라는 의미로 문을 쾅 닫을 뿐이었다. 김여주야. 네가 미쳤구나.. 어쩔려고 그래. (이마짚)
그렇게 얼이 빠진 상태로 교실로 향했다. 나사가 하나 풀린 것 마냥 비실거리는 모양새로 걸어가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 건 김재환이었다.
" 야야. 김여주. 뭔 생각하길래 부르는데도 못 들어. "
녀석의 부름을 듣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내 어깨를 잡아챈 김재환은 내 눈 앞으로 휘휘 손을 흔들어보였고, 나는 여전히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녀석에게 대꾸할 힘도 없고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그냥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그런 내 모습을 본 김재환이 결국 내 앞을 막아섰다.
" 야. 너 뭐, 세운이랑 무슨 일 있었어? "
" ... 아니. 없었는데..? 하하.. "
" 무슨 일 있었네. "
.. 드럽게 눈치 빠른 놈. 금세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는 놈이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느라 한참을 망설이던 내가 결국 그 눈빛에 못이겨 입을 열었다.
아니.. 야, 니가 보기에도 내가 누구 좋아하는 지가 그렇게 티나?
" 응. 정세운. "
... 하아.
그래, 뭐.. 김재환 넌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그렇게 냉큼 이름 말하기냐. 어으씨이.. 자꾸만 떠오르는 아까의 상황에 내 표정은 조금 더 죽상이 돼버렸고, 그런 내 표정이 볼만 한지 김재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 아마, 세운이도 알 걸? "
" ...어? "
" 그거 모르면 그냥 눈치라는 게 존재를 안하는 거지. "
.... 어, 근데.. 세운이는 눈치 없지않아..?
김재환의 말에도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내가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김재환은 내 모습이 답답한 듯 금세 인상을 찌푸렸다.
" 내가 봤을 때 눈치 없는 건 니 쪽이고. "
" ........ "
" 설마 정세운이 여지껏 배려해주는 거 못 느꼈냐. "
" ... 무슨, 배려? "
그래. 나 눈치 없는 거 인정. 왜냐면 지금 니가 하는 말도 이해가 안가니까. 이제는 김재환이 오른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뱉었다.
" 아, 몰라. 몰라. 세운이랑 가서 얘기해. "
" 아.. 알려줘. "
" 나도 모른다니까. "
" 아, 김재화안.. "
" 웅. 닥쵸. "
... 저게.
김재환이 던진 말 덕분에 괜히 교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머리를 싸메야했다. 아무리 김재환을 붙잡고 늘어져도 자기는 여기까지라며 해답을 내려주지 않아 그 고민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 .... 헝... "
나는 당연히 세운은 모를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너와의 지금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모두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던 내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나는 어떡해야 해. 이제.. 머릿 속이 복잡해져 책상 위에 있는 펜을 들어 정세운 이름 세글자를 끄적였다가 주욱 선을 그어 지워냈다. 할 것도 없으면서 괜히 책상 서랍에 있는 책들을 뒤적이기도 하고, 책상에 엎어졌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짝꿍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하하.. 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다시 또 책상에 엎어졌다가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5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제 곧 세운이 오겠..
...왔네.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교실 뒷편에서 드르륵, 하는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세운이가 들어왔고 나는 황급히 팔에 고개를 묻었다. 발걸음 소리는 내 뒷자리에 위치한 세운이의 자리 쯤에서 멈췄다. 이후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걸 보면 세운인 한동안 그렇게 서있는 듯 했다. 그 덕에 긴장한 나는 미동도 없는 상태로 엎드려 있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털썩, 하고 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뒤통수가 따갑다.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숙제 꼭 해오고. "
" 네! "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잠시 뒷쪽에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렸지만, 세운아. 하는 선생님의 부름에 가까워졌던 그 인기척은 다시 내게서 멀어졌다.
이후로도 매번 정세운을 피해다녔다. 다음 시간에도.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세운일 마주치지 않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바쁜 탓에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는데 피해다니기까지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재환만 답답해서 죽어나려 했지. 그렇게 축제가 다가왔다. 기다리고 또 기대했던 축제 날이었는데 세운이랑은 말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상황이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침울)
" 덥다. 더워. "
" 진짜 난 매점 없었으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
세운인 공연 막바지 준비로 이미 강당과 교실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고, 나는 김재환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강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달달함이 입 안에 가득 퍼지자 절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나왔다. 거기서 세운이를 딱 맞닥뜨려버린 게 문제였지만.
" ...어, "
아이스크림을 깨무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멍청한 효과음을 내며 걸음을 멈췄다. 식은 땀이 삐질 흘러내림과 동시에 김재환에게로 시선을 돌리는데,
" 아, 나 휴대폰 두고 왔네. "
김재환은 그렇게 교실쪽으로 냉큼 달려가버렸다. 너 방금 매점에서 삼성페이 썼잖아.. (울상)
" ......... "
" ........ "
김재환이 가버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나와 세운이 사이에서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3일을 내내 피해 다녔으면서 정작 이런 상황에 어찌해야하는지에 대한 대책 마련은 하나도 해두지 않은 나였다. 누가 먼저 입을 열지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지만, 내 입은 풀칠이라도 한 듯 열릴 생각을 하질 않았다. 말하자면,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 여주야. "
" ........ "
" 잠깐 얘기 좀 하자. "
먼저 입을 연 세운이는 조금 화난 듯 보였다. 나 같아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날 거야. 합주실을 나갔던 날부터 일방적으로 피해 다녔으면서 막상 마주치니 이제는 입을 꾹 다무는 태도라니. 엉엉.. 미안하긴 한데, 나는 진짜 앞으로 세운이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켜내고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근처 쓰레기통에 버린 뒤(눈물) 세운이의 뒤를 따랐다.
" 나한테, 할 말 없어. 여주야? "
강당 뒤편에 있는 작은 공터로 나를 이끈 세운이는 자리에 멈춰 서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그랬다. 할 말은 많은데.. 애꿎은 입술만 자꾸 괴롭혔다.
" 요즘 왜 자꾸 피해 다녀. "
" ........ "
짧은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 갑자기 그러면 나는, 어떡해야 해. 여주야. "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세운은 꼭 이럴 때 막힘이 없다. 근데 이건 좀 나도 억울한데.. 너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잖아. 나도 피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닌데.. 그리고 피해 다니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씨이..
갑자기 서러워져서 정세운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피어난 억울하고 울컥하는 감정들은 내게 밑도 끝도 없는 용기를 준다.
" 일부러 피한 거 아니야..! "
" ........ "
" ..나 너 좋아하는 거 맞단 말야. "
.. 김여주, 미.. 미쳤어..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에 숨을 헉, 들이마시며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말은 저 멀리 떠나가버린 후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 세운이가 눈을 살짝 크게 떠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곧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아 나는 반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 나도 진짜 너랑 오래 친구로 지내고 싶었는데. "
" ........ "
" 진짜 그게 마음대로 안되는데..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세운아. "
" 화난 거 다 이해해. 피해서 미안해.. "
이미 저질러버린 거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고개를 숙이니 세운이 얼굴도 보이지 않아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 속에 담아놨던 말들을 줄줄이 내뱉었다. 숙여진 얼굴은 이미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울상이 되었고, 내 목소리 또한 미세하게 떨려왔다. 누가 들으면 쟤 우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실은 내 기분이 그랬다. 딱 당장에라도 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
아무런 말이 없기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짧은 숨을 내뱉는 순간, 내 머리 위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세운이는 내 머리 위에 얹었던 손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살짝 숙여 웃음 지었다.
" 화 안났어. "
낮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 내가 답답해서 그랬어. "
" ........ "
" 처음이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데, "
" ........ "
" 여주 너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피하니까. "
.... 어?
" 내가 먼저 고백하고 싶었는데. "
그러니까, 세운아. 지금 그 말 있잖아.. 내가 오해하는 거 아니지? 오해해도 할 말 없는 말이잖아. 그치..?
세운이의 말에 이번엔 내가 동그랗게 토끼눈을 하고 세운이 쪽을 바라보자 붉어진 세운이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 아.. 어렵다. "
그리고 놀란 내 눈과 마주하자 이내 제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운이었다. 이미 내 심박수는 사람의 허용 수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내 속에서는 김칫국을 들이킴과 동시에 이미 파티를 열고 있었고, 머릿 속에서 펑- 터지는 폭죽소리가 울려댔다. 부디 이 현실감 없는 상황이 꿈이 아니길 하는 바램이었다.
" 세운아. "
" 좋아해. 여주야. "
세운이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와 함께 세운이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나한테 그랬다. 좋아한다고. 믿기지않는 달달한 그 말이 귓가에 웅웅 거리며 울려 퍼졌다.
" 그러니까 축제 끝나면, "
" ......... "
" 또 피하지 말고. "
세운이는 한 번 더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간혹 버릇처럼 해오던 행동이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 재환이랑 무대 제일 앞에 앉아 있어. "
" ...(끄덕) 응! "
" 그래도 집중은 나한테. 알지. 여주야? "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세운이의 말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 지은 세운이가 내 머리칼을 헝클었다. 축제 준비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미안한 얼굴로 내게 얘기하는 세운이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내게서 멀어져 가는 세운이를 바라보다 대뜸 세운이를 다시 불러 세웠다.
" 세운아! "
내 쪽을 다시 돌아본 세운이가 눈썹을 위로 올리며 궁금증이 담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 ...어... 아냐! 그냥.. 좋아서..! "
이어진 내 대답에 푸스스,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이게 꿈이 아닌가봐..
에필로그 (ver.세운) |
세운은 표현하는 것에 서툴었다. 본래 성격 자체도 표현에 인색하고 그런 것들을 어색해했지만, 연애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슬러시와 장난감 반지를 건네며 맞바꾼 풋사랑뿐이었으니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는 더 그럴 수 밖에. 이미 제 마음 속으로는 저도 여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결론 지었지만, 결론을 내려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표현, 그래. 표현을 해야하는데.. 불쑥 튀어나온 질투같은 거 외엔 (심지어 그것도 여주는 질투하는 거라 눈치채지 못했다.)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 못하는 세운이었다. " 여주야. " " 아, 유정아! 그 때 말한 틴트 있잖아! " 그런 상황에서 표현은 커녕 여주는 저를 이렇게나 티나게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참담함에 세운은 매번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현재 저를 골머리 앓게 하는 축제가 끝나고나면 여주에게 제 마음을 밝힐 생각이었는데. 축제를 코앞에 두고 여주와 멀어지게 생겼으니 세운은 자꾸만 애가 탔다. 대망의 축제 날, 세운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여주는 여전히 얼굴도 볼 수가 없었고. 그러던 중에, 세운은 잠시 합주실에 들러야 할 일이 있어 강당에서 학교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재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여주와 마주쳤다. 눈치 빠른 재환이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고, 어느덧 둘만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이었다. 세운은 여주를 빤히 바라봤지만, 그런 세운과 달리 여주는 여전히 그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도 세운이었다. " 나한테, 할 말 없어. 여주야? " 할 말이 있다고 여주를 다른 학생들이 없는 학교 뒤 공터쪽으로 이끌었지만, 내내 입을 열지 않는 여주의 모습을 보며 순간적인 마음에 또 먼저 말을 내뱉었다. 애가 타는 세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주는 계속 말이 없었다. 막상 말을 내뱉으면서도 제가 괜히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한 것 같아 세운은 안절부절하며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 일부러 피한 거 아니야..! " " ........ " " ..나 너 좋아하는 거 맞단말야. " 이어진 여주의 말은, 그런 세운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고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울상이 된 채로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여워서 세운은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 좋아해. 여주야. " 그리고 그제야 제 마음을 표현하는 세운이었다. 이 말 한마디 내뱉기가 이렇게 어렵고 간지럽다니. 얼굴이 홧홧거리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축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잊고 있던 합주실이 떠올라 여주에게 먼저 가봐야겠다고 말하고 걸음을 옮기는 세운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멋있게 다시 얘기하리라 속으로 다짐하며 어깨에 힘을 주는데 그런 제 발걸음을 여주가 다시 붙잡았다. " 세운아! " " ....? " " ...어... 아냐! 그냥.. 좋아서..! " 아.. ..귀여워. 심장이 간질거렸다. |
작가의 말 |
ㅠㅠㅠㅠㅠㅠ독자님더류ㅠㅠㅠㅠㅠㅠ 제가 너무너무 늦었지요 ...? ㅠㅠㅠㅠㅠ 자주자주 가져오고 싶은데 장편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ㅠㅡㅠ 곧 업무도 바빠진다고 해서 더 연재가 늦어질까봐 걱정이에요... 두 마리 토끼 잡는 데에는 능력 없는 작가라 죄송합니다 따흑,,, 그래도.. 하아... 여주와... 세운이를.. 드디어...!!!!!!!!!! 얼쑤~ ! 경사 났네~! 생각보다 글 쓰는게 너무너무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영민이 글은 또 연재가 늦어질 거 같애요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T_T.. 다음 주 중에 세운이 다음편과 함께 들구 올게요.. 흑... 아 그리고.. 제가 전에 써둔 재환이 글이 하나 있는데요..
그건 이미 기승전결을 꾸려 놓은 약 3편짜리 단편이라 그냥 들고 올까하는데 독자님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 제가 지금 영민, 세운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신알신이나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영민/세운 각각 존재하시기두 하셔서 재환이 글을 이 필명으로 쓸지, 아니면 다른 필명으로 찾아올 지도 조금 고민입니다.. 시간 되시면 투표도 부탁드릴게요 사랑함니다.. 투표는 잠깐 받고 나서 정해지면 바로 글 올릴게요..! 아 조만간 3차 암호닉 신청 받겠습니다! 굿밤되세운♡ |
♡ 독자님들 암호닉 ♡ |
암호닉 정리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를 참고해주세요. 앞으로 암호닉 신청은 암호닉 신청 공지를 통해서만 받습니다. < 1차 암호닉 > 숮어 / 현 / 뎡 / 봉봉 / 란 / 듀ㅅ듀 / 슬 / 녜리 / 가람 / 110 / 일오 / 센이 / 샘봄 / 참새짹짹 / 포뇨야 / 찌 / 전교회장포뇨 / 안녕 / 꽁뚠 / 딸기모찌롤 / 정포뇨 / 구준포뇨 / 자몽소다 / 요니 / 남융 / 호앙이 / 괴물 / 고구마 / 롱롱 / 아가베시럽 / 비누 / 핫초코 / 새우 / 호두 / 돌하르방 / 갓제로 / 만두 / Aquamariz / 임녕민 / 영쓰 / 팤치기 / 영미니 / 뿜뿜이 / AAA / 살사리 / 샐라인 / 토마토야 / 포다닥 / 금하 / 댕댕세운 / 빙구 / 바밤바 / 겨울의 봄 / 포뇨야 < 2차 암호닉 > 고고싱 / 덕배 / 유한성 / 은류 / 털없조 알파카 / 르래 / 뿜뿜이 / 헿 / 유투표 / 여름 / 오니오니 / 과자 / 디어 / 누니 / 윙팤카 / 윙지훈 / 균킹 / 수 지 / 은하수 / 밀감 / 포륵포륵 신청 누락되신 분들이나 정리 대상이 아닌데 정리 되신 분들 꼭!! 댓글 남겨주세요. 3차 암호닉 공지 기다려주세요....♡ 꼭 글로서 보답드리도록 할게요(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