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야. "
우..웅? 나란히 카페에 앉아 흐뜨려져있던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던 영민이의 시선이 대뜸 나를 향했다. 갑작스런 부름에 빨대를 입에 문 채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 그거 기억나? "
그거..? 그게 뭐야. 앞뒤 다 잘라 먹고 내뱉어진 그 말이 이해가 되질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에 물려있던 빨대를 뱉어내고 영민이를 똑바로 바라보자 왜,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다시 운을 떼는 영민이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 내가 너 번호 따고 다음 날이었나. "
앗, 시팔. 영민아. 잠깐만. 그 얘기는.. 순간 스쳐지나간 불안한 기억과 함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여주 니가 나한테 그랬잖아. "
" 아, 영민아.. 제발.. "
어느새 잔뜩 울상이 된 내가 애원하듯 영민이의 손을 잡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영민인 싱글벙글이다.
" 뭐였더라. 똥차.. "
" 아, 영민아아... "
오열하며 테이블에 엎어져버린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헝클어뜨린 영민이가 눈을 크게 떠보이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 아, 맞아. 벤츠가 굴러 들어왔나 했더니 순 똥차네. 이거! "
하하, 고개를 숙여가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영민이의 모습에도 난 전혀 웃지를 못했다. 허엉.. 결국 우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테이블에 묻어버리자 여주야? 맞잡고 있던 손을 만지작거리며 이름을 불러오는 영민이었다.
.. 주륵.
영민아. 내가 미안해. 그 날은 잊어줘..
임영민 조각글(이라쓰고 단/중편이라 읽는다)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겨우 정리하고 영민으로부터 온 메세지를 뒤로 한 채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진정하자. 김여주. 짧은 심호흡 끝에 친구 검색란에 " 임영민 " 세 글자를 입력하자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로 추정되는 계정이 맨 위에 올라왔다.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니 그가 맞았다.
그리고 아래로 천천히 올라온 게시글들을 확인하는데,
" ..맞네. "
친구가 해준 얘기는 전부 사실이었다. 여자친구인지, 친한 지인인지 사진만으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임영민의 타임라인 속에 한 여자와 찍은 여러 개의 사진들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이 연인이라 해도 의심스럽지않을 만큼 다정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이건,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미친놈이네. 이거.
[ 네! 그럼 우리 내일 수업 끝나고 봐요 ㅎㅎ ]
근데 너, 잘못걸렸어. 이 새끼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걸 어떻게 조져야할까. 나름 제 과 내에서는 성격 파탄나기로 유명한 게 바로 나. 김여주였다. 영민으로부터 온 메세지에 답장을 보낸 후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그 개같은 성격이 빛을 발하는구나.
영민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미 제 친구들은 잘생기고 착한 줄 알았는데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냐며 난리였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무서울 정도였던 터라 친한 친구들에게 " 근데.. 여친 아니면 어떡하지? " 우려스런 어투로 물었지만, 오히려 사진 보지 않았냐고, 빼박이라고 열을 내는 친구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닐리가 없잖아.
[ 여주씨 오늘 어디서 볼래요? ]
[ 어디가 편하세요? ]
[ 저는 상관 없어요ㅎㅎ 여주씨 편한대로 ]
[ 그럼 5시쯤 2관 도서관 앞에서 봐요 ]
[ 알았어요 이따 봐요 ]
임영민의 얘기로 떠들썩한 틈에 그로부터 온 카카오톡 메세지에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영민을 만나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아직 소문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날 만날 생각을 하는 재활용도 불가능할 정도의 쓰레기인 건지. 메세지를 나누는 임영민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없었으며 친절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준비해온 화장품을 꺼내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 정도 메이크업은 해줘야지. 평소엔 귀찮아서 손도 대지 않았던 아이섀도우들과 쉐딩, 하이라이터 등등 임영민을 만나기 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거울을 확인하니 제법 날카로워진 인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째깍 째깍.
시간은 5시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서관 앞에 도착한 나는 우리의 만남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친구들로부터 온 카톡들에 손가락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학교 생활에 간만에 생긴 재밌는 이야깃거리였던 탓에 그 관심도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아, 5시다. 짧게 휴대폰 액정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주변을 살폈다.
[ ㅁㅊ 야 온다 이따 톡함 ]
얼마 지나지않아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임영민을 확인하고 빠르게 단톡방에 메세지를 전송한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 여주씨, 제가 좀 늦었죠? "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 모습은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시팔, 아니. 어제보다 더 잘생겨진 거 같은 모습이었다. 도륵, 눈을 굴려 내 눈치를 살핀 영민은 카페라도 갈까요? 하고 말을 건넸다. 아, 네. 그래요. 어디 가서 얘기 좀 합시다. 벌써부터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말들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로 향하는 길에도 임영민은 이따금씩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날씨가 많이 덥네요. 여주씨는 안 더워요?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의. 그런 질문들이 마냥 달갑지 않은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내 머쓱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 ....... "
" ....... "
카페에 마주 앉은 우리는 말이 없었다. 임영민은 내 눈치를 보기 바빴고, 나는 패기롭게 그를 만나긴 했지만 어떤 식으로 얘기를 꺼내야할 지 머릿 속에서 정리가 안된 탓이었다. 게다가 제 쪽을 쳐다보는 영민의 눈동자가 너무도 순진하게만 느껴져서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아, 김여주. 등신. 하여간, 잘생긴 거에 눈이 멀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느라 영민의 시선을 피해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 얘기 중임? ] [ 빨리 질러 그리고 후기좀 ] [ 김여주 아직? ] 자꾸만 휴대폰 액정을 밝히는 친구들로부터 쏟아지는 메세지들에 결국 휴대폰을 뒤집었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매서운 얼굴로 영민을 마주했다.
" 저한테 뭐 하실 얘기 없으세요? "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날카롭게 묻는 내 말에도 임영민은 여전히 아까의 순진한 얼굴 그대로였다.
" .. 무슨 얘기요? "
와, 세상에. 얼굴색 하나 안 바뀌는 거 봐. 뻔뻔스럽게 되묻는 것을 보니 아까 흔들렸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뭐, 무슨 얘기요? (혈압)
" 그 쪽 여자친구 있잖아요. "
" 네? "
" 네. 그쪽이요! 아, 진짜 화나네. "
자꾸만 순진한 얼굴로 손으로 저를 가르키는 어이없는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 뒤집었던 핸드폰을 들어올려 페이스북에 접속한 나는 화면을 그 쪽으로 돌리고 다시 빠르게 말을 이었다.
" 같은 학굔데, 제가 이런 것도 모를 줄 아셨어요? "
" ....... "
임영민은 말이 없었다. 답지 않게 상황 파악을 하듯 내가 내민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 결국 난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다.
" 와, 진짜 뻔뻔하다. "
" 여주씨. "
" 잘생기면 다에요? 그냥 모든 여자들이 얼씨구나. 하고 받아줄 줄 알았죠? "
" ....... "
" 인생 좀 그렇게 살지 맙시다ㅡ 예? "
"웬 벤츠가 굴러들어왔나 했더니, 순 똥차네. 이거. "
옆 자리에 올려뒀던 핸드백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생각보다 더 흥분되는 감정을 삭힐 수가 없었다. 속사포 랩을 하듯 다다다 말을 뱉어내고 나니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벙쪄 있는 얼굴에 영민을 휙, 노려보고 카페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내 팔을 잡아 버린 임영민의 행동에 방금 막 저지 당해 버린 상황이었다.
" 여주씨. 되게 막무가내네요. "
.. 뭐, 뭐라구요? 곧바로 이어진 기가 찬 말에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쯤이면 얼굴에 남아있던 미소가 지워졌을 법도 한데, 영민은 오히려 아까보다 좀 더 여유로워진 얼굴이었다. 그렇게 재밌다는 듯 지어보이는 표정은 되려 호기롭던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 소문 그거 진짜였나봐요. "
" 이봐요. "
" 나는, 내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기에 무슨 얘긴가 했더니. 이제 알겠어요. "
싱긋, 미소를 짓는 모습이 불안했다.
" 확실히 말할게요. "
" ...... "
" 저 여자친구 없어요. "
그럼 아까 그 사진들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내 말을 예상한듯 영민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방금 전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쪽으로 눈짓했다.
" 설명은, 여주씨가 자리에 앉으면. "
시팔, 그 때부터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불안한 생각들이 스쳤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임영민.
" 말 놔도 되죠? 왠지 상황이 뒤집힌 거 같애서. "
그래. 한껏 여유로운 표정의 임영민이었다.
나 어떡해, 엄마..
에필로그 (ver. 영민) |
* 소문의 당사자 * 오늘 오전, 영민은 제 한 학년 후배인 세운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 형, 여자친구 있으셨어요? " 뜬금없는 물음에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세운이었다. 아니, 지금 형 이상한 소문 돌던데. 세운이 전해준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의 요점은 간단히 말해 이러했다. 여자친구가 있는 영민이 다른 과 후배의 번호를 땄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여러 살까지 붙여져 말이 옮겨지고 있다며 세운은 제가 더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세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영민이 대수롭지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얘기해줘서 고맙다. 세운아. 세운의 어깨를 토닥인 영민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카카오톡을 들어가자 어제 여주와 나눴던 대화 기록이 가장 위에 위치했다. 음, 왠지 소문의 근원을 알 것도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표정의 영민이 메세지를 입력했다. 여주씨 오늘 어디서 볼래요? . 짧은 메세지를 전송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냥 빨리 또 보고싶네.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독자님덜,, 어제 프듀콘 안방 1열에서 감상하느라 글을 못가져왔네요 흑... 영민이 글 급하게 써왔는데 어떤지 모르겠어요(주륵) 영민이 글잡 프린스라 금손님들두 많으시고 재밌게 읽힐지 모르겠지만은.. 열심히 썻읍니다,, 잼게 봐주세여,, 비지엠은,,,네,,, 내일 꼭 맞는 거 찾아서 추가할게요,, 아 그리고 제가 이번주말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 이번 주만 좀 쉴게요 ㅠㅡㅠ 저 잊지 마셔요ㅠㅠㅠㅠㅠㅠㅠ 그럼 굿밤되세영민(?) (왠지 영민이 글이라 영민이로 끝내야할 거 같..☆) |
♡ 독자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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