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둑,툭 퉁퉁부은 눈을 힘겹게 들어올리니 희뿌연한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기가 나가 어두운 집 구석에는 쥐와 바퀴벌레가 간간히 모습을 비추었고 종인의 마지막 시야에는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 모습이 들어왔다. 어린 종인은 차마 야윈 그 등을 붙잡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창 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勿忘草 : 물망초 ( Forget-me-not )
" 아악! 아,아..아ㅇ,어이..! "
흔한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빗자루는 종인에게 그 무엇보다 두려운 흉기가 되어 몸 구석구석에 상처를 내었다. 더이상 자신을 감싸주던 어머니는 이제 이곳에 없다.이미 말라붙은 눈가가 쓰라려왔다. 저항할 틈도 없이 종인은 자다 몰매를 맞았다. 며칠 전 입가가 터져 퉁퉁 불어 종인의 얼굴은 벌에라도 쏘인 듯 불긋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이가 하나빠진 탓에 발음이 자꾸만 새어 바람소리를 냈다.
" 망할년같으니, 왜 너도 도망가지 그랬냐? 어? "
던져진 빗자루를 머리에 맞은 종인은 주저앉았다. 어차피 다리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지만 종인은 필사적으로 기어가듯이 도망가려 주춤거렸다. 썩어빠진 집구석에 유일한 희망이였던 어머니는 도망가고 애꿎은 종인만이 희생양이 되어 이리저리 터지는 것이다. 잘못을 빌면 잘못을 빌었다고 맞을 것이고, 우는 소리라도 냈다가는 울기만 하는 애새끼라고 맞을 것이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이 제 명을 못할것이다. 어린 종인은 너덜너덜한 입가를 필사적으로 깨물며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여러번 삼켜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였다. 도망가지도 못하는 몸은 걸을때마다 덜그럭거렸고 아버지의 손에 잡히는 모든것은 흉기가 되어 어린 종인의 몸을 핏방울로 물들였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나면 씩씩 거리는 분한 소리와 함께 종인의 볼로 침이 흐르고 쾅 문이 닫혔다. 깜박이는 백열등이 흔들리고 고요와 함께 집안에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시계가 돌아가는 시침소리보다도 작은 어린 숨소리가 색색 잦아들어갔다.
' 엄마.... 엄마...... '
마른 눈가가 다시 또다른 눈물길을 내었다.
*
어린 종인은 항상 더러웠다. 도움가정이라는 이름에 모르는 사람들이 종인을 도와주고는 했으나 번번히 종인은 다시 어디선가 더러워져서는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인집 형에게 '나쁜 장난'을 당하고는 했던 것이다. 이제 유일한 빛이였던 어머니가 없으니 종인은 혼자서라도 그렇게 발버둥 치려 노력했다. 자연스레 종인의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항상 종인이 지나갈때마다 모두가 코를 막고 피하기 바빴던 것이다.
' 아 더러워.. '
' 야 저거 봐ㅋㅋㅋ 쟤 머리에 파리 붙어있음 '
' 진짜 존나 더럽다 저러고 살고싶나? '
' 야 냅둬 쟤네집 존나 못산대 '
아이들의 말은 꼬리표가 되어 줄줄이 종인의 발 끝을 따라다녔다. 가난이라는 상표는 종인의 이름이 되어 떨어질래야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 종인이 지나갈때마다 모든 아이들이 쑥덕거리기 일수였다. 그러고 살고싶을까? 그렇게 살아보던가. 종인은 묵묵히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이 지옥같은 길을 걷고,걸어서 도착한 종착역은 항상 지옥과도 같은 집이였다.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이 뫼비우스의 띠는 종인을 어둠속으로 깊히, 깊히 가라앉혔다. 도망가려 발버둥 치던것은 이미 옛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의 거미줄이 친 문고리를 잡자 현관에 누군가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검은 구두 두짝. 희미하던 초점을 다시 부여잡고 종인이 믿겨지지 않는 다는 듯 구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꿈인가? 혹시나 모를 누군가의 형상에, 잊혀진 줄만 알았던 누군가의 얼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종인의 가슴이 가쁘게 뛰며 신발을 내동댕이 치듯 벗은 종인이 집을 뛰어 들어갔다. 엄마일까? 엄마가 정말 다시 돌아 온걸까? 나를 보러 온걸까? 수많은 수천개의 질문들이, 지난 세월을 날리듯 종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종인이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그 안에는 너무나 늙어버린 어머니의 뒷모습이 자리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 몇년의 세월에 저리 늙었을리는 없었다. 희끗희끗 흰 머리가 존재하는 여인의 뒷모습에 종인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작은 호기심이 함께 피어나기는 했으나 어린 종인의 마음에는 실망감이 더 크게 자리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검은 자욱을 내었다. 검은 종인의 얼굴이 눈물이 흐른 길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드디어 뒤돌은 여인은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고 어린종인을 보자 깜짝 놀라 달려왔다.
" 아가, 왜 우니 아가. "
" ............ "
종인의 희미한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잡고 맑게 시야를 비워내었다. 눈물방울이 수도꼭지가 고장난 것 마냥 콸콸 쏟아져 내렸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낯익은 얼굴이 그 안에 자리해서 마치 어머니가 돌아온 것 만 같았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다정해서, 종인은 저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리는 종인이 안쓰러웠는지 여인이 종인을 꼭 안아주었다. 하얀 옷에 얼룩이 묻어도 상관하지 않고 품에 끌어들였다. 그것이, 종인이 외할머니와의 첫 조우였다.
*
종인은 외할머니를 만나고서야 세상을 만났다. 감았던 눈을 뜨게 되었고 닫았던 귀를 열었으며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었다. 더이상 그 집에 있지 않아도 되었다. 종인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살았다. 더이상 더럽게 있지 않아도 되었다. 더이상 두려워하며 밤마다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 깨끗하게 씻고 따뜻한 밥과 따뜻한 할머니의 품이 종인의 삶의 전부였다. 종인은 그렇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 종인아 안녕! "
" 어! 잘가! "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친구도 있었다. 더이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지도 않았으며 다른이의 관심에 낯설어하는 자신을 이끌어주는 친구도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던 삶들이 종인에게는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으로 다가왔다. 항상 바라고 바랬던 ' 평범함. ' 그것이 종인의 삶에도 찾아 온 것이였다.
" 이 씨발새끼. 여기 숨어있었냐? "
아버지만 아니였다면. 시야가 순식간에 반전되고 둔탁한 벽돌이 땅에 닿으며 부서졌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고 놀란 사람들의 표정과 경악어린 비명소리가 멀어져만 갔다. 따스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붉은 피가 시야를 덮고 종인은 쓰러졌다. 쓰러진 종인을 보고도 분을 풀지 못했는지 종인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종인을 구타했다. 일방적인 구타에 사람들이 말리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정신을 놓은 종인은 밀려오는 고통보다도 두려웠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막연한 두려움에 잠식해 종인은 정신을 놓았다.
" 응급환자! 응급환자입니다! "
" 출혈이 심각합니다! 지금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응급실에 실려온 한 작은 꼬마는 하얀천을 모두 붉게 물들였다. 산소호흡기를 매달은 채 수술실에 빠르게 수송된 꼬마는 꿈 속에서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자신의 볼을 보듬다 빠르게 자신을 내리쳤다. 눈을 깜박이자 시야가 빠르게 바뀌고 예전의 지옥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더러운 집 구석에는 자신을 향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가 보였다. 모든 것은 꿈이였나? 그 모든 것은 자신을 동정한 신의 장난이였나? 꼬마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점점 심장박동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많은 의료진들이 한 꼬마를 살리기 위하여 달려들었다. 급하게 뛰어온 꼬마의 할머니 또한 눈물을 흘렸다. 간절한 기도가 꼬마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종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정신적인 충격이 큰 탓이였다. 그런 종인의 곁에 매일매일 누군가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 넌 왜 항상 누워만 있을까? "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대답없는 종인에게 물었다. 좀처럼 눈을 뜨지 않는 종인이 야속했는지, 아이는 종인의 손을 힘주어 잡다가도 얼마안가 포기하고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원봉사로 매일매일 종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고마운지 매번 종인의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경아는 뭐 먹고싶은건 없니? 항상 우리 아이를 봐 주어서 고맙구나. 할머니의 인사에 아이는 항상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오고는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것이 1년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봄이 찾아와 병원의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망울이 터지듯, 종인도 어느날 다시 눈을 떴다. 모두가 포기했을때 종인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였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문제가 한가지 생겼다.
" 안녕? "
" ....... "
" 오늘 드디어 일어났네 "
" ...... "
종인이 백치가 되버린 것이였다. 기억도 하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의욕없는 종인의 모습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시간에 맡겨야 한단 것이였다. 막연한 대답에도 경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매번 책을 읽어주었다. 단조로운 높낮이를 따라 봄바람이 병실로 들어왔다. 살랑이는 머리카락위로 꽃잎이 내려앉자 종인이 손을 뻗었다.
" 파블리안은.... "
" ........ "
경아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종인이 꽃잎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것이 서서히 정신을 자극했다.
" 꽃잎...... "
감사인사를 하려던 경아의 입을, 종인의 목소리가 다시 닫아버렸다. 긴 시간의 끝에 종인이 다시 한번, 일어난 것이였다.
*
제가 너무 늦게 와버렸네요 ㅎ..ㅎㅎ ㅋㅋㅋㅋㅋ
여러가지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변명이지만 ( 침착하게 목을 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망초는 한편안에 끝내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하네요 ㅜㅜ 두편으로 나눠서 내일 나머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외전도 내일 찾아올게요~ 슬슬 미뤄뒀던 것도 다 정리해야겠네요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