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요, 교생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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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로 우리반 담당하셨던 이여주 쌤이랑 다른 교생쌤들 모두 마지막인거 알지? "
" 아, 엄청 아쉬워요. 쌤! "
처음과 많이 다른 공기. 여주가 처음 교생을 왔을 때, 홀로 문 앞에서 열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같이 반을 들어갔을 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4반 학생들.
" 여주쌤 한마디 하실까요? "
그리고 지금은 그 때와 많이 다른, 아쉬워하는 눈빛들. 남고라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생각외로 학생들과 잘 지냈다는게 새삼 느껴져 여주가 반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단연 눈에 띄는, 처음과 똑같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현빈의 모습. 여주가 현빈 쪽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현빈을 오랫동안 볼 수가 없었다. 현빈이 처음 만났을 때, 그 때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 달라진 건... 내 마음 뿐이니까.
" 저... 얘들아. 쌤이 되게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
" 아니에요! "
입을 모아 아니라고 말해주는 학생들의 반응에 여주가 웃었다. 한 달 동안 많이 정이 든 아이들이었다. 여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 때마다 쌤 웃게 해주고,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주고, 또 가끔은 내가 정말 선생님인 것처럼 잘 따라줘서 너무 고마웠어. "
" 저희가 더 감사하죠, 쌤! "
" 쌤~ 그냥 교생 계속 하면 안되나요! "
" 가지마요~ "
아쉬워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현빈의 목소리는 없었지만, 현빈의 눈빛만으로도 알 수가 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쭉 끊임없이 저런 강아지 같은 눈빛을 뿜어내던 현빈의 모습. 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었음에도 현빈에게 신경이 쏠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빈은 여주의 마음이 이런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 앞으로도 국어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겠지? "
" 네! "
" 마지막까지 공부 열심히 하라뇨, 쌤... "
회승의 절망어린 목소리가 들리고 교실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야, 회승아. 여주의 단호한 말에 담임선생님도 웃음이 터졌다. 자자, 여주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박수~ 박수 소리가 들리고 여주가 고개를 숙이며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덩달아 박수를 쳤다. 여전히 신경이 현빈에게 쏠린 채로.
" 이게 뭐야? "
" 저희 반 애들이 쓴 롤링페이퍼요. "
웬 도화지를 건네나 했더니 롤링페이퍼였다. 여주가 감동 받은 표정으로 학생들을 쳐다보곤 천천히 글을 읽으려 하자 회승이 아아, 쌤. 하곤 여주를 막았다.
" 사진부터 찍고요. 집에 가서 읽으세요. 더 막 아련해지고 감성적으로 읽을 수 있게. "
회승의 말에 여주가 롤링페이퍼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같이 단체 사진을 찍는 시간. 여주가 눈으로 현빈을 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옆자리에 섰을 것 같은데 현빈은 큰 키 때문인지 맨 뒤에 서서는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하나, 둘, 셋. 소리가 들리고 휴대폰 셔터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자마자 담임쌤 주위로 몰려들고 여주가 잠시 교탁에 올려뒀던 롤링페이퍼를 꺼내 들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다.
' 쌤 저희 반 담당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쌤 너무 착해요 ㅋㅋㅋㅋ! - 현민 '
' 체육대회 때 쌤 넘나 귀여운 것!! 쌤 덕에 저희 반 1등한 것 같습니다 - 우진'
' 저희 잊지 말아주세요 - 존재감 쩌는 Y.H.S (유회승) '
' 쌤이랑 수업할 때 하나도 안 졸리고 재밌었어요 ㅋㅋㅋㅋㅋ 진심입니다 - 태형 '
삐뚤빼뚤한 글씨로 짧게라도 쓴 글을 보니 여주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찡해졌다. 나만큼 얘네도 정이 많이 들었구나.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는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여주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천천히 읽고 있다가 종이 귀퉁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 좋아해요, 쌤. '
누가 썼는지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여주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권현빈. 현빈이다. 꾹꾹 눌러 쓴 건지 잉크가 번져 있는 반듯한 글씨체에 여주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게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여주가 고개를 들어 눈으로 반을 살폈다. 담임선생님 주위에 둘러싸여 여전히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 아이들, 저들끼리 낄낄대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권현빈.
여주가 현빈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현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여주는 가늠할 수 없었다.
" 수고했고, 가끔 놀러와요~ "
" 나중에 정교사 되면 같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
교무실 안. 여주와 여주의 친구들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고, 왠지 모를 찡함을 남기다지만...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성인이 돼서는 이런 경험이 잘 없었기 때문일까. 하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마지막을 겪은게 고등학교 졸업식이 제일 최근이 아니었을까.
"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들. "
" 우리는 뭐 맨날 시키기만 했죠, 잘해준 것도 없고. 교생쌤들이 더 고생 많았어요~ "
" 철부지 남자애들 맡느라 수고했어요. "
담담하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는데 왜 이리 찡한지. 아이들과 헤어질 때와는 새삼 다른 기분이었다. 결국 여주의 친구 중 한 명이 눈물을 터트렸다. 선생님들이 그런 친구를 보며 어이구, 나중에 진짜 선생님 돼서 학교 옮겨야 될 때는 펑펑 울겠네. 하고 웃으며 달래주셨지만. 여주의 가슴도 괜히 울고 싶어지는게 묘했다. 수학선생님이 여주와 여주의 친구들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교생선생님들에게 나눠주었다. 여주의 손에 박카스가 들렸다.
" 줄건 없고 이거 마시고 힘이나 내요. 임용시험도 많이 힘들고 벅찰텐데 이거 마시고 기운들 내라고. "
"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
" 이거 원래 수학 성적 오르거나 열심히 한 학생들한테만 주는거긴 한데, 쌤들도 합격 하시라고. "
수학 선생님이 웃으며 여주와 여주의 친구들을 다독였다. 그러고보니 박카스... 여주의 머릿 속에서 현빈이 제일 처음 박카스를 건넸던 날이 생각이 났다. 피곤에 쩔어 있을 때 불쑥 들이민 박카스. 현빈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준 날이었다. 받지 않으려 했음에도 결국엔 받아버렸지만. 여주가 손에 들린 박카스를 만지작거렸다. 현빈이도 수학쌤한테 받은 박카스라고 했었는데.
" 조심히들 가세요. "
" 네. 선생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 "
여주와 친구들이 꾸벅 인사를 하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 달동안 꿈을 꾼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선생님 소리도 이제는 정식교사가 되지 않는 이상 못 들어보겠지. 여주가 다시 손에 들린 박카스를 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를 완료한 듯 뿌듯한 성취감도 느껴지고, 아쉬움도 느껴지고. 이제 정말 끝이구나.
" 그만 좀 울어. 누구 죽었어? "
" 아.. 진짜.. 내가 왜 이러냐... "
" 여주가 우는게 아니라 네가 울었네, 결국. "
여주의 친구들이 울고 있는 친구를 달래며 킥킥거렸다. 아씨, 나도 울 줄 알았냐! 울고 있던 친구가 눈물을 닦으며 본인도 웃긴지 웃어버렸다. 여주도 덩달아 웃고는 얼른 가자, 하곤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정말로 이 학교에 다시 올 일은 없겠지. 그리고 현빈이도... 여주가 머릿 속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다. 안녕. 고마웠어.
쌤
혹시
벌써 퇴근하셨어요?
저 지금 학교 나왔는데
버스 타고 가시죠?
같이 가요
현빈의 카톡이었다. 친구들과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던 여주가 걸음을 멈췄다. 미친듯이 심장이 빨리 뛰는게 느껴졌다. 여주의 친구들이 갑자기 멈춰선 여주를 보고는 왜? 하고 묻자 여주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저기 있잖아. 하고 친구들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원래 뒷풀이 가기로 했는데...
" 나 지금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가봐야 될 것 같은데... "
" 헐 진짜? 그럼 뒷풀이 못 가겠네? "
" 진짜 미안. 갑자기 엄마한테 연락이 와서. "
여주가 두근대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말하자 여주의 친구들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쩔 수 없지. 집에 급한 일 생긴건데 뭐...
" 너희들끼리라도 재밌게 놀고 가. 나는... 빨리 버스 타고 가야겠다. "
" 그래, 알았어. 대신 다음에 다같이 한 번 술이나 마시자. "
" 응. 그러자. 나... 먼저 갈게. "
여주가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친구들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는 뒤를 돌았다. 여주의 친구들이 허겁지겁 가고 있는 여주를 의심없이 보내고는 술집으로 향했다. 여주는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기든 말든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현빈의 톡에 답장을 했다.
응. 쌤. 지금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고 있어. 거기 있을게.
키패드를 누르는 여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너무 빨리 걸었나. 숨이 차는 기분에 여주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게 빨리 걸어서인지 현빈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주가 눈으로 주위를 훑었지만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주가 숨을 고르고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현빈이가 언제 오려나, 여주가 휴대폰을 꺼내 현빈에게 연락을 할려는 찰나,
" 쌤 "
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주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향해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걸어오고 있는 현빈이 보였다. 여주가 고개를 자기도 모르게 돌렸다. 눈을 마주치면... 또 속절없이 심장이 쿵쾅거릴 것 같아서. 빨리 뛰어서 심장이 이렇게 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여주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현빈이 여주의 옆에 털썩 앉았다.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버스정류장은 이미 학생들이 거의 빠져나가 한산했고, 조용했다. 도로 위의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고 여주가 아무 말도 없는 현빈을 흘긋 쳐다보다가 저기, 현빈아. 하고 현빈을 불렀다.
" 그... 카톡 왜 한거야? "
여주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현빈이 차가 달리는 도로를 보고 있다가 천천히 여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주와 현빈의 눈이 마주치고 여주가 현빈의 시선을 피했다. 현빈이 여전히 여주를 보며 답했다.
" 마지막이잖아요. 오늘, 쌤 교생실습. "
" 어? 어어...그렇지... "
" 그러면 제가 더이상 카톡할 명분도 없어지고. "
현빈이 담담하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주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현빈을 흘긋 보고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현빈이 짧은 한숨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 제가 쌤한테 번호 달라고 했을 때, 기억나세요? "
" ... "
현빈이가 나한테 번호 물었던 날... 그것도 버스정류장에서였다. 그것도 여기서. 여주가 괜히 이상해지는 기분에 응. 하고 짧게 답하자 현빈이 잠시 말이 없더니 있잖아요. 하고 다시 도로 쪽만 바라보며 말을 했다.
" 물어보고 싶은거 생길 때 물어본다면서 번호 알려달라고 했잖아요. 제가. "
" ... "
" 근데 이제 쌤은 더이상 우리 학교 교생쌤도 아니니까 물어본다는 핑계로 카톡도 못하고. "
현빈의 낮은 목소리가 여주의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여주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을 하는 현빈을 계속해서 훔쳐보듯 흘긋거렸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또 홱 피해버릴 것 같아서.
" 저.. 쌤. "
" ...응? "
진지하게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여주가 결국엔 현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빈도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주를 쳐다보았다. 여주가 또 현빈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현빈의 시선이 여주에게는 아주 잘 느껴졌다.
" ...제가요. 어제 쌤이 어떤 남자 분이랑 같이 걸어가는 걸 봤었어요. "
현빈의 말에 여주가 놀라 결국 현빈과 눈을 맞췄다. 아니, 그건... 여주가 말을 하려다 진지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현빈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 그 때 그 분 맞죠? 예전에 제가 학교 앞에서 본. "
" ...맞긴 한데, 있잖아. 혹시 남자친구나 뭐 그런걸로 오해하는거면... "
"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
" ... "
" 제가 문제에요, 쌤. "
담담하게 말하는 현빈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여주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미간을 좁히고 현빈을 보자 현빈이 후우, 하고 짧게 한숨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쌤 옆에는 어쩌면 어린 남자 고등학생보다 쌤 또래의 훨씬 멋있는 대학생 남자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아, 물론 쌤이 절 받아주지도 않을거지만? "
현빈이 담담하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말을 덧붙이곤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니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현빈의 장난스럽게 웃으며 넘기는 모습에 여주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빈은 여주가 무슨 말을 하든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할 생각으로 자신을 부른 것 같았다. 여주가 긍정도 부정도 않고 그저 현빈의 말을 들었다.
" 그러면서 막 제가 괜히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지고. "
" ... "
" 저는 학생이고, 쌤은 쌤이니까. "
" ...현빈아. "
여주가 현빈을 불렀다. 현빈이 혼자 상처를 받게 두고 싶지 않았다. 동경이면 어쩔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현빈의 말에 그런 걱정이 아예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현빈은... 권현빈은 진심이다. 여주가 현빈을 불렀지만 현빈은 아무런 반응 없이 말을 할 뿐이었다.
" 제가 쌤한테 귀찮은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
혹시 현빈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속마음을 상상하고 상처 받은게 아닐까. 내가 네 마음이 어쩌면 동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너도 내 마음이 나를 귀찮게 하는 학생이라 여긴다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여주가 안타까운 마음에 현빈아, 하고 현빈을 다시 불렀다.
" 알아요. 쌤 착한 사람이라 그런 생각 안 하실거라는거. "
" ... "
현빈이 여주의 걱정되는 마음을 안건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 근데요. 쌤. 정말로 쌤 옆에는 저같은 애송이보다 더 잘난 남자가 어울리니까... 제가 막 쌤이 저랑 연애할 것도 아닌데 괜히 슬프고 그런거 있죠? "
" ... "
" 좋아한다고 말했던건 진심인데 어쩌면 그 진심마저도 귀찮지 않을까, 그냥 귀엽게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갑자기 오늘 롤링페이퍼 쓰다가 드는거에요. "
네 진심을 동경이라 착각했던 내가, 그저 어린 고등학생으로만 여겼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현빈아. 여주가 차마 현빈을 보지 못했다. 현빈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뒤늦게 깨달았으면서 현빈의 마음을 가벼운게 아닐까, 하고 오해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 그래서요. 혼자 생각해봤는데 "
" ... "
" 쌤만 괜찮으시면요... "
현빈이 조금 전까지는 잘 말하다가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고민에 잠긴건지 무엇인지 여주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현빈의 뒷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한 달동안 지내면서 현빈이 어떤 행동과 말들을 할 지 대충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큼 네가 나에게 너를 잘 보여주었으니까. 여주가 말이 없는 현빈을 흘긋 보고는 입을 열었다.
" 현빈아. "
" ... "
" 쌤은 괜찮으니까 "
" ... "
" 너 엄청 멋진 남자로 쌤 옆에 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테니까 "
" ...쌤? "
" 공부 열심히 할거지? 쌤이랑 CC한다며. "
여주가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현빈에게 말했다. 현빈이 여주와 눈을 맞추고는 얼떨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주가 용기를 내 현빈과 눈을 맞췄다. 너는 모르겠지, 현빈아. 내가 얼마나 너를 보면 설레고 있는지. 현빈아. 차라리 지금은 모르는 편이 나아. 나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고 싶지만, 이 정도가 딱 적당한거 같으니까. 여주가 계속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 진로 상담할 때부터 너 우리 과 와서 쌤이랑 CC한다며. "
" ... "
" 맨날 좋아한다 그러고, CC할거라 그러고, 열공할 거라 그랬잖아. "
" ...진짜에요? "
현빈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여주에게 물었다.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현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여주를 쳐다보았다. 저 놀리는거 아니죠? 그냥 저 달래려고 하는 말 아니죠? 현빈이 계속해서 되묻고 결국엔 여주가 정말로 웃음이 터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쌤이 너한테 거짓말 하는거 봤어? "
" ...아니...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쌤. "
" ...뭐가 말이 안돼. "
" ...그냥 달래려고 하는 말 아니에요, 정말로? "
" 그럼 넌 원래 무슨 말 하려고 했는데? 나만 괜찮으면 뭐? "
" ...아니... 저도 그 말 하려고 하긴 했는데... "
현빈이 우물쭈물하며 여주를 쳐다보았다. 그래, 어쩌면 현빈의 입장에서는 그냥 교생선생님이 현빈의 귀여운 마음을 돌려서 받아주는 척 하는걸로 들릴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지금 받아줄 수는 없다. 현빈은 고등학생이고, 자신은 어쨌거나 이제는 아니지만 교생선생님이었으니.
" 저 그럼요,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쌤이랑 같은 과, 아니 하다못해 같은 대학교라도 다닐 수 있도록 할게요. "
" 진짜지? "
" 대신 "
" ... "
" 꼭 약속 지켜야 돼요. "
" ...당연하지. "
현빈이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주가 현빈을 따라 일어서려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가방을 뒤지더니 박카스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현빈의 볼에 박카스를 댔다. 마치, 현빈이 처음 여주에게 박카스를 주었을 때처럼. 현빈이 깜짝 놀라 여주를 내려다보자 여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 현빈아. 이거 마셔. "
현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주를 보다가 어어,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주가 말을 덧붙였다.
" 그냥 먹어. 열심히 공부한다는게 기특하다는 의미에서 주는거니까. "
" ...헐. "
" 내가 오늘 마지막이라고 수학쌤이 이 박카스 주시더라. 니가 나한테 줬던 그 박카스. "
" ...쌤... "
현빈이 그제서야 활짝 웃고는 여주를 쳐다보았다. 여주가 현빈의 손에 박카스를 쥐어주고는 마지막으로 장난스레 말했다.
" 너 멋진 남자 돼서 오라고 들이대는거야, 지금. "
현빈아. 지금은 내 큰 마음을 이렇게 밖에 돌려 말하는게 다지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니까 다 알아 들을거라고 생각해.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어쩌면 너도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을 수도 있고, 나도 너에 대한 마음이 식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현빈아, 나는 너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소중하고 고마워서 결국에는 이렇게 통했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나는 생각해. 네가 멋진 남자가 돼서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을게. 지금 네 마음이 눈부시게 예쁘니까, 그리고 그걸 내가 다 알아버렸으니까 그걸로 만족할게. 현빈아.
" ...쌤. "
" 응? "
" ...좋아해요. "
타야 되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고, 현빈이 박카스를 쥔 채로 해맑게 말했다.
좋아한다고.
많이,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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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음편! 12편이 완결입니다.. ! 분량조절 실패로 인해 ㅋㅋㅋㅋㅋ
한 편에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가서... 12편으로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저번편에서 종현이도 현빈이도 여주도 안타깝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네.. 제가 못된.. 작가입니다.. 낄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호닉
샘봄 / 다녜리 / 롱롱 / 꾸쮸뿌쮸 / 우진진자라 / 뚜기 / 댕넨이 / 오레오 / 뉴리미 / 하늘연달 / 일오 / 옵티머스
님들 ! 제가 정말 많이 사랑해여,,,,,하뚜
이제 암호닉은 안 받을게요 (이제 다음편이 막화인데...ㅎ)
암호닉분들께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데 무얼 해드려야할지 모르겠읍니다...
음..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해주십시옹 다음화에 Q&A로..! 답해드리겠으빈다!!!
(질문 하나도 없으면 쿨하게 넘겨버리겟읍니다ㅎㅎ)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 신알신 해주시는 분들 + 추천 해주시는 분들 + 구독료 내고 늘 읽어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현빈이랑 여주랑 어떻게 될 지 마지막까지 많이 기대해주세용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번편은 마지막화 직전이니..! 제가 사랑을 담아 답글을 달아드릴게요 하핳
현빈이만큼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