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5-1.
“나 왜 차였을까…? 응? 내가 뭐가 부족해서?”
백현이의 입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정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어서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며 대충 녀석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경수를 살피니, 세훈이 녀석이 알아서 조절을 해주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그나저나, 경수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어제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혀서 그랬는지 몰라도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너무 아팠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으니 숙취는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그 생소한 기분과, 낯선 눈빛들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초라한 내 모습이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문득 고개를 들어 웃고 있는 경수를 보니 녀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뿐이다.
[집에 잘 들어갔냐?]
수아가 고마웠다. 정말로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봤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제 그 상황에서 나를 수렁에서 꺼내준 건 그 애였으니까. 수아가 아니었다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 상태 그대로 모든 눈빛들을 감당해내야 했을 것이다. 그 애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뭐야? 안 어울리게 이런 문자는?]
당황한 듯 보이는 그 애의 답장이 왔다. 하긴, 놀랄 만도 하다. 평소에 보내지도 않던 문자를 다 보내고….
[왜 시비야. 그냥 잘 들어갔냐고 물어보면 안 되냐?]
[ㅋㅋ넌 잘 들어갔냐?]
[덕분에.]
[ㅋㅋ누가 보면 내가 너네집 앞까지 모셔다 준줄 알겠다.]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동기는 아니었는데, 의외로 편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물은 안부였는데도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아참, 너 과제는 다 했냐? 다음 주 수요일까지 제출이던데.]
[헐. 너 아니었음 깜빡할 뻔 했다!땡큐땡큐!]
[됐어ㅋㅋㅋ]
아직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경수와 나를 본 게 맞는 건지 묻지도 못했는데…. 언제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고 계속 다른 얘기만 나누게 된다. 조심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는데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내내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 것도 좋지만은 않아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아, 변백현 진짜. 좀 흘리지 말고 먹어!”
“왜 자꾸 나한테만 뭐라 그러냐고!”
“박찬열이 고생이 많다..”
“고생 많은 거 알면 좀 도와주던지….”
“내가 왜. 그 옆에 앉은 니 잘못이지. 난 도경수 보모 노릇하는 걸로도 족해.”
오랜만에 모여서 그런지, 녀석들은 복잡한 내 마음도 모르고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에 앉아있으면서도 혼자 다른 곳에 동떨어진 사람처럼 굴었다. 마음이 어수선해서일까. 잘 어울리질 못하겠어서. 수아에게 물어볼 타이밍만 노리며 내내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았더니 경수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멀뚱히 나를 보고 있는 그 얼굴이 눈에 담겨오자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
“…….”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을 향해 웃어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액정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아야, 어제는 고마웠어.]
녀석을 만나면서 난관이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을 처음 만났던 열일곱은 어린 나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게다가, 그때에는 나름대로 백현이와의 갈등을 이겨내면서 이런 고비가 한두 번쯤은 더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고, 또 경수가 보란 듯이 이겨내고 나에게 달려와 주었으니 시련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에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았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아.. 고맙기는. 됐어. 뭘 그런 걸 다 고마워하냐.]
[아니야. 고마워. 진짜..]
[됐다니까 그러네ㅋㅋ]
친구라는 이름에 묶여있던 찬열이나 세훈이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받아주었고, 백현이 또한 결국엔 우리를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준면이 형까지 자연스럽게 대해주었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지내다보니 조금은 안이하지 않았을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실은 이런 생각하는 자체도 조금 슬펐다. 내가 경수를 사랑하고, 경수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째서 큰 일이 되어야만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만 되는 것인지.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고, 인정하기에는 더 어려운 일이어야만 하는 건지….
[야, 정 그렇게 고마우면 밥 한번 사라?]
[그래. 밥 먹자. 언제 시간 돼?]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수아와 약속을 정한 뒤,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수아가 본 게 정말 우리가 맞는 건지. 경수를 본 게 확실한 건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될 것 같다. 수아 덕분에 어제의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녀석부터 찾았다. 경수가 조금 풀린 눈을 하고서 옆에 앉은 세훈이의 잔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서 들고 있다. 혹시나 마시려고 그러나 싶어서, 얼른 그 잔을 빼앗아 들었다.
“…마시지 말라고 했지.”
“…….”
“쓰읍, 혼난다. 너.”
인상을 쓰며 말하니, 경수가 풀죽은 얼굴로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내 손에 쥐어진 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삼켜버렸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가 참 쓰게 느껴진다.
“…….”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경수에겐,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장담도 못하겠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속에서만 섞여왔기 때문일까. 나에게 닥친 첫 시련이 조금 힘겨웠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 건 이 모든 걸 견뎌내야만 녀석을, 그리고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一
“어, 왔어?”
아침부터 바쁘게 보냈다. 눈을 뜨자마자 다 잠기는 목소리로 경수에게 전화를 걸어 녀석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또 틈틈이 수업은 열심히 듣고 있는지, 밥은 누구랑 먹는지 신경을 쓰며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한가해진 덕분에 경수에게 더 신경을 많이 써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경수에게는 더 많이 신경써주고 싶었으니까. 여하튼 녀석이 학교에서 잘 지내는 걸 확인하고 수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약속 장소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더니, 약속 시간 5분 전에 수아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인다.
“너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좀 늦으면 비싼 거 얻어먹으려 그랬더니….”
“뭐 먹고 싶은데?”
“어쭈, 말하면 다 사줄 기센데?”
고마우면 밥이나 사라는 그 말이 빈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약속은 지키고 싶었기에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는 그 애에게 끈질기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냈었다. 어제, 어설프게 둘러말하느라 괜한 말을 많이 하곤 했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서 편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옆에서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며 시원하게 웃는 그 애가 나름대로 편하게 느껴졌으니….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모르겠다.
[또 자고 있지.]
[정신 차려!]
[열심히 공부합시다. 도경수씨.]
수아와 나란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내내 손에서 핸드폰을 놓질 못하고 경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 자.]
[수업 듣고 있으니까 걱정 마.]
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도착하는 녀석의 답장에 조금 웃었다. 또, 수업듣기 싫다고 핸드폰만 내내 붙잡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거짓말.]
[수업 듣고 있다면서 왜 이렇게 칼 답이야?]
내 문자에 들켰다는 듯 이리저리 주변을 살필 녀석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야, 김종인. 너 뭐해?”
“…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2년 만났다면서 아직도 좋냐?”
“…….”
경수와 문자를 하느라 수아와의 대화가 잠시 끊긴 모양이었는지, 내 어깨를 툭 치던 수아가 액정을 들여다보더니 조금 웃으며 말한다. 여기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당황한 채 얼른 핸드폰만 등 뒤로 숨겼다. 수아는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다.
“이야, 이거 몰랐네. 천하의 김종인이 이렇게 팔불출일 줄은?”
“…그런 거 아니야.”
“뭘 또 아니래. 나한테 다 들켰어, 너.”
“…….”
“걱정하지 마. 이 누나가 의리는 있어서 소문은 안낸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힘 있게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제가 먼저 앞서 걸어 가버린다. 그제야 등 뒤로 숨겼던 핸드폰을 꺼내어 경수가 보냈을 답장을 확인했다. 그런데 답장이 없다. 그렇게 까맣게 불이 꺼진 액정을 한번, 또 멀리 가버리는 수아를 한번…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애가 뒤를 돌아 내게 손짓한다.
“밥 먹으면서 말해줄게.”
“…….”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얼른 와!”
“어? 어어….”
경수야, 나 잘 할 수 있겠지?
[경수야.]
[어제 봤는데 또 보고 싶다.]
***
작년에 완결 낼거라던 너만시는 대체 언제쯤 완결낼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새해가 11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네요.
아마, 종인이 번외편은 14편 처럼 계속해서 1,2로 나뉠 것 같아요.
목표는 1월안에 완결 내기 입니다.
힘을 주세요 여러분!!!!!!!!
늘, 언제나 감사합니다^0^
아, 그리고 조만간 암호닉 정리할게요 TT
새로 신청해주신 독자님들 다 기억하고 있어요!! 걱정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