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쳤다.
결국 그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 다행히도 우산이 생겨 무사히 집에 올 순 있었는데.
새벽까지 비가 온다는 남자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비는 거의 오지않았다.
하지만 전에 비가 많이 내린탓에 어쩔 수 없이 몸이 젖어서 찝찝하긴 했지만 이정도면 양호다 생각했다.
오늘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덩그러니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빠도 고3 담임이니까 많이 바쁘겠지.
근데 웃긴건 고3은 난데 어째 오빠가 더 바쁜거 같애.
"아 배고파"
습관처럼 배고프다는 말을 내뱉곤 나는 방으로 가 가방을 바닥에 던지고선
젖은 교복을 그대로 입은채 침대에 누워버렸다.
오늘은 이리저리 뭔가 굉장히 꼬이고 꼬인일이 많아서 그런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태가 그닥 좋지않다.
분명 젖은 침대보고 오빠가 한소리 할텐데 말이야.
-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고 나와 쇼파에 털썩하고 앉았다.
또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한건지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말리던 머리를 내버려 두고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는데
비 소리가 그닥 좋지만은 않았다.
생각에 잠긴 나는 자신의 우산을 나에게 주고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남자의 우산이 있어 쓰고 오긴 했다만
남의 물건을 어쩌다보니 가지고 온게 영 찝찝한게 아니였다.
그 남잔.
사근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말해 오던 모습이 예뻤던 남자였었다.
아, 예뻤다고 하면 실례일려나.
당시에는 비 오는 그 상황에 정신이 없어서 느끼지 못 했는데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번 더 보고싶을 만큼 기분 좋게 웃던 남자였다.
아. 한번 더 보고싶다.
"헐 미친"
한창 다시 남자의 생각에 잠시 빠져있을 때 정신이 번뜩하고 돌아왔다.
내가 뭐라는건지. 이렇게나 금사빠였나.
더이상 만날일 없는 남자였고 분명 한번 본 남자였다.
근데 내 머릿속에 왜 금세 사로잡혀버린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남자의 사소한 친절이 감사해서 그런걸거야.
단지 그 뿐일거야.
근데,
나는 왜 우산을 돌려주고 싶은걸까.
웃는거
참예뻤는데,
-
"이걸 음식이라고"
퉤.
오빠는 바쁜 와중에도 아침에 요리를 해놓는 편이지만
게으른 나는 아침을 먹지 못 하는 편이였다.
그래서 아침에 만든 요리를 저녁에 와서 혼자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느낀다.
오빠는 음식솜씨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배고픈데"
라면이라도 없나 싶어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그 흔한 계란 조차도 없었다.
오빤 요린 실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재료가 비약해서였나 싶다.
늘 저런 음식이 나오는 이유가 있는 냉장고였다.
"뭐야 왔다 안 왔다"
편의점이라도 갈까싶어 밖을 보는데 비는 또 그쳐 있었다.
-
"4400원입니다"
도시락 계산을 끝내고 편의점을 나섰다.
아직까지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이 뒤숭숭한게
꼭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같아. 발걸음을 빨리했다.
설마 또 비가오겠어 라는 생각에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탓이였다.
비가 올 것 같은 예상은 딱 맞아
아파트 주차장에까지 왔을 때
또 보슬비 처럼 비가 조금씩 내려왔다.
차라리 비가 계속오던가 아니면 아에 그쳐버리던가.
사람 놀리기라도 하듯이 계속 비는 왔다 안왔다 한다.
또 꼼짝없이 비를 맞게 생겼지만 거의 집에 다왔서 다행이였다.
"..으씨"
다왔다 생각해 뛰어왔음에도.
여기저기 찝찝하게 옷이 젖어버렸다.
나오기 전에 샤워하고 나왔는데.
찝찝함에 또 샤워해야된다는 사실에
살짝 귀찮음이 몰려왔다.
이래서 비가싫다는거야.
"어?"
엘레베이터에 왔을 때 먼저 온 사람이 있길래 나는 옆에서 서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살짝 물기가 있는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조용히 서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쳐다보자.
"우산?"
"..어"
그 남자였다.
나는 살면서.
백마탄 왕자님을 기대한 적은 없었다.
또는 환상적인 첫만남을 바란적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만남속 평범한 사람들 만남 같은 거여도
누구가와 함께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참 좋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나는 그와의 첫만남의 꽤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을한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얼굴이였지만 꽤나 익숙한 느낌의 남자의 모습이
보자마자 딱 누군지 알수있었다.
고작 그거 한번 봤다고 내 뇌에 이렇게나 깊숙이 자리잡았던 걸까.
나는 그남자의 선한 인상을 좋게 받아들였나 보다.
아니면 진짜 다시 한번 더 보고싶었나봐.
"같은아파트 살았네"
"..아 안녕하세요.."
"비 맞지말라고 우산 준건데 왜 또 비를 맞고다녀요."
"아.. 비 올 줄 모르고 나갔다가.."
"춥겠다"
걱정스럽게 말해오는 그의 말에 괜히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다.
누군가의 걱정스러운 말은 오빠 외에는 들어본적이없으니까.
괜히 쑥쓰러워 멀뚱히 내려오는 엘레베이터 숫자를 쳐다보고있는데
"어디다녀와요?"
이 순간이 어색해지고 싶지않은 모양인지 계속 말을 걸어오는 남자다.
"편의점이요"
"응? 편의점 아까도 편의점 이였잖아요."
"아까는 우산사러 갔었고요. 이번에는 먹을 것 좀 사러 갔다왔어요"
이라면 비닐봉지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여줬다.
남자는 아하 라는 말과 동시에 고개를 두번 끄덕였고
곧이어 엘레베이터 문이열렸다. 우리는 함께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몇 층가세요?"
나는 17층을 누르고 버튼과 가까운 내가 대신눌러주려 몇 층이냐고 남자에게 묻자.
혹시1701호살아요? 라고 남자가 다시 말해온다.
헐 어떻게 알았데
"헐 어떻게 아셨어요?"
"거긴 남자혼자 살텐데?"
"아~ 저희오빠에요. 전 얼마전에 들어와서 같이 살아가지고.."
"진짜 신기하네"
"뭐가요?"
내물음은 띵하는 엘레베이터 소리에 묻혔고
17층에서 열리는 엘레베이터 문에 나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어쩔수없이 궁금함을 안고 안녕히계세요 인사와 함께 엘레베이터에서 내릴려고했는데
따라 내리는 남자다.
"뭐하세요..?"
내 말이 조금 웃긴가.
따라내리는 남자의 행동에 뭔가싶어.
뭐하냐고 물었다.
우산이라도 돌려받으려는건가 싶었다.
"전 여기살아서요. 1702호."
웃음이 참 예뻐서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던
이상한 이 남자는.
내 옆 집 사람이였다.
댓글은 정말로 큰 힘이 됩니다.
오랜만에 반가워요 여러분 보고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