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환상
제15장 ; 마음
숲을 걸어가는 내내 사람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간간이 장난치듯 공격해오는 '그것'들을 피할 때 제외하고, 아무도 잡담을 하지 않았다.
'숲 전체 결계가 약해진 것 같아. 기운이 좋지 않아.'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언제 또 어디선가 공격해올지도 몰라, 긴장한 채 걷고 있을 때 옆에 어깨에 무언가 닿았다.
깜짝 놀라 크게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니, 덩달아 놀란 원우가 손을 들고 눈을 꿈뻑댔다.
"아, 미안해.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아냐, 긴장해서 그런가 봐."
그래. 원우는 할 말 있는 사람처럼 입 주위 근육만 들썩였다. 말하면 빨리할 것이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슬슬 답답해져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왜? 그냥 말해. 괜찮아."
".. 왜 진작 말 안 했어?"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 말이야?"
"응."
언젠가 다들 모르고 싶어도 알아야 했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혼란스러워서 말을 하지 않았다. 무서움도 한몫했다. 이 세계를 내가 희생하면서까지 지킬 자신도 더욱 없었다.
그 수많은 이유들이 얽혀, 결국에는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지만.
그러나 터놓은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지훈이 했던 얘기에서 용기를 얻은 걸지도 모른다.
"글쎄."
"..."
"근데, 어제 터놓은 뒤로 나도 생각이 바뀌었어."
"무슨..?"
"심판을 끝내는 건 나밖에 없다고."
"티스야."
"이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넌 살아있ㄴ.."
"네가 나 찾아주면 되잖아."
원우가 멈췄다. 차마 얼굴은 보지 못하고 신발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찔리는 것도 없는데, 그저 마음이 무거웠다.
"무모한 소리 하지 마."
"..."
더 이상 붙이는 말없이 원우는 한 걸음 나아가 곧 나까지 지나쳤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속상했다. 그만큼 도와주고 싶은 건데.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을 순영이 보고, 다가왔다. 수많은 일을 겪었는데도 순영의 웃음은 여전히 맑았다. 나도 그렇게 웃을 수는 없는 걸까.
"위험하잖아. 내가 같이 걸어줄게."
"고마워."
"많이 힘들어? 표정이 안 좋은데."
표정을 차분히 살피던 순영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미간을 찌푸린 걱정스러운 낯빛이 되었다.
"순영아."
너도 내가 무모하다고 생각해?
"응?"
"..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내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이야."
목구멍으로 넘어오지 못한 채 삼킨 말은 다시 꺼낼 수가 없었다.
미안한데, 난 너희가 사라지는 거 보고 싶지 않아.
티스를 지나쳐 지훈 옆에 선 원우가 순영을 툭툭, 쳤다. 티스 좀 부탁해.
갑자기 온 탓에 영문을 모르던 순영도 꽤 굳어있는 원우의 표정에 물어보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는 뒤로 달려갔다. 원우가 지훈의 팔을 잡자, 지훈은 그대로 빼내고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됐어. 부축 안 해도 이제 걸을 만 해."
"진짜 괜찮겠어?"
"그나저나, 뭐냐."
"그냥."
"싸웠냐?"
".. 아냐, 그런 거."
싸운 건 정말 아니었다. 도망쳐 온 게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더 이상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다가는 정말로 화를 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을 수가 없었다.
"너 지금 좀 위험하다."
"무슨 뜻이야?"
"글쎄. 단순히 인간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싶은 감정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님 말고.
어깨를 으쓱이며 온전히 걷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지훈의 머리통을 위에서 내려보던 원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훈이 무슨 뜻으로 한 얘긴지 이해했다. 그저 우리와 다른 존재이니 지켜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처음과는 달리,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싹이 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더 없어. 그게 끝이야."
"그래. 뭐든 간에 마음 정리 잘하자고."
더 이상 꽃을 피우기 전에 여기서 그것의 존재를 부정했다.
너도, 나도 덜 아프려면 그게 좋겠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스타티스입니다.
그동안 너무 아이들이 치른(...) 일들이 많아, 쉬어가는 타임에서 이번 편은 티스와 원우의 감정을 좀 담았답니다!
그동안 대놓고 꽁냥대던 적도 없었는데 마음이 아프지만.. 아직 완결 아닌 거 아시잖아요 여러분 ㅎ ㅎ ㅎ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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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
대시, 자몽몽몽, 제로나인, 늘보냥이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