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연애 :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w.아린류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일이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이고, 끊임없이 꼬인다, 이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내 인생에서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꼬인 날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순간이라고 대답할 자신이 있다. 지난 주말, 지금 내게 닥친 이 모든 시련의 시작이었다.
덜컥, 덜컥, 드르륵. 그날따라 아침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아침 9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주말 아침이었다면 잠에서 깨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시간이었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을 수록 또렷해오는 정신이 오늘 늦잠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 들려오는 소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니 오늘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는 것 같았다.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뻐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렸다. 이미 일어난 이상 그냥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지갑을 챙겼다. 집에서 나와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옹성우....? "
설마, 아니겠지 하며 부른 그 이름에 돌아본 그 남자는 아니길 바랐던 내 심정을 무참히 짓밟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인간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생각이 한꺼번에 들었다. 이름은 왜 불러가지고 진짜 왜 꼭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아무도 안부른거야, 하고 애써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뒤를 돌아서려던 찰나,
" 오랜만이네, 이여주 "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여기 사나 봐 "
" 어? 아, 어 "
어? 아, 어래. 진짜 바보 같다.
" 나 오늘 여기 이사 왔어. 1203호 "
와, 진짜 옆집이구나. 나는 그 순간 이사를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니까 난 화창한 주말 아침에 누군가 이사오는 소리에 잠을 깼고, 간단히 요리 재료를 사러 가다가 내 첫사랑이자 9년 전의 전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리고 그 전 남자친구는 지금 내 옆집으로 이사를 오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금, 나는
" 마케팅 팀 팀장 이여주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오늘부터 디자인 팀 팀장을 맡게 된 옹성우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
월요일 아침부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 기존에 있던 디자인 팀 팀장이 그만두는 관계로 새로운 팀장이 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도 외국에서 꽤나 유능한 사람을 스카웃 해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게 옹성우 일 줄은 몰랐을 뿐.
" 자, 대충 팀장들끼리는 인사된 것 같고, 회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회의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원래는 매주 금요일에 했어야 할 회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월요일 아침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진행이 연속이었다. 나 역시도 어지러운 정신을 정리한 후 회의에 임했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내가 옹성우 때문에 더이상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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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길어지는 회의에 모두 슬슬 지쳐가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집중을 한다고는 하지만,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집중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자꾸만 늘어지고, 내려오는 눈꺼풀은 물론 슬슬 고개까지도 춤을 막 추기 시작했을 때, 간신히 정신을 붙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 ...... "
" ...... "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눈을 마주쳤다 피하면 괜히 한번 쯤은 더 고개를 돌리게 되는, 진짜 나를 본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그런 호기심. 이겨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결국 이기지 못한 그 호기심은 나를 또 한 번 눈을 맞추게 만들었다. 진짜 이 망할...호기심. 왜 하필 내 맞은 편에 앉은 건지, 그것 마저도 원망스럽다.
" 마지막으로 공지 하나만 말씀드리고 오늘 회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회의를 마친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삭막했던 회의실 분위기가 순간 환해지며 다들 하나 둘 속으로 환희를 외치고 있었다.
" 다음 프로젝트는 마케팅 팀과 디자인 팀 콜라보로 준비해주세요, 월요일 아침부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
나만 빼고, 말이다.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먼저 나가시는 과장님을 붙잡았다. 이미 우리 팀 자체만으로도 업무는 넘쳐났다. 게다가 남의 부서와 콜라보는, 정말 싸우기 딱 좋은, 실마리였다.
" 저, 과장님, 저희 팀은 이번 프로젝트는 디자인 팀 단독으로 하는 것 아니었나요?....... "
" 아, 이팀장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나도 어쩔 수 없어 "
" 그렇지만 저희 팀은 이미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
" 어차피 그건 장기 프로젝트 아닌가? 아예 프로젝트를 다 맡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팀원 몇명 시키면 되잖아? "
" 아, 네 알겠습니다.... "
우리 팀원이 무슨 자기 노예인가. 당신이 말하는 그 ' 장기 프로젝트 ' 때문에 우리 팀원들은 주 3회는 꼬박 꼬박 돌아가며 야근 중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내쉴 수 없는 한숨을 삼켜내며 자료를 정리했다. 일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또 어떻게 전해야 할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게다가,
" 이여주 팀장님 "
" 네? "
"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얘기하시죠 "
" 네..? 뭐를.... "
" 프로젝트요. 팀장님 팀이랑 저희 팀이랑 콜라보하는 "
이렇게 연속적으로 덮쳐져오는 상황은 더더욱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