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An Episode 04월 내가 너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 중 나쁘지 않은 건 없었다. 너는 생각보다 웃음이, 장난기가, 수줍음이 많았고, 또 내 생각보다 귀신에 대한 겁이, 최민기 일당(3월,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애들)의 장난에 속는 일이 많았다. 너는 그런 애였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오늘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왔다. 언제나 그랬듯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붙잡고 한참 끙끙대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책상 위에 등장하는 이온음료 한 캔과, "...?"
"점심 먹었어요?" 내 앞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묻는 너. 그나저나 점심은 왜 묻는가 싶어 시계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분명 열 시..." 왜 때문에 지금 한 시 사십 분? 시계를 보고도 시간을 믿지 못하고 두 눈만 꿈뻑이고 있자 너는 눈을 크게 휘어접어 웃으며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먹으러 가요, 저랑."
"여기 김치볶음밥 완전 맛있어요." 사실 원래 나는 집이 도서관과 가까운 편이라 도서관에 공부하러 올 때면 밥은 늘 집에서 먹었지만, 같이 점심을 먹자는 너의 말에 오늘 처음으로 도서관 식당이라는 곳을 와 봤다. 마치 휴게소 식당을 연상케 하는 많은 메뉴들에 한창 고민하던 찰나 네가 하나의 메뉴를 제안했고, 솔직히 뭐가 어떻게 나오는지 잘 알지도 못했던 나였기에 네가 제안한 걸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치볶음밥 두 개를 시키고 식당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이 공간이 처음이라 낯선 시선으로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쁜 나와는 달리 너는 앉자마자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두 컵 가져오더라. "몇 시에 집 갈 거에요? 누나 나갈 때 같이 나가야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고, 3월, 그날 집으로 가는 길처럼 너와 나의 거리는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데 비해 그날 느꼈던 정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편했다.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모 브랜드 떡볶이의 순한 맛은 커녕, 비빔밥에조차 고추장을 넣어 먹지 못한다. 김치도 마찬가지. 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가 이걸 먹겠다고 한 걸까. 심지어는 딱 봐도 굉장히 시뻘건 게, 김치 뿐만이 아니라 고추장까지 들어간 것 같은데. 섣불리 밥에 손댈 생각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네가 밥을 먹다 말고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어? 아니. 먹을 거야." 설마 매운 거 좀 먹었다고 죽기야 하겠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죽지 않았다. 다만 죽는 줄 알았다. 매운 걸 못 먹을 뿐만 아니라 위가 약해 자주 체하는 나였기에, 물과 함께 억지로 삼켰던 음식들이 역류할 것만 같아서 점심을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주말이라 가족들은 집에 계셨고, 엄마는 안색이 파래진 날 보며 놀라셨고, 아빠는 나더러 좀 자라고 말씀하셨으며, 최민기는 또 매운 걸 먹고 그러냐며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쯧쯧거리며 잔소리를 해댔다. 아, 좀 자야겠다. 그 전에 네게 문자 좀 보내고. 이미 집에 와버렸지만 그래도 먼저 간다고 말은 해야겠지. ㅡ나 속이 안 좋아서 먼저 갈게 2:40 ㅡ미안해 ㅠㅠㅠ 2:40
"야. 좀 일어나 봐. 괜찮냐?" 나를 깨우는 민기의 목소리에 비몽사몽한 채 몸을 일으키면, '벌써 일곱 시다. 엄마랑 아빠는 약속 있다고 나갔어. 저녁 먹자.' 라는 말을 던져두고는 내 방을 나갔다. 그래, 밥은 먹어야지. 아 맞다. 내 휴대폰 챙겨서 나가야지. 중요한 연락 왔을 수도 있으니까. "거실 소파에 앉아 있어. 죽 데워 줄 테니까." "죽?" "너 속 안 좋아서 밥 못 먹어. 데워준다고 할 때 받아먹어." 예, 아무렴요. 친히 데워주신다는데. 녀석의 말에 고개를 돌려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메세지함에 들어갔다. 어, 너의 문자다. ㅡ뭐 잘못 먹었어요? 2:41 ㅡ아 매운 거 못 먹는 줄 몰랐어요 미리 말해주지 누나 ㅠㅠㅠ 3:15 ㅡ죄송해요 진짜 ㅠㅠㅠ 3:15 ㅡ최민기가 누나 호박죽 좋아한다 해서 최민기한테 죽 전해주라 했어요 5:30 ㅡ얼른 나으세요... 5:30 어라라, 죽? 마침 다 데워진 죽을 들고 온 민기가 죽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호박죽이다. "야, 이거..." "빼는 거 없어. 다 먹어. 이거 먹고 약도 먹어야 해." "약도 있어?" "강동호가 죽이랑 같이 사왔어. 감사인사는 나 말고 걔한테 해." "오올..." "입 열지 말고 먹기나 해." 얼른 먹으라 재촉하는 탓에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네. "야 근데 최민기." "입 열지 마. 시끄러." "입 안 열고 어떻게 먹냐?" 최대한 얄미운 목소리로 대꾸한 뒤, 두 숟가락. "...아 얄미워. 너 아픈 사람 맞냐?"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세 숟가락. "다음에 동호한테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나 죽이랑 약도 챙겨주고." 호박죽은 달아서 좋은 것 같아. 네 숟가락. "문자부터 해. 자기 때문에 아픈 거 아니냐고 얼마나 찡찡댔는데." 다섯, 여섯, 일곱... 나는 그렇게 네가 준 그 노란 호박죽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지금 문자 할 거야."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아마도 너와 나의 사이도,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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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우주입니다!!! 어 생각보다 많은 분이 봐주시구 신알신도 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은데 막상 제가 여러분 기대에 부응할만한 실력을 가진 건 또 아니어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많아요 그래도 처음 쓰는 글잡이니까 히히 예쁘게 봐 주세요❤ 아, 그리고 음. 댓글 하나하나에 모두 답글을 달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답글 내용이 비슷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 요걸로 통일할게요 소중한 댓글 하나하나 다 읽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 감사드려요 :) 그럼 전 뮤비 스밍 돌리러 이만...! ?경 뉴블 컴백 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