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은 박지훈이었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 OOO가 싫다던 나와 황민현을 끌고 나와 굳이 소개까지 시켜주던, 유일하게 과에서 아낀다는 그 후배라는 남자 녀석. 나에게 하는 것과 달리 박지훈에게는 서스럼 없이 어깨동무를 하는 걸 보고 잠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썩 내키지 않아하던 황민현과 내가 박지훈을 봤을 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음료수 하나 들이키는 OOO에게 꽂히는 시선이... 나와 같다는 것. 그저 아는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닌 내가 OOO를 보는 눈빛과 같다는 걸, 그 자리에서 유독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기 전, 가장 경계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옆에 굳이 김재환을 붙여놨던 거고, 얼마 뒤 박지훈이 휴학했다는 소식에 나름 안심했던 것 같은데.
ㅡ 누나!
ㅡ 지훈아!
밝은 목소리로 뛰어오는 걸 봤을 때 느꼈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정말 불행히도, OOO는 유독 박지훈에게 친절했다. 1학년 때 안 좋은 일을 겪은 뒤로는 사람을 멀리 하는 것 같았는데, 박지훈에게만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딱히 물어볼 타이밍이 없어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작은 스킨십을 하며 얘기 하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았다. 일부러 보란 듯 꼈던 깍지가 자연스럽게 풀렸을 때 느껴지는 허무함이란. 박지훈의 팔을 붙잡고 얘기하는 OOO를 보며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박지훈의 시선이 내게 닿은 것 같았지만, 불안감을 숨기기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OOO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밝은 얼굴로 박지훈을 대했다. 쟤도 알겠지. 내가 자신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넷이서 만난 날, 그 때 흐르던 묘한 공기를 저 녀석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OOO 옆의 나를 봤을 때의 그 얼굴이 마냥 밝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까.
ㅡ ..선배도 계셨네요?
ㅡ 참, 지훈이 넌 몰랐지! 성우 제대했어. 일주일은 넘은 것 같은데, 널 볼 기회가 없었네.
다정한 목소리가 박지훈에게로 향하는 게 참 싫다. 나를 향할 것만 같았던 눈길이, 저 녀석의 눈과 함께 맞닿는다는 게, 정말 싫다. 내가 제대한 걸, 저 새끼가 알아서 뭐해..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성격 같으면 당장에라도 꺼지라고 화를 내고 싶은데, 박지훈을 대하는 OOO의 태도가 너무 다정해서, 그런 모습을 했다가는 그 다정함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저지를 수가 없다. 그렇게도 말했는데. 남자는 안 된다고. 박지훈은 그 경계대상에서도 가장 위험한 존재인데.
내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는지, OOO는 동그란 눈으로 내 팔을 잡아끈다. 그 말랑말랑한 손길 하나에 딱딱했던 마음이 조금 유해지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싶었다.
ㅡ 누나, 그럼 답장 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ㅡ 응. 자꾸 확인 못 해서 미안해. 시간 봐서 전화라도 줄게.
ㅡ 역시 누나밖에 없어요.
꼭 연락주세요! 그 말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건 착각인지 뭔지. 박지훈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선배님도 나중에 봬요, 하는 말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그 눈길이 정말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인상을 썼다. 뒤를 돌때까지 OOO에게 남겨두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가 부득, 갈렸다. 대체 저 새끼가 뭔데 이렇게 아끼는 건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그 와중에 옹성우, 가자. 하면서 내 검지 손가락 하나를 잡아 당기는 OOO의 행동에 또 한 번 사르르 녹는다.
아.. 이런 내가 싫다..
* * * *
우리가 다니는 행동 반경이 좁은 건지, 정말 세상이 좁은 건지, 의도치 않게 카페에서 다시 박지훈을 마주쳤다. 다행히도 OOO는 자리에 앉아 있느라 박지훈을 보지 못 한 것 같았다. 커피와 같이 먹을 빵을 고르는 와중이었다. 진열대에서 케이크를 둘러보던 내 옆으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잠시 고개를 들었는데, 그게 박지훈일 줄이야. 박지훈도 나를 보고 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눈동자. OOO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고 박지훈의 시야를 막았다. 어딜 찾아가려고. OOO한테 가는 순간, 넌 죽는거야. 이를 악물었다.
ㅡ 지금 뭐하세요?
ㅡ 뭐하냐니. 지금 네 눈 막고 있잖아. 빡치게,
..누굴 찾으려 들어. 살벌한 목소리를 내며 박지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나보다 어리다고 해도, 박지훈에게 친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내게 적인 녀석에게 좋은 말로 타이를 이유도 없었다. 이미 OOO의 마음이 나에게 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박지훈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순식간에 변하는 표정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포기할 마음이 없다는 건가, 지금.
ㅡ 그래봤자죠.
ㅡ ..뭐?
ㅡ 선배가 누나 옆에 있어봤자라구요. 자기 때문에 누나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알긴 아나.
ㅡ ..야, 박지훈.
ㅡ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이 선을 더 넘어가면, 내가 어떻게 할 지 몰라. 닥치고 꺼져. OOO 앞에서 못 볼 꼴 보이기 싫으면.
박지훈은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몰라도, 박지훈에게 위협적인 경고가 됐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박지훈은 작게 숨을 내쉬더니 뒤를 돌아 나가는 것 같았다. 힐끔 바라본 OOO의 뒷모습은 이곳을 못 본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제가 물러날 것 같아 보이세요?
박지훈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방심하지 마세요.
누나는 이미 저한테 방심하고 있으니까요.
그 기고만장한 자신감에,
기분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 * * *
옹성우의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나빠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설마 조금 캥기는 구석이 있긴 있지만 그건 아닐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캠퍼스에 있을 때만 해도, 굳이 강의가 끝나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손을 부여잡고 끌고 가는 뒷모습이 신나보였는데. 그 기분 좋은 발걸음에, 온갖 창피함을 다 받았어도 나 또한 기분이 좋았는데. 중간에 있었던 일이라고는 학교를 빠져나가는 길에 지훈이를 만난 것뿐이었다. 요새 얼굴을 자주 못 본 탓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만약 그게 안 좋았던 거라면 옹성우 성격에 짜증난다며 투덜댔을텐데. 카페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옹성우는 밝은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음료와 케이크를 들고 오던 순간부터 굳어진 얼굴이 펴지지가 않는다. 대체 이유가 뭐야.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옹성우가 화를 낼 때 나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다. 내게는 마냥 해사하게 웃어주는 얼굴이라, 이런 감정 없는 표정을 볼 때면 복잡하고 걱정만 가득해진다. 옹성우는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몸짓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같이 발걸음을 맞춰 주는 게 아닌, 거의 질질 끌려가는 수준이었다. 그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나는 오히려 화가 날 것만 같았다. 같이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에게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옹성우 작은 표정 변화에도 신경 쓰이는 난데. 나는 옹성우의 손을 놓았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옹성우는 나를 놓친 걸 알았는지 우뚝 서서 뒤를 돌았다.
ㅡ 너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화가 났는지 목소리가 잔뜩 굳었다. 옹성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복잡한 건지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이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그새 벌어진 옹성우와 내 사이가 생각보다 멀었다. 몇 걸음 앞에 놓인 옹성우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또 다시 원점인걸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착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너를 대했는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너와 있으면, 행복한 순간보다 이렇게 뒤숭숭한 마음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옹성우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싶은 것 뿐인데.
우리 사이는 이게 마지노선인가 싶어 손이 떨렸다. 옹성우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지금 마주했다간 상처만 받을 것 같아 신발 코만 바라보고 있는데, 옹성우의 손이 나를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탓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올려다 본 옹성우의 뒷머리가 찰랑거린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다급해보였는지. 뭐라 소리치려던 목소리를 눌렀다.
한참을 뛰듯이 걷던 옹성우는 주위를 둘러보다, 사람들이 없는 골목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움에 잔뜩 당황만 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옹성우는 나를 가득 끌어안았다. 이러려고 사람들 없는 곳으로 온건가.. 놀라서 쿵쿵거리던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가쁘게 내쉬는 옹성우의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흐느끼는 것처럼, 불안정하다.
ㅡ 불안했어..
난 항상 불안해. 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매번 불안해. 네 옆에 있는 남자들, 그게 누구건 간에 널 보자마자 호감을 느낄 걸 아니까. 내 눈에만 예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옹성우는 횡설수설,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두 팔을 들어 옹성우를 끌어 안았다. 체격 차이 때문에 여전히 내가 안겨 있는 꼴이었지만, 내가 옹성우를 안아주듯이 세게 끌어안았다. 옹성우가 놀란 듯, 몸을 움찔거린다. 옹성우의 이런 작은 행동 때문에 다시 웃음이 비집고 나올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7년 간 너를 봐 온 내가 그렇게 미심쩍나. 가면 갈수록 끌어안는 강도가 심해지자, 나는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파, 옹성우! 옹성우가 끌어안았던 몸을 떼고 나를 바라본다. 조금 뾰로퉁한 표정이기도 했다. 그 표정에 더 웃음이 터져서 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옹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도 피식 하고 웃었다.
ㅡ 왜 그런 바보 같은 걸로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래.
ㅡ ...하 ...넌 진짜 자각 좀 해야 돼.
네 주변에 있는 남자 하나하나 걱정 해야 된다고! 한숨을 푹 내쉬며 나름 진지한 얼굴로 소리 치는데, 그것마저 귀여워 보이는 나는 중증임이 틀림 없다. 아이고, 그랬어요? 장난스럽게 옹성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귀가 확 붉어진다. 그게 참 귀엽기도 하고, 반응이 귀로 나타나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옹성우의 귀를 만지작거리는데, 갑자스럽게 벽으로 밀쳐진 탓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조금 거칠어진 목소리였다. 옹성우가 몸을 바짝 붙여왔다. 틈없이 붙는 몸 때문에 열이 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뒤통수를 감싼 손이 너무 따뜻했다.
옹성우의 입술이 눈가에, 코에, 입가에, 그리고 입술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다.
정신 차리기도 힘들 만큼 얼굴에 쏟아지는 키스에 옹성우의 옷자락만 간신히 쥐고 있었다.
ㅡ 다음부터 그러면.. 안 봐줄거야.
짧게 이마에 뽀뽀한 옹성우가 씨익, 웃는다.
뭐, 뭘.. 안 봐준다는거야.. 대체..
숨이 가쁠 정도로 옹성우가 다가와서, 얼굴로 가득하게 퍼진 온기가 옹성우에게서 전해진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어쩜 좋을까.
큭큭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 정수리에 턱을 올리는 옹성우가 좋아 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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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잘 못 쓴 탓일까요.. 재환이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엉엉)
메타메타몽몽입니다! 원래 낮에 찾아뵙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이렇게 늦어벌였네요.. 이마로 땅 치겠습니다..
여전히 댓글 달아주시고 찾아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은 한 분씩 답해드리고 있는데, 그러다가 시간이 촉박하다 싶으면 후다닥 글 쓰러 오느라 다 못 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죄송해요 ㅠㅁㅜ 엉엉..
그리고 이번 화에 지훈이가 등장했습니다~ (와아)(함성)(박수)
박력터지는 연하로 나올 예정인데.. 첫 등장이 박력이 너무 없는 것 같아 걱정 태산이쥬..
아직 완결을 보기에는 조금 시간이 있으니 흥미로운 전개라 생각하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암호닉>
1 / 고사미 / 설렘옹청 / 파요 / 사용불가 / 민주눅 / 예그리나 / 요정 / 댄싱쥬스 / 댕구리 / 월광 / 옹옹 / 말랑 / 1217 / 김떡순 / 초초 / 다민 / 10
짱짱맨뿡뿡 / 에인젤 / 백제쌀국수 / 라온하제 / 피크닉 / 에투 / 빵빰 / 햄아 / 디디미 / 후또란 / 1116 / 곰탱이 / 스무날 / 째니재환 / 자몽
옹스더 / 옹옹 / 회장복숭아 / 지오 / 쑤쑤
; 암호닉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없으신 분들 꼭 말씀해주셔야합니다 .. 제가 댓글 하나씩 보면서 다시 찾아 쓰긴 하는데.. 눈이 고자라.. ㅠㅠ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