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 망향
어서오세요, 정신과 의사 3년차 김 너탄입니다.
w.psychiatrist
7.
그래, 그때의 태형이에 비하면 지금의 태형이는 훨씬 안정 되어 있는 상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거야. 그때의 태형인 정말 힘들었으니까. 속내를 누구에게 마음대로 털어 놓을 수 없었고, 곁을 내줄 수 도 없었지. 태형이와 내가 긴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말이야. 태형이는 누구보다 외로운 아이였어, 태형이에게 다가갈 때 마다 몸의 상처는 하나 둘 씩 생겼을지 몰라도 태형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지.
"태형아, 선생님이랑 얘기 해줄래?"
"꺼져, 좆같으니까."
"그냥 네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싫어?"
"말로만 내뱉는다고 해서 나아지는건 아무것도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차갑게 나를 바라보면서 말하는 태형이에게 눈물 가득해 보였던건 내 착각이였을까, 태형인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다리를 덜덜 떨다가, 이내 손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으면서 아이처럼 행동했지. 그때 깨달았어, 태형이의 기억이 자꾸만 태형이를 괴롭히고, 그 기억 속에 가두는걸. 태형이를 안아주러 다가가면 힘껏 밀어버려서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발목에 금이 가거나, 마루 바닥에 쓸려서 화상을 입은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계속 다가가고, 다가가다 보면 이런 방법들로 자신을 보호하느라 혼자 두려움에 떠는 태형이가 보였거든.
"열어,열어줘, 아으, 하지마……,아…,으,"
"으윽, 엄마아, 엄마, 은이야, 미안해. 미안, 어흐,흑."
손에 피가 나도록 깨물면서 발은 동동 굴렀지.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며 허공을 응시하면서 엄마와 은이를 애타게 찾는 태형이는, 참 아픔이 많아서 톡 건들기만 해도 우수수 무너져 한없이 흘러내릴 것 같더라. 그 아픔을 내가 다 감당 할 수 없으면서 자꾸 아이를 자극 시키는 걸까 라는 생각에 밤을 지새운 적도 있지만, 나는 선생님이잖아. 내가 누구보다 태형이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나를 스스로 다독였던 것 같다.
8.
태형이는 이곳에 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 -남준이가, 아니 RM씨인가. 태형이를 어느날 둘이서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전까지-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곤. 밥을 먹을 때에도 항상 맘에 안든다는 듯 밥만 바라보다가 그냥 방으로 다시 올라가기 일쑤여서 방에다 밥을 가져다주곤 했었는데, 어느날 부턴 밥을 먹었었더랬지. 의아해서 RM씨를 쳐다보면 그저 윙크만 뿅뿅 날릴 뿐. 밥을 처음으로 다 먹은 태형이는 그냥 방으로 쌩 올라가버렸지. 너무 신기해서, RM씨한테 물어보니.
"나 나간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뭐야?"
"별 일 없었는데, 잠깐의 대화?"
"와, 태형이 진짜 실망 실망 대 실망. 내가 그렇게 말 걸땐 대화도 안해줬는데!"
"아픈 환자들끼리의 동질감 이랄까, 껄껄."
"누가 환자야? 김칫국 그만 쳐마셔라."
"뭐야, 우리 태형이 형 밥 먹는거 몰래 구경하고 있었어?"
"지랄, 꽃에 물 주라고 말하려고, 아 씨발,그거 신경 쓰라고!"
"응, 태형이 말 듣고 자알- 신경 쓸게-. 걱정마! 진짜 생각해보니 내 잘못인걸."
"어."
"태형이가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네."
부엌에서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꺾는 복도의 계단에 앉아있던 태형이가 발끈, 할 때 귀여웠더라고. RM씨랑은 대화도 좀 하고 마음도 조금 연 것 같은데, 나한테는 왜 그럴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또 내가 의사로써의 자격이 너무 없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어. 바로 개업을 하고 경험도 없으면서 환자를 받고, 남준이만 3년째 그대로인것도…,내가 좋은 의사 였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싶어서. 그래서 우울감에 빠져서 감정 속에서 한창 휘둘리고 있을때 이미 태형이는 방으로 올라갔고, RM씨가 손으로 '딱-!'소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난 그 한낱 감정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부엌에 계속 멍하니 앉아있었겠지.
"선생님, 왜 멍 때리고 그래."
"어, 아, 아니에요."
"흐음, 자세히 보니까 멍 때리는 것도 내 스타일 같기도."
"다 먹었으면 접시나 싱크대에 갖다 놓으세요."
"네,네. 선생님."
9.
RM과 밥을 먹고 난 후엔 상담을 시작했었어. 당시 RM은 굉장히 여유로운 듯 보여도 무언가에 강박을 느끼는 듯 했고, 그 무언가를 난 찾아내려 애썼지. RM은 대화는 좋지만 상담은 싫다며 항상 상담할 땐 입을 꾹 다물고는 종종 몬이 뒤로 숨기도 했더랬지. RM에게 물었었어. 'RM은 좋아하는게 뭐에요?', '너.', '다른건요.', '여기.'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어, 이곳을 좋아하는게. '싫어하는건 뭐에요?', '차, 여행, 그리고 여기.', '여기는 왜 좋으면서 싫을까요?', '그냥…, 나를 부정하면서도 인정하는 곳이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 상담실 안의 공기는 적막했고, RM씨가 나를 바라보는 눈속에 여러 감정들이 맞물려 울컥 울컥 터져 나오려는 것 같았고, RM씨가 눈을 감으니까 눈물이 툭툭 흐르는데 그 눈물 조차 부정하려는 RM씨의 마음이 나는 조금도 헤아릴 수 없을만큼 깊은 것 같아서.
"나는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정착하고 싶어."
"내가 기억하는 것들이, 내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
"자꾸 내 기억을 묻지 마, 두려워서 그래. 두려워서."
RM씨가 새어나오는 감정을 자꾸만 자제하느라 손이 덜덜 떨리고, 웃는 얼굴에서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고, 목소리는 떨리지만 표정 만큼은 차분하게,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눈빛에 남준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 조차 안됨이 앞에서 울고 있는 RM씨를 자꾸만 안쓰럽게 만들어서 힘들었었어. 일그러지는 표정 속에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제어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함이, 자꾸만 새어나오는 기억의 조각들이 고통스러움이 담겨 있더라. RM씨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그대로 책상으로 고꾸라져 정신을 잃었어.
"만약 내가 그 여자를 계속 밀어냈다면 달라졌을까요, 선생님……"
여행,차,가족. 세개의 키워드로, 또 아이들의 이야기로 내가 어디 까지 알아 줄 수 있었을까, 어디까지 알아 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많아지네……, 나의 어리석음이 잘못된 길로 남준이를 거세게 이끌었음이.
10.
"김태형 환자, 상담실로 들어가실게요!"
몸을 덜덜 떠는 태형이를 강제적으로 상담실로 이끌려 팔목을 붙잡은 간호사를 세게 밀치고는 옥상에 쭈그려앉아 훌쩍 훌쩍 울겠지. 병원 사람들이 쫓아 올라와 울고 있는 태형이를 양쪽에서 붙잡으면 태형이가 발악 했을거야, 하지 마세요. 무서워요. 그리고는 어느샌가 팔에 놓여진 진정제를 맞고는 몸이 축축 처지겠지…, 그렇게 다시 꽉 막힌 1인실로 들어가겠지…. 문은 닫혀있고, 열 수 없게 창살로 막아 놓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흰 눈이 소복히 쌓여서 참으로 예뻤겠지. 태형이는 생각했어, '겨울이다. 달을 빨리 볼 수 있을거야.' 그렇게 달이 떴음에도, 진정제 때문에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는 창문 가까이 갈 수 없을거야. '아아……, 달이야. 달아, 달아.' 달을 보면서 그나마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하겠지…, '누가 문 좀 열어줘, 제발! 제발!' 외치고 싶어도 자꾸만 눈은 감기고 잠이 오겠지…………, 누가 나를 좀 꺼내줬으면 해.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지긋 지긋 하잖아….
-
"김태형 환자, 오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죠?"
"……, 은이가 죽었어.엄마가 죽었고…, 그 씨발새끼도 뒤졌지……."
"은이는 누구에요?"
"여동생."
"…, 그래서 태형씨의 기분이 어땠어요?"
"은이는 내가 죽어야 한다고 했지."
진정제를 수방 맞고, 여러번 잠이 들고나서야 상담실에 온 태형이는 몽롱한 상태로 의사와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은이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덤덤하게 이야기 하다가 의사의 책상에 있던 커터칼을 뽑아 제 팔을 긁고, 또 긁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지경에 이르렀을때 의사는 인상을 지으며 부를거야. '간호사! 진정제!' 진정제를 놓고 태형이가 힘이 점점 빠질때, 커터칼이 바닥에 툭 떨어질 때, '어후, 이거 왜 하필 나한테로 돌린거야? 원래 담당 박쌤이였지? 하여튼, 지가 하기 싫은건 다 나한테 넘겨. 빨리 데리고 나가. 어떻게 나도 넘길데를 찾아보던가 해야지.' 태형이가 진정제 과다 투여로 건강 조차 위험해 질 때 즈음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겠지.
11.
TV를 보던 몬이는 옆에서 책을 보던 나에게 물었었어. '던댕님,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 좋은거 아니에요?', '좋지.', '근데 왜 여기선, 친엄마가 아니라고 시러해요?', '새로운 가족은 그만큼 낯설고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거야.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아서 저렇게 표현하는거야.', '그래서 형아가 엄마한테 그랬나봐요.', '형이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 '으음, 그냥 엄마한테 엄마라구 한번두 안해써요! 그래서 엄마 막 울 때마다, 내가 달래조써요.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받을까바!' ……, '잘했네, 우리 몬이.', '우응, 아 머리 아파. TV 그만 볼래요.'
"…몬이야, 선생님한테 와."
"졸려서어, 그래서 방에 가꺼에요……."
"선생님 좀 안아줘. 부탁할게."
"………."
몬이가 나를 안아줘서, 몬이의 떨리는 몸을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였어. 몬아, 울어도 돼.
psychiatrist
안녕하세요. psychaitrist 입니다.
아이들의 과거를 조금씩 풀고싶은데 저는 그냥 한번에 후두둑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조금씩, 한다고 했는데 분량 조절을 잘 한건지…
다음날 부턴 윤기도 얼른 데려 올게요. 전개가 너무 느리다 싶으면 작가에게 마구 뭐라고 해주세요.
저는 독자님들의 피드백을 먹으면서 사는 요정…, 아니 작가 입니다 XD
이번편은 너무 암울한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지만 독자분들은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환한 이야기들이 줄을 잔뜩 서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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