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여주님. 이제 화 풀렸어요..?"
저녁 때 쯤, 훨훨 날아간 내 150만원을 그리워하며 티비와 함께 맥주 한 캔을 하고 있는데, 요정이 슬쩍 옆에 앉았다.
"아니."
"미안해요..나 이제 공부했어요. 화폐의 가치에 대해서"
이제 배우면 뭐하니.. 이미 날아간 내 돈...흑..
"그래 잘 했어."
"이거..돌려드릴게요."
요정이 내민 건 카드였다.
생각해보면 이 요정은 자기 물건을 하나도 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정. 나가자"
"네? 왜요?"
"저 신인가 뭔가 암튼, 다니엘 옷만 사고, 너 옷은 안 샀잖아. 그 신발도 엄청 불편해보이는데."
"저는 정말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빨리 안나올래?"
"저..저는 다니엘님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 어이!!!! 다니엘!!!! 빨리 나와!!!!"
"여주님..!! 다니엘님을 그렇게 방해하시면 안돼요.."
"방해는 무슨. 3초 준다. 데리고 나와."
"그렇지만.."
"하나. 두울.."
요정에 의해 다니엘이 끌려나왔다.
"왜 불렀는가"
"지금부터 요정 옷 사러갈거니까 빨리 나가자"
"요정 옷?"
"응. 너는 아까 너 옷만 사고 요정 옷은 하나도 안샀지?"
"..."
"나가자. 요정아 먼저 나가서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놔"
"넵!"
요정이 내 얼굴 한번 다니엘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고는 먼저 현관을 나갔다.
나는 다니엘에게 흘리듯 말하고 나왔다.
"지금 쓰는 돈은 다 너가 대가를 치러야 할 돈이야"
**
"음..이것도 괜찮고, 색은 어느 색이 괜찮을까 요정?"
"나는..이 색이요!"
핑크?
골라도 자기 같은 색만 고르네.
"좋아 이걸로 사자."
"이것도요???"
내 돈이 아닌 양 펑펑 써버렸다.
요정이 자기 짐들을 들고 헤벌쭉 웃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안무거워?"
"네! 모두 제 것인데요 뭘~!"
"아냐. 너무 무거워 보인다."
"아녜ㅇ.."
"다니엘. 뭐해? 들어 빨리"
"??나 말하는 것이냐?"
"그럼 여기 다니엘이 당신 말고 또 있나요?"
"여주님!!"
"분명히 댓가를 치른댔을텐데~ 설마 신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겠.."
"이리 내거라"
결국 그 많은 짐들은 다 다니엘이 들고 집까지 가져갔다.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뒤에서 키득키득 거렸다.
150만원 플러스 알파로 돈 쓴 만큼 아주 잘 써먹어야겠어.
평소에 요정을 그렇게 부리더니 내가 대신 복수해 준 기분이잖아?
**
"한 건당 5천원. 갚아야할 돈은 170만원. 총 340번 내가 시키는 걸 하면 된다. 동의하지?"
"...340번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쪽에서 멋대로 긁어버린 150만원은 안아깝고?"
"마트에서 쓴 돈은 삭감해줘야하는 것 아니냐"
...아 들켰네 얼렁뚱땅 포함하려고 했는데.
"ㄱ...그래! 그러면 그거 20만원 빼고 300번으로 하지!"
"..알겠다."
"아까 1번 해서 299번이고, 혹시라도 너한테 시킨 일을 요정에게 미룬 걸 들켰을 시에는 초기화. 어때"
"좋다. 내가 신으로써 그렇게 졸렬한 짓은 하지 않는다 맹세한다"
"좋아. 계약 성립."
다니엘도 나도 서로를 향해 썩소를 지었다.
오호라 쟤도 뭔 속셈이 있나보지?
절대 지지 않아.
우리 둘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건 불쌍한 요정밖에 없었다.
**
[둘]
다음 날 아침, 다니엘은 여주가 제안한 소원 300회를 금방 탕감시킬 방법을 찾았다.
분명히, 지훈에게 자기 일을 미루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었다.
이런 멍청한 여자같으니라고.
"요정."
"예. 다니엘님.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앞으로, 무조건 내가 시키는 일만 이행하도록 해. 모든 일은 내 허락을 받고 하도록.
기간은 내가 그만해도 된다 할 때까지. 이건 절대명령이다."
절대명령이란, 요정의 직급상승, 즉 요정이 다음 계급인 정령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신의 공식 명령이다.
요정이 신의 절대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업무능력 미달에 해당하고,
이처럼 중요한 명령이기에 신들 또한 요정에게 1년에 5번 이상 내릴 수 없는 명령이다.
요정에게 절대명령이란 목숨보다 귀한 명령이다.
그 이유는, 요정이 절대명령을 한번이라도 어길 시 인사고과 점수를 저조하게 받게 되고,
그렇다면 정령으로의 진급이 영영 불가능해져서 결국엔 소멸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지훈이 다니엘을 모시면서 처음으로 받은 절대명령이었기에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뭔가 평소랑 달랐다.
집에 그득해야 할 맛있는 냄새가 나질 않고, 청소도 하지 않았는지 바닥이 전처럼 뽀송뽀송하지 않았다.
이 요정자식, 오늘 파업을 했나.
"요정!!!"
어랏? 불러도 안오네?
"요정!!!안 튀어나오냐!!"
잠시 뒤에 요정이 쭈뼛거리면서 다니엘의 방에서 나왔다.
뭐야. 왜이리 피곤해 보이는거야?
"여주님.. 필요하신거 있으신가요.."
"왜 오늘은 집청소도 안되어있고 저녁준비도 안해놨어?"
"다니엘님께서 내버려두라고 하셨어요"
"??"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벙쪄있는 사이에, 다니엘이 방에서 나왔다.
"나한테 부탁을 해. 그러면 요정에게 시키도록 하지. 앞으로 요정에게 시킬 일 있으면 먼저 내게 말하도록."
ㅋㅋㅋㅋㅋ소원권을 빨리 없애기 위해서 기껏 생각한게 요정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이었어?
바보인가?
"아니. 요정 말고 너한테 시킬건데?"
"...뭐?"
"굳이 왜 요정을 써? 요정이는 쉬라고 하고, 너가 해. 분명히 말했지? 시종에게 미루는 졸렬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
크 한 방 먹였다!!!
"다니엘씨. 당장 청소하고 내 저녁을 준비해주세요. 시간은 30분 줄게~"
**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뭔가 쎄했다.
청소를 해서 더 엉망이 된 거실과,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역한 냄새와, 도무지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 음식..
"자. 먹어."
내가 당했다. 생각해보니 이 자식은 집안일 무식자일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요정이가 다해주는데, 잘 할 리가 없지...
"우욱..."
"왜~ 맛이 없나?"
"아오..."
"내게 부탁을 하면 지훈이가 당장 음식을 내올텐데, 물론 청소도 하고."
"후..."
"아니면, 바쁜 집주인이 집안일까지 전부 해도 될 듯 하다. 물론 그 결과는 우리가 오기 전처럼 사람의 집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
역시...신이 괜히 신이 아니다
완벽하게 말렸다 말렸어.
"알았어. 요정이한테 시켜줘."
"대신, 조건이 있다."
"뭔데..또.."
"하루에 두 건씩 빼줘."
"뭐??"
"청소하기, 요리하기. 이렇게 두 건"
"그러면, 앞으로 숙박비 내고 살아. 하루에 두 건."
"...한 건."
"...오케이."
요정의 집안일은 정말로 완벽했다.
그래서 무대뽀로 나가라고 하기엔 우리 집의 원래 상태가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지금 왜 요정이가 저렇게 피폐해진건지 알려줘."
요정의 상태는 심히 안 좋아보였다.
딱 봐도 어제와 너무 다른 모습. 가만히 서서 부동자세로 다니엘만 바라보고 있는게 수상했다.
"너, 요정이한테 협박했지."
"그런 건 아니고, 다만 중요한 일이 걸려있어서 그러는거다."
"괴롭히지 마. 좀."
"이것도 시키는 거냐. 괴롭히지 말라고? 그렇다면..."
"그건 아니야"
"알았다. 내 시종은 내 관할이니 그럼 신경쓰지 말거라"
참 나. 시종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불쌍한 우리 요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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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과 댓글 부탁드립니다^^!
모두모두 메리크리스마스되세요~
♥암호닉♥
[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