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이 긁히는 소리가 조그맣게 났다. 태형이 도화궁(桃花宮)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소리였다. 늘 그렇듯 ‘공주야!’하고 자신만만하게 도화궁으로 들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 ‘공주’가 마루에 앉아 조는 모습을 문지방을 넘을 때 가장 먼저 봐 버렸다. 태형의 시선은 태형을 기다리다 잠에 빠져버린 공주의 내려앉은 속눈썹을 향했다. 충분히 태형의 발소리를 누구도 듣지 못했음에도 태형은 구태여 소리를 더더욱 낮추려 애썼다. 옆에서 공주를 지키는 정국은 태형을 보았음에도 공주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 데다, 이젠 황제까지 태형의 행방을 알아버렸으므로 무어라 별다른 관여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별달리 그녀의 존재를 위협할 적도 없으니 공주 마마의 말동무나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기도 했다.
“…….”
태형이 공주의 앞에 다가서며 숨소리를 죽였다. 하고픈 말이 많았다. 사흘간 뭐하면서 보냈는지 궁금했다고, 오늘도 심심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 사흘 동안 꽤, 보고 싶었다고. 그런 태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앞에서 단잠에 빠진 공주가 괘씸해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할 심산이었다. 잠에 취한 얼굴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울상이 되는 맑은 얼굴이 꽤 기대가 되기도 했다. 태형이 그런 공주를 깨우려 손을 뻗다가,
“…….”
그만 두었다. 태형의 입 꼬리에 은은하게 미소가 걸렸다. 여기서 자면 추울 텐데. 그런 걱정을 은연중에 하고 있음에도 깨울 생각을 못했다. 마루에 앉은 공주를 똑바로 보기 위해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옆에 선 정국이 태형의 눈치를 보며 ‘깨워 드릴까요.’하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태형은 그런 정국의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 공주의 허여멀건 얼굴만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불현 듯 그런 공주의 얼굴을 쳐다보던 태형이 몸을 일으켰다. 공주가 잠들어 버려서 하릴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정국의 시선이 태형의 움직임을 쫓았다. 태형이 향한 곳은 그녀의 옆자리였다. 곤히 잠든 공주의 하얀 볼을 찔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기둥에 기대어 잠든 조그만 머리통을 천천히 자신의 어깨 위로 옮겼다. 따끈한 뺨이 태형의 어깨에 닿았다. 고른 숨소리가 어깨 부근에서 나지막하게 들렸다. 그것마저도 좋아지는 따뜻한 겨울이었다.
황녀(皇女)
十五
황안전(皇安殿)에서 호위도 마다하고 도화궁(桃花宮)으로 ‘공주야!’하고 뛰어 들어 온 김태형을 기억했다. 온기가 빠져 마당에 떨어진 시린 검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애가 타 없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똑같이 해맑게 웃으면서. 나, 이제 여기 계속 올 수 있어! 목소리가 조금 들떴다. 그런 생생한 기억을 붙잡고 사흘을 기다렸다. 신시에 온다기에, 신시의 종이 치기도 전에 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방이라도 쪽문 너머에 있는 김태형이 어두운 도포와 대비되는 밝은 표정으로 도화궁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고뿔이 또 들면 모두가 걱정하지 않겠냐는 무거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못 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
심연 속에 홀로 누웠다. 그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옷이 물을 푹 먹은 듯 발버둥 쳐도 몸이 쉬이 움직이질 못했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얕게 들렸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숨이 막히고 눈가가 뻑뻑해질 즈음 볼가에 따끈한 온기가 닿았다. 폐부 깊숙이에 시원한 공기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었다. 옆에 앉아 애꿎은 다리를 허공에 휘젓고 있는 김태형이 눈에 들었다.
“…엄마야!”
발작하듯 고개를 그에게서 떼어냈다. 분명 기둥에 기대어 있었던 것 같은데…. 꽤 오랫동안 김태형의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었는지 볼가에 아직까지 비단결이 선연했다. 김태형이 놀란 눈으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귀 떨어질 뻔했다, 공주야.”
“아, 그, 그게….”
“신시에 온댔는데 잠이나 자고 말이야.”
“……아니, 그건,”
“나 기다렸어?”
김태형이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나를 바라보는 새카만 눈동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순간을 연상시켰다 말문이 무언가 걸린 듯 막혔다. 얼굴이 불 붙은 듯 화끈거렸다.
“왜 얼굴 빨개져?”
“…….”
“나 기다렸냐구.”
기다린 건 맞는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 언저리에서 빙글빙글 굴렸다.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꺾었다. 김태형이 대답을 바라듯 몸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에 반응하듯 몸을 반대쪽으로 슬쩍 뺐다. 올곧은 시선이 볕에 그을리듯 따끔거렸다.
“나 기다렸냐니까?”
“…….”
“대답 안 할 거야?”
“…….”
“왜 나 안 봐.”
혼날래? 큼직한 손이 시야에 들어찼다. 따끈한 손바닥이 볼께를 아프지 않게 눌렀다. 고개가 김태형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돌아갔다. 눈을 맞출 수가 없어서 눈알을 또르륵 굴렸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도 시간이 흘렀다.
“나 안 기다렸구나?”
“…….”
“난 기다렸는데.”
따끈한 손과 내민 몸이 한 순간에 쑥 빠져나갔다. 말투에 조금의 아쉬움이 배였다. 별안간 김태형이 앉은 마루에서 몸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김태형의 동태를 눈짓으로 몰래 쫓았다. 좁은 마당 가운데까지 홀로 걸어간 김태형이 슬쩍 몸을 돌렸다.
“공주가 나 안 기다렸다니까 가야겠다.”
“……네?”
“여기까지 왔는데 별로 안 만나고 싶었다니까, 뭐. 할 수 없지.”
향하는 곳은 도화궁의 쪽문이었다. 신발이 질질 끌려 좋지 않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어어, 가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움직였다. 쪽문 밖으로는 김태형을 쫓을 수가 없어서, 불편한 옷차림에도 급히 몸을 옮겼다. 저기, 그게…. 나지막히 말을 건네며 도포자락을 잡았건만, 매끈한 비단결은 여유로이 움직이는 김태형을 막을 수 없게 했다.
“…가지 마요.”
급한 마음에 앞서 가는 김태형의 손을 꾹 쥐었다. 짤막한 손가락 마디 사이로 커다란 손이 가득 찼다. 큼직한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놀란 기색은 금세 평정을 찾았다.
“왜?”
“…으니까.”
“응?”
“…다렸으니까.”
“뭐라고?”
“아, 기다렸다구요!”
괜히 낯이 간질거려서, 김태형을 향해 씩씩대며 소리쳤다. 왜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들어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번에 제대로 있지도 못하고 가서 사흘 동안 기다리다가 앉아서 잠들었다구요. 김태형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해맑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 왜 기다렸어, 공주야?”
거봐, 안 듣는 거 맞잖아.
“응?”
“…그, 그러는 그쪽은요!”
“나?”
반박하듯 되물었다. 김태형이 손가락으로 제 가슴께를 찌르며 말했다.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휘감았다. 어째서 김태형을 볼 때마다 이리 몸을 주체할 수 없겠는지 모르겠으나 이는 내가 들은 어떤 말들 속에서도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태형도 그러겠거니 어림잡았을 뿐이었다. 분명 그리 생각했다.
“난 공주 좋아하니까.”
공주는? 김태형이 반쯤 돌린 몸을 완전히 틀어 나와 눈을 맞췄다. 이렇게 쉽게 대답할 줄 몰랐는데…. 김태형을 이겨먹겠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지. 이젠 달리 말을 돌릴 방도도 찾지 못해 머리를 한참 굴렸다. 내가 김태형을 왜 기다렸더라. 쉬이 생각이 나지 않는 이유는 몸을 멋대로 주체할 수 없게 하는 이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일지도 몰랐다. 얼굴 전체의 화끈거림이 온 몸으로 전이됐다. 오른손이 유난히 뜨끈했다. 눈을 돌리다 봤다. 김태형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내 오른손.
“…엄마야!”
놀라 김태형에게서 손을 훅 뺐다. 손마디 사이로 찬바람이 새었음에도 땀이 배었다. 김태형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기를 뺄 줄 몰랐다. 흐흐, 낮은 웃음소리가 조그만 궁을 메웠다.
“왜애.”
“…….”
“공주도 나 좋아해?”
얼굴이 조금 가까워졌다. 심장 고동 소리가 온 몸을 울렸다. 이러다 김태형한테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마저 했다. 불붙은 듯 화끈거리는 몸이 찬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듯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을 앙 다물었다. 좋아하냐니. 아니,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 열여덟 해 동안 처음 겪는 일이니.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수많은 생각이 좁은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김태형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지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너 나 좋아하는구나.”
“…….”
“…….”
“아, 몰라요!”
얼굴을 손으로 폭 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람이 귀를 간질였다. 겨울이 아닌가, 착각할 만큼. 귓가에 함께 안착한 웃음소리가 청량했다. 왜애, 왜 그러는데에. 김태형이 말을 늘어뜨리며 어깨를 쿡쿡 찔렀다.
그때 도화궁 쪽문이 열렸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마당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확인했다. 김태형의 고개가 크게 꺾였다.
다시, 오라버니가 도화궁을 찾았다.
“방해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아, 아닙니다, 폐하.”
김태형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였으나 오라버니의 표정 속에 무거운 것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았다. 무엇이 고민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며칠 간 고민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 태가 만연했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라버니를 똑바로 쳐다봤다. 조금 앞에 선 김태형은 황제의 예를 갖추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였다. 얕은 미소가 오라버니의 얼굴에 깔렸다.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주겠습니까.”
“……예?”
“…….”
“예, 폐하.”
김태형이 낡은 쪽문을 빠져나갔다. 김태형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매서웠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음에도 오라버니는 말을 아꼈다.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듯 했다. 고개가 내 쪽을 향하고 있음에도 두 눈이 오롯이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너 저 사람 좋아하지.”
“…어?”
“진심이야?”
의도가 모호했다. 다음 말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며 답을 유보했다. 무거운 공기 속에선 하얀 입김만이 흩어 퍼졌다. 마른 침이 넘어갔다
“난 아니었으면 좋겠다.”
“……응?”
“진심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얼굴이 일그러졌다. 닿은 바람이 시렸다.
“…무슨 뜻이야?”
“…내가 허락한 거 아는데,”
“…….”
“그만 만났으면 좋겠다, 저 사람.”
너도 그 사람 많이 좋아하는 거 아는데, 잘라냈으면 좋겠어. 더 깊어지기 전에.
소리가 낮게 깔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모두 똑같은 질문을 내뱉었다. 대체 왜? 어째서 내가? 무엇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들은 생각을 헤집었다. 사고를 정리했다.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다듬었다.
“…무슨 소리야.”
“…….”
“오빠 설마 이번에도 또,”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말꼬리가 무참히 잘렸다. 분위기가 낮아지는 태양와 함께 가라앉았다. 앞에 선 까만 신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다. 험히 다룬 치맛자락이 질질 끌려 발끝에 닿았다. 한 나라의 황제인 오라버니는 여태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 할 거면 들어갈게.”
“잘 들어.”
“…….”
“김태형,”
사실 나를 숨기기 위해 그래야만 한다는 변명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달리 내가 상처받을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것이었으면 했다. 오라버니의 말의 무게가 꼭 그 ‘무언가’일 것만 같았다. 김태형의 이름을 듣자마자 걸음이 멎었다.
나 사실은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김태형 좋아하지 않아. 날 휘감는 이상한 감정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어. 그게 좋아하는 감정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확신이 없어. 아직 김태형한테 좋아한다고 하지도 않았는걸. 그래서 어떤 말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근데 왜, 어째서.
“…여기 결혼하러 오는 거야.”
이렇게 가슴이 저린지 모를 일이었다.
‘네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랑.’
‘…….’
‘네가 끼어들어서 달라질 건 네가 받을 상처뿐이야.’
석진이 걸음을 늦췄다. 뒤따르던 내관이 석진의 속도를 맞췄다. 석진이 본 공주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큰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하고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방금 전, 정국에게 공주를 잘 모시라는 말을 전했다.
석진은 황궁의 누각을 지나치며 선(先)황인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을 떠올렸다. 수척해지는 아버지가 양반가의 사람을 입궐하라고 명한 것을 들었었다. 그래서 석진의 시야에 비치는 누각에서 그런 대화를 나눴다. 석진은 선황의 늙은 목소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으나 그 날 나눈 대화는 또렷하게 기억했다.
‘외부인을 입궐토록 하셨다 들었습니다.’
‘……사법부 대사 댁 아들이 벌써 스물이라는 구나.’
‘역시 혼사 자립니까?’
모든 조각이 들어맞았다. 공주의 침소이긴 하나 그럼에도 대궐인데, 급제하지도 않은 자가 이곳을 쉬이 드나드는 것. 선황 때부터 현황(現皇) 때까지 이상할 만큼 혼사가 느리게 진행되는 것. 공주를 찾기 위해 온 궁을 뒤지던 그 순간까지. 석진이 이마를 짚었다. 며칠 간 쉽게 잠에 들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태형이 터덜터덜 집 안으로 들었다. 요즘 들어 궁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집에 먼저 가있었던 식이 태형을 맞았다. 매번 아쉬운 만남을 지속했다. 사실 도화궁 밖에서 공주를 기다릴까, 생각도 했으나 그랬다간 공주가 섣부른 의심을 살 테다 분위기가 짐짓 가라앉아 있어 그러지 못하고 귀가했다.
“되련님.”
“…….”
“되련님!”
“…어? 왜 그러느냐.”
“대감마님이 되련님 오시면 방으로 뫼시라는디요?”
태형이 눈을 끔뻑였다. 아버지가 나를? 그 말에 방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사랑방으로 돌렸다. 제 아버지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 찻잔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렸다. 아버지 앞이었기에 부러 예를 갖추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뒀다. 차의 향이 은은하게 방문 틈새로 새었다. 아버지, 소자입니다. 말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왔느냐.”
태형을 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맑았다. 태형이 조심스럽게 제 아버지 앞에 앉았다. 요즘은 사랑방에서 부를 때마다 혼사 얘기를 늘어놓느라 왠지 모르게 몸이 경직됐다. 태형의 아버지는 태형의 예상대로 비슷한 맥락의 말을 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가 온 것 같다.”
“예?”
“충분히 호감을 가졌을 거라 여겨 하는 말이다.”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았으나 태형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행화궁(杏花宮)에서 수아가 한 말이 스쳤다. 이제 혼인 준비를 하는 것이 어떠하냐 물었습니다. 어쩌면 수학관 장과 제 아비가 혼인을 서두르자 합을 맞춘 지도 모르겠다고, 그리 생각했다. 수아에겐 아직은 이르지 않냐 부정을 했으나, 그것이 제 아비에겐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태형이 고개를 떨구었다. 태형의 앞에 앉은 사내는 태형의 대답은 들을 생각이 없는 양 입을 열었다.
“이제 입궐치 말고 혼인 준비에 힘쓰는 것이 좋겠다.”
“…….”
“너 때문에 다른 혼사가 미뤄지고 있다지 않느냐.”
태형의 아버지는 대답을 재촉하고, 태형은 입을 다물었다. 일이 점점 꼬이기만 했다. 혼인 준비를 하겠다는 약조가 떨어지면 제 이름은 입궐 허가자 명단에서 지워졌다. 그럼 어떻게 공주를 만나야 하나.
“알겠느냐.”
태형이 얼마 전 성령제에서 공주와 즐기던 때를 떠올렸다. 궁 밖으로 나가는 조그만 쪽문이 생각났다. 그리고 태형은 다음 번에 공주를 만나러 가면 그리 말하겠다 다짐했다.
“……예, 아버지.”
난 이제 널 만나러 갈 수 없으니 날 찾아와 달라고. 조그만 연못이 아닌, 밖을 향해서.
수아가 숨을 죽이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행여 누가 올까 싶어 모서리를 돌아 숨었다. 완전한 사각지대였다. 대부분의 선황이 첩이 있었으니 낡은 궁 한 두 개 쯤 있는 것은 이해했으나 그 낡은 궁 중 하나에 사람이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태형은 그 ‘사람’을 공주라고 칭했다. 양반가 댁의 어디쯤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궁 안에서 ‘공주’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그저 진짜 공주 뿐이었다. 궁에서 만날 때마다 내내 딴 생각만 품고 있더니. 때마침 나타난 황제가 수아의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태형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수아가 도화궁에서 멀어졌다.
어릴 적에 수아의 어미가 그런 말을 했다. 민(旻)과의 전쟁 이후 황후와 황녀가 함께 세상을 떴다. 민은, 그 때 이후 황녀를 요구했다. 결국 그 황녀 때문에 온갖 치장을 해도 소용이 없었단 말이지. 수아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양반가 여식의 체면은 버린 채로 사랑방으로 들었다. 난을 닦던 중년의 남성이 수아를 확인하곤 흠칫 손을 멈췄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수아가 제 아버지의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부분부터 말을 꺼내며 할지 몰랐다.
“…예전에, 황녀가 죽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그 황녀가…, 살아있습니다.”
수아의 말을 경청하던 남자가 얼핏 웃었다. 황녀와 황후가 죽었다는 것은 몇 년 전 도성에 대대적으로 공포된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황후의 지아비였던 선황까지 죽은 상태가 아닌가. 몇 년 동안 황녀를 궁 안에 감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내는 난을 닦는 것을 이었다.
“어디서 어떤 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농이 아닙니다, 아버지.”
“…수아,”
“제가 봤습니다.”
수아는 그의 말을 끊었고, 수아의 아비는 입을 꾹 닫았다. 제 딸의 눈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헛것을 보고 와 고할 아이가 아닌 것은 자랄 적부터 알았다. 난을 닦는 손을 멈췄다. 매끈한 녹색 잎에 작은 흠집이 갔다. 그가 수아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자세하게 말해 보거라. 수아는 아는 것을 고했다. 고요한 밤이었다.
수아의 아비인 윤 씨가 앞에 앉은 남자에게 술을 따랐다. 맑은 것이 술잔을 채웠다. 두 사내가 껄껄 웃었다.
“이리 늦은 시간에 누추한 곳에 들러 주시다니요.”
말은 그리 했으나 그는 군사를 다스리는 병조를 관할했다. 요즘 들어 군사를 키우느라 할 일이 많아져 일찍 잠에 들려는 찰나였다. 이 시각에 자신을 찾는 것은 불청객과 다름 없었으나 그 자가 자신의 아들이 수학하는 수학관의 장 윤 씨이므로 애써 자리를 만들었다. 이런 예도 없는 자가 들어앉은 수학관에서 제 아들이 뭘 배운다는 건지. 투덜거리면서도 윤 씨 앞에선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윤 씨는 할 이야기를 돌리지 않고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
“관군을 조금 쓰고 싶은데.”
수아는 자신에게 자신의 상대가 그 황녀에게 빠졌다고 전했다. 눈이 맞아 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수학관의 장인 윤 씨는 황실의 안위보다 제 딸의 혼사가 더 중요했다.
* * * *
안녕하심까..(대구리박
글 안 쓴지... 언.. 일년 반......
개구리지만... 오랜만에 한 번 올려보았읍니다....
+)
♥ 현국 공주님 86분 ♥
0806 / 1214 / ♥김태형♥ / Remiel / 곤잘레스 카레 / 골드빈 / 공주야 / 군림 / 깻잎사랑 / 꽃게 / 꽃길 / 꽃단비 / 꽃소녀 / 꽃오징어 / 꾸꾸 / 나너조아 / 냥군땡 / 노트북 / 뉸뉴냔냐냔 / 니케 / 다홍 / 단아한사과 / 됼됼 / 뜌 / 라슈라네 / 룬 / 리자몽 / 리프 / 망개똥 / 매직핸드 / 맴매때찌 / 먹고쥭자 / 미스터 / 밍밍 / 방소 / 보고싶찐 / 복동 / 봄비 / 불나방 / 비데 / 빵빠레 / 삐삐까 / 사막여우 / 석진이시네 / 설탕파티 / 솔트말고슈가 / 슈가나라 / 싸라해 / 아망떼 / 압솔뤼 / 열렬히 / 예찬 / 오레오 / 오월 / 오징어만듀 / 온새미로 / 옮 / 우와탄 / 우유 / 유자쿠마 / 윤기 / 은갈칰 / 응캬응캬 / 이다 / 이스트팩 / 입틀막 / 정꾸야♥♥♥ / 줄라이 / 지호 / 진격 / 집수니 / 찬아찬거먹지마 / 천사소녀제티 / 체셔리어 / 초코빵 / 쵸코두부 / 커몬요 / 태형아뷔태해 / 틸다 / 피쯔아 / 하트반지 / 핫초코 / 현질할꺼에요 / 호비 / 화학 / 황토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