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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당신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
〃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오면, 〃
〃 … … 〃
〃 염원을 담아 간절히 빌어. 〃
〃 혹여, 어느 마음 약한 신이 듣고 있을 지도 모르니. 〃
또 똑같은 꿈이다. 잊을만 하면 다시 나타나는 꿈. 안개가 자욱해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매번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자이지만,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안개가 걷히고 남자의 형체가 희미하게 나타나면 수 없이 많은 까마귀에 의해 뒤로 밀려나고 만다. 까마귀는 내 고막을 찢을 듯이 울음을 내뱉고, 그 남자를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그대로 꿈에서 깨고 만다. 깨고 나면 항상 머리가 어지럽다. 깨질 듯한 두통에 탁자 위에 있는 약을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놓고 나면 안정이 찾아온다.
고아원은 불 타 없어지고, 날 친 딸처럼 키워주던 원장님 집마저도 불에 타 모든 게 재가 되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날 마녀라고 손가락질 했다. 저주를 받은 마녀가 우리 마을에있으면 모든 사람들은 죽고 말 거야. 마녀를 쫓아내! 불을 들고 나를 쫓는 사람들을 피해 마을을 벗어났다. 신발을 신지도 못 해, 발바닥이 다 까져 피가 남에도 불구하고 달렸다. 그리고 빌었다. 저 사람들을 모두 없애 달라고. 그 후, 소문에 의하면 마을에 큰 화재가 나 모두 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나를. 신이 나를, 도우신 걸까.
〃 나를 도우신 거라면. 〃
〃 이것 또한 들어주세요. 〃
〃 … 나를. 〃
이 지긋지긋한 지옥 속에서 나를.
〃 데려가주세요. 〃
***
〃 내가 냉장고에 넣어준 거 어쨌어. 또 안 먹고 다 갖다 버린 거야? 〃
〃 … … 내가 더이상 찾아오지 말랬지. 〃
〃 말 했지. 네가 싫어도 계속 찾아올 거라고. 〃
〃 … … 〃
〃 이모가 그때 화재난 거, 또 자기 탓이라고 괴로워 할 거 뻔하니까 갔다오라고 하셨어. 〃
원장님. 나를 끝까지 원망하지 않는 분. 사람들이 날 마녀라고 손가락질 할 때, 나를 감싸주시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 사람. 그런 사람의 조카, 박우진.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넣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짓말. 너도 날 욕하고 있을 게 뻔해. 마녀라고, 날 괴물이라고 욕할 게 뻔해.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그에게 이질감을 느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너도 그 사람들과 같아.
〃 그러니까 밥 좀 챙겨먹… 야, 뭐하는 짓이야! 〃
〃 … 뭐가? 〃
〃 손에서 피나잖아. 그만 물어뜯어. 〃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나 보다. 우진은 휴지를 뜯어 내게 달려왔다. ´ 자꾸 물어뜯지 마. 손톱이 이게 뭐야. ´ 라며 내 손가락을 잡았다. 박우진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한테도 잘해주는 척하는 것 뿐이야. 착각하지 마. 박우진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손가락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는 박우진을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또, 착각하게 될 게 뻔하니까.
문 밖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낡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가고 나면 적막하기 그지 없다. 온 세상의 소음이 다 차단된다. 끼익, 거리는 침대 소리만이 내 곁을 지켜줄 뿐. 창문 틈으로 보이는 건물 밖 가로등이 수명을 다 했는지, 깜빡거린다. 그 빛을 지켜보다 눈을 감으면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
〃 미안, 오늘은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 〃
〃 … … 〃
〃 나 안 간다고 밥 거르지 말고. 약 좀 그만 먹고.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어? 〃
〃 끊어. 〃
야, 아직 말 안 끝났… 뒷 말은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또 시덥잖은 소리겠지. 냉장고에 있는 반찬, 안 먹으면 또 나중에 와서 뭐라 하겠지. 냉장고를 열어 반찬통을 꺼내니 포스트잇에 적힌 손글씨가 눈에 띈다. 멸치, 장조림, 잡채. 하나 하나 반찬통 위에 적힌 글씨.
〃 내가 애도 아니고. 이런 건 왜 적는 거야. 〃
그래도 내심, 그의 작은 배려에 미소가 지어졌다. 밥을 꾸역 꾸역 먹고, 약을 한 알 집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약을 먹는 게 습관이 되어 이젠 꼭 챙겨먹지 않으면 손이 떨려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 할 정도까지 와버렸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게 용하다, 참. 거울 속에 비친 초췌한 얼굴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었다.
쨍 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감았다. 골목을 지나 큰 길가에 다다랐을 때, 저마다 색깔 있는 옷을 입고 지나다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즐거운 걸까. 웃고 있었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도 있었고, 혼자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걷기 시작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떨려왔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 나는 섞이지 못 했다. 모두가 나를 보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나를 보며, 모두가.
( 회색은 영어입니다! )
〃 저기,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
〃 … … 〃
〃 저기요. 〃
내 어깨를 붙잡는 손에 놀라 뒤를 돌아봤더니, 반지를 손에 든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제 반지 아니에요. 〃
〃 아, 한국 사람? 그건 그렇고, 그 쪽 반지 맞아요.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거 제가 봤거든요. 〃
〃 … 제 주머니에서요? 〃
네. 남자는 땀이 나 주먹 쥐고 있던 내 손을 천천히 펼치더니 손바닥 위에 반지를 놓았다. 무표정한 상태로 남자를 바라보니, 다시 손을 주먹 쥐게 하더니 목례를 하고 뒤돌아 떠난다. 그런 남자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남자를 부르려고 손을 뻗은 순간.
〃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오면, 〃
〃 … … 〃
〃 염원을 담아 간절히 빌어. 〃
〃 혹여, 어느 마음 약한 신이 듣고 있을 지도 모르니. 〃
갑자기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안개가 자욱히 끼더니 꿈에서 듣던 그 음성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꿈에서 듣지 못 했던 한 마디의 말까지도.
〃 그런데, 넌. 〃
〃 어째서, 내게 죽여달라고 하는 거지? 〃
당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나를, 데려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