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04
W.대롱
"이름씨."
" 네?"
" …혹시 팀장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 …네?"
" 오늘 하루종일 자기 쪽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아. 조용히 팀장님 눈치를 보며 내게 이야기하는 과장님께 아니라고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인생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대체. 오늘 회사에 출근한 뒤로 단 한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것 같다. 팀장이랑 지민씨가 동물이라니. 이 정도면 사실 동물 세계에 나 혼자 사람인 수준 아닌가?
" 이름씨."
" ㄴ … 네, 팀장님."
" 저번에 부탁했던 자료들 가지고 회의실로 좀 와줄래요?"
저번에 부탁했던 자료 … ? 그런게 있었었나? 순간 당황해서 이것 저것 내 컴퓨터 속에 있는 폴더를 다 뒤져보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띠링- 하고는 도착했다.
「 부탁한거 없으니까 아무 종이나 들고 오시면 됩니다!
- 김석진 팀장님 」
부탁했던 자료라는 게 없다는 사실에 순간 안심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함께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회의실로 부른거지? 약간 그런 기분이다. 옛날에 학창시절에 뭔가 부모님 몰래 일탈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방에서 '여기 와서 앉아봐.' 하는 그런 기분. 평소였다면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하는 불안함이었겠지만, 오늘은 그런 것보다는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지, 이런 불안함이다. 그러한 불안함을 안고 회의실에 도착하자 의자에 앉아있는 팀장님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 많이 당황스럽죠.'
" …네? "
" 저도 어제 얘기 대충 들었어요. 되게 갑작스럽게 된 일이라면서요?"
" 네 … 뭐."
" 회사에서는 저 너무 의식 안해도 돼요. 여기서는 평소처럼 대할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아, 네, 뭐."
내가 너무 자기를 의식한다고 생각해서 부른건가? 자기야말로 평소처럼 대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하루종일 나만 뚫어지게 쳐다본거냐고. 따지고 싶은게 산더미지만 힘 없는 일개 직원은 가만히 있어야겠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애꿎은 책상만 손톱으로 긁고 있자,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팀장님이 다시 말을 꺼냈다.
" 어쨌든 다시 한번 잘부탁해요, 주인."
" …아, 네. 저도요."
팀장님과 일년이나 이런 이상한 관계를 유지해야한다니. 옅게 미소를 띈 얼굴로 내게 잘부탁한다는 팀장님께 나도 그냥 미소 지은 채 인사를 하고는 회의실에서 나왔다. 사실 그 미소 뒤에 마음 속에서는 일년 지나면 회사에서 잘리는 게 아닐까? 하는 온갖 걱정들을 안고 있었지만 말이다.
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5시 58분 37초! 오늘 해야할 것들 거의 다했으니 오늘은 칼퇴각이다. 오늘은 끝나고 집에 맥주 사서 들어가야지. 설레는 계획을 안고 네이버 시계로 퇴근 시간을 재고있던 나는 곧 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 이름 씨, 오늘 회식이에요. 신나는!"
" … 그런 얘기 못들었는데요."
" 아아, 회사 회식은 아니구요."
회사 회식이 아니라면 … 불길한 기분에 시선을 팀장님께 옮기자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팀장님도 웬일로 칼퇴하실 준비 중이다. 지민 씨를 바라보며 설마, 라고 입모양으로 묻자 그는 방긋 웃으며 정답! 이란다. 신나는 듯 웃고 있는 지민 씨를 보며 솔직한 심정으로는 꿀밤을 전두엽에 땅땅 꽂아주고 싶었다.
" 주!인!ㄴ …."
" 제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그렇게 부르지마요."
내 불길한 예상대로 회사에서 내려오자 어제 보았던 네 마리의, 그러니까 네 명의 남자들이 회사 앞에 서 있었다. 내 인생에 남자들이, 그것도 네 명씩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적이 있었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쯤, 태형 씨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또 주 … 아, 말하기도 창피하네. 그런 호칭으로 부르려하길래 빠르게 입을 막았다. 그것도 회사 주변인데 괜히 변태라고 소문나면 어떻게 하라고!
" 저 근데 내일도 출근인데 … 술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
" 여기 같은 팀 직원이 둘이니까 걱정 안해도 될걸요."
" … 제가 숙취가 심해서!"
" 그럴까봐 숙취해소 음료도 사왔지요."
" …아, 예.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사람이 눈치도 엄청 빠르고, 배려도 넘치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는데 … 오늘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건지 모르겠다. 밉상이야. 내가 핑계를 대는 족족 받아치는 지민 씨를 바라보며 인상을 팍 쓰자, 지민 씨는 그런 내 모습에 그냥 머리를 긁적하며 먼저 걸어가버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꿀밤을 후두엽에 … 라고 생각하고는 술집으로 향했다.
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결국 진짜 와버렸네, 호프집. 월요일 저녁부터 술이라니. 나만 빼고는 다들 신난 것 같다. 안주는 뭐 시킬지, 술은 뭐 먹을지 신나게 얘기 중이시다. 내게 안주를 고르라는 그들에게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라고 말하고는 앞에 있는 강냉이를 집어먹었다.
" 그러고 보니 정국 씨는요?"
" 저기 TV."
우와 …. 무심한 듯 티비를 가리키는 민윤기 씨의 손짓을 따라 TV로 시야를 옮기니 음악방송에 어제 내가 봤던 그 정국이 나온다. 진짜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어제 우리 집에 있던 사람이 음악방송에 나와서 춤을 추고 있는 걸 보니 왠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주와 맥주들이 오기 전까지 TV 속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주인님은 술 어떤 거 드실래요?"
" …아, 저는 맥주 먹을게요. 근데 그 호칭 어떻게 하면 안될까요 …."
" 그러고보니 호칭을 이렇게 하면 좀 불편하시겠네요."
내게 술을 건네주려던 남준 씨는 호칭이 불편하다는 내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아! 하고 내게 민증을 달란다. 이 나이에 민증 까보긴 또 오랜만이네. 생각해보니 이 술집 또 민증 검사 안했네. 26살에 바라기는 좀 양심 없으려나. 오랜만에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그런가, 갑자기 내 나이가 벌써 26살이라는 것에 현타가 와서 허덕이고 있는데 내 민증을 보던 남준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일년간 가까이 지낼건데 계속 누구 씨, 이렇게 부르기는 어색하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하듯이 호칭은 나이로 하죠."
" 아, 그래서 민증을 보여달라고 하셨구나."
" 주인ㄴ … 아니, 이름씨가 93년생이시니까 … 지민이, 태형이랑 동갑, 정국이보다 누나시네요."
지민 씨는 나랑 동갑이었는데, 태형 씨도 그렇구나. 으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옆에서 턱을 괜 채 우리를 바라보던 민윤기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우리한테 오빠라고 부르면 되겠네."
" … 예? "
" 나이 호칭으로 하자며. "
" … 아니, 그렇긴 한데."
" 반가워, 동생."
반가워, 동생- 이라며 내게 갑작스레 악수를 청하는 민윤기 씨를 보며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이 때 알았어야 했다. 저 오빠라는 호칭은 친오빠처럼 나를 부려먹겠다는 뜻이었으며, 이 때 이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심부름을 시킬 집사를 찾았다.' 와 같은 것이었다는 걸.
♡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날씨가 좀 따뜻했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신알신이 30개가 넘었다는 걸 보고 감동의 도가니였답니다(ㅜ^ㅜ)
다들 재밌게 봐주셔서 저는 너무 기쁩니다(오열)
다음 주는 춥다고 하니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