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06
W.대롱
" 전화 왜 안받았어?"
" 밥 먹고 있었어. 근데 ㅇ …."
" 나는 한국 오자마자 누나 볼 생각에 너무 신나서 왔는데, 누나는 아닌가봐."
" 오늘 온다고 말 안해줘서 몰랐지 …."
" 나름 서프라이즈긴 했는데, 그래도 전화 바로 받아줄 줄 알았지."
" … … 그래, 내가 죄인이다."
진짜 여우 중의 여우 같으니라고. 전화 한번 안받았다고 이렇게 나오는 게 어딨어.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정국이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와서 앉히자 얘는 천하태평하게 앉아서 내게 전화를 왜 안받았냐고 묻고 있다. 이러다가 이상한 기사라도 뜨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나와는 달리 당사자인 전정국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아무 걱정도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 … …."
" 나 이대로 나가서 우리 사귄다고 말해야겠다."
" …보고싶었어. 진짜 전정국 언제 집에 들어오나 날짜 세고 있었다니까."
진짜 능글맞은 놈. 내 대답에 그제서야 마음이 풀렸는지 '나도 보고싶었어.' 라며 특유의 예쁜 웃음을 내비친다. 두달 전까지만 해도 탑급 연예인이 나한테 이렇게 대할 줄 상상도 못했었는데. 아니 그 이전에 티비만 틀면 나오는 정국이 사실은 여우라는 것도 몰랐었지만.
" 나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휴가냈어."
" 응?"
" 이번 앨범 활동 끝났으니까 이제 좀 쉰다고 했어."
설마 나 때문에? 활동을 쉬겠다는 정국이의 말에 입모양으로 '나 때문에?' 라고 말하자 정국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얘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걸까. 웃으며 '이제 나랑 한동안 계속 같이 있을텐데, 좋지?' 하고 묻는 전정국을 보며 체념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여우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를리가 없을텐데. 아주 날 갖고 노는구나, 놀아. 이런 생각이 드니 괜히 얄미워져서 정국이를 째려보자, 얄궂은 전정국은 내 눈빛이 따갑지도 않은지 그저 헤실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 아니, 오늘 진짜 치킨에 생맥주 제대로 하려 했는데."
" 생맥은 다음에 먹자! 캔맥도 맛있을거야 …."
" 아니, 애초에 우리 둘이 만나기로 한건데 왜 인원이 늘은거야."
내가 미안하다. 내 방 침대에 앉아서 칭얼대는 지민이에게 나는 연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민이가 금요일 저녁에 …그러니까 오늘 둘이 제대로 치킨에 맥주 먹자고 계속 그랬었는데. 아까 회사에서 저녁을 같이 먹는 조건으로 전정국을 집에 보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와버렸다. 근데 그러다보니 지민이랑 둘이 한 저녁 약속에 자연스레 석진오빠도 함께, 아까 오겠다던 태형이도 함께, 거기에 정국이와 집에 있는 민윤기 씨, 호석오빠도 함께 하게 되버렸다. 그니까 그냥 오늘 늦는다는 남준오빠 빼고 다 있는 셈이다.
" 난 아까 태형이 온다할 때 너도 들은 줄 알고 다들 와도 괜찮은 줄 알았어. 그래도 다들 맛있는 거 사온다니까 그거 먹자."
" 먹는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 그럼 뭐 때문에 그래."
" 넌 가끔 알면서 모르는 척할 때 되게 얄미운거 알아?"
갑자기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지민이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눈길을 피하고 있는데, 마침 딱 문이 열리면서 한 손에 맛있는 안주들을 든 우리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들어온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가끔씩 이렇게 훅 들어올 때면 진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주인과 반려동물 사이에서 나오는 질투 같은 건데. 알면서도 가끔씩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 이름아, 내가 너 좋아하는 족발 사왔다!"
" 어? 응, 족발 좋지."
" 근데 너 얼굴이 빨간 것 같은데. 어디 아픈거 아냐?"
" 아닌데? 완전 아닌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는 태형이에게 아니라며 손사레를 쳐보이고는 괜히 엄청 배고픈 척 태형이가 가져온 안주 포장을 허겁지겁 뜯었다. 아, 겁나 당황한 거 티내네, 나. … 하지만 족발 앞에서 그런 것을 신경 쓸 시간은 없지. 풍겨오는 족발의 향기에 신나서 포장을 열자 소주 생각이 간절히 나기 시작했다. 족발엔 역시 소준데 … 냉장고에는 맥주만 한가득이다.
" 난 소주."
" 어, 나도 소주 떙기는데."
" 그럼 사와."
" 아, 귀찮단말야. 사다줘요."
" 그럼 따라와. 내가 살테니까 짐은 니가 들어."
그냥 혼자 갔다오면 되지. 겁나게 치사하다. 따라나오려는 태형이와 정국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하고는 민윤기 씨를 따라 집에서 나왔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소주 몇 병을 사고는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민윤기 씨가 입을 열었다.
" 야, 나 궁금한 거 있어."
" 뭔데요."
" 다른 애들한테는 반말 쓰면서 나한테는 왜 민윤기 씨라고 부르냐."
음, 왜 그랬더라.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오빠라고 부르기엔 이 사람이 너무 까칠해서 부를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하나. 사실 호칭 정리 얘기 나왔을 때 오빠 소리를 먼저 꺼낸 건 이 사람인데 뭔가 이상하게 민윤기 씨한테는 오빠라고 부르기 어색해서 안불렀던 것 같다. 사실상 친오빠처럼 나를 부려먹는 데에는 이 사람이 가장 적합하지만서도 민윤기 씨라는 호칭이 입에 더 잘 붙는 느낌이랄까.
" 지금이라도 오빠라고 불러줄까요?"
" 싫은데."
" 내가 뭐만 얘기하면 다 싫대. 그냥 내가 싫죠? 그래서 이번엔 왜 싫은데요."
" 오빠라고 부르는 너보다 민윤기 씨라고 부르는 니가 더 괜찮은 것 같아서."
" … …."
"그리고 주인을 싫어할 리 있겠냐."
멍청아, 하고는 내 머리를 헤집고 가는 민윤기 씨를 보면서 잠시 멍을 때렸던 것 같다. 늘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던 사람이 웃었다는 게 생소해서 그런가. 순간 가로등에 비추어진 그의 웃는 얼굴과 머리를 헤집어 놓은 손길에 설렌다고 생각해버렸다. 안오면 먼저 간다는 그의 말에 허겁지겁 뒤따라가긴 했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집에 가는 길 내내, 아니 술자리에서 취할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어제 얼마나 먹었더라. 소주 두병 정도 먹고 캔맥주도 좀 먹었던 것 같다. 많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주량을 넘지는 않았는데. … 근데 왜지?
" 잘 잤어? 속 쓰리다, 그치."
" … …."
어제 자기 전까지 기억이 분명히 또렷한데. 왜 일어나니까 여우가 옆에서 자고 있는걸까.
♡
다들 겨울 잘 보내고 계신가요! 벌써 2월달이 코앞이네요.. 충격충격
어렸을 때엔 빨리 성인이 되고싶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발 시간이 그만 갔으면 좋겠어요(흑흑)
어쨌든, 늘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감기 조심하시구 다음 화에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