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중궁궐 01
w. Cecilia
1.
"오늘처럼 앞으로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정국 마마!"
"왜 안되느냐? 궐 밖에는 굉장한 것들이 많다고들었단 말이다. 그래서 내 직접 보러 다녀온것이다."
"어디 꿀단지라도 궐 밖에 숨겨두셨답니까? 계속 이러시면 아바마마께 혼쭐이 나실 것입니다."
"걱정말래도. 이래뵈도 어제 읽어야할 책은 다 읽었단말이다."
"밖에서 무얼 하시고 들어오시길래 항상 옷자락이 이리도 더럽단말입니까."
"글쎄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
정국은 땅에 닿을듯말듯한 옷자락을 손으로 집어 올리고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러자 정국을 보필하던 지민은 포기했다는듯 한숨을 푹 쉰다. 지민은 정국과 어린시절부터 함께 한 벗이요, 현재는 정국을 보필하고 있는 호위무사이다. 언젠가부터 밥먹듯이 궐 밖을 뛰쳐나가는 정국이 걱정되는듯 지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정국을 타이른다.
"언젠간 한 나라의 임금이 되실 분입니다. 몸을 아끼셔야할 분이 이렇게 경거망동을 하시면 제가 걱정되어 밥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괜찮다 괜찮아. 봐라. 이리도 건강하지 않느냐."
정국은 지민의 걱정이 신경쓰이지 않는 듯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휘저었다. 그 모습에 지민은 포기했다는 듯 정국에게 새 옷을 건넨다.
"이러다 비단 옷이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히 다니십시오. 아니, 말은 어디에 두고 두 발로 걸어다니신단 말입니까. 그렇게도 걷기 싫어하시던 분이.."
2.
"오늘은 좀 늦으셨습니다."
"미안하다. 아침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먼 길을 돌아 왔더니.."
"뭐, 오셨으니 되었습니다. 헌데, 비단을 파신다는 자가 어디 갈 데가 있어 아침부터 직접 초행길에 나선단 말입니까?"
"아...그..음.. 아무튼 말하기 복잡한 일이 있었다."
정국은 태형의 물음에 당황한듯 얼굴이 빨개졌다. 태형은 그런 정국이 못미더운듯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흘끔 흘끔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래도. 뭐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단말이냐?"
"하이고, 정국님도 섭하십니다. 저야 항상 정국님 말이라면 다 믿지 않습니까."
태형은 정국을 놀리듯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럽다. 그만 가만히 있으래도."
어려서부터 궐 밖의 세상에 동경을 갖고 있던 정국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정국이 18살이 되던 해, 어바마마, 현재 조선의 왕에게 궐 밖을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정국은 끝까지 함께 나가겠다며 바득바득 우기는 지민을 꼬드겨 조용히 혼자 궐 밖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정국은 태형을 만나게 된다. 정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태형을 만나기 위해 궐 밖을 나섰다. 이들의 첫 만남은 어떠하였을까.
3.
처음 만나는 궐 밖의 세상이 정국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특히나 복작이는 조선의 시장 모습이란 매우 정겨웠다. 살아있는 닭이 푸드덕거리며 울부짖었고, 흥정하는 사람들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무척이나 생기있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신기한 정국은 이리 저리 고개를 저으며 시장 바닥을 누비었다. 그 때,
"아야."
정국의 어깨에 누군가가 부딪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괜찮느냐?"
정국은 넘어져있는 소년에게 손을 건네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괜찮습니다. 제가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그렇게 그 소년은 연신 정국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분명 먼저 어깨를 부딪힌것은 정국이었고, 사과를 해야 할 사람도 정국이었다. 정국은 그럼 소년의 모습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아마 본인이 입고 있는 휘황찬란한 비단 때문일 것이다.
'옷을 갈아입어야 했었어.. 지민이 네놈 때문에 ..'
궐 밖에 나가서도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지민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편하게 입는 옷으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지민의 옷을 빌려 입고 나오는 것이었다. 한 눈에 봐도, 정국의 모양새는 시장 바닥에서도 굉장히 눈에 띄는 모양이었다. 금새 정국과 그 소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인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분명,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미안하다."
정국의 말에 그 소년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네?"
"내가 먼저 너의 어깨를 치지 않았느냐. 내 경황이 없었다. 어디 다친데는 없느냐?"
"아.. 저는 튼튼합니다!"
그 소년은 바지에 묻은 먼지를 훌훌 털더니 괜찮다며 위 아래로 두 세번 뛰어 보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태형이라고 합니다."
"내 부탁이 있는데 혹시 들어줄 수 있느냐?"
4.
태형은 정국의 앞에 섰다. 그 날 하루 시장과 마을 주변을 안내해달라는 정국의 부탁이었다. 태형은 왠지모르게 신이 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남이 자신을 필요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태형은 이 곳 저 곳, 자신만이 아는 곳을 데리고다니며 설명해주었다. 정국은 그런 태형의 모습에 덩달아 흥에 겨웠는지 해가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궐 밖을 누비었다.
길가에 하나 둘 횃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어둠을 알리는 북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정국은 지금쯤 엄청 화가 나 있을 지민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제 슬슬 나는 가봐야할 것 같다."
"벌써요?"
태형은 무언가 아쉬운듯 했다.
"내 다음에 또 이 곳을 들를터인데, 그 때에도 안내를 해 줄 수 있을까?"
정국의 부탁에 태형은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응하였다.
"그럼요! 이 곳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곳이라 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헌데, 성함을 여쭈어보아도 괜찮을련지요?"
태형은 큰 두 눈을 깜박이며 정국을 바라보았다. 정국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 안된다는 지민의 어름장이 생각났다.
"난 정국이라고 한다."
"정..국.. 혹시 어느 가문의 자제분이신가요?"
정국이 입고 있는 비단옷이 신경쓰이는 듯 태형이 물었다. 혹여나 자신과 다니는 것이 누가 되지는 않을까.
"가문이라니, 당치도 않다. 나는 그저 상인 집안의 아들일 뿐이다. 길바닥에서 비단을 팔고 뭐 그런.. 그래서 이렇게 옷만 번지르르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명문의 자제는 아니다."
정국의 말에 태형은 동질감이 느껴졌는지 정국의 두 손을 잡았다.
"꼭 친구가 생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태형의 웃는 얼굴에 정국은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내 이틀 후 같은 시간에 이 곳으로 찾아올것이니 그 때 보면 되겠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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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D
세실리아에요~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천중궁궐은 하늘 속 궁궐이라는 뜻이랍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암호닉분들 중에 나중에 천중궁궐 완결 후 책으로 제작하여 많은 분들께 선물드릴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