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소년
[]안의 글은 중국말로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10
"퇴학? 왜죠? 폭력위원회 여세요. 제대로 따져봐야하는 것 아닌가요? 그날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그게 다 경수 잘못인가요?"
찬열은 자타공인 해피바이러스였다.
낯선 환경의 두려움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새터민들에게 거리낌없이 대하면서 빨리 남한생활에 적응이 되게 잘 도와주는 선생 중 한명이었고,
찬열이 지치는 모습을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화를 내는 일또한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찬열이 처음으로 화내는 티를 다 내면서 전화기에 대고 따박따박 따지고 있었다.
경수와 백현의 문제로.
"선생님.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경수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또 반 아이들 모두가 경수에게 잘해줬는데 경수가 괜히 증거라고 하는 말도 안되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백현이라는 학생을 협박을 하는거라구요? 제가 교실에 가서 다 확인하고 왔는데, 그럼 저 또한 이상한 사람이네요? 그렇죠?"
"아~ 경수가 탈북자라서 학교생활이랑 반친구들에게 적응을 못해서 장난을 괴롭힘으로 받아들였다고 하셨어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거예요 선생님? 저도 남한에서 올바르게 학교나와서 대학 좋은데 잘가서 지금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장난끼 많은 친구들하고 12년간을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패를 부리는 애들이 전학생에게 친해지고 싶어 장난을 건 급우들의 소행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데요"
"이제와서 말을 바꾸시는 이유가 뭐죠 선생님? 백현이가 나중에 방송계에서 일할 친구니까 과거에 이런 논란이 있다는 거 자체를 안만드는게 좋다..한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서 경수가 좀 참아라? 경수는 왜 참아야 하는겁니까? 센터의 통화는 다 녹음이 됩니다. 이 자료까지 교육부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열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레이와 민석, 준면이 밖에서 박수를 쳤다.
[찬열선생님 무섭다.]
[조금 무섭네요..선생님은...안그러시죠?]
.
.
.
"학교에서 널 어떻게 하려고 난리인데, 내가 막았어. 나쁜 년놈들."
"이런게 학교면...나 안다닐래요. 북한의 중고등학교는 이러지 않아요. 다들 친하게.."
"모든 학교가 이런건 아니야. 단지 친구들을 잘못 만난거야. 폭력위원회를 열어서.."
"폭력위원회를 열어서 변백현이 퇴학을 당하면요? 그럼 나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어요? 멀쩡한 남한애를 퇴학시킨 못된 북한 빨갱이로 안보이고요?"
"....원하면 전학을 가자. 나쁜 사람 만났다고 생각.."
[빌어먹을 나쁜 놈들!!!!! 왜 나는 늘 피해다녀야 해?]
경수의 신경질적인 중국말에 화들짝 놀란 찬열은 잠시 멈칫하더니 경수의 방을 나섰고, 그때까지 미동도 없던 경수는 그제야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나쁜 사람들...나를 왜 괴롭히지 못해서 난리인거야.]
한국 어조가 잔뜩 실린 그 중국말은 오직 민석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레이는 찬열을 따라 갔고, 준면과 민석은 방으로 들어와 경수에게로 다가갔다.
"내가..내가 뭘 잘못했어!!!...이제 한번 마음편하게 살아보자는데...죽지 않을까 두렵지만 않게 살자는데!!!"
경수가 흐느끼며 내뱉는 소리들에 준면이 고개를 숙였다.
민석은 쭈그려앉아 엎드린 경수를 살폈다.
경수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고, 민석은 밖으로 삐져나온 경수의 손을 어루만졌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생사를 함께한 그들은 서로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
.
.
"이럴 땐...정말 내가 나를 이쪽 계통의 종사자라고 다른사람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이 쪽팔려. 한심해. 자존심상해.난 새터민학생들의 선생님이라고 할 자격도 없는사람이야. 경수한테 너무 미안해. 왜 내가 이딴 사소한 일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거야? 그저 엄마가 되어 우리애 우리애라면서 감싸기만하면 모든게 잘 해결될텐데..난...난!!!!..."
찬열이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레이가 에효 하고 한숨을 쉬며 찬열의 앞에 묵묵히 앉아있었다.
찬열과 경수는 다른 듯 같았다.
그래서 레이도 민석처럼 찬열이 자기한탄, 세상원망 그 모든 걸 다 쏟아내는 동안 묵묵히 기다렸다.
말릴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프다는 것을 느끼고 알아서 그만 둘 것이기 때문에.
.
.
.
"이제 좀 진정은 됐니?"
"북한 말 쓰지 마. 듣기 싫어."
"그래. 알겠어. 저녁 좀 먹을래? 배는 안고파?"
"먹을 기분 아니야."
"그래.좀 쉬어"
민석이 몇시간 째 엎드려있던 경수가 일어나자 물어봤지만 냉랭하게 답하는 경수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침대로 들어갔다.
2인1실의 방은 경수와 민석의 방이었다.
.
.
.
"이제 좀 괜찮아?"
"몰라.아직도 화나. 그 선생새끼나 학생이나 다 패고싶어"
"다 이해해.하지만 안되는 걸 어떡해. 저녁 먹을래? 안 배고파?"
"배고파. 피자 시키자."
이것이 둘의 차이랄까.
.
.
.
찬열과 민석과 레이와 준면과 경수가 모였다.
둥글게 둘러앉은 그들의 사이엔 불이 있었다.
"다들 와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우리 경수 공부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은 센터 옥상에서 떨어뜨릴거니까 각오들 하세요!"
저런 말을 생긋 웃으면서 찬열이 말하니 다들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불쏘시개 겸 장작이 된 것은 경수의 교복과 체육복이었다.
"경수..그럼 검정고시봐서 대학가는 걸로?"
"네."
"노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너 대한민국 고딩의 일과가 얼마나 빡센지 모르지? 내가 가르쳐주지 큭큭"
"그동안 빡세다고 하고 진짜 빡셌던 적 없잖아."
"그동안 적응교육이 안빡셌냐?"
"그게 일과야? 여가지"
"뭐?"
다들 벙쪄서 경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양껏 욕심을 부리고 그만큼을 순식간에 채워놓고도 부족한 것이 없나 자신의 주변을 늘 둘러보는 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들 처음만 놀라지 그 뒤로는 어련히 그런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센터 사람들의 생각보다 경수는 훨씬 더 악바리였다.
민석은 쟤 뭐야...라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과 당연하다는 듯이 불을 쬐고 있는 경수 옆에서 역시 도경수네..라면서 혼잣말을 했다.
.
.
.
"이제 잘쓰네"
"히히"
"경수는 이제 제대로 공부 시작한 것 같은데. 민석이는 하고 싶은게 생겼나?"
"음...사실 마카오에서 배워보고 싶은게 있긴 했는데.."
"오! 뭔데? 진작 말하지!"
"근데..여자들이 배우는 건가 해서요.."
"그런 게 어딨어~ 다 말해봐"
민석이 쫑알쫑알 레이에게 말했고, 레이가 활짝 웃으며 민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 장하다는 칭찬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럼 당장 등록하러가자!"
"??"
"학원에!"
"학원?"
"학교말고, 너가 배우고 싶다는 그거. 가르쳐주는 학원"
"아~"
민석이 따라나섰다.
기분좋은 바깥외출은 레이하고 자주 하는 것 같아 민석은 또 한번 설렜다.
.
.
.
<중국 북경에 진도 8.5의 대지진이 일어나 중국 국민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부상자 행방불명자 수는 집계불가로써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사망자는 현재 90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섯차례 이상의 중급 규모 여진이 남아있다는 소식에 중국정부는 생존자들을 대피시키는 것과 부상자들을 이송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원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대한적십자사 및 각종 봉사단체들의 지원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앵커의 단정한 어투와 다르게 그 내용은 참으로 심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채 공안과 군인들의 지도 하에 탈출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그보다 베이징이라는 소리에 민석은 학원에 등록해 기뻤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베이징이라면 저가 몇 달간 살다 도망친 곳이지 않나.
그말은 곧 루한의 가족이 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도 지금쯤이면 태어났을텐데, 몇달 이 지나서 지금은 많이 컸을지도 모른다.
예쁠텐데..민석은 TV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헤헷하고 웃었다.
바보같은 웃음이었다.
착해빠진 김민석.
.
.
.
"안 자?"
"..."
"경수야~나 잔다?"
"조용히 해"
경수는 찬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가서 자퇴서를 제출하고 교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대놓고 비웃는 백현 앞에서 피식-하고 찬 웃음을 보낸 뒤 학교를 나왔다.
백번 여는 폭력위원회보다 그 비웃음 한번이 훨씬 통쾌했다.
그 뒤로 경수는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매주 버려달라고 하는 문제집이 여러권이었다.
문제집 앞 숫자도 바뀌었다.
분명 2주전만 해도 1이었는데 어느새 2가 되고 이제 3을 풀고 있었다.
경수가 밥도 굶으려하자 민석이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식당에서 식사도 매번 가져다주었다.
이건 무슨 수능 두달 남은 학생의 부모와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 1년하고도 반이 채 안남았다며 아침이고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가리지않고 계속해서 앉아서 뭐 기지개도 안켜고 고개를 숙이고 공부만 하는 경수는 가히 타의 모범이 될만한 시간활용을 하고 있었다.
더 대단한건 찬열이었다.
어쩜 그렇게 꾸준히 직접와서 전과목을 과외를 하는지..더군다나 찬열은 문과였다.
그리고 경수는 이과를 가겠다고 했다.
과탐은 인강으로도 1등급이 나왔다.
대단했다.
수학은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잘했고, 부족한 국어와 영어만 찬열의 개인 수업이 있었고, 제2외국어 중국어는 뭐 현장에서 빠삭하게 터득해서 잘 안데다가 레이선생님까지 계셨으니 당연히 잘 볼 수 밖에 없었다.
경수는 목표와 독기를 품고 힘들텐데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달려갔다.
.
.
.
"민석. 갈수록 작문실력이 늘고있어~이러다가 나보다 잘쓰는거 아냐?"
"아니예요~"
민석의 일기장을 넘기며 레이가 웃었다.
"베이징 지진 뉴스는 봤지?"
"네.."
"루한이 살던 동네가 피해가 가장 크다고 하네. 루한은 다행히 살았다고 연락이 왔어. 일단 한국으로 오라고 내가 티켓을 보냈고."
"루한..만?"
"자세한건 루한에게 듣는 게 좋겠어. 당장 내일 도착할거야"
"내일?"
"응. 내일 같이 마중나가자."
금세 침울한 표정이 된 레이와 민석이 둘 다 동시에 루한을 걱정하고 있었다.
.
.
.
"아침 맛있게 먹고, 오늘 난 레이선생님이랑 공항에 가야해서 오늘 식사는 알아서 챙겨먹고 나 없다고 굶으면 안돼! 그럼 수고해~"
민석이 경수의 어깨를 툭툭치며 단어장을 펴고 국물을 한 술 뜨는 경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늘 경수도 피식 웃게 만들 정도로 해맑았다.
"민석~ 빨리나와"
민석이 뛰어나갔다.
.
.
.
침울한 표정의 루한이 짐하나 없이 한국으로 입국했다.
레이와 민석은 애써 웃어보려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아픔을 겪지 않고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슬픔의 눈을 가지고 루한이 민석과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