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식 호그와트가 보고 싶어서 만든 세계관 입니다. 해리포터와 유사성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이번 편은 세븐틴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세븐틴'으로 카테고리를 선택했습니다.
* 내용들 휘몰아침 주의....(짧은 문장 거의 없음)
* 짤 많음 주의. 로딩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 노래 있습니다.
음양학당(陰陽學黨) ; 신수대결(5, 完)
주술을 쓸 때마다 몸이 끓어오르는 듯이 뜨거워졌다. 머리도 살짝 어지러워진다. 어떻게든 이미지화하면서 힘을 통제하려 해도 이미 발휘된 주술은 더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하루에 쓴 주술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여주의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지금 여주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실,
여주의 영력은 현재 폭주 중이었다.
여주의 영력은 18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고 음양 세계로 오자마자 활기를 띄웠다. 영력이 점점 회복하다 정규 특별 수업 날을 기점으로 폭주가 된 것이다. 여주 조차 여주의 힘을 통제하기가 버거웠고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주의 영력은 날뛰었다. 여주의 영력을 담는 그릇인 여주의 몸이 영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체력이 안 남을 수밖에.
다행히 오늘 특별 수업은 이론 수업이라서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민현과 헤어진 직후 바로 피곤함과 체력의 한계가 느껴져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여주였다. 하지만 아픈 티는 내지 않는 여주였기 때문에 수업도 무난히 진행되고 끝이 났다. 사방신이 교시렝서 다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한 여주였다.
어떻게든 힘이 없는 두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교실에서 빠져나왔고, 벽을 짚으며 천천히 기숙사까지 걸었다. 해가 거의 넘어가서 그런지 학교 안은 조금 어두웠다. 분명, 이 속도로 가다간 해가 다지고 나서야 기숙사에 도착할 게 뻔했다. 기숙사까지의 거리가 막막한 여주는 한숨을 쉬었다. 오후에 화장실에서는 민현을 용케도 생각해내서 도움을 청했던 여주지만, 지금은 아예 생각하는 것도 체력 소모가 되는 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은 가다가 지쳐서 풀썩 주저앉았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기, 여기서 왜 그러고 있어? 어디 아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뒤를 쳐다보았고,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여주의 눈높이에 맞춘 채로 쪼그려 앉은 한 남학생이 있었다. 노리개 색을 보니 2학년이었다. 여주는 말할 힘도 없어 그냥 남학생과 눈을 맞춘 채 계속 쳐다보았고 남학생은 여주의 눈길에 민망한 것인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쳐다보면 조금 부끄러운데"
제스쳐와 말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다. 남학생의 귀여운(?) 행동에 여주의 얼굴은 빈틈없이 구겨졌고 그 모습에 상처받은 것인지 눈썹이 팔자 모양이 되었다. 웃긴 상황에 여주는 실소를 터트렸다. 처음 마주 본 사람이랑 대화할 때, 보통 잘 웃지 않는 여주였는데 온몸에 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웃음이 나오는 여주였다. 남학생은 여주의 웃음에 따라 웃었다. 웃으면서 접히는 눈꼬리가 매우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주였다. 남학생은 다시 한 번 왜 이러고 있냐고 물어보았고 여주는 힘을 내서 대답해 주었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어디 다친 거야?"
여주의 간략한 설명에 남학생은 다시 눈썹이 팔자가 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여주를 쳐다보았다. 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아픈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남학생은 그러면 무슨 이유로 힘이 안 들어가냐고 물었고, 여주는 그냥 체력을 다 써버렸다고 했다. 그러더니 남학생은 '음'이라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는 듯한 동작을 취했고, 이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쯤이면 괜찮겠지?"
알 수 없는 말을 조용히 말하고선 눈치를 보더니 남학생은 일어나서 검지만 편 오른손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휘두르자마자 손가락 끝에서 하얀빛이 빠르게 나왔다가 사라지더니 손가락이 향했던 자리에는 백마(白馬)가 자리하고 있었다. .... 백마이긴 한데 보통 백마는 아니었다. 보통, 말은 몸통 옆에 흰 날개가 없지 않나. 여주 눈앞의 말에는 두 날개가 달려 있었다.
".... 이게 신수야?"
"어? 나를 몰라?"
".... 모르는데"
"와, 나도 나름 학교에서 사방신 만큼이나 유명한데...."
백마를 가리키며 신수냐고 물어본 여주였지만 대답은 뜬금없게 자신을 모르냐고 말하는 남학생이었다. 이상한 눈빛으로 남학생을 쳐다보니 남학생은 목덜미를 긁적거리면서 자기 자랑 아닌 자기 자랑을 했다. 소리 내서 웃는 경우도 잘 없는 여주였지만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또 실소를 터트렸다.
"뭐, 나를 모를 수도 있겠지? 음, 그럴 거야. 1학년이면 이해가 가는...."
"...."
"뭐야, 2학년인데 나를 몰라?"
남학생은 자기 합리화를 하다 여주의 노리개 색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남학생을 보며 여주는 '아, 얘 골때리네'라고 생각했다. 여주의 노리개 색깔을 봐서야 여주의 학년을 안다는 것은 지금 이 남학생도 여주가 누군지 모른다는 소리다. 현재, 학교에서 단연 제일 유명한 건 여주일 텐데 그 앞에서 '유명함'에 대해서 논하니 그 모습이 퍽 웃길 수가 없었다. 여주에게 남학생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이, 서로에 대해 아예 무지 상태로 만난 사람이었다.
"나도 꽤 유명한데. 너는 나를 몰라?"
"너도 유명하다고? 우와, 유명인들끼리 만났네"
남학생은 어떻게 보면 멍청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웃음을 지으면서 좋아했고 여주도 이번엔 실소가 아닌 그냥 미소를 지었다. 남학생은 웃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이 다시 주위를 살펴보더니 여주에게 일어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여주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럼 얼른 백마 위에 타라고 말하였다. 여주는 몸을 일으켜 백마를 타려고 했지만 높은 말의 위에 앉을 정도로 힘이 있지는 않았던지라 낑낑거렸고, 남학생은 뒤에서 '미안, 허리 좀 잡을게' 하면서 여주의 허리를 잡아서 여주를 올려 놓았다. 여주가 올라타자 바로 여주 뒤에 자신도 위에 올라타더니 백마에게 말을 건넸다
"겸둥아, 오랜만에 하늘 산책 좀 해볼까?"
남학생의 말에 백마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내었고 빠른 속도로 창문으로 돌진하였다. 여주는 다급하게 남학생한테 창문이 닫혀있다고 했는데 남학생은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백마와 창문이 닿을 때쯤 여주는 조마조마한 듯한 심정으로 쳐다보았고 여주가 상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마는 그대로 창문을 통과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사실과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느껴지는 바람들이 기분이 좋아 여주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무영 세계 때의 여주보다 훨씬 더 많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숙사가 어디야?"
"화동"
"그러면 우리 조금 돌아서 갈까? 우리 겸둥이도 하늘 산책은 오랜만인 데다가 유명인끼리는 또 친해져야지"
남학생의 말에 여주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이런 웃음은 아닌 바람 빠진 웃음이었지만. 어릴 때를 제외하고 기억이란 게 생길 때쯤부터 지금까지 아마 여주가 제일 많이 웃은 날이 오늘이 아닐까 싶다. 여주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학생은 바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이석민이야. 2학년이고, 속성은 '수'야. 너는?"
"난 김여주고, 속성은 '토'"
"토? 토가 속성이라면.... 혹시 신수가 어떻게 되시는지....?"
서로 통성명을 하다 여주의 속성을 듣자 석민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여주를 쳐다보며 신수를 물어보았다. 그에 여주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일신"
그 말에 석민은 놀라더니 정말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헐! 일신? 나보다 더 유명하잖아! 반칙인데? 그 모습에 여주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억울한 표정이었던 석민도 여주 따라 웃었다. 이 대화 이후 많은 말을 한 여주와 석민이었다. '대화는 정말 필요한 말만 한다'라는 식으로 대화를 해왔던 여주는 하늘을 날며 느껴지는 바람과 보이는 풍경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아무런 영양가는 없었던 석민과의 대화에서 재미를 느꼈고, 쉴새 없이 웃었다. 여주도 놀랐을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여주는 음양 세계에 온 이후로 처음 본 사람에게도 이름을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이미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민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부르는 자신의 이름이 어색한 여주였었다. 연예인도 아닌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던 일상이 정말 피곤하고 지쳤었다. 그리고 여주는 어떻게 보면 이방인과 비슷한 존재였기때문에 이방인에서 벗어나려면 이 세계에 대해서 더 알아야한다.
그래서 항상 여주만 질문이 가득했었다. 이런 이유로 자신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여주도 석민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궁금해하고, 서로 알아가는 석민과의 대화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석민'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에너지와 순수한 분위기가 여주를 즐겁게 해주었다.
"자, 기숙사 도착. 설마 안까지 바래다줘야 하는 거 아니지?"
"어, 안 그래도 돼. 이젠 걸을 순 있어"
"그래, 들어가서 푹 쉬어"
기숙사에 도착했을 땐 벌써 해가 져서 컴컴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를 마친 여주와 석민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힘이 다시 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면서 언제 한 번 민현이 불렀던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들어가는 여주였다.
드디어 대망의 대결 날이 다가왔고, 여주는 수업을 귀로 듣는 건지 코로 듣는 건지 모를 정도로 긴장했다. 대결 시간이 다 되어가자 여주와 아이들은 급하게 대결장으로 들어갔다. 대결장은 웬만한 교실보다 큰 크기였고 한가운데 레슬링, 복싱처럼 '링'이라는 게 존재하였다.
보통의 정사각형 모양의 링과는 다르게 가로로 신수 대결장의 링은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신수 대결은 링의 양 끝에 대결자들이 서서 인사를 하고 난 후, 심판이 종을 울리면 대결은 시작된다. 종이 울리자마자 신수를 빠르게 소환해야 한다. 신수 소환이 30초를 넘을 시에는 자동으로 신수 소환을 하지 못한 쪽이 패배다.
신수 소환을 둘 다 성공했을 시에는 심판이 다시 한번 종을 울릴 때까지 서로에게 어떠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심판의 종이 한 번 더 울리게 된다면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수가 링 밖으로 떨어진다거나, 신수가 아닌 주인에게 공격한다거나, 신수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 심판 판정으로 패배처리 된다.
대결장으로 들어온 여주와 아이들은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다들 대결도 대결이지만 일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대결장 안에 여주가 들어서자마자 대결장 안은 순식간에 여주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정말 이런 시선들이 싫고 싫지만 적응이 된 여주는 재빠르게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서 여주의 자리로 향했다. (여주의 자리는 링 맨 끝 밑의 의자) 여주가 의자에 앉자마자 대결장에는 상대 여학생이 입장하였고 자신의 자리로 향하면서 여주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5분 후,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대결의 심판은 민경이 맡았다.-대결 심판은 학생회나 선생님이 해야 함.- 민경의 목소리에 한층 더 시끄러워진 장내였고, 여주는 자신의 심장이 뛸 때를 제외하고선 이렇게 빨리 뛸 줄 알았다는 것에 대해 놀랬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과 떨림에 여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여주, 여주님.... 주술 정확히 외우셨... 아니, 그 신수 공격 주술.... 아니, 방어 주술을 쓰는 게 더... 아니, 신수 소한 주술..."
"여주님, 횡격막을 넓혀서 그 사이로 숨을 들아마신 다음 뱉으세요, 그 후 다시 횡격막을...."
"아, 둘 다 뭐라는 거야. 누나. 주술 이름 다시 되새겨보고, 긴장하지 말고 올라가서 신수부터 불러요, 그 다음은 누나가 무슨 주술을 쓰든 상대보다 셀 거에요"
그런 여주옆에서 더더욱 긴장한 승관과 성연이었다. 승관은 쉴 새 없이 당부를 했고 성연은 눈에 초점이 없는 채로 여주에게 긴장을 풀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한솔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여주에게 승관과 성연이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전해주면서 자신의 응원도 곁들였다. 여주는 그냥 입꼬리 한쪽만 씩 올렸다.
"누나, 긴장 안 돼요? 되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요"
"역시 여주님. 횡격막 따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멋있으십니다, 여주님"
한솔의 말에 승관과 성연은 정신 차리고 다시 여주에게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여주는 여전히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잘 쓰지도 않던 욕을 쓰면서 승관과 성연의 존경을 다 부숴버렸다.
"무슨 개소리야. 존나 떨려서 입꼬리 경련 온 거 안 보여?"
"...."
"...."
그 충격으로 승관과 성연은 어버버거리고 있었고 여주는 승관과 성연을 쳐다보았던 고개를 휙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장난으로 승관과 성연의 존경을 부순 게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떨려 하고 있는 여주였다. 아직, 신수 소환이 되는지도 모른다. 삼십 초 안에 소환을 해야하는데, 아직 일신에게서 답이 없는 여주는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지금부터 신수 대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측의 선수들은 입장해주세요"
어느새, 오 분이 흘렀고 여주와 여학생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 링 위에 섰다. 여주와 여학생이 올라오자 관객이 된 학생들은 많은 환호성을 질렀다. 일신의 신수를 가진 여주에 대한 환호성인지, 일신에게 맞서는 여학생에게 향하는 환호성인지는 모르지만 여주를 더 얼게 하였다. 하지만 상대 여학생은 작년부터 쭉 해오던 것이기 때문에 링 위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여유롭게 미소까지 짓고 있었으니.
여주는 관객 쪽으로 바라보았고 그중에는 석민도 있었고, 원우도 있었으며 종현과 사방신들도 눈에 들어왔다. 문밖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은우까지. 그리고 민현도 있었다. 방금 뛰어서 들어온 듯,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여주는 민현을 발견하자마자 민현 쪽을 계속 쳐다보았고 민현도 여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할 수 있어'
민현의 입모양을 알아들은 여주는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건 풀린 거고 걱정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만약 일신이 삼십 초를 넘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의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은우의 눈물도, 나의 노력도, 주위의 응원도 헛되게 되는 건가. 그건 진짜 싫어. 여주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구 없는 미로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정말 일신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상황은 답이 없으니까. 누구에게도 기도를 해보지 않았던 여주지만 지금은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신이란 신한테는 다 기도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대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상호 간의 경례"
"...."
"...."
"준비해주세요."
민경의 말이 들리자마자 여주답지 않게 화들짝 놀랐고 정신 차려서 링 한가운데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마주 본 여학생과 악수를 했다. 여학생의 손아귀에는 꽤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여주는 아파서 빼려고 했지만 놔주지 않는 여학생이었다.
"네가 신수 소환을 하더라도 거기서 끝일 거야"
"...."
"왜냐하면 네가 방어 주술을 쓰기도 전에 내가 공격해서 일신은 링 위로 떨어질 거야. 아무리 일신이래도 너의 주술 명령 없으면 방어는 불가능하니까"
여학생은 여주의 귀에다가 속삭였고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손을 놓아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여주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곧 자신도 몸을 틀어서 위치로 이동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일신에게 전해지지도 모를 말을 건넸다. 음, 말이라기보다는 소망에 가까웠다.
제발 힘이 회복되었기를.
'띵-'
"집력초일신(輯力招一神)"
"명호성응천항일신(名呼聲應天杭日神)"
"어라, 저거 지훈오빠 신수 소환 동작 아니에요?"
"...."
종이 울렸다. 여학생은 곧바로 흑곰을 소환해냈고 여주는 역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시간은 손에 빠져나가는 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민현과 종현, 사방신들은 긴장했다. 정말 소환이 되지 않는 것일까. 보통이라면 영력이 강한 사람은 3일 안에는 성공하는 신수 소환이 왜 여주는 되지 않을까. 신수도 일신이면 영력은 강력할 텐데. 장내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들이 유일했다.
"흑곰 이마에 상처 봐. 솔직히 일신이 너무 강력해서 그렇지 흑곰도 멋있긴 하네"
"근데 일신은 왜 안 나와?"
십 초가 지나자 점점 의문들이 튀어나온다. 장내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설마 일신을 신수로 가진 주인이 지금 소환을 못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이 점점 또렷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주는 마음이 급해져 닥치는 대로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장내 사람들은 술렁인다. '뭐야, 일신이 신수래도 소환 못 하면 별거 아니구먼?', '소환 못한다는 소문이 있긴 하던데, 그게 진짜였네', '일신 주인 맞아? 소환도 못 하는 데 무슨 일신 주인....' 다 여주의 귀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주의 앞의 여학생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여주는 자신의 멘탈이 깨져간다는 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여주의 왼손에서 저번과 같은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저번과 같은 속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느낌. 몸속에서 불꽃 소용돌이가 요동치는 듯이 몸 안은 뜨거워져 갔다. 저번처럼 여기서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여주는 속으로 외쳤다.
'제발'
"애처로운 목소리, 잘 들었다, 주인"
"...."
"참고로, 회복은 다 끝났어"
질끈 감았던 눈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확 떠졌다. 눈을 떠보니 여주의 머리 위에 손을 살포시 얹은 채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일신이 보였다. 여주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신을 부르는 것마저도 체력 소모가 심한지 숨을 가쁘게 몰아 내쉬었다. 일신은 여주와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제 두 번째로 마주했다. 여주는 꽤 가까운 거리에서 일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전에도 본 적 없는 새빨간 붉은 머리칼과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날카롭진 않지만 높은 콧대와 얇은 입술, 눈매만큼이나 날카로운 턱선까지. 하나하나 여주의 눈에 담아졌다. 또한, 장내도 말없이 조용해졌다. 여주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모두가 발현식을 제외하고 일신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일신의 무겁게 가라앉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자유로운 분위기, '양기' 특유의 화사로움. 다들 일신의 모습에 빤히 일신만 쳐다보았다. 물론, 상대편 여학생까지.
"자, 준비됐으면 시작하도록 할게"
"흐음, 불러서 나오긴 나왔는데 이게 무슨 상황?"
".... 어, 신수 대결이라고...."
"일신을 상대로 대결이라.... 상대가 쓸데없이 용기가 넘치는 멍청이인 거야, 네가 일신이라는 신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얕보인거야"
민경의 말에 모두가 정신 차렸고 일신은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여주에게 물어보았다. 여주는 말끝을 흐리며 신수 대결이라 말해주었고 일신은 여주의 말에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한 목소리로 여주에게 상황 발생 원인을 물었다. 뭔가 비꼬는 듯한 내용이지만 여주는 차마 후자라고는 답하지 못해서 머뭇거렸다. 대신, 일신에게 일러두었다.
"내가 주술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규칙이...."
"그거 귀찮은 규칙이네. 주술은 알고 있고?"
"한두 개 정도....?"
"외치기만 빨리 외치거라. 힘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할 테니"
또, 갑자기 문어체를 사용하더니 일신은 정면을 바라보며 여주의 앞에 섰다. 일신의 말에 여주는 재빠르게 생각했다. 상대편 쪽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게 빠르게 공격을 한다 했으니 무엇을 사용해야 할까. 지금 여주가 가지고 있는 주술은 단, 세 개. 공격 주술 두 개와 방어 주술 하나. 여주만 머리를 잘 굴려서 주술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이기는 확률은 100이었다. 그걸 아는 여주는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곧, 종소리가 울렸다.
"체여총탄사(體如銃彈射)!"
"화혁(火煂)!"
"뭐, 화, 화.... 허, 내가 화혁을 쓰다니"
여학생은 아까 말한 그대로 빠르게 부적을 꺼내서 여주를 향해 주술을 사용하였고 사용하자마자 신수인 흑곰은 눈에 살기를 띄며 여주쪽으로 달려들었다. 여학생이 사용한 주술은 체여총탄사. 체여총탄사는 신수의 몸을 총과 동기화시켜 신수의 입에서 총알이 난사되는 주술이다. 총알이 목표에 닿았을 때, 신수의 속성에 맞게 작은 폭탄처럼 터진다. 중급보다 높은 수준의 주술이다. 여학생보다 조금 늦게 주술을 사용한 여주가 선택한 건 방어 주술이 아닌 공격 주술이었다.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최상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라고.
그렇지만 여주가 사용한 화혁이라는 주술은 그저 불만 뿜어대는 아주 초급적인 주술이다. 일신은 자신이 초급적인 주슬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여주의 주술이 일신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일신은 별로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입을 벌리고 총알을 난사하며 달려오는 흑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흑곰이 뱉은 총알들은 정확히 일신의 몸에 닿았고 물이지만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물폭탄들이 하나 둘씩 터졌다. 하지만 터져버린 물폭탄은 일신에게 어떠한 상처도 줄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여학생은 당황했고 주머니에서 다른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 부적을 꺼내려던 그 때, 뻗은 일신의 손에서는 불꽃들이 나오더니 이내 큰 화염이 되어서 상대편 쪽으로 불꽃들은 달려갔다.
"사람이 다치면 우리가 져! 신수한테만 공격해야 돼!"
"진짜 마음에 드는 규칙이 하나도 없네"
일신은 진짜 짜증 난다는 듯이 미간을 확 찌푸리면서 여주의 말에 일신은 손을 거뒀고 화염은 딱 여학생 눈 앞에서 멈춰졌다. 여학생은 놀란 건지 스르르 주저앉아 버렸고 여학생의 신수인 흑곰은 아예 쓰러져 있었다. 일신이 알아서 힘 조절을 한 덕분에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을 잃게 하기엔 충분했다. 신수가 많이 다쳐 여학생도 체력 소모가 극심했고 그 증거로 숨을 헐떡거렸다. 장내는 일신이 손에서 화염이 나올 때의 단말마의 탄성 이후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심판의 재량으로 더는 대결할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판정되어 김여주 학생의 승리입니다. 승리 혜택으로 음양 포인트 1000점이 지급됩니다"
민경은 차분하게 심판을 내렸고 곧 학생회 임원들이 여학생을 들쳐 메고 보건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니 여주는 일주일에 두 번 양호실에 가게 한 것에 대해서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신을 쳐다보니 갑자기 일신이 링의 정중앙으로 나가더니 문쪽을 향해서 몸을 틀었다.
"내가 한동안 이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
조용한 장내, 일신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에서는 양의 신수라고도 상상할 수 없이 따뜻한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일신이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무거운 중압감과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으로 그 누구도 일신과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마군전쟁, 나도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 사건의 발생한 것도 내 책임이다."
"...."
"하지만 무슨 논리로, 무슨 원리로 같은 세계에 살고, 같은 존재로 태어난 이들에게 한없이 날카로운 창들을 날리고 있단 말인가"
"...."
"우린 모두 같은 음양의 존재인데 어찌 누군가를 되지 않는 이유로 미워하고 손가락질 하는건가"
"...."
일신은 꽤 분노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세상에서 누군가가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워 소리치는 일신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여기 있는 모두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문밖에 있는 은우는 울음이 크게 터진 것인지 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대결장이 아닌 곳으로 뛰어갔다. 일신은 그런 은우의 모습을 주시했다. 곧, 다시 시선을 옮겨 말했다.
"만약 그래야 하는 세상이라면
내가 친히 부수도록 하지"
"...."
웬만하면 내가 지금 했던 모든 말이 모두가 알도록 온 세상에 퍼졌으면 좋겠군. 모두가 일신의 한마디에 몸이 굳었다. 일신은 몸을 돌려 여주의 앞에 섰다. 일신으로써 느껴지는 위압감에 여주는 흠칫했다. 일신은 여주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것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깍지를 낀 채로. 그리고선 대결장을 빠져나왔다. 아, 일'신'이니 평범하게 걸어서 빠져나온 게 아니라 능력으로 빠져나왔다.
".... 저기, 지금 우리 날고 있는 거?"
일신이 여주의 손을 잡고 빠져나온 것은 하늘이었고, 어제 오후, 지겹게 하늘을 날았던 여주는 별로 예사로워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제는 말이라도 타고 있었고 지금은 그냥 둥둥 떠다니고 있어 여주는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길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주는 일신이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일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살짝 띄고 있었다.
"저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웬만하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
"그래서 아무도 없는 장소가 하늘?"
"정답"
"나 지금 존나 무서우니까 내려라"
일신의 천하 태평한 태도에 여주는 이를 꽉 깨물며 내리라고 명령하였다.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욕을 쓴 여주였다. 그만큼 당황스러웠다는 뜻이겠지. 일신은 여주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며 천천히 둘은 하강하였다.
"이제 소환도 가능해졌으니 제대로 된 계약을 하도록 할까"
- 다음 편에 계속
권순영 움짤들.... 하나도 버릴 것이 없...ㅇ....(죽은자의 온기)
요 근래 별 내용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번 편에 몰아치네,,,^^
항상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이 작품 완결하려면 진짜 오래걸리겠다라는 생각...
석민이 신수와 여학생의 신수
얘가 겸둥이임ㅎ
흑곰 이마 가운데 x자 모양의 흉터가 있음
인물 정리
1학년 - 부승관, 배성연, 박시연, 최한솔
2학년 - 김여주, 전원우, 김민경, 정은우, 이지훈, 강예빈, 이석민《 new!
3학년 - 황민현, 김종현, 강동호
신수 - 권순영, 김예원
(와씨... 지난편에 제 이름 치환한 그대로 올렸더라구요.... 식은땀 흘렸습니다... 하지만 확인한건 이미 모든 분들이 다 보신 후... 뭐 주저리 보시는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눈물...이름 다 팔렸다...망했다... 울고싶다... 강제 수치플.... 아 당황하니까 말이 많아지네...)
요새 제 글실력이 참 별로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봐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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