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me ; 안개 -03 봄이지만 아직 꽃샘추위가 남은 탓에, 아침의 기온은 낮고 나름 따뜻하게 입는다고 잘 입어도 여전히 으슬으슬 추웠다. 봄은 개뿔, 시끄러운 알람소리와 차가워진 공기때문에 잠에서 깬 지호의 입에서는 저급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회사를 다녀와야 했다. 지호의 집과는 많이 먼 거리였고, 회사 업무는 주로 본인의 집에서 처리 가능한 일이라 굳이 매일매일 출퇴근할 필요가 없는 지호였지만 오늘은 업무 보고와 그 외 기타 자잘한 사항들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녀와야만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강 씻고 나오자 6시 50분이였다. 아직 시간은 조금 이르지만 뭔가를 먹자니 딱히 입맛이 돌지 않았던 탓에 지호는 본인 입맛에 맞게 진하게 탄 커피만 홀짝거리다 집을 나섰다. 지호가 사는 곳은 도시와는 꽤 먼 곳에 있었다. 너른 풀밭과 나무 몇 그루, 그리고 지호의 집 한채. 자칫하면 꽤나 이상한 그림이 될 수도 있지만 지호의 집과 주변 풍경은 정말 잘 어울렸다. 마치 처음부터 지호의 집과 주변 풍경이 공존하며 오랜 세월을 보내온 듯이. 가끔씩 집을 나설 때마다 보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뭔가 기분이 묘했다. 예전의 그다지 달갑지 않던 기억들이 생각 날 것만 같았다. 오늘따라 잡생각이 좀 많은 것 같다며 스스로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지호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아, 출근해야지, 늦겠다. 지호는 혼잣말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들을까 하다 맘을 바꾸고 좋아하던 노래를 틀었다. 아침 시간대라 재미있는 이야기는 얼마 없을 것 같아서였다. 평소보다 볼륨을 조금 더 키우고 노래를 튼 지호의 차가 집 근처를 벗어났다. 두세시간 정도 차를 몰면 회사가 있는 도시가 나온다. 큰 도시는 아니지만 없을 건 없는 나름대로 번듯한 소도시이다. 오는 길에 맛있는거나 사먹어야지. 아니면 옷을 사던지. 그렇게 생각하던 지호는 문득,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저를 찾아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일까, 그보다 나를 왜 찾아 올까. 아니면 단순히 잠깐 스쳐지나가는 느낌일까. 이상한 애들만 아니면 좋겠는데. 뜬금없이 드는 느낌에 오만가지 상상을 하던 지호는 차창을 조금 열었다. 어느새 여덟시. 허나 바람이 찬건 매한가지였다. 커피를 마셨지만 약간 잠이 오는 듯 했었는데 찬바람을 맞으니 잠이 다 깨는 느낌이었다. 속력을 좀 더 내도 될 것 같았다. 괜히 들뜬 기분에 콧노래가 나왔다. 왜였을까, 요즘은 뭘 해도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었는데. 차를 몰며 생각을 해봤지만 무엇 하나 짐작가는 구석이 없었다. 출근이긴 하지만 오랫만에 밖에 나가는 길이라 그럴 것이라 단정짓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여지껏 깊게 생각해서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딱히 깊게 생각해서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신나는 노래를 틀고 액셀을 좀 더 밟았다. 그렇게 달리다 어느새 회사에 도착한 지호는 운전하느라 또 뻣뻣해진 것 같은 목을 돌리며 차에서 내렸다. 올 때마다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듯한 회사의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나마 어색하지 않은 것은, 입사동기라고 저를 챙겨주는 효상 뿐이였다. "어, 신지호! 웬일로 니가 출근을 했냐?" "일때문에 왔죠. 별 일 없었어요, 형?" "왜, 없었으면 맛있는거나 사주게?" "그럴까요? 삼겹살?" "됐어 임마, 농담이야." "아깝다. 핑곗김에 먹으러 가려 했는데." "그럴 줄 알았지. 다음에 오면 형이 사줄게." "됐고, 일이나 하세요, 지금 와서 일 하나도 안했지?" "할거야. 암튼 일 보고 가. 담에 올때는 맛있는거 들고 오고." "형이 사준다면서?" "그럼 말고." 어딘가 좀 바보같은 대화가 오고 가지만 효상은 늘 지호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아는척 해주는 사람이였다. 딱히 그렇다고 효상이 남자에 관심이 있다던가 지호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거나 한 건 물론 아니지만. 업무에 대한 보고와 깐깐하고 성질 더러운 팀장의 잔소리 듣는 일 까지, 회사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내고 나오던 지호는 잠시 마트에 들렸다. 집에 먹을 것이 별로 없었던 게 생각났다. 이것저것 사놓고 싶어도 요리는 정말 조금밖에 못하는 지호였기에 그냥 라면이나 어렵지 않게 요리 해 먹는 식품들로 카트를 채우고 계산을 했다. 생각보다 많이 산 걸까, 계산을 마치고 먹을 걸 담은 봉지가 오늘은 좀 더 무거웠다. 그리고 그새 스케쥴을 비운 효상을 만나 잠깐 담소도 나누었다. 짐을 싣고 차에 올라 시간을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났다. 돌아가면 아마 시간이 꽤 늦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라디오를 틀고 차를 몰았다. 라디오에서는 신인 아이돌 멤버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소개를 마치고 나서는 앨범이 어떻네, 개인기가 어떤 게 있네, 하며 여느 프로그램들과 다를 바 없이 떠들어댔다. 지호는 라디오 애청자라던가 그런 건 아니였지만 확실히 이건 누가 들어도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라디오를 끄고 아침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던 노래를 재생시켰다. 조금 시끄럽지만 지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였다. 드럼소리가 유독 강하게 들렸다. 한참 차를 몰던 지호는 돌연 핸들을 꺾었다. 많이 돌아가긴 해야 하지만 제가 좋아하던 길이 생각났다. 똑같이 풀밭 천지에 나무 몇 그루 뿐인 길이지만 어쩐지 지호의 눈에는 그 길이 더 예쁘고 탁 트인 듯 했다. 이 길로 가면 세시간 반은 더 걸릴 것이다. 지금 시각은 한시 반이다. 문득 지호는 차창을 열고 몸을 조금 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하늘에 가득 차있던 별이 지호의 시야에도 한가득 들어찼다. 오랫만의 바깥 외출이지만 매일 보던 밤하늘. 그 밤하늘과 분명 같은 하늘인데도 오늘은 더 빛났다. 실로 오랫만에 쓸모 없는 감상에 젖어들 것 같기도 했다. 잠시동안 그렇게 황홀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던 지호가 다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또 얼마나 달렸을까, 지호의 집에 가까워 오면서 날이 천천히 밝기 시작했다. 좀 더 가면 지호의 집이 보일 것이었다. 그런데, 차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지호의 시선이 어느 곳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쓰러져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간에 사람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렸다. 언제부터였는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저대로 있으면 추울텐데, 걱정이 된 지호는 혹시나 해서 늘 트렁크에 넣어둔 우산을 꺼내 펼쳐 보았다. 보기보다 컸다. 아마 이정도면 두명이 비를 피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비를 많이 맞았을까, 급히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지만 다행스럽게도 비가 오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지호는 우산을 펴고 앉아 쓰러진 사람을 살펴보았다. 남자였다. 체구로 보아 성인 남성은 아닌듯 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 쳐도 고등학교 1학년 (그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무리) 정도나 될 법 했다. 눈대중으로 짐작해보자면 어지간한 고등학생들 보다도 작을 것 같았다. 남자지만 눈을 꼭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이 왠지 예뻤다. 문득 지호는 옛날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젊은이로 변하여 여성을 홀리던 인큐버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 남자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아까 차를 멈추기 전에 본 막 뜨고있던 해도 지금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제와서야 이 사람 괜찮은 걸까, 어디서 뭘 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온갖 생각이 지호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의 그 느낌은 틀린 것이 아니였다는 것도 지호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한 몫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남자가 깨어났다. "일어났네요? 다행이다." 생각으로만 담아둘까 하다가 괜히 소리내어 입밖으로 말을 뱉었다. 허나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지호는 조금 민망했다. 역시 괜한 짓이였나. 남자는 대답 없이 지호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지호도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예뻤지만 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더 예뻤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정적이 지속되자 민망해진 지호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에요? 어디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여기 이렇게 비 오면 되게 추워요. 감기 걸리기 딱이야." 남자는 대답없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남자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자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말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호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하던지, 아니면 이 곳을 벗어나던지, 뭐를 하든 기다려 주기로 했다. 남자는 잠시 고개를 들어 지호를 바라보더니 도로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걸까. "지금은 말 못하겠어요?" 남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호는 그제서야, 어쩌면 남자가 지금 말을 하기 싫다거나 입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사연이 있기보다는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다림은, 그 남자에게는 아무 의미도 필요도 없는, 되려 상처가 됬을 수도 있다. 지호가 생각한 것이 맞다고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듯이, 남자의 표정은 아까보다 조금 더, 아니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 지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같다고 느꼈다. 왜 여태껏 그 생각을 못했을까. "미안해요. 그럼 여기 계속 있을거에요? 어디 갈 곳은 있어요?" 아니, 이러려는게 아니였는데. 미안하다는 말만 하려던 것이, 순간적으로 쓸데없는 말까지 붙여버렸다. '가지가지 한다, 신지호.' 순간적으로 뱉어버린 헛소리에 대한 사과를 하려 했으나, 남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말도 잃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호는 그가 처한 상황이, 그 감정이 뼛속까지 와 닿았다. 몇년 전 쯤에, 지호가 이 곳에 왔을때의 그토록 외롭고 막막해보이던 세상을, 제 앞에 있는 남자도 보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작가의 주저리(는 사실 헛소리라죠?) 안녕하세요!엔비션입니다. 사실 이번화는....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안나네요 쓰다 중간중간에 계속 막혀서 멈추고 다시 불러와서 쓰고 고치고..하다보니 이번 내용은 좀 정신없고 두서 안맞는 내용도 많을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다음에는 좀 더 똑!바!로! 잘 써올게요ㅠㅠㅠ 이걸 말씀드리고자 해서 넣지도 않던 주저리를 써봤어요 제가 참..ㅋㅋㅋ; 사실 인티에서 이렇게 픽 써보고 하는것도 처음이고 해서 모르는거나 실수하는 것도 많을거에요. 그래도 예쁘게 봐주세요☞☜오타나 지적은 둥글게 둥글게(짝)!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참,댓글 달고 포인트 돌려받아가세요♥ p.s. 암호닉 신청해주신 뒷커버님 감사합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