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me ; 안개 -07 「불안한 마음 두개가 모여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한솔의 방을 나온 지호는, 문득 어느 뮤지컬 영화에서 지나갔던 가사 한 소절을 떠올렸다. 제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지호는, 조용히 한솔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호가 그저 영화의 내용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제게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즐거워서 웃는게 아닌, 몇년 전의 소소했던 대화와 함께 있던 이가 떠올라 지어지는 쓴웃음이었다. "왜? 멋있지 않아? 영화나 드라마 대본이나 뭐 그런것처럼 살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마 그 질문에 피곤하지 않을까, 라며 딴지를 걸었더랬지.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의 나이나 다른 자잘한걸 따져봤을때, 참 그다운 생각이었다. 마냥 밝고 어렸던 그의 환상이 지금은 깨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그가 걱정이 되었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지호는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매번 그랬듯이. * 지호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다. 지호보다 한 살 많은 형이지만 친형제라고 하기는 멀었다. 온전히 피가 섞인 게 아닌, 뿌리만 같고 가지는 다른 사실상 반쪽짜리 형제 인 셈이었다. 지호의 형인 윤철은 아버지의 실제 부인으로부터 낳은 자식이었고, 지호는 다른 여자에게로부터 낳은 자식이었다. 불륜이다 뭐다 소문이 날 법도 하지만 지호의 어머니는 지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종적을 감췄고, 아버지 또한 높은 위치에 있는 몸 답게 소문이 나지 않도록 조치-라 함은 지호를 정식적으로 아들이라 하지 않음이었다- 를 한 덕에 세상의 대부분이 그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고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지호의 아버지는 지호에게는 따뜻한 눈길 한번도, 말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서는 수시로 지호를 내쫓을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은 매번 윤철에 의해 가로막혔다. 혹여나 지호를 집에서 내몰아도 얼마 안가 윤철이 지호를 찾아내 집에 데려오면서 아버지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대들고는 했다. 그런 윤철 덕분에 지호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매몰찬 시선과 냉대, 지호의 존재와 자세한 이야기를 아는 대부분의 이들이 보내는 경멸의 눈초리와 그의 뒤에서 몰래 수군거리는 모진 말 속에서 큰 상처를 입으면서도 지호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으려 버텨왔던 것은, 온전히 저를 아껴준 윤철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괴감이 드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친형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다른 도움이 되어 주지도 못하는 제가 뭐라고 늘 제 편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인지 윤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때로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다른 곳으로 사라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무섭게 다그치던 윤철에 또다시 생각을 접어야 했다. 몇번은 윤철에게 솔직한 대답을 듣고싶은 맘에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대답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형." "왜?" "왜그래?" "뭐가?" "아니, 뭐.. 친형제도 아닌데 맨날 나 때문어 그러는거, 힘들지 않아?" "그러는게 뭔데, 아버지한테 너 내쫓지 말라고 맨날 개기는거?" "응, 그런거." 이렇게 물어볼 때 마다, 윤철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어. 근데 아니면 네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르니까.." "형." "왜?" "바보같은거 알지." "응." "근데 왜 그래?" "형이 동생 지켜주는게 어때서." "근데 난 친동생도 아니잖아." "알 게 뭐야, 그딴거." 그러고서는 딱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또 다시 지호에게 애원 아닌 애원을 하는 윤철. "지호야." "응." "나한테 바보라 하던 병신이라 하던,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 하던, 다 상관 없으니까," "응." "어디 가지 마. 내가 아버지한테 잘 말해볼 테니까, 지금이야 아버지가 저러셔도 나중에는 괜찮을 거야. 알았지." 그럴 때 마다 지호는 윤철이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될 것은 어떻게든 안 된다. 되는 것 처럼 보일 지 몰라도, 가끔은 안 될 것도 된다지만, 적어도 윤철과 지호의 아버지만큼은 아니었다. 한 번 안 된다 한 것은 결코 그 생각이 변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완고한 이를 어찌 변하게 한다는 말인지, 때로는 윤철이 정말 바보같고 한심했다.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윤철의 그런 마음이 지호에게는 큰 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지호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지호의 아버지는 사람을 시켜 지호에게 이런저런 것을 가르쳤다. 주로 컴퓨터로, 정보와 관련된 것 위주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호는 금방금방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했고, 때로는 기대치 이상의 것을 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지냈다. 대학교는 가지 않았다. 지호가 진학에 관심이 없었기도 했지만, 아버지 역시 지호가 대학에 가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지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철이 몇일간 집을 비우게 되었을때, 아버지는 조용히 지호를 불러내었다. "왜 불렀을지는 눈치 챘을테니 굳이 길게 말 하지는 않겠다. 짐 싸, 지금 당장."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우스웠다. 어쩌면 지금까지 가르쳐 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철이 그놈 하나 때문에 몇 년을 기다렸어." 또, 윤철이었다. 다시금 윤철의 행동과 말들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곳에 남게 해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껏 저 하나 때문에 몇년을 힘들어 했을 윤철을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에게 폐일 뿐이었다. 그저 지금 순간에 걱정되는 것은, 갈 곳이 없다는 것, 그 하나였다. "사람을 한명 대기시켜 놨으니까, 그 사람이 데려다 줄 거다. 가서 내가 얘기한 회사 들어가. 그리고 웬만해서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해라. 더 이상 너 때문에 신경 쓸 일 없도록." 지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의 방을 나섰다. "만약에라도, 윤철이가 찾아간다 하면 절대로 들어오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지호는 웃음이 나왔다. 고작 권력 하나 때문에 피붙이를 배척하는 아버지도, 친동생도 아닌 저때문에 매번 아버지에게 대들지만 결국에는 제가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윤철도, 바보같고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의 말대로 낯선 남자가 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도시였다. 나름대로 갖출 것들은 다 갖추었지만 낯선 곳이었다. 아버지가 말한 회사에 가서 간단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은 까다로운 일이지만, 회사에 자주 오지 않아도 처리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남자가 다시 몇시간 동안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회사보다 훨씬 더 외진 곳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풀과 나무들 뿐이었고, 집 한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역시 아버지는, 세상에 지호의 존재가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다. 어떻게든 세상에서 격리시켜 놓으려는 듯 했다. 집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다시 밖으로 나온 지호는 잠시 걸었다. 딱히 어디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작정 걸었다. 30분 쯤 그렇게 걷다가 근처의 나무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막막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집을 나왔다. 짐을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짐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막막했다. 감이 오질 않았다. 대체 왜 아버지는 그리도 제게 차갑게 대했는지, 윤철은 왜 저 하나 때문에 몇년을 힘들게 싸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밉고, 아버지도 윤철도 미웠다. 괜히 눈물이 나왔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버려지고 혼자 남게 되었다는게 원망스럽고 아팠고 깜깜했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소리 없이 흐느꼈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어떻게라도 해 볼까, 부질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절대 가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제게 말하던 윤철의 목소리도 생각이 났다. 비참했다. 이제는 아무도 지호를 감싸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금 아프게 다가왔다. 어둡고 찬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던 밤, 지호는 그렇게 홀로 버려져 아무것도 의지 할 수 없게 되었다.
픽 내용보다 더 잘써진다는 엔비션의 주저리 |
엔비션입니다! 이번에도 조금 늦었네요. 좀 더 일찍 쓰려 노력했는데 맘처럼 잘 안되네요..☆★죄송합니다ㅠㅠ 이번 편은 지호의 과거에요. 쓰다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져서 놀랐던...ㅋㅋㅋ나중에 한솔이 이야기 쓸때는 더 길어질 것 같다는건 비밀로 해두죠ㅇㅅㅇ 아,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건데 저 이번주 목요일 금요일 시험보네요ㅋㅋㅋㅋ이번달만 시험 5일잼..☆★행운을 빌어주세요 읽어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래요!♥ |
암호닉♥ |
뒷커버님 블리님 항상 감사하고 제가 사랑하는거 알죠?아니 모르시면 말구요..☞☜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습니다 언제든 찔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