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 듯 했다. 재환아, 일어나라. 가야 할 곳이 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의식적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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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홍빈아, 일어나. 놀러가자!”
분명 형의 목소리지만 형의 말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기에 이불을 좀 더 끌어당겨 귀를 막았다. 놀러가는 건 좋지만 대상이 내가 아니면 무슨 상관이랴.
“홍빈아! 막내야, 둘째야, 동생아!”
눈을 채 뜨지 못한 상태로 벌떡 일어났다. 잠에 취한 시야로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은 나를 세숫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가 있는 곳으로 날 이끌었다. 홍빈이가 누구냐며 물으려고 입을 연 순간 형의 오목한 손그릇에 담긴 물이 내 얼굴을 덮었고 난 내 입으로 들어 온 물을 그대로 토해내 듯 뱉어주었다. 홍빈이가 누구냐니까?
“아부지랑 나랑 둘이서 지었다. 네 이름이야.”
늦여름의 끝을 알리는 쓰르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은 날. 남들은 정신없이 울부짖어 저가 살아있음을 부모에게 알리며 태어났겠지만 난 색다른 탄생을 맞이했다. 아버지와 형, 그 둘과 함께 구름에 가려진 미약한 햇빛을 받아들이며 난 태어난 것이다. 단순한 서류로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색달라 좋았다. 달력을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 연필을 들고 형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형에게 종이와 연필을 넘겼다.
“형, 내 이름 써줘.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어.”
형은 연필을 꼭 말아 쥐고는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꾹꾹 글자를 눌러 썼다. 동글동글하면서 각진 이름이 내 손바닥 위로 올라오고 난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제 누가 물어보면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제 이름은 이홍빈이에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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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물가로 왔다. 아버지와 단 둘이서 오는 물가는 어렸을 때 빼고는 오랜만이었다. 아버지는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물길을 쫓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를 뒤 따라 쫓아야 하는 이유는 어젯밤부터 알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