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학창시절 추억에 '이동혁'을 심어드립니다.
1.
이동혁은 일주일에 세 번 야자를 안 함. 왜냐면 예체능이라 학원에 가기 때문에... 혼자 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매일 뒤도 안 돌아보고 감.
오늘도 이동혁이 '나 감' 하는 톡 하나 남기고 사라져버려서 석식 먹다가 괜히 짜증이 났음. 집 가는 거 개부러워...
사실 이동혁은 내가 야자할 시간에 학원에서 연습하는 거라 그렇게 부러울 것도 없지만 학교에 없다는 거 자체가 부러웠음.
그래서 야자 끝나면 이동혁 학원 끝날 시간이랑 얼추 비슷하니까 끝나기 30분 전부터 이동혁한테 밑밥을 뿌리기 시작함.
-야
-도녁아
-나 데리러 와
-뭐? 온다고?
-알았어 기다릴게~!
-? 뭐래
-못 가니까 걸어가지 말고 버스 타고 가라
야자 끝나고 확인한 답은 허탈하기 그지 없어서 친구랑 계단 내려가면서 얼른 집 가고 싶다고 그런 얘기 하는데
"헐 야 이동혁!"
이동혁이 교문 앞에서 폰 보고 서있는 거임. 와 나 진짜 감동받아서 친구한테 인사하고 완전 날라갔었음.
"뭐야, 못 온다고 한 사람 누구?"
"진짜 존나 귀찮다 성이름"
"야, 근데 진짜 어떻게 왔어?"
"뭘 어떻게 와, 너 버스 안 타고 혼자 걸어갈 거 뻔히 보이니까 왔지."
이동혁 ㄹㅇ 귀신임. 나 버스비 없어서 걸어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고.
2.
난 수학시간을 진짜 개싫어함. 극도로 혐오함.
내가 수학을 진짜 못 하는데 우리 수학 선생님은 꼭 시간마다 몇 명 나와서 풀어보게 시킴;; 아니 그거 풀 줄 알면 내가 가르치지(?)
수학 시간만 되면 진짜 개 쫄아서 눈도 안 마주치려고 책만 보고 있는데 그 날따라 번호 불러서 시키는 거임.
솔직히 그렇게 시키는 거 법적으로 금지시켜야 된다고 생각함. 엄연한 폭력임... 정신적 피해 오지고요...
수학 선생님은 정말 이상한 사람답게 이상한 방식으로 애들을 뽑았음.
"그럼 이건 17번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서 풀어볼까."
아무도 안 나갈 줄 알았는데 그 17번 애가 마침 커플이라 걔 여자친구가 나가서 수줍게 문제를 풀고 들어옴.
아싸 이런 식이면 내가 나갈 일은 없겠다 싶었음. 좋아하는 사람따위... 없는 척 하고 안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여?
"이건... 20번 좋아하는 사람?"
거기서 존나 움찔 했음. 왜냐면 20번 이동혁이라서.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안 나갈텐데 웃음거리 되면 얼마나 크게 웃어줘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동혁이 갑자기 날 툭 치는 거임.
놀리려는 거 알아서 선 시비 거는 줄 알고 돌아봤음.
"뭐 해, 안 나가고."
그 날 나가서 문제 풀고 내가 이동혁 좋아한다고 소문 난 거 가라앉는데 한 달이나 걸렸는데 한 달동안 이동혁 되게 즐거워보이더라.
3.
짝 바꿨는데 내 짝새끼가 진짜 개 빡쳤던 적이 있었음.
아니 내 앞머리를 자꾸 손으로 넘기는 거임. 아침에 기껏 고데기 하고 나왔더니 정리하면 보다 넘기고 정리하면 넘기고 그러는 거.
참다참다 하지 말라고 욕도 해보고 짜증도 냈는데 미친놈이 쳐맞아도 계속 함.;;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싸워서라도 못 하게 하고 짝을 바꾸리라 생각했었음.
쉬는 시간에 이동혁이랑 떠들고 있는데 짝새끼가 지나가다가 또 내 앞머리로 손을 뻗길래 아 진짜 싸운다. 꼭 팰 것이다. 이러고 있었는데
"야, 얘가 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냐?"
이동혁이 걔 손 탁 쳐냈음. 솔직히 이 땐 감동 좀 넘어섰다.
이동혁 맨날 수업시간에 잔다고 그러더니 이런 거 다 지켜보고 있었나봐.
4.
이동혁이랑 나랑 둘 다 야자를 안 하는 날이 있음. 금요일.
나도 학원 가고 걔도 학원 가고 해서 둘 다 야자를 안 하는데 끝나고 하교는 같이 함.
문제는 내가 이번달 특별구역 청소라 영어교실 청소를 해야 됐었음. 이동혁 이런 거 기다리는 거 싫어함. 참을성 없어서.
내가 청소 하고 있으면 책상에 걸터 앉아서 빨리 좀 해라, 저기 쓰레기 있다, 이런 식으로 잔소리 하는데 그럴 때마다 빗자루로 머리 빗어주고 싶음;
근데 오늘은 청소 하는데 책상에 안 앉아있고 칠판 앞에서 알파벳 자석 가지고 꼼지락 거리고 있는 거임.
그래 차라리 저렇게 조용히 있는게 낫지 싶어서 이동혁 그러고 놀 동안 혼자 열심히 청소 했음.
대충 마무리 된 것 같아서 가려고 이동혁 불렀는데 이동혁이 ㄹㅇ 개 뿌듯한 얼굴로 이거 봐. 하는 거임.
"이거 뭔데."
"너랑 내 이름 이니셜."
진짜 지 이름이랑 내 이름 이니셜 찾아서 구석에 붙여놓고 하트까지 그려둠.ㅋㅋㅋㅋㅋㅋ 아 좀 귀여웠다.
내가 하트 그린 거 놀리면서 나 좋아하지? 좋아하네. 이랬는데 끝까지 아니라는 말은 안 했어.
5.
아침에 가끔 내가 일찍 일어나면 이동혁이랑 학교를 같이 감.
왜 가끔이냐면 이동혁은 매일 일찍 일어나서 나 버리고 먼저 의리 없이 가버리기 때문.
그 날은 그냥 같이 가고 싶어서 좀 조급하게 준비하고 나갔음. 그래서 틴트도 못 바르고 나간버린 거임...
나 입술색 없어서 틴트 안 바르면 진짜 아파보이는데 그거 보면 이동혁이 놀릴 거 뻔해서 계속 입 가리고 얘기함 걔랑 ㅋㅋㅋㅋㅋㅋㅋㅋ
말소리가 잘 안 들리니까 답답했는지 왜 그러냐고 물어보길래 틴트 안 발라서 못 생겼다고 했더니 존나 쳐웃으면서 내 손을 치움.
"존나 건강해보이는데."
"네가 뭘 알겠니..."
내가 한숨 쉬니까 기분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어깨동무 하듯이 내 뒤로 팔 둘러서 입을 가려줌.
읭스러워서 쳐다보니까 엄청 당당한 얼굴로 내려다보더이다... 물론 계속 그렇게 가면 애들한테 놀림 받을 거 뻔해서 중간에 치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