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카페알바 경험에 '정재현'을 심어드립니다.
1.
재현오빠가 처음에 알바생으로 들어왔을 때 솔직히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음.
사장님이 돈 한 번 제대로 벌려고 작정하셨구나. 그거 아니곤 그 정도로 잘생긴 사람을 우리 카페에 들일 일이 없다니까요?
왜냐면 재현오빠 본인 피셜 카페알바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라 경력자 우대인 우리 카페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임. 근데 알 게 뭐야 잘생겼는데.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재현오빠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나였음. 사람이 뭘 배우고 알려주다 보면 안 친해질 수가 없다니까요?
게다가 재현오빠가 우주최고 꼼꼼이라서 나는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먼저 눈치 채고 짚는 경우도 많았음. 아니 하는 거 보면 실수도 없고 무슨 원래 할 줄 알았던 사람처럼 함.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딱 그 스타일이었음. 내가 저런 사람이었으면 처음에 그렇게 눈치보는 일은 없었을텐데.
아무튼 그래서 알바 가면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이름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름아, 이렇게 하는 거 맞지?"
"이름아."
내 이름을 진짜 오조오억번 들을 수 있었음. 처음에는 재현오빠 목소리가 좋아서 그래 이런 식이면 들을만 하겠다 했는데 너무 자주 부르니 이제는 들숨날숨으로 느껴졌음.
우리가 어느 정도로 붙어있냐면 사장님이 나와서 보시고는 둘이 살림 차렸냐고 물어봤을 정도임. 나는 그거 듣고 그냥 하하하 그러게요 했는데 옆에서 샷 내리던 재현 오빠가 갑자기
"이름이랑 살림 차리면 좋긴 하겠다. 지금처럼"
그러시길래 저는 당황해서 앞치마만 손톱으로 뜯었다고요...
2.
카페 알바는 생각보다 위험할 때가 많음. 화상 입을 일도 있고 깨지거나 베일 수 있는 물건이 곳곳에 즐비해 있기 때문임.
그 날도 그냥 정신 놓고 막 이것저것 하다가 자몽 썰던 손 끝을 베인 거임. 지금까지 꽤 오래 알바하면서 한 번도 그런 실수 한 적 없어서 좀 더 당황했었음. 게다가 상처+자몽 조합은 너무... 너무하잖아요...
근데 어디서 튀어 나온건지 재현오빠가 갑자기 와서는 내 손을 낚아채갔음. 손보다 그 오빠가 갑자기 튀어나온 거에 더 놀랐음.
"피난다."
"괜찮아요, 심한 것도 아닌데."
"뭐가 괜찮아. 피 나는데."
하더니 그 길로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적도 없는 구급상자 찾아와서 굳이 직접 약 발라주고 밴드까지 붙여주고 나서야 마음 편한 사람처럼 굴었음.
솔직히 얼굴 잘생김 사람한테 이런 마음씨 주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내가 좋으니까 됐어. 누가 뭐라고 해.
괜히 걱정시킨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좀 더 열심히 해보려고 했더니 상처에 물 닿으면 안 된다고 그 날은 주문만 받게 했음. 세상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진짜.
3.
하루 재현오빠가 집안 사정 때문에 못 나와서 다음 타임 애가 대타 뛰었던 적이 있음.
원래 나랑 같은 타임 하다가 다음 타임으로 옮긴 애라서 그 날은 둘이 유독 편하고 재미있었음. 서로 자기 타임 알바 얘기하다가 재현오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걔가
"그 오빠 일 잘하지."
"어? 어. 이제 일한지 꽤 됐으니까."
"아니 그거 말고 경력자의 테크닉 같은 거 없어?"
"경력자?"
"응. 그 오빠 어머님이 가로수길에 큰 카페 운영하셔서 카페 일은 눈 감고도 한다던데. 몰랐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진짜 몰랐어? 하더니 같이 일해보면 알 거 같은데. 하고 가버림.
아니 경력, 그럼 그 동안 내 이름 들숨날숨처럼 부르면서 했던 수많은 질문들은 무엇...? 알고 나서 생각해보니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는 거였음.
4.
솔직히 그런 말 듣고도 똑같이 대할 수 있는 사람 없다. 인정?
왜 그랬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면 알바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버림... ㄹㅇ 따라잡으면 퀵실버.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진짜 그래도 되는데 왠지 그러기가 싫은 거임. 그래서 까놓고 물어보기로 함.
알바 끝나고 정류장까지는 같이 걸어가니까 그 때 물어보기로 다짐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까 입이 안 떨어짐... 뭐 훔쳐먹은 거라도 있냐고 나...
"이름이 너 이번 주에 되게 피곤해 보인다."
"나?"
"응, 무슨 고민 있는 사람 같아."
내가 누구때문에 고민하는지도 모르고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속이 터집니까, 안 터집니까 그래서 답답한 마음이 결국 내 인성처럼 터져버린 것임...
"오빠."
"응?"
"카페 일 어떻게 하는 건지 다 안다면서요? "
내 질문에 당황한 티 팍팍 내면서 어색하게 웃길래 근데 왜 그랬어요? 하고 물어보니까 음... 하면서 말을 질질 끄는 거임. 시간은 지나가고 난 명이 짧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다 안다고 하면 이름이 네가 나 신경도 안 써줄 거 같아서."
"내가 지금 뭐 물어보고 싶은지 모르죠."
"대충 짐작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