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학원 라이프에 '나재민'을 심어드립니다.
1.
나는 대한민국 입시생이고 그에 맞게 학원을 굴러다니고 있음. 정말 굴러다님. 엉엉 행복이 성적 순은 아니잖아요.
수학은 진작에 포기한 학문이기 때문에 글로벌하게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음. 처음에 딱 끊고 나서는 진짜 공부만 해야지 결심했는데 3일만에 친구가 생겨버림. 친화력 무엇이냐고...
전혀 친해질 생각도 없었던 같은 타임 수업 듣는 애랑 친해졌음. 어쩌다가 친해졌냐면 첫 날 수업 듣는데 누가 존나 쳐다봐서 고개 획 돌렸더니 걔가 나 보고 있었음;
눈 마주치면 피하겠지 싶어서 쳐다본 건데 오히려 웃으면서 안녕 하는 바람에 제가 더 당황해서 대충 손 흔들어주고 눈 피했다고요... 진짜 이상한 놈한테 걸린 것 같았음.
근데 그 다음날부터 걔가 바로 내 옆자리에 앉는 거임. 다들 친구가 있는지 잠깐 있는 쉬는 시간에도 잘들 놀길래 혹시 친구 없어서 이러나 싶었는데 정답입니다.
"안녕."
"아, 어 안녕."
"내가 어제 갑자기 인사해서 당황했지."
"조금?"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너랑."
그렇게 말하는데 제가 또 뭐라고 합니까. 저는 정이 너무 많아서 탈인 사람인데 공부할 거니까 꺼지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 쉬는시간이라 나도 놀고 있었어.(변명)
"나 그렇게 재미있진 않은데."
"충분히 재미있어 지금."
그렇게 말하면서 웃길래 혹시 얼굴이 웃긴가 해서 말 못할 욕만 속에 담아놨음. 그래서 본인은 괜찮게 생겼겠다...?
"나재민이야, 내 이름."
그 날 바로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임. 나재민.
2.
나재민은 타자가 빨랐음. 어떻게 알았냐면 카톡 답이 ㄹㅇ 개빨리 오기 때문임. 5G 사람으로 만들면 그거 나재민.
내가 늘 30분에 도착 하는데 혹시 30분이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바로 카톡이 옴. 어디냐고. 나재민은 답이 그렇게 빠른데 나만 느린 건 또 너무 쓰레기 같아서 자꾸 신경쓰게 된다고요... ㄹㅇ 미치고 팔짝 뛸 노릇.
하루는 내가 학교 수업 끝나고 담임이랑 상담하는 것 때문에 학원 수업을 한 타임 늦게 들은 적이 있음. 내가 안 가면 그냥 안 오나보다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신경 쓰여서 친절하게 연락까지 남김.
학원 계단 올라가면서까지도 나재민이 답이 없어서 좀 이상하긴 했는데 공부하느라 바쁜가 싶었음.
"와, 나 진짜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한 거 알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수업 듣는 교실 문 딱 여니까 나재민이 핸드폰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짜고짜 내 손 잡아 끌어서 자기 옆에 앉혔음. 난 상황파악도 잘 안 되는데 너는 해맑구나... 그렇구나...
"너 왜 여기있어?"
"나도 이번 타임 수업 들으려고."
"왜?"
"네가 이번 수업 들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이유 아니냐고 한참을 물어봐도 다른 이유 같은 거 없다고 그래서 그 말을 믿어줘야 될지 말아야 될지 한참 고민했음.
3.
학원은 늘 늦게 끝남.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음.
그래서 매일 끝나고 나면 깜깜한 아파트단지 걸어갈 생각에 치가 떨림. 아니 세상은 대체 왜이렇게 무서운 거야...? 범죄자들 다 뒤졌으면...
학원 앞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나재민이랑 같이 감. 내가 가방 정리하는게 좀 늦는 편인데 나재민 그걸 매일같이 기다려주고 있음. 이건 인내심이 좋거나 그게 아니면...음
"어제 왜 집 가서 카톡 안 했어"
"어제 진짜 씻자마자 기절했어"
별로 웃긴 말도 아니었는데 웃는 나재민을 보자니 애가 그냥 착한 건가 싶고...
나재민은 아파트 단지 안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맨날 그러는데 솔직히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버스정류장 와서 버스 타고 가는 거 오바임 진짜. 게다가 나재민이 나보다 더 위험해 보여...
내가 절대 안 된다고 말리고 말려서 집에 가자마자 카톡하는 걸로 둘이 합의봄.
4.
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보는 시험 같은 게 있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임... 너무 어렵고 못 보면 너무 혼나... 엉엉
그 날도 내가 그 전 시험보다 점수가 떨어져서 온갖 자존감 깎아먹는 말들은 다 들었음.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되나 인생에 회의감이 들고... 당장 눈물 날 것처럼 슬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선생 인성 뭐였지 아.
심지어 그 날 나재민도 없어서 속상함 더블로 맞았는데 집 가면서 엄마랑 한 통화가 서러움을 따따따따따따블 시켜버림. 세상에 내 편 없냐고
결국엔 길에서 쪽팔린 것도 모르고 질질 우는데 나재민한테 타이밍 좋게 전화가 온 거임.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음.
"여보세요."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울어?"
그 얘기 듣는데 눈에 무슨 폭포 내리는 줄 알았음. 진짜 못났을텐데 전화로 한 거라 다행.
"어디야?"
"방금 끝나서 나왔어"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나 보고 가면 안 돼?"
"바로 가야 돼..."
"아 왜 그래 진짜."
"어?"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게 없잖아."
다음날 거울 봤는데 ㄹㅇ 가관이었음.
-같은 학원물이라 그런지 계속 동혁이를 끼얹음...
-재민이가 데려다주는 거 동혁이가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우연히 보고 얼굴 굳어서 누구냐고 묻는 거 제가 방금 본 것 같은데 정말 정신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