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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me ; 안개

-04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무어냐 물어본다면, 아마도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 본인의 그때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똑같이 보고 있는 것 역시 그 끔찍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몇년 전,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과 주변의 사람들까지 다 잃어버리고 이 곳에 홀로 남겨진 채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던 지호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갈 곳도 함께 할 사람도 없는, 목소리까지도 잃어버린 남자를 대면하고 있다. 그 사실이 지호의 머릿속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왠지 모르게 지호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자의 모습이 예전의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것이 그토록 애달팠다.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지호가 남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어디서 온 사람인지조차도 몰랐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곳에 계속 있기가 힘들어졌다. 계속 있다가는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죽어도 그런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어색한 침묵이 길어질수록 지호의 머릿속 혼란이 더해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지호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무 춥죠? 차에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그래요."

지호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남자는 그런 지호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남자에게 씌워줬던 우산도 내동댕이쳐졌다. 당황스러웠다. 남자의 표정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이건 좀 아니었나, 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땅에 떨어진 우산을 주워들어 남자에게 다시 씌워줬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호의 감정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극에 치달아 가고 있었다. 지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잠깐만 기다려요. 가서 담요 가져올게요."

남자는 놀란 눈으로 지호를 올려다 보았다. 금방 갔다 올게요. 그 말만을 남자에게 남겨두고 빠르게 뛰었다. 그새 또 빗줄기가 굵어졌다. 차를 세워뒀던 곳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빗방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지호의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제는, 아마도 조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담요는 항상 있던  곳에 있을 것이다. 조수석 앞 수납공간. 항상 그 쪽에 넣어두고 아주 추운 날에만 가끔씩 꺼내 덮고는 했다.최근에는 쓴 적이 없었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늘 놓아두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담요를 꺼내어 품에 소중히 싸안고는 다시 달렸다.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 같기도 했다. 남자가 있을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돌아가야 했다.
혹시나 사라졌을까, 아니면 계속 그 곳에 있을까. 지호는 남자를 걱정하며 조금 더 빨리 달리려 했지만 더 세게 내리는 비때문에 맘처럼 빨리 달리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호의 눈에 많이 낯설지만 조금은 익숙한 그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잠깐의 쓸모없는 걱정일 뿐이였다. 남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오는 지호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호의 표정이 환해졌다. 남자에게 다가가 소중히 싸안고 있던 담요를 따뜻하게 둘러주었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한두방울 떨어졌다. 왜 우느냐는 등의 바보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말이다. 지호는 왠지 남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북받쳐 오른 눈물이 당황스러운듯 황급히 눈물을 숨기려 했다. 웃음이 나왔다. 아마 예전의 지호에게도 이렇게 다가와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호 역시 그 사람 앞에서 눈물을 숨기려 했을것이다.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잃어버리고 버려진 사람들은 모두 이럴까. 지호는 남자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 남자가 듣고 싶어 할 말. 혹여 아닐지라도 지호가 남자에게 지금 당장,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쩌면 지난 날, 모든 걸 잃었던 지호가 그토록 듣고싶어 했을 한 마디.

"그냥 울어요. 괜찮아."

남자는 지호의 말에, 굵은 눈물을 뚝 뚝 흘렸다. 막혀있던 것이 뚫리듯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지호는, 남자를 조심스럽게 안고 어깨를 가만가만 토닥여주며 같은 말만을 자꾸자꾸 되풀이했다.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을 거에요. 괜찮으니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지금은 그냥 울어요. 괜찮아. 다 괜찮아. 남자에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상처받은 일들을 억지로 묻어놓고 사는 지호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만을 되뇌었다. 남자는 소리없이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
한솔의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 때 즈음, 빗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떨어져 당황스러웠지만, 지호는 오히려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제 곁에 있었던 사람처럼, 마치 제 마음을 다 알고 있던 것 처럼, 한솔이 그토록 듣고싶었던 말을 해 주었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생각할 수록 한솔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지호가 어딘가 의아하면서도 고마웠다.
한솔은 울음을 그치고 나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는 것이 떠올라 괜히 민망해졌다. 한솔은 지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예의 그 웃음을 지어보이며 지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울었어요? 이젠 좀 괜찮아?"

한솔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미쳤어, 미쳤어 김한솔. 민망하게 이게 뭐야, 처음 만난 사람한테 매달려서 울기나 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솔의 모습에 지호는 또다시 웃음이 났다.

"귀엽네요, 아까랑은 다르게."

한솔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리며 지호가 말했다. 한솔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빨개졌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지..계속 여기 있기는 좀 그렇지 않아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이야기. 하지만 지금 한솔의 상황에선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돌아가느냐, 다른곳으로 가느냐. 갈 곳은 없지만 돌아가면 어떤 끔찍한 상황을 보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솔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그 곳에서 나와야 할 터였다. 사람이 죽는걸 두 눈 뜨고 지켜본 곳에서, 본인도 죽을 뻔했던 곳에서, 언제라도 소녀의 피를 손에 묻힌 자들이 다시 그 곳에 들이닥쳐 제 목숨을 탐하며 칼을 들이댈 지 모르는 곳인지라 더더욱 가고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어디로 가야 될까, 한솔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솔을 바라보는 지호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어디서 어떻게 온 사람일지는 몰라도, 이대로 돌려보내자니 어쩐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제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지호 자신이야 괜찮지만 한솔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 수 없는 노릇이였다.

"이대로 계속 여기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괜찮으면 잠깐이라도 저희 집에 있을래요?"

심각하게 고민하던 한솔의 옆에서 함께 고민하고 있던 지호가 입을 열었다. 한솔은 조금 놀란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막 데려간다고? 분명한 호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 계속 있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가고싶어하시는 눈치도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이제와서 혼자 놔두고 갈 수도 없잖아요. 걱정되는데."

지호는 말을 마치고 한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것 같았다. 역시 괜한 짓이었을까.
하지만 한솔의 표정은 전보다 조금 밝아져 있었다. 폐가 될 줄은 알지만 그래도 저를 이만큼이나 신경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괜찮을 지는 모르겠지만 한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지호의 얼굴에도 엷게 미소가 퍼졌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 남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쓰이고 다가가고 싶었을까. 단순히 지호 본인의 과거가 떠올라서 마음이 쓰였던것 그 이상이다.

"그래요 그럼. 저 따라와요."

혹시라도 한솔이 저를 따라오지 못할까, 별의 별 걱정을 다 하고 있었지만 한솔은 지호의 옆에서 나란히 잘 걷고 있었다. 지호의 얼굴에 다시한번 이유모를 미소가 돌았다. 그리고 한솔의 얼굴에도 이유모를 작은 미소가 돌았다.

각설이도 벚꽃엔딩도 아닌데 또 돌아온 엔비션의 주저리(는 헛소리라죠?)

엔비션입니다!

저번글은 뭔가 쓰면서도 이게 뭐지 하며 쓰는 와중에 멘붕 또 멘붕을 거듭했는데 이번화는 그런대로 수월하게 잘 써져서 기분이 좋아요ㅎㅅㅎ 항상 한 화 완성시키면 바로 올리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업로딩이였던 제가 오늘은 열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글을 올리네요.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낸 기분ㅋㅋㅋㅋ

문득 생각난건데 솔이랑 지호의 첫만남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걸렸네요. 쓰차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프롤부터 끼적인거 생각하면 한주 반은 넘게 걸렸군요..분량은 짧은데 이걸 하루종일 쓰는게 아니라 그런가 한 편 쓰는데만 3일 4일씩 걸리고....ㅁ7ㅁ8

저번 주저리에서도 말씀드렸고 늘 댓글에 적는 말이지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댓글달고 포인트 돌려받아가세요! 여러분의 포인트는 소중하니까요(쇼케이팝 1편 궁이톤으로)


암호닉♡

뒷커버님 항상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뭐로 신청하셔도 다 받아요(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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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헐헐헐헣ㄹ 작가님 기다렸어요!!!!!그럼 저도 암호닉..블리...(소근소근)근데 이제 같이 살면 ㅠㅠㅠㅠㅠ 저 죽으라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넘넘넘넘넘 재밌어여!!!!!!!!!!또 기다릴게요 사라애여!!!!
10년 전
엔비션
헐 블리님 죽으면 앙대여!ㅋㅋㅋㅋㅋ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여린한솔이랑 듬직한지호~~~~ 좋구나~~~~~ 한솔이를 젤 아끼는데 좋아요~~~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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